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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제1부 : 2화. 헬륨가스 같은 그녀들의 우정 (2) (6/195)



〈 6화 〉제1부 : # 2화. 헬륨가스 같은 그녀들의 우정 (2)

6.

영화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크레디트(Credits)이 올라가면서 어두웠던 극장 안이 밝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 나갔지만 명록도 수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크레디트까지  보시나 봐요?"





"아하하 네. 가끔 뒤에 히든 영상이 나오잖아요. 그거마저 안보면 후회돼서요. 수진씨도?"





나쁘지 않은 취향이다.
느긋한 편인 수진은 자신처럼 크레디트를 기다리는 명록에게 조금 호감이 갔다.





흐음 그러고 보니....
영화 보러 들어오기 전에 센스 있게 팝콘과 음료수도 사왔었지.
약속 시간도 조금 일찍 나오고.


"아뇨, 바로 나가면 사람이 많아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냥 여기서 편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거죠. 그러고 보니 제가 밥 산다고 불러냈는데. 뭐 드시고 싶으세요?"



그녀의 말에 명록은 약간 바보스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아녜요, 영화도 수진 씨가 보여줬는데 밥은 제가 사야죠."

굳이 자신이 산다는 명록의 말에 수진은 거부하지 않았다.
남자들에게 받는 관심이 익숙하기도 했고 굳이 산다는데 자신을 돈을 쓸 필요는 없었다.

크레디트가  올라갔지만 히든 영상은 없던 건지 청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제야 수진과 명록은 영화관에  둘만 앉아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극장을 빠져 나왔다.
영화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서인지 엘리베이터 앞은 한산했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명록이 물었다.



"수진 씨 뭐 먹고 싶어요?"



그의 말에 갑자기 매운 것이 땡겼다.
마침 그런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장소도 이곳에 있었다.



"매운 떡볶이요. 이 건물 2층에 있는데 맛있어요. 우리 그거 먹으러 가요."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수진은 명록의 의사도 묻지 않고 그대로 2층 버튼을 눌렀다.
순간 명록이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수진이 물었다.



"혹시 매운  못 먹어요?"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땀부터 흘리는....
명록의 얼굴에 수진이 물어봤지만 명록은 아니라며 아주 잘 먹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










한잔.
두잔.
세잔.

"아저씨...... 매운 거 못 먹는 거 맞죠? 벌써 물만 세잔 째에요."


"하하... 점심을 좀 짜게 먹었더니 갈증이 나네요."



명록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해놓고 끝까지 잘 먹는다며 떡에 매운 국물을 잔뜩 묻혀 입에 넣었다.


헐....
그거 엄청 매울 텐데.




보는 수진마저도 혓바닥의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삐질 삐질 흐르는 땀을 닦아내는 명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수진은
챙겨온 영화 팜플렛으로 명록에게 부채질 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운지 명록은  번째  잔을 비워냈다.


"아주머니 여기 물 한통만 더 주세요."



수진은 한숨을 쉬며 물 한통을 더 부탁했다.





으그 미련하긴.......
매운 거  먹으면 폭탄 맛으로 주문하기 전에 못 먹는다고 말하지.
아니, 애초에 이곳으로 온다고 했을 때부터 말했으면  좋지 않나?
매운 거 못 먹는 게 흠도 아닌데.......






명록이 괜한 일에 자존심을 세우는 듯해서 수진은 명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명록이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수진은 끝까지 매운 건  먹는다는 말을   없는지 마지막 남은 떡볶이마저 억지로 입에 넣으려는 명록을 끌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엠뷸런스 부르기 전에 빨리 끝을 내야 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만 헤어져요."




"이런 늦은 밤중에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아뇨. 그건 제가 불편해서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수진 씨. 그럼......들어가요."




수진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듯  명록의 말에 차갑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처 명록의 인사말이 나오기도 전에 몸을 돌려 지하철 개찰구로 걸어 들어갔다.












**************










그녀를 만나서 영화를 본 것도 좋았다.
나름 로맨틱 코메디가 꽤 재미있었다.

얼핏 보니 수진이도 영화를 보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주말에 생기발랄한 여대생과 영화감상하면서 데이트(?)라.......
평상 주말이라면 컴퓨터 앞에서 온라인 게임이나 클릭질 하고 있을 판이었는데
나름 꽃향기 폴폴 나는 그녀와 이렇게 나란히 앉아재미있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아주 아주 스페셜한 주말이란 뜻이었다.



문제는 영화 관람이 끝난 다음이었다.




으......
세상이 이런 떡볶이가 있다니.......


인간들은 왜 음식을 음식으로 놔두지 못하는 것일까?
특히 그런 위험천~만한 음식은 식약청에서 나서서 못 팔게 막고 규제해야 되는 것 아닌가.
대체.....
매달마다 잔뜩 뜯어가는 세금으로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입 먹을 때마다바늘주머니를 혀 위에 올려놓은 느낌이었다.
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나도 어쩔  없는 진땀이 이마에서....
아니 머릿 속에서부터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내가 무슨 독립투사도 아닌데.......
왜 이런 고문을........



