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제1부. # 7화. 간호사가 그리 좋아? (4)
27.
고창수 이 자식......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했더라면 너만한 아들이 있겠다......
-할 나이인데도 명록을 넉살 좋게 형이라고 부르는 아이였다.
참.....
난 첫사랑이 없구나.
모태 쏠로였지......
쿨럭!
아뭏튼 명록을 무한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녀석이 어찌나 귀엽던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헤헤..... 제 여친이 좀 예쁘긴 하죠. 그래도 오 간호사만 하겠어요? "
물론 말하면서 절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풋풋함이 팍팍 넘치는 수진이 오은혜 간호사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그냥 겸손의 마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겸손의 민족이라 하지 않는가.
겸손겸양(謙遜謙讓)의 마음으로 그냥 해보는 소리였다.
" 에구.... 아닌데? 이거미쓰 코리아라고 해도 믿겠어. 그래 나이가 몇이야? 사귄지는 오래 되었고? "
홀아비라고 하더니 오씨 아저씨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하긴 다른 환자들은 다들 옆에 무서운 짝이 있어서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도 명록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명록은 순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하.....
이런 게 미인을 얻은 자의 특권인가 보다......
하하하~~
이리 좋은 데가~~~
우쭐해진 마음으로 명록은 입을 열었다.
" 이제 21살이에요. 대학생인데...... 제가 그리 좋다네요? "
바람이 들어가서 허파에 <<허풍>>이라는 것이 가득 차서는
명록은 완전 자신이 좋아 못사는 여자로 수진을 만들어가며 얘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영업을 위해 발휘되던 명록의 입담이 여기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 어떠냐~~
여기서 퇴원하면 이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인데.......
이왕이면 내 자랑도 하면서 신바람 좀 내보자.....
히히히~
창수는 아예 명록의 침대 아래 간의침대에 엉덩이를 탁 걸치고 앉아서 그의 얘기를경청하고 있었다.
**************
" 야야, 또 몰래 혼자 빠져 나가는 거야?"
" 응.. 병원 가봐야지."
수업이 모두끝나자 또 쏜살같이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 수진을 영연이 붙들었다.
" 그럼, 우리도 같이 가자."
" 응? 니네가 오빠.... 병문안 간다고?"
" 그래. 싫어?"
나희가 웃으며 같이 가자는 말에 수진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희들......
남을 걱정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잖아......?
삼총사들이 병문안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는 수진을 설아와 영연이 덥썩 잡아끌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 뭘 고민해? 어차피 병원 가려면 버스 타고 갈 거 아냐. 나랑 같이 가면 내 차타고 가니깐 너야 나쁜 일도 아니잖아? 어디 병원으로 가면 되니?"
꿍꿍이가 있는지 나희가 수진의 뒤를 따라오며 웃음이 가득히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진도 편하게 차를 얻어타고 병원을 간다는 생각에 딱히 반대하지 않고 순순히 나희의 차에 올랐다.
하지만......
역시나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여기? 맞아? 어디 잘생긴 의사 없나?"
" 넌 'one by one' 아니었어?"
" 뭐 이제 갈아치우려고..... 요즘 사이가 안 좋거든, 개자식...."
" 야... 좀 조용히 좀 말해...."
된소리 발음이 조용한 복도에 요란히 울리자 지나가던 아줌마가 그녀들을 흘깃 쳐다봤다.
수진이 그녀들의 대화가 들렸을까 부끄러워서 영연의 옷깃을 잡아 당겼지만
그녀들은 무시하고 명록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자마자 얼굴을 쑥 내밀며 들어갔다.
" 아, 왜~ 어? 명록 오빠다!!! 오빠~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 야~~ 조...조용히 해...... 부끄럽단 말이야...."
수진이 당황해서 급하게 말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영연의 목소리가 병실을 들어가자마자 내숭모드로 돌변하더니 금세 소프라노로 바뀌었다.
수진이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영연의 요란한 등장에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들이 모두 그녀들에게 집중했다.
침침한 병실에 나타난 한 떨기 꽃들!
영연은 시선을 받는데 아무렇지도 않은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리처럼 명록의 침대에 털썩 걸쳐 앉았다.
" 오빠... 어쩌다 입원까지 하셨어요...."
자못 안타까운 표정 연기까지 하는 영연에 수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뿐만 아니라 명록 또한 그녀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다.
눈과 입이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수진이 그런 명록의 표정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 머쓱하게 곁으로 다가가 웃었다.
" 오빠. 받으세요."
나희가 수진과 명록 사이에 끼어들며 명록에게 음료수 박스를 건넸다.
올 때 수진이 명록은 어차피 못 먹는다고 그렇게 사지 말라고 했것만, 설아가 그러니 더욱 사가야한다고 우겨서 수진을 당황하게 했던 그 음료수였다!
" 하하, 뭐 이런 걸 다 사왔어? 앉아, 앉아..."
" 명록 오라버니 것은 따로 준비했어요."
명록이 음료수 박스를 받으려 손을 내밀었지만
설아가 음료수는 명록의 것이 아니라며 자기 것처럼 중간에 박스를 가로챘다.
다들 얼이 빠진 채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설아가아무렇지도 않게 음료수 박스를 들고는 병실 안의 사람들에게 한병 한병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화를 내면 음료수 한 박스에 옹색한 사람이 되는지라, 명록과 수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의 작태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무안해진 손....
명록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 오라버니건 이거에요. 병문안 선물~! "
병실에 음료수를 나눠주고 다시 그의 앞으로 돌아온 설아가 단단히 여며놓은 프렌치 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아주 당당히 코트를 벗었다.
