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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제1부. 6화. 남산 투 파 (Namsan too far) (3) (22/195)



〈 22화 〉제1부. # 6화. 남산 투 파 (Namsan too far) (3)

22.


으으.......
완전 힘이 딸려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몸 하나 끌고 올라가는 것도 기진맥진이었는데
수진이 들고 있던 보퉁이까지 받아서 함께 들고 가자니 더욱 죽을 맛이었다.




보퉁이가 부피도 부피였지만 이게 은근히 무게가 상당했다.
절로 팔이 쭉쭉 내려가는 것이 명록의 진을 다빼고 있었다.

더더군다나 꼭꼭 싸매어 놔서 대체 내용물이 뭔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삼순이 계단인지 사순이 계단인지 올라가다가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 했다.
남자의 오기로.....
비실대는 모습을 수진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오기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늠름한 남자.
여자를 언제나 곁에서 딱 지켜주고 버팀목이 되는 남자.
이게 명록이 언제나 여자 친구가 생기면 되고 싶은 남자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고작 남산......
그것도 무슨 설악산도 아니고......
한라산도 아니고......
해발 262미터밖에 안 되는 동네 뒷동산 같은 남산을
이제 막 올라가면서 퍼져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으으.......
빈속이 쓰려서 죽을  같다......
아......


명록의 눈앞에 절로 시원한 국물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시원한 북어국.....
아니면 콩나물 해장국이 간절했다.
깍두기 국물  부어서 붉어진 국물에 우적우적 깍두기를 씹으면서
시원한 국물로 완전 산성의 바다가 되어버린 뱃속을 달래주고 싶었다.



간신히 계단을 다 올라오자 수진이 광장에서 조금 쉬자며 자리를 잡아주고 있었다.


아흑......
진정......
남산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수진은 걸어서 올라갈 모양이었다.
오마이 갓!!!




하지만 간신히 얼굴에 힘을  주며 아무렇지 않은  수진이 앉아있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힘들지 않는  표정 관리하면 털썩 주저앉았다.

아......
엉덩이에 시원한 감각이 퍼지면서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쿠울 자고 싶었다.
아마 수진이 없었으면 그대로 누워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수진은 어느새 자신이 들고  보퉁이를 받아서 자신의 옆에 올려놓았다.
그쪽으로 몸을 돌려 무언가 하는 모양이었다.


명록은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빠, 제가~ "


살짝 수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양손에 찬합이 들려있었다.




헛......
남산에 올라온다고 수진이 준비한 거야........?
설마....
말로만 듣던 도시락?!





그제서야 자신이 들고 왔던 보퉁이가 도시락이었음을 알았다.
수진은 자신과 그녀 사이에 하나씩 찬합을 꺼내서 열고 있었다.



첫 번째 찬합에는 참치 마요네즈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두 번째 찬합은.....
계란 마요네즈 샌드위치!




그리고 보온병 뚜껑을 따서 따른 컵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은 크림스프였다.

으윽.....
참치 마요네즈 샌드위치......
그리고 계란이 듬뿍 들어있는 샌드위치까지......
특히나 버터향이 물씬 풍기는......
크림 스프의 향기가......
콧속으로 훅 치고 흘러 들어왔다.


느끼함.....
보고만 있어도 속이 느글느글 거리는 느낌이었다.

순간 무언가 시큼하고 씁쓸한 것이 뱃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우우우웁.



울렁거리는 비위(脾胃).
바로 무언가 쏟아낼 거 같은 불길함!
안 돼~!!!!!


자신을 바라보는 수진의 눈망울이 저렇게 반짝이는데
그녀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도시락을 보고 토악질이라도 하는 날이면
이건 저번에 용서받은 일과는 상대도 안 되는 미움을 받을 것이 뻔했다.



아니, 대체 어떤 미친놈이....
첫데이트에서 여친이 준비한 도시락을 보고 구토질을 하겠는가.......

지금까지 연애 경력 전혀 없는 명록도
그건 절대 해서는  되는 일이라는 경보가 머리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수진이 눈을 반짝이며 명록을 본다.
명록은 순간 움찔 했다가 환한 미소를 보여주어야 함을 깨닫고 급 얼굴 근육을 조작했다.
그리고 서둘러 말했다.


" 와~~ 고마워~~ "





명록은 샌드위치를 성큼 집어서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볼이 완전 볼록해지도록 일부러 크게 베어 물었다.
진짜 맛있어서 먹고 싶었다는 듯이 입에 가득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사실 정말 감동이 물씬 느껴지는 장면이었으나.....
명록......
그의 뱃속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었다.





아...
이런 예쁜 아이가 손수 만든 도시락이라니.....



데커레이션까지 신경 써서 만든  봐서는
정말 그녀가 온힘을 다해 정성들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미끌거리며 들어오는 마요네즈!!!
그 특유의 느끼함이 콧구멍까지 가득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참치~~~~!!!
거기에 더해진 참치의 맛이 플러스알파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웁.......
느....느끼해......
느글느글.......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
밀려올라오는 위장의 쓰디쓴 액체를 애써 샌드위치로 삼켜 막으며 꿀꺽꿀꺽 밀어 넣었다.
그리고 수진을 향해 애써 환하게 웃는 미소를 유지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
눈가가 뜨거워졌다.



수진이 컵에 따라놓은 크림스프를 들어 권했다.


