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제1부. # 6화. 남산 투 파 (Namsan too far) (4)
23.
BMR 하트 BSJ.....
자기와 그녀의 이니셜이 새겨진 자물쇠가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달달해지는 느낌이었다.
하....
뭐어 유치하면 어떠냐......
그녀와 이렇게 묶인다는 게 왠지....
기분은 좋네.....
그간 숙취와 체력고갈에 남산 올라오며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도
이 순간 만은 정말 연애를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수진이 그의 옆에 붙어서 양팔을 감싸 안으며 기대왔다.
남산 정상에 바람이 불며.....
그와 그녀를 휘감고 지나갔다.
나란히 자물쇠를 보던 수진이가 말했다.
" 오빠..... 고생했어....... "
명록은 그녀의 말에 하하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무슨......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너야말로 도시락 싸고 그러느라 고생 했지...... "
" 아~~ 맞다..... 오빠 힘들었을 텐데...... 내가 김밥도 준비했거든. 그거 먹자. 음료수는 내가 뽑아올께. "
명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수진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자물쇠를 보며 말을 이었다.
" 응, 참치치즈김밥. 이것도 애들이 정말 맛있다고 하는 것 중 하나야..... 헤헤......"
그녀의 말에 명록은 갑자기 다시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졌다.
참치 치즈......?
느끼함이 또 다시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
누가 하산이 쉽다고 했던가......
내리막길이라서 그냥 쉭쉭 내려간다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나.....
죽는다.
하산하면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느라 이젠 허벅지와 장딴지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또 한 차례 음식 공격을 받았다.
참치치즈김밥......
어쩐지 그 샌드위치를 다 먹었는데도 무게가 상당하더라니....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수진이 뽑아다준 콜라로 대충 삼키며 먹었지만 그 양도 장난 아니었다.
거....거기에다가
더운 날씨에 약간 맛이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수진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도저히 못 먹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도 맛이 간 김밥.
수진이 하나라도 먹고 맛이 이상함을 깨닫길 바랬지만
허무하게도 그녀는 바나나 우유 하나 마시며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명록은 절로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그 김밥 한통을 다 먹었다.
마지막 찬합통 답게 깊이도 깊숙했다.
김밥을 다 먹고 나니 뱃속이 빵빵해지며 허리띠가 자신의 살가죽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삼단 찬합의 위엄!!!!!!!!!!!!!!!
아~~
누굴 돼지로 아나~~~
나 마음도 몸도 홀쭉~~~하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결국 그 안에 가득 찬 수진의 도시락을 자신의 뱃속에 쑤셔 넣었다.
결국 죽기 살기로 배를 끌어안고 거의 굴러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 기나긴 남산 길을 걸어서 올라가서는 다시 걸어서 내려오다니........
햇살이 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심각한 와중에서도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된다면....
수진은 서서히 남산의 풍경을 즐기며 내려오느라 다행히 서둘지는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명록이 힘들어 보이면
간간히 쉬면서 앉았다가 다시 내려오는 덕분에
그나마 간신히 하산을 할 수 있었다.
어느새 천천히 남대문이 보이는 도로까지 내려오자 수진이 명록의 팔을 잡으며 씽긋 웃었다.
" 오빠 많이 힘들었죠? 이 근처에 크림 스파게티 진짜 잘하는 집이 있어요. 우리 먹으러가요. 이건 제가 살게요. "
그녀가 명록이 팔짱을 끼고 길을 안내했다.
수진이 사겠다는데 이걸 거절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판단할 새도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오마이 갓!!!
명록은 크림 스파게티라는 단어 만으로도 느끼함에 죽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이미 뱃속을 가득 차있었는데......
길고 긴 하루는 아직 안 끝난 모양이었다.
**************
" 다녀왔습니다~~~~~ "
즐거운 듯 잔뜩 높아진 목소리.
수진도 모르게 즐거움과 행복함이 목소리에 배어나왔다.
시간이 꽤 늦은지라 엄마와 아빠는 이미 저녁을 먹고 난 후인지
둘은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티비를 함께 보고 있었다.
수진은 부엌에 들어가 텅 빈 도시락 통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 수진아 네가 그 설거지 다해, 넌 아침에 뭘 했기에 부엌을 그렇게 다 초토화 시킨 거니? 하나 남기지도 않고 홀랑 다 챙겨가고! 엄마가 그거 치웠으니, 네가 그것 치워! 공평하게!"
수진이 부엌에 들어가자마자 거실이 있던 엄마 입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런데 평소 설거지라면 죽을 만큼 싫어했던 수진이 이상하게 순순히 알았다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 여보, 쟤 요즘 이상한 것 같지 않아? "
"뭐가 이상해? 내가 볼 땐 평소랑 똑같구먼... TV나 봐. "
예리하게 엄마가 여자 특유의 감각으로 수진의 이상 징후를 눈치 챘다.
하지만 아빠가 뉴스에 한참 집중하느라 엄마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자 수진의 엄마는 눈초리를 날카롭게 세우며 아빠를 노려봤다.
수진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말을 안 듣는 아빠의 태도에 초점이 이동하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온 수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무장갑을 꼈다.
