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제1부 : 1화. 여대생의 소중한 그것 (2) (3/195)



〈 3화 〉제1부 : # 1화. 여대생의 소중한 그것 (2)

3.




아이씨...
괜히 지갑 한번 잃어버려서 이게 무슨 일이람?



평소라면 같은 테이블에도 앉지 않을 평범한 남자에게 삥을 뜯기는 듯 한 기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수진은 점점 기가 찼다.
지갑을 찾아주러 왔다는 남자의 말에 처음에는 호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래서 조교 언니가 장난스레 식사를 대접하라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남자와 함께 나왔던 수진이었다.


하지만 간단하기 분식집이나  줄 알았던 남자는
자기가 잘 아는 곳으로 간다며 수진을 이곳 까지 끌고 왔다.

그와 함께 들어간 곳은 바로 여기였다.



<< 패밀리 레스토랑 >>

대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사실은 사기꾼이 아닐까?
대체 지갑 하나 찾아준 주제에 이런 곳까지 자신을 끌고 온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수진은 머릿 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지갑의 값어치에 비한다면
패밀리 레스토랑의 샐러드바만 주문하면....
뭐 어쩌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역시나 딱딱하게 굳은 수진의 얼굴은 풀어질 줄 몰랐다.

이런 비싼 곳에 들어온 것도 불만이었지만 그 뒤 보여준 행동 또한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에게 의향을 묻고 주문하는 예의는 배우지도 않았는지....
남자는 제 맘대로 수진의 의사도 묻지 않고 주문을 했다.




에엑!!!
커플 세트!??????



남자의 주문을 다시 확인하는 서버의 말에
그제야 자신의 귀가 잘못 들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수진은
화가 점점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갑.

수능을 치르지 마자 여대생다운 지갑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비비안웨스트우드.
파스텔컬러에 앙증맞게 박힌 목성 모양의 엠블럼.


하지만 갓 수능을  수진이 사기엔 비싼 감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포기했었다.

일단 가격....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늘 그 지갑이 눈에 아른거렸고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 세달 전 같은 브랜드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이 나온다는 말에 수진이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산 지갑이었다.



아이씨!
괜히 지갑 한번 잃어버려서 이게 무슨 일이람.
으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수진은 다시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식대를 계산했다.
역시....
출혈만큼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시려왔다.



" 제가 썰어드릴께요. "

이미 음식이 나왔지만 수진은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었다.
스테이크를 썰어준다는 남자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수진은 짜증나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기계적인 웃음을 지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스테이크가  맛있네요. 자, 드세요. "

그래...
너야 나를 벗겨먹으니  맛있기도 하겠지......



수진이 남자가 썰어 놓은 스테이크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지만  따위가 느껴질 리 없었다.


" 아~ 이거 두 잔만 가져다주세요. "

뭐어????

서슴치 않은 주문에 머리가  종을 쳤다.
그제야 남자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 수진은 어이가 없었다.



스테이크엔 레드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대요. 수진씨도 마실 거죠? "




우이씨!
지금 장난해?!!!

이쯤 되면 수진은 한계였다.
천하의 배수진이 이런 평범남에게 휘둘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데
와인까지 시키는 남자의 행동에 퓨즈가 나간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두잔 가져다주세요. "



아씨, 내가 지금 뭔꼴이람.
씩씩....



숨이 절로 거칠어주는 중이었다.

' 야 어떻게 내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도망 칠 생각을 하냐? '

' 아 씨발. 그럼 어떡해. 남자는 폭탄이지, 자리는 뜨고 싶은데 술 마시라며 자꾸 앵기지. 아... 존나 미안해. 야 나희야 근데  놈은 정말 심했어. 떡진머리에 키는 땅달만해서 말끝마다 느끼함은 철철. 미치는 줄 알았어. 그냥 나도 모르게 화장실 간다고 입에서 튀어나왔다니깐? 그리고 가방 들고 화장실 곁에 있는 후문으로 튄 거지. 어디까지나 나도 모르게. 라니깐?'

'헐? 그랬어? 나도 재환 씨가 자꾸 부탁하는 바람에... 근데 그런 사람이 나올 줄은... 미안해. 내가 담에 한턱 쏠게.'



그래....
그때 들었던 대화 속 폭탄.
이놈도 딱 그 정도다.


벌써  남자가 시킨 것만 대충 계산해도 10만원을 넘었다.
체크카드의 잔고가 확 줄어들 생각에 수진의 이마가 보기 좋게 구겨졌다.

아씨...
내 원피스.
이렇게 원피스 살 돈이 날아가는 구나.
그냥 확 도망가 버려?



수진은 나희와 영연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도망쳤던 영연의 그 대사!




그래.
차라리 도망가자.
더 이상 이런 미친놈이랑 엮이느니....
양심에 스크래치 한번 나는 게  낫겠다.




" 저기....... 화장실 좀........ "



처음으로 해보는 도망인지라 가방을 꼭 잡은 수진의 손에 땀이 배었다.


제발.
정신 차리자!


조금만  용기를 내면 이 짜증나는 상황을 벗어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수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 아......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근데 출구는 이쪽이라서 나가려면 여기를 지나가야겠네요. 아..... 수진 씨가 도망치려고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어여 갔다 오세요. "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의 말에 수진은 좌절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자신의 과사무실로 찾아왔었다.