그러나 명록은 이런 떡볶이도 못 먹고 삐질거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여대생은 매운 음식도 잘 먹으러 간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런 그녀와 어울리려면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악~~~~






다시 물 한 컵을 들이켰다.
잠시 찬물의 느낌이 탱탱 부어오른 혓바닥의 고통을 식혀주는가 싶더니 바로 활활 불타고 있는 위장으로 내려갔다.



인간의지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명록이 증명하는 동안
수진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는 살필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마지막 떡볶이를 찍어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수진이 일어나서 자신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에휴.... 우리 이제 나가요. "




계산은 어떻게 했더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왔는데 벌써 뱃속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여자를 그냥 여기서 보내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에스코트......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기본 매너라고 마르고 닳도록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왠지 굳어진 표정의 수진은 데려다 주겠다는 명록의 말을 딱 잘라 말하고 지하철 역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명록은 내심 그렇게 혼자 가버린 그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꾸룩꾸룩....
와르르릉!


그새 뱃속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멕시칸 꽈리 고추를 곱게 갈아서 물에 풀어서 50대50으로 쉐이킹한 것이 명록의 배 안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떡이 둥둥 떠 있는 그림?
그게 바로 그의 현재 뱃속의모습이었다.


전철을 타고 집을 가다가 벌써 두 번이나 내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화장실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시원스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화장실에서의  끔찍한 고통의 시간.......
누가 뒤에다가 물파스를 잔뜩 칠해서 넣는 기분이랄까?!

실로 어린 수학여행에서 당했던......
치욕의 치약칠과.....
물파스의 습격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는 체험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고 힘든 때가 있었던가........


두 차례 밖에 갔다 오지 않았는데 이미 온몸이 땀으로 범벅 되었고 기진맥진 상태였다.

그런데....
아직도 성난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집이 있는 정류장까지는 아직도 멀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있는 전철 안에서 명록의 사회적 인격 말살의 위기가 급전개되는 중이었다.




절로 힘을 주게 되는 엉덩이 근육.
그 정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있덙 마지막 관문은
분명 콘크리트댐처럼 단단하고 튼튼한 모습이었는데
꾸륵 대는 뱃속 내장의 울부짖음 속에서 점점 모래성으로 변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악마의 액체가 마지막 출구로 밀려오는 듯  그 싸한 느낌......
엉덩이가 쭈빗쭈빗해지며 등골에 한줄기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 감촉이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아흑.....
안 돼......




손잡이를 잡은 손이 축축하게 젖으며 절로 아래로 찍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순간!
전철이 다행스럽게도 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명록은 다시 전철에서 튀어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생기를 잃고 있었고 방향 표시를 뒤지며 단하나의 글자를 찾고 있었다.



[화장실]

지금 그의 머리엔 막차시간 따위는  멀리 안드로메다쯤에 가있었다.
당장 쪽팔린 사태를 면하기 위해선 그.곳.이 필요했다.
절실하게.










**************






집에까지 기어온 거 같은 기분이었다.
벽을 부여잡고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한발자국......한발자국 거의 기어서 왔다.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위기를 얼마나 넘겼는지모른다.



늦은 시간이라 어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일반 주택가 골목.......
이처럼 무섭고 힘들었던 귀갓길이 있었나 싶다.
명록의 지금까지 평생 동안.......
아니 이후 생에서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간신히 도착한 집에서도 구두를 대충 벗어버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제는 볼일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엉덩이로 황산....
염산을 쏟아내는 느낌........
흑흑........
차마......
멈출 수 없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동안
그는 사는  차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선임병한테 갈굼을 당하고 화장실에 가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몇번의 화장실행을 반복하는 동안 또다른 고통이 그를 찾아왔다.



엉덩이....
응꼬가 너무 아파서 누워서 잘 수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 치던 명록은 아무도 모르게 냉동실에 있는 얼음을 빼왔다.

그리고 팬티를 깠다.





쪽...쪽팔리지만 우선 살고 보자......



명록은 가슴을 대고 엎드렸다.
 자세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높이 치켜들고
불이 나서 쓰라리고 아프고 얼얼한 화재 현장에 육면체 얼음을 투입했다.



차갑고 살이 얼어붙는  한 느낌과 함께 물로 녹아내리는 가운데 그곳(?)의 통증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으으.......
이제서야 살 거 같은 느낌.......

 순간 맞은 편에서 자신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던 그녀가 생각났다.





저기......
수진 씨는 이런 고통을  겪는 겁니까?
전혀 이런 모습을 보일 리는 없겠죠?
천사 같은 여대생은 절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진 않겠죠?




하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아름답고 새침하고 여신과 같은 자태의 그녀를
이런상황....
자신과 같은 몰골에 대입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명록은 여자의 뱃속은 남자와 다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죽어 가는데  매운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던 그녀는.....
대체 어떤 위장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명록의 따스했던 주말 데이트가 치러진 그날 밤은 유난히도 길었다.
그리고 마침내밝은 일요일 아침.
냉동실을 열은 명록의 어머니는 난데없이 얼음 한 줄이 사라진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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