" 맛있죠? 다들 괜찮다고 칭찬했던 샌드위치에요. 헤헤~ 참.... 이거 마시면서 드세요. 목매세요. "






으....
신이 있다면 제발 제가 그녀 앞에서 이걸 마시며 토하지 않게 수호해주시길......
제발요~~~~


명록은 스프를 한 모금 마시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찔금 흘리고 있었다.












**************





기나긴 계단, 그리고 긴 여정의 끝을 알리는 타워가 드디어 눈앞에 보였다.
수진은 크게 기지개를 피며 고개를 돌아 봤다.
명록이 아직 계단 아래에서 헉헉 대며 쫓아오고 있었다.
도시락과 그녀의 가방까지 메고 올라오는 그의 모습이 좀 힘들어 보이긴 했다.

흐음....
생각보다 부실하네?
나중에 보약이라도 먹여야 될까봐......
몸이 비실비실한 게...
설마 밤일도.......?



오랫동안 나희, 영연, 그리고 설아와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들의 음담패설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평소처럼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명록의 앞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특히 명록을 대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창피했다.
실물 남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수진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감쌌다.

명록은 헉헉 거리며 어느새 그녀의 곁에 다가왔다.
수진은 명록의 손목을 잡고 끌며 철조망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연인이 먼저 와서 자물쇠를 달며 서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듯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진은 그런 연인의 모습에 속으로 비웃음을 날리며 자물쇠를 걸 위치를 탐색했다.


드디어 신성한 자물쇠를 달 차례였다.



" 오빠 이게 우리의 사랑을 지켜볼꺼에요. "




수진은 명록의 옆에 나란히 서서 자물쇠를 잠갔다.



찰칵.


작은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둘의 이니셜이 새겨진 자물쇠가 다른 자물쇠들처럼 철조망에 매달렸다.




아.....
나도 이런 것도 해보는구나.




자물쇠를 걸고 나자 정말 연인이 된 것 같았다.
이 수 많은 자물쇠들이 증인이 되고, 그들 앞에서 수진 자신과 명록이 서로 헤어지지 않는 연인의 시작을 선언한 것 같았다.

잠긴 자물쇠가 서로를 이어주는.....
미래를 보여주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수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정말....
예쁘고.....
소중한 연애.....
사랑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정말로......
그녀의 바램대로 그런 연애를 이 남자 명록과 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








명록은 이제 숨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음을 느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남산이 무슨 에베레스트 산...
같았다.



해발고도 8,848 미터.
에베레스트  (Mount Everest).
인도 북동쪽, 네팔과 중국(티베트) 국경에 솟아 있는 세계 최고봉.


그런데 언제 이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  거냐.......
엉?



가도 가도 끝없는 등산로(?)에 명록은 죽을 것 같았다.
수진의 가방과 찬합 도시락 보퉁이가 점점 무슨 쇳덩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냥 고개를 숙인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컥!
숨이 찼다.

아까 수진 앞에서 멋지게 보이기 위해
꾸역꾸역 먹은 참치마요네즈 샌드위치와 달걀 샌드위치......
그리고  느끼했던 크림스프가 자신의 뱃속에서 점점 화학무기로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속이 쓰렸던 가운데 이젠 더부룩함까지 더해졌다.
느끼함이 순간순간 구토를 불러왔다.






으으으.......
여기서 쓰러지면 세상이여......
날...
국립묘지에 묻어주시오......
국가 안녕과 미래를 위해 한 여자와 만나 후세를 남기기 위한 위대한 작업 첫날.....
샌드위치 먹고 남산을 오르다가 장렬히 전사했다고......






아찔해지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 유언을 하늘 저편 구름 속으로 보냈다.
하지만.





젠장.....





생각해보니 너무 쪽팔린 최후였다.
샌드위치 먹고 남산도  올라가 전사(?)라니......
 무슨 개쪽이냐!

한 계단 한 계단 헉헉거리며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계단의 끝이 보였다.
아~~~
드디어 정상이었다.




흑......
눈물이 앞을 가렸다.


드디어.....
내가 남산 정상을 등반했어~~~~!!!!!


두손을 번쩍 들고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감격은 한순간이었다.

수진은 쪼로록 달려와서 그의 팔뚝을 잡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길이 느껴졌다.


아.....
 껴안고 싶은 여자....
수진.......




전쟁 통에도 사랑이 꽃핀다더니....
이 위중한 상황에서도 배수진, 그녀의 손길은 잠시나마 심장에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걷다보니 그곳은 철조망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 곳엔 수많은 자물쇠가 잔뜩 걸려 있었다.
녹이 쓸어있는 자물쇠들까지 보이는 거 봐선 걸려있는 시기가 꽤 되어보였다.



수진은 그곳에 예쁜 자물쇠를 꺼내서 달았다.
 자물쇠라 다른 자물쇠와는 달리 햇볕에 반짝반짝 거렸다.


오빠 이게 우리의 사랑을 지켜볼꺼에요. "





순간 명록은 지금 이 남산 등반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이게 자물쇠 달기  그런 건가 보네?
연인끼리 한다는.....
그거?





수진의 표정이 왠지 애틋하게 보였다.
바람에 긴 생머리가 휘날리며 들어난 그녀의 옆얼굴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목선.....



다시 고개를 돌려 명록은 그녀가 달아놓은 자물쇠를 보았다.


여자는 참.....
 거를 다하는구나.....





왠지 유치한 수진의 모습에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자신의 이니셜과 수진의 이니셜이 새겨진 자물쇠를 지켜보다보니 마음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남산 투 파 (Namsan too far)(3)>>  끝 =>  <<남산  파 (Namsan too far)(4)>> 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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