수세미를 들고 그릇에 거품을 칠하는데 행복한 웃음이 빠져나오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빈 도시락 통에 거품을 묻히자, 도시락에 감동하며 울던 명록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이 이슬방울처럼 맺혀서는.....
반짝이는 눈동자와 함께....
볼이 빵빵해져는 우물거리는 입하며.....
엄지척하는 모습까지.....
귀여워!!!!!!!!!!!!
명록의 모습이 떠오르자 수진의 얼굴이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늘 꿈꾸던 남산의 자물쇠 까지....
서늘한 산바람이 불며 명록과 나란히 서있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마지막 스파게티 전문점에서의 로맨틱한 저녁까지 완벽했다!!!
이 모든 것이 자동차 극장에서의 꿀꿀한 첫데이트의 기억은 충분히 상쇄시킬 만족한 하루였다.
수진은 자신의 도시락을 다 먹어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이 시키는 것을 다해주는 명록의 모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자신의 용서를 구하게 위해 귀여운 인형 옷까지 입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다큰 남자....
아니 아저씨라고 해도 충분할 명록에게서
귀여움을 느끼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말.......
왠지 이 사람을.....
마음 속 깊이 좋아하게 될 거 같았다.
방명록.......
첨에 들었을 때 우스웠던 이름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
명록은 수진을 데려다 주었다.
다행이도....
중간 환승역에서 오늘 너무 고생했다고 이젠 혼자 가겠다며
수진이 극구 만류하는 통에 다행이도 거기서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속쓰림에 느끼한 음식을 가득 먹고 억지로 수진의 도시락을 다 먹었더니 금세라도 폭발할 거 같았다.
명록은 집에 들어오자 말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아니....
오자마자 욕실로 달려 들어가 변기를 끌어안았다.
우웨에에에엑~~~
웨이엑~
한번 터지지 시작하자 정신없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먹었던 스파게티의 하얀 건더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김밥의 흔적 등 끊임없이 쏟아냈다.
웩~~~
으에웨엑~~
콧구멍으로도 액체가 쏟아지며 쓴맛에 눈물이 쏟아졌다.
구토하는 와중에 이젠 위장이 통채로 목으로 튀어나올 거 같았다.
으웩~~~
" 아니, 대체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와서 저러는 거야? 명록아~~~ 괜찮냐??? 아니 왜 그러냐??? "
욕실문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록은 토를 쏟아내느라 제대로 나오지는 않은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 아므.....것도 아니에요....... 괘...괜찮아요....... "
웨엑~~~
다시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토악질을 이어갔다.
한참 토를 하고 기진맥진해서 고개를 들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벽을 잡고 일어서서 세면대로 갔다.
거울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눈물을 흘리느라 붉게 충혈된 눈동자.
콧구멍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입가엔 토사물의 흔적이 잔뜩 묻어있었다.
수도꼭지를 열고 찬물에 세수했다.
어푸~~어푸~~어푸푸~~
물도 입 안으로 받아 개워 냈다.
토사물의 알갱이로 텁텁한 입을 계속 물을 마시며 개우고 뱉었다.
대충 씻고 욕실 문을 나서자 거실에 있는 어머니가 그를 보며 한심한 듯이 말했다.
" 에구.... 저놈 꼬라지 좀 봐라..... 화장실에서 애를 낳았네..... 애를 낳아...... 대체 멀 하고 다닌 건지...... 어서 가서 밥 먹어라. 에구.... 못난 놈..... "
명록은 팍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 아흐.... 저 안 먹어요...... "
밥 안 먹는다는 소리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금세 높아졌다.
" 아니~~~ 왜 밥을 안 먹어~~!!! 밖에서 어디 길거리 음식은 먹고 그 지랄을 하더니 엄마가 한 밥은 안 먹냐~! 헛소리 하지 말고 빨랑 안 먹어~~~? "
욕실에서 그렇게 토했는데 엄마는 대체......
밥 먹으라는 소리가 나오슈~~~?
으......
명록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손을 허우적 흔들며 서랍을 뒤졌다.
눈에 보이는 소화제를 입 안에 넣고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쓰러졌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밤샘에......
남산 투어라니......
과식.....
폭식.....
으.....
완전 죽을 것 같았다.
순간 어둠이 확 밀려와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들며 정신을 잃었다.
잠시 잠든 것 같은데 지옥에 빠져있는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이 불타고 있는 느낌......
으으으.....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자신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자
순간 속이 뒤틀리며 아파서 죽을 거 같은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장이 꼬이는 느낌.
아니 장이 잘려나가는 고통.
간신히 눈을 뜨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에서 명록은 손을 뻗어 벽을 밀었다.
쿵!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충격보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 심각했다.
장이 끊어져서 죽기 전에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간신히 방문을 열고 거실을 향해 기기 시작했다.
그가 바닥을 기는 것을 보자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가족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어머니가 과자를 드시다말고 놀라 몸을 일으켰다.
" 어잉? 명록아~~~ 어....어째 그러냐? 왜 그래? "
명록은 덜덜 떨면서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어..엄마.... 일일구..... 일일........"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이 꼬부라졌다.
순간 가족들의 소리로 그의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남산 투 파 (Namsan too far)(4)>> 끝 => <<간호사가 그리 좋아?(1)>> 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