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제1부. # 8화. 두근두근, 뜨거운 밤 예약중?! (1)
32.
" 와~! 드디어 기브스를 벗었네요?"
" 무시무시한 톱으로 자르기에 팔까지 자를까 봐 등에 진땀이 다 흐르더라고......."
명록이 기브스를 푼다는 말에 수진이 따라간다고 나서고 싶었지만 수업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같이 가지 못했다.
대신 수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병원 앞에 있는 카페로 바로 달려가서는 깁스를 푼 명록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기브스를 하게 된 이유가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이었으니
명록의 팔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던 기브스가 사라진 모습에
수진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그녀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진은 한결 좋아 보이는 명록을 보며 물었다.
" 탈 병원한 소감이 어때요? 후련해요?"
" 음..... 완전 끝난 것은 아니라서...... 아직은 물리치료 받으러 오라고 하던데...... 뭐."
퇴원한 이후로기브스를 한 채로 같이 병원을 가면서
그 시간동안 간간이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는 동안....
수진이 속상할까 봐 티는 잘 안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끔씩 불편해 하는 명록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마음이 언제나 평안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 입원부터 골절에 이어지는 명록의 시간이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
마음이 계속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보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느낌.
어떻게 일이 꼬일 수 있었는지 시간을 되돌아 봐도 절로 머리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 기브스가 사라지면서 겨우 마음이 가벼워지는가 싶었는데
아직 물리치료가 남아 있다니......
수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신의 탓을 말한 적 없고 언제나 자신을 향해 웃는 명록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이걸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해주면 그가 기뻐할까......
그러고 보니 이전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저번에 팔이 불편한 명록을 대신해서 그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병원비를 결제했을 때....
얼핏 명록의 신분증에 적힌 생일을 봤었는데 지금 생각 하니 그 날짜가 채 얼마 남지 않았다.
병원일도 있으니, 조금 무리해서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명록이 원하는 선물이 뭔지 알 수 없으니........
고민스러웠다.
남자의 선물을 사본 적도 없었고 무얼 원하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는 수진이었다.
그렇다고....
당사자인 그에게 선물이 뭐가 갖고 싶냐...
-고 물어보면 너무 티가 나잖아.....?
수진은 고민 고민하며 생각하다가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 오빠, 흐음..... 혹시 나한테 바라는 소원 같은 거 있어요?"
알라딘에게 소원을 묻는 지니처럼, 명록에게 소원을 물어봤다.
이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
드디어 기브스를 풀었다.
아....
지긋지긋한 기브스......
가벼운 소재로 되어있기는 했지만 역시 불편했다.
회사에 출근한 뒤 박 과장의 시선이 특히나 날카로웠다.
워드 작업도 많은데 팔이 하나 이 모양이 되서 출근했으니 무엇을 시킬 수가 없었다.
수정이나 교정 작업에나 써먹을 수 있으니 박 과장의 입장에서는 완전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계약 상담같은 접대업무도 제한되었다.
외주업체 관리 건은 덕분에 다 명록에게 돌아왔지만 그래도 이번에 제대로 찍힌 모양이었다.
그나마 승필 선배가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승필 선배........
완전 얄밉게 보이다가도 이렇게 자신을 도와주는 그를 보면 정말......
인정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분명 멋진 선배인데.......
평상시에도 조금만 이런 모습 유지하면 완전 충성을 맹세할 텐데.......
이러다가 갑자기 살짝 삐끗 사선을 타는 그의 태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찌 됐든 드디어 오늘 기브스를 풀기로 한 그날이 왔다.
시간이 비면 언제나 꼭 자신과 같이 병원에 오던 수진이 오늘은 수업 시간이 맞물려서 오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잠시라도 꼭 명록의 얼굴 보고 싶다고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라고 그녀가 우기는 통에 병원 앞 카페에 앉아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오늘 기브스를 푼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아마도 꼭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명록도 회사에 들어갈 때까지 좀 여유가 있었던 터라 막간에 생긴 시간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외근으로 나와 있고 외주업체에 들린 건도 미리미리 처리해둔 터라 시간은 남아있었다.
어느새 길 저편에서 수진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거리는 스커트를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오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남산 이후병원에 바로 실려와서는 입원하고 퇴원까지 거의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진과 제대로 데이트는 못했지만 거의 하루에 한번 보고 있었다.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또는 잠시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연락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중간고사 동안에 잠시 못 보았던 그 시간외엔 거의 매일 보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통화하고 문자하고......
그리고 하루 한 시간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수록.....
시간이 흘러갈수록
수진의 얼굴이 예뻐지고......
그리고 보고 싶어지는 것이......
명록은 수진을 볼 때마다 조금씩 그의 마음 안에 그녀의자리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첫 여친......
