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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화 〉제1부. 10화. 오빠를 돌려줘! (1) (57/195)



〈 57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1)

57.



퇴근한 명록을 만나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일어섰다.
식당을 나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명록이 수진을 이끌었다.
겨울에 접어든 거리는 어두워져서 이미 화려한 네온사인에 물든지 오래였다.


간판들 사이를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이 걸음한  거리는 식당 간판들은 사라지고
야릇한 이름들의 건물들과 객실 사진들이 촘촘히 붙어있는...
커다란 간판들이 거리를 빛내고 있었다.



" 추운데, 들어갈래? "




언제부터인가 데이트는 점점 바뀌고 있었다.
저녁 식사, 거리에서 약간의 머뭇거림, 그리고 모텔.

 모텔이라니.......

수진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번져 나갔다.
하지만 명록의 코에서도, 그녀의 입에서도 따듯한 숨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며 하얀 김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텔만큼 좋은 데이트 장소도 없었다.
따듯한 온기가 도는 실내.
평안히 발을 뻗고 쉴  있는 침대.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나 간섭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둘만의 스킨십을 즐길 수 있었다.

잠시 수진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
딱히 거부의 말도 없는 그녀의 행동에
명록은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잡은 수진의 손을 꼭 잡았다.


들어가려는 걸까.....



망설임의 결론이 승낙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는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왠지 이렇게 끌려가는 기분이 그녀는 싫었다.
하지만......
억지로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싫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 네...."

하얀 입김이 작은 구름이 되서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명록이 손에 느껴지는 온기에 마지못해 작게라도 수진은 승낙의 말을 던졌다.

어느새 그녀가 싫어하는 일이라도...
그가 원한다면 어느새 그녀는 따르게 되었다.


그런 것을 사랑이라 말한다면 사랑이지만, 어쩌면 사랑이라기 보단 사랑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오늘도 명록의 손을 잡고 어색하게 모텔 입구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수진은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명록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아 늘 부끄러웠다.

마치 그들의 걸음 끝에 섹스가 있다는 걸 알고 경멸하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창피함.....

부끄러움.....
그리고 약간의 수치심......


방문자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가려주려고 하는 건지
화려한 색의 천막이 내려진 모텔의 입구.
차라리 가림막이 없으면 덜 부끄러울 텐데....
가림막이 모텔에 들어서는 그녀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마침내 명록의 손에 이끌려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건물 안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불편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대리석 느낌의 반들반들한 벽에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치는 것이 더욱 수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명록이 방을 잡기 위해 프런트로 가면,
수진은 언제나 호주머니 안에서  잡은 손을 슬쩍 빼내고는
프런트에서 잘 안 보이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숨었다.

이번엔 남자 직원도 아니고 친절해 보이는 여자 직원이었지만,
자신과 밤을 보내기 위해 방을 잡는 것을 두 사람이 아닌 타인이 안다는 것은
그녀에겐 아직 지독하게 민망한 일이었다.


짧지만 전혀 짧지 않는 시간......

수진은 이 어색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미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하며 5층에 머물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4.
...
2.
1.


띵!

날카로운 전자음의 종소리와 함께 무거운 엘리베이터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가 잠시 후  일 없이 닫혔다.
그녀는 한쪽 구두 앞코를 바닥에 탁탁 치며 명록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직 그는 오지 않았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어색한 시간은 언제나 길었다.
그녀가 초조해 할수록 기다림은 길고 불편했다.


수진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이리저리 굴렸다.
엘리베이터  소파 옆에 놓인 잡지들의 표지에 적힌 활자들을 읽으며 명록을 기다렸다.

아무  없이 그녀의 어깨를 누르는 무게에 깜짝 놀랐다.
수진이 고개를 들자 명록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 명록이 방을 잡았는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의 가슴에 폭 안긴 수진이 그제야 어색하고도 민망한 시간이 끝났음을 인지하곤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미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빠르게 열리고,
그와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다.





**************



거리는 쌀쌀했다.


하긴 이미 12월에 접어들지 않았나.
동장군의 기세가 점점 드세 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용 코트를 입은 명록에게 겨울에 들어서는 밤거리의 찬바람도 하나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주머니 속에 수진의 손을 집어넣고 자연스럽게 같이 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변화(變化).

연애를 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더니......
자신도 그  속에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수진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류도 어느새 그의 입맛에 맞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나 얼큰한 찌개와 밥이 주식이었던 명록이

비싸고 느끼한 크림스파게티에 입맛을 다시는 날이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가볍게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온 둘은 밤거리의 화려한 불빛 속을 가르며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해보니 이곳은 자주 수진과 만났던 곳이었다.
회사와 그녀의 집 사이에 있는 좋은 위치.
그리고 번화가와 가까워서 갈 곳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리고 모텔촌이 가까운 곳.

자연스럽게 수진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향할 수 있어서 애용하는 장소였다.

사실.....