이대로 도망갔다가 찾아오는  아니야?



갑자기 떠오른 섬뜩한 생각........
수진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 아... 아니에요. 잠시..... 갔다 올게요. "



수진은 부여잡고 있던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으씨,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됐지?
도도한 배수진이 저 평범남한테 휘둘렸다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되면...
에효  년 내내 놀리겠네.


수진은 애써 무거운 걸음으로 터벅터벅 화장실로 걸었다.


그러고 보니 도망 못 가게 입구에 자리 잡은  하며.....
이곳은 후문도 없어 보였다.




이 자식 선수 아냐?
아씨, 하필 걸려도 이런 사람이 지갑을 줍다니.........

수진은 하늘을 원망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진은 심호흡하며  공기를 들이쉬고 나오니 조금 머리가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자리로 돌아온 수진도 앞에 놓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도망도 못가고 꼼짝없이 당하는 거 일단 제대로 먹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뭐, 식욕이 돌아와서 그런지 맛은 나쁘지 않았다.
수진의 돈을 지불한단 것과 눈앞의 남자가 지독히 짜증난다는 것만 빼면...

스테이크도 레드 와인도, 여러가지 일만 싹 지워버리면 수진이 상상했던 로맨틱한 데이트였다.





**************



여자들이 많이 간다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수진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던 참이었다.



 보기에도 비싼 집으로 가는데 맛도 좋은 곳으로 가야 된다.  모르겠음 여기 가봐.  학교 근처에도 지점 있는 거 봤으니까 바로 데리고 들어가서 커플 세트로 시켜. 샐러드바만 시켜 먹는 바보짓 하지 말고 제대로 딱 시켜서 먹으라고. 거기에 레드와인도 두잔 시켜서 먹고. 알겠지? 여자애 표정 따윈 싹 무시하고 풀코스로 시켜서 먹어라. "



승필 선배의 얘기대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와서 커플세트를 시켰다.
스테이크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 제가 썰어드릴께요. "

수진은 명록의 말에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쓱쓱 나이프와 포크로 그녀가 먹기 좋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갈색 빛으로 익은 고기 아래 선홍빛을 띄고 있는 속부분이 나타났다.
육즙이 자르르 흐르는 것이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한 점 콕 찍어 먹었다.


흐음.....
고기가 질기지도 않고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꽤 괜찮았다.



" 아..... 스테이크가 꽤 맛있네요. 자, 드세요. "


수진은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록은 지나가는 직원을 불렀다.
제복을 입은 그녀가 오자 메뉴 안내에 나와 있는 레드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 아~ 이거 두 잔만 가져다주세요. "


순간 앞에 앉아있는 수진의 얼굴이 또   어두워졌다.
명록은 못 본 척 그녀에게 말했다.




" 스테이크엔 레드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대요. 수진씨도 마실 거죠? "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명록은 주문을 마쳤다.




" 두잔 가져다주세요. "

점원이 알겠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 저기....... 화장실 좀........ "


수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가방을 가지고 가려는 모습에 승필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대단한 고수였다.
제갈량처럼 앞을 내다보는 천재의 한수.


명록은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 아......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근데 출구는 이쪽이라서 나가려면 여기를 지나가야겠네요. 아..... 수진 씨가 도망치려고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어여 갔다 오세요. "

웃으며 그녀를 살펴보았다.
수진을 보니 어느새 체념한 듯 한 표정이었다.

" 아... 아니에요. 잠시..... 갔다 올게요. "

그러더니 가방을 들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명록은 왠지 웃음이 났다.



야.....
이렇게 골려먹는 것도 재미있구나.......
여자 친구들 만나면서 친구 녀석들도 이랬을려나.......?



명록은 스테이크  점을 포크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살점이 풀리며 입 안에서 녹고 있었다.
단백한 육즙이 타액과 섞이며 달콤한 맛을 냈다.


어느새 자리로 돌아온 수진도 앞에 놓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이미 돈도 내야 되는 상황에서 안 먹고 있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승필 선배의 말은 진리였다.




" 중간에 도망칠 수 있으니까 정신 바짝 차려, 알겠냐? "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면 입구 쪽에 빈자리에 무조건 자리 잡아. 그런데는 뒷문이 없으니까 출구 쪽에 자리를 잡는 거야. 그러면 절대  수가 없지. "




" 선배...... 그러다가 주문할 때 여자애가 화내면 어떻게 해요? "




푸하하..... 진짜 이 자식..... 쏠로 티내는 것도 아니고..... 여자애들이 처음 보는 남자한테 막 성질내고 갈 거 같냐? 거기에다가 지갑도 가져다준 사람한테? 아마  씹은 표정은 할 테지만 이미  주문 끝나고 도망도  수 없다 생각이 되면 그냥 그걸로 게임 끝난 거야. 대개 그냥 알아서  먹을 테니까 신경 꺼. 넌 앞에서 여자애 장단이나 맞춰주며 시킨 음식 잘 먹기만 해. 그럼 되는 거야. "



하......
전설은 전설이다.

그가 은퇴해서 은거 중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필 선배 같은 남자가 휘젓고 다니면
자신과 같은 모태쏠로들은 아마 평생 여자구경 해보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여대생의 소중한 그것(2)>> 끝 => <<여대생의 소중한 그것(3)>> 으로 고고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