나의 첫 연인......
숨을 몰아쉬며 옆에 앉는 그녀가 왠지 목말라 하는 거 같아 물었다.
" 시원한 거라도 한잔 마실래? "
수진은 숨을 잠시 몰아쉬더니 말했다.
" 잠시 만요. 좀 쉬었다가 제가 사올께요. "
" 후후..... 괜찮아. 뭐 마시고 싶어? 잠시 넌 앉아서 쉬어. 힘들어 보인다. "
" 피.... 환자한테 어떻게 시켜요? 어.... 아~! 와아! 드디어 기브스를 벗었네요? "
수진의 들뜬 목소리.
명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하하, 그래. 아까 무시무시한 톱으로 자르기에 팔까지 자를까봐 등에서진땀이 다 흐르더라고......."
수진은 그가 기브스 했던 팔뚝을 신기한 듯 만지고 있었다.
명록은 그런 그녀의 손길이 기분 좋았다.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
조심스레 만지는 수진의 손길이 그간 걱정하고 있었던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싶었다.
수진은 그렇게 그의 팔뚝을 어루만지다가 명록에게 물었다.
" 탈 병원한 소감이 어때요? 후련해요?"
명록은 흠 소리를 내고 말했다.
" 음..... 완전 끝난 것은 아니라서...... 아직은 물리치료 받으러 오라고 하던데...... 머."
수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직 명록이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명록은 그런 수진에게 뭐라도 마시게 하고 싶었다.
달콤한 것......
머가 좋을까?
" 수진아, 아이스티라도 마실래? "
수진은 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록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점원에게 주문했다.
마침 손님도 없었던 터라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들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바로 그녀가 마시던 대로 시럽을 넣고는 아이스티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앞에 아이스티를 놓았다.
수진이 씽긋 웃으며 고마워했다.
" 오빠,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
그녀의 한마디.
이 미소 하나면 무엇을 그녀에게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늘 아래 카페 안은 조용한 것이 평화로웠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도 상쾌했다.
순간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빠, 흐음..... 혹시 나한테 바라는 소원 같은 거 있어요?"
소원!?
명록은 갑작스런 말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원.....
소원.......
갑자기 그녀가 물어오는 통에 바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급하게 마음 속을 뒤지는 와중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간 그녀와 같이 다니면 생각했던 게........
함께 같이 모텔에 가는.....
것은 아니고.......
함께 멀리 여행을 가고 싶었다.
둘 만의 시간.
둘 만의 공간에서......
수진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명록은 수진을 보며 말했다.
" 우리 그럼 같이 여행을 가자. 너랑 같이 여행가고 싶어. "
그녀와 함께 멀리 교외라도 가서 바람도 쐬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같이 산책도 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손도 잡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낸다......?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말에 수진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었던 모양이었다.
명록은 자신 앞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버린 아메리카노가 시럽에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달달했다.
**************
" 그래요.... 우리 같이 여행 갔다 와요. "
수진의 승낙.
그 뒤 명록과 수진의 대화는 여행에 대한 것으로 화제가 이루어졌다.
일을 하는 동안 짬짬이 그녀와 같이 갈 여행에 대해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매일 퇴근 후에 밤새 수진과 통화를 하고도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내 몸 안에 이런 힘이 숨어있다니......
명록은 가끔 이런 자신이 놀라웠다.
점차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여행 날짜에 대해서도 구체화 되고 있었다.
처음 그가 생각했던 것은 하루코스로 갔다 오는 드라이브 정도였다.
당일코스로 갔다올만한 곳.
동해바다......
인천.......
안면도........
강화.......
춘천......
지도를 보면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동안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수진이와 처음 가는 여행인데......
제대로 가고 싶다.......
그랬다.
'하루' 라는 시간의 테두리에서 갇혀서 여행지 선택에 제한되는 것이 왠지 싫었다.
이박삼일 정도.......
여행을 가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 놈의 '박(泊)' 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가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점이 수진에게 어떻게 받아드려질까.......
수진도 그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어떤 것인지 알고 있을 텐데......
과연 그녀가 받아드릴지 의문스러웠다.
지금도 수진과의 통화가 계속 되는 중이었다.
" 남이섬도 괜찮은 거 같아요. 아기자기 해보이더라구요."
그러나 명록은 이미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흐음........ "
명록은 망설였다.
과연 내가 이박삼일 여행을 가자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두근두근.......
그간 좋았던 관계가 깨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이렇게 여행에 대해 즐겁게 얘기하는 그녀가 이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확 달라질까?
명록은 마침내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 수진아....... 아니면 그냥 이박삼일로 여행가지 않을래? "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두근두근......
심장이 더욱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수진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동안 명록은 자신의 입 안이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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