코트를 벗은 그녀의 모습을 정면에서 보게 된 명록은 더욱 놀라 얼음이 되어버렸다!!!
허벅지를 다 가리지 못하는....
분홍색 타이트한 원피스형의 간호사 복에, 흰색 스타킹, 흰색 가터 벨트까지.....!
그의 병문안 선물로 설아는 <<간호사 코스프레 복>>을 입고 왔던 것이었다!!!
거기다 정상적인 간호사 유니폼도 아닌...
누가 봐도 성인용품 샵에서나 팔 것 같은 실용성이란 전혀 없어 보이는...
야시시한 간호사복!!!
워낙 설아의 스타일이 좋기도 했지만......
간호사 코스프레 자체가 상당히
야....야했다.
병실의 남자 환자들 시선을 한 번에 확~!
끌어당길 만큼!!!!!
설아의 당당한 행동에 명록과 수진이 혼이 나간 것처럼 얼어버리고
그녀들을 홀깃 거리며 엿보고 있던 다른 환자들마저 완전 깜짝 놀라서
몰래 훔쳐본다는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병실 안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 푸학-!!!!!!!!!!!!!!!!!!!!!!!!!!!!!!!!! "
음료수를 마시던 홀아비스러운 아저씨가 뒤늦게 설아를 발견하고 입에 머금은 음료수를 뿜어냈다.
뿌옇게 뿜어지는 음료수 안개 속에서 마치 무지개 생길 것 같았다.
그 작은 소리가 최면을 빠져나오는 키워드 '레드 썬'처럼 수진의 패닉 상태를 깨웠다.
옆에서 킥킥 거리며 웃음을 참는 영연과 나희의 모습.
수진은 갑자기 그녀들이 병문안을 온다고 할때부터 이상하다 생각은 했었지만....
이런 꿍꿍이가 있는 줄은 차마 몰랐다.
이런 것들이 친구들이라고.........
웬수들....
수진은 어디 쥐구멍에라도 가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데려온다면 정말 그땐 내가 사람이 아니야......
이 웬수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언제나 불운의 타이밍은 끝내줬다.
" 김정규 환자님, 수....."
때마침 희극처럼 링겔을 갈아주러 병실에 여간호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설아의 야시시한 간호사 복장에 여간호사의 얼굴이 딱 굳어지며 병실과 복도 사이에 어색하게 멈춰 섰다.
간호사의 목소리에 일순간 병실 남자들의 고개가 설아에게서 간호사에게로 넘어갔다.
어제, 수진을 철없는 보호자 취급했던 그 간호사였다.
명찰의 이름이.......
<<오은혜>> 이었던 그 간호사........
그러고 보니 그녀의 미모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이쪽은 미모에 색기까지 흐르는,
나올 곳은 빵빵하게 나오고 들어갈 곳 잘록하게 들어간
글래머러스한 진짜 백의의 간호사였다.
설아는 미모야 어느 정도 있지만 아직은 그녀만큼 육감적인 몸매는 아닌데다가 가짜 간호사였으니 밀리는 건 당연했다.
오리지널이 짜가를 이기는 것은당연한 세상이치!
그나마 설아가 입은 복장에서 주는 야사시함이 그녀와 대등한 점수를 유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수진은 민망함에 그녀를 쳐다보다가 병실 남자들의 눈이 모두 그 간호사에게 쏠린 걸 깨닫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록을 돌아봤다.
하지만....
명록도 남자인지라 그 역시 진짜 간호사인 그녀를 헤벌쭉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설아의 옷을 입은 그녀를 상상하는 듯 해보여서 수진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 뭐야 진짜가 등장했네."
설아가 그녀의 등장에 김이 샌 듯 투덜거렸다.
" 야, 명록 오빠 봐봐. 뿅 갔는데? 킥킥, 너도 간호사 코스프레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영연이 명록의 넋 나간 얼굴을 비웃으며 수진에게 속닥거렸다.
순간 수진이 낮게 소리쳤다.
" 미쳤어? 내가 왜 그런 걸 해!"
" 남자들은 저런 거 좋아해. 원하면 저 옷 빌려줄게, 쓰고 드라이만 해서 돌려줘. 옷에 뭐 묻으면 찝찝하거든."
" 뭐? 저거 네 옷이었어? 미쳤어, 미쳤어! 저런 걸 왜 사는 거야!? 그리고 머.... 뭐가 묻는다는 거야?!"
발끈하는 수진에게 나희가 한술 더 떠 옷까지 빌려 주겠다 나섰다.
수진의 상식 밖의 이야기...
거기다 뭐가 묻길래 드라이클리닝(dry cleaning)해서 돌려달라는 것인지!
대체 저 옷을 입고 무슨 짓을 하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 야야~ 명록 오빠 턱 빠지겠다. 턱 빠지겠어. 저 여시가 너보다 좋은가 본데? "
또 다시 옆에서 영연이 수진의 속을 살살 긁었다.
수진도 간호사를 쳐다보고 있는 명록의 표정에 기분이 나빠 있었는데
기름을 끼얹는 듯한 영연의 말에 완전 기분이 하강 곡선을 그렸다.
생각 같아선 명록의 귀를 잡아다 간호사를 못 보게 자신 쪽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간호사에게 고정 된 명록의 시선에 수진의 표정이 쌜쭉해졌다.
<<간호사가 그리 좋아?(4)>> 끝 => <<간호사가 그리 좋아?(5)>> 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