식당이나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수진을 만나면 바로 모텔로 가고 싶었다.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보내는 시간이 더욱 즐거웠다.

수진의 부드러운 몸을 안고.....
그녀의 좋은 향기를 맡으며......
뜨거운 호흡을 나누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근조근 서로의 얘기를 하고.....
팔베개를 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보내는 시간......
일분일초가 훨씬 더 좋았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그녀와 섹스를 못했던 시절도 있었잖아......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체 왜 그녀의 몸 안으로 집어넣지 못하고 그렇게 뻘뻘 땀을 흘리며 고생했었을까?


그녀에게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서 잠시나마 고자(?)가 되었던 그 시간.....
비뇨기과를 갈까.......
승필 선배에게 SOS를 칠까......
고민하며 한없이 우울한 바다에 빠져있었던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이래서.....
초짜라는 타이틀을 보며 사람들이 비웃음을 짓는 거 아닐까 싶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혼자 심각하고 혼자서 끙끙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어찌됐든......
거리의 찬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얼굴이 냉기로 서서히 얼어붙어가는 느낌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수진이 금세라도 얼어붙어서 동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걷다보니 모텔촌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었다.
명록은 수진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 추운데, 우리..... 들어갈래? "



그의 말에 수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아직 그녀에겐 모텔이라는 공간이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명록에게도 두 젊은 남녀가 모텔로 들어간다는 것은  섹스를 의미했다.


남자야 뭐 그렇다고 해도...
이제 스물 갓 넘긴 여자에겐 남자와 모텔을 들락날락 한다는 것이
그렇게 떳떳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녀의 심정도 모를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모텔 말고는 그녀를 데리고 갈 곳이 없었다.

이럴 때면 자취하고 있는 다른 남자들이 부러웠다.
아니 나만의 거주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정말로 부러웠다.

아마 명록 혼자 살고 있는 자취방이나 오피스텔이라면
아마 수진도 이렇게 난감해하거나 거북한 느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차라도 타고 들어갔다면 더욱 그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과 만나다 보니 더욱 자가용이 가지고 싶어졌다.
어디 놀러갈 때도 그렇고 작게는 이렇게 모텔에 들어올 때도
 안에 태우고 들어오면 수진이 조금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도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보면
어느새 빠져들어서 혼자 열심히 견적도 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소형은  그렇고......
준중형은 되어야겠지?
조금 더 보태서.....
아예 중형승용차로 살까?
아니면 역시 남자는 SUV정도는 타애 되지 않을까?
이 정도는 몰아야 폼도 나고 그럴 텐데.......


그렇게 신나게 홈페이지를 보며 견적을 내다가도
정작 자신이 치러야할 금액에 화들짝 놀라서 아직 자신의 집도 없는 녀석이
자동차 굴리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는 바로 웹페이지를 닫아버리곤 했다.

사실......
차를 사게 되면 주변 친구들만 봐도 저축하기는 힘들었다.
집을 사기 위한 장기적인 저축?
꿈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금.....
운용비.....
보험......
자잘한 부품 비에 수리비.....
하다못해 주차에 기름 값까지 결국 돈 잡아먹는 하마로 변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자동차 구매의 대한 유혹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순간 작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네....... "



아!
드디어 수진의 승낙이 떨어졌다.

명록은 금세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모텔의 가림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차들이 가득 채워진 주차장을 지나서 프런트로 들어서는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금세 훈훈한 기온이 그들을 감쌌다.
잠시 수진의 손을 놓고 프런트로 갔다.


아....
여자직원이 있네???

단정히 머리를 빗어 쪽진 헤어스타일에 유니폼을 차려입은 여자직원이 명록을 맞고 있었다.
유난히 붉은 립스틱이 신경 쓰였다.



" 방 하나 주세요. "

" 대실 인가요? 숙박이신가요? "



" 흠...... "



힐끔 수진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닥을  앞부분으로 콕콕 차며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손을 놓고 기다리는 여자아이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아까 오늘밤은 같이 있어도 된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매일 같이 보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밤을 같이 지새우기는 어려웠다.
잠시 대실만 해왔던 그로썬 오늘 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 숙박이요. 저.... 5층에 방이 있음 거기로 주시겠어요? "

여직원은 명록의 말에 방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 507호 있는데 구석방이네요. 괜찮으시겠어요? "


 괜찮은지를 묻는 걸까......
구석이면 더 좋지 뭐....

" 네. 주세요. "



여직원은 키와 세면도구 등이 들은 작은 비닐 백을 같이 주었다.


명록은 돈을 지불하고 혼자 외롭게 있는 수진에게 다가갔다.
팔을 그녀의 어께에 두르자 흠칫 놀라던 표정의 수진이 명록의 가슴에 폭 안겨왔다.
그리곤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바로 열린  사이로 둘이 바로 들어갔다.
명록은 몸을 돌려 수진을 가리고 5층 단추를 눌렀다.
문이 이내 닫히고 그제야 수진이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후.....

명록은 그런 수진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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