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제1부 : 프롤로그 (1/195)



〈 1화 〉제1부 : # 프롤로그
 



1.



으으....
물....
목말라.

갈증에 잠에서  수진은 풀을 먹인 듯 빳빳한 이불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실내에 화려한 포인트 벽지가 설겁게 발라져 있었다.


여긴....
어디지?




낯선 장소.
수진은 살며시 고개를 드는 어젯밤의 기억에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옆에는 명록이 자신의 옆에서 맨살을 훤히 드러내고 자고 있었다.


아!


그제야 수진은 어젯밤의 충동적인 어젯밤을 기억해냈다.
정신없이 부딪히던 입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칠게 풀어낸 옷가지들.



술이 왠수지.
미쳤어 미쳤어.
배수진!
정우는 어쩌고.....




후회를 하며 고갯짓을 하자 짧게 자른 머리칼이 머리를 따라서 사라락 흔들거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한다고 사라질 일이 아님을 수진은 잘 알고 있었다.

수진은 어젯밤의 현란했던 정사를 보여주듯
이리저리 바닥에 흩어져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방안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거울을 쳐다보았다.


여기 저기 구겨져 있는 옷.

누가 봐도  외박했어요...
-라고 광고하는 듯 보여서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감정이 폭발했더 어젯밤 때문인지 유난히 피부도 까맣고 눈 생기 없어 보인다.


수진은 부끄러운 죄를 가릴려는 듯 얼굴에 두껍게 화장품을 발랐다.
진한 레드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자 어두웠던 얼굴이 그나마 봐줄만 해진  같다.

수진은 그제야 찡그렸던 얼굴을 폈다.


어느새 거울 속에서 명록이 일어나서는 수진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차마 얼굴을 직접 마주할 용기가 안 나는 수진은 거울 속에 비친 명록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 명...명록 오빠 일어났어? "


수진아.. 지금 몇 시야? "


수진은 그제서야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부재중 13통]

모두 정우에게서 왔다.


" 11시. 나 먼저 나갈게. "

" 아....잠깐 나도 같이 나가자. 바로 세수만 하고 나올게. "


잠깐 기다리라는 명록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진은 어색하게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았다.


마치 예전의 일처럼 반복되는 오늘의 일이 수진에게 어색하기만 했다.



" 된 거야? 그럼 나가도 돼? "

명록이 나오자마자 수진이 빠르게 말을 던졌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진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나간다.

서두르는 그녀의 말에 명록이 기분이 나빠졌는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까딱인다.
수진은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가서는 하이힐을 발에 구겨 넣었다.
마음이 급하니 신발마저 마음대로 신겨지지 않는다.
그만큼 수진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명록, 정우.
두 남자로 정신없는 머릿속.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마저도 빠른 템포를 선보이고 있었다.
서둘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  누르지만
그런다고 엘리베이터가 빨리 도착할 리 없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갇혀있자 더욱 어색한 분위기에 수진은 방어적으로 팔짱을 꼈다.


찝찝하기 짝이 없는 기분.
급하게 방에서 빠져 나오느라 씻지 못한 몸에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듯 모텔의 음침하고 지저분한 먼지들이
끈적끈적 달라붙는  같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수진은 이곳만 벗어나면 모든 일이 없었던 일로 바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수진은 탈출하듯이 그곳을 빠져 나갔다.


정신없이 모텔 건물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 저... 수진아! "


그제야 명록이 뒤에 있음을 깨달은 수진은 뒤를 돌아봤다.
머뭇거리는  아무 말도 안하는 명록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빨리 말했으면 좋겠다.

이 허름한 모텔 앞에서 멈춰 있는 자신들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이 수많은 상념으로 온통 시꺼멓기만 했다.

수진은 당장 이곳을....
이 상황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 너 학교 가는 거냐? "



학교?

글쎄......
이 꼴을 하고 학교로 간다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이년아 저년아 하며 울고불고 할  언제고 이제와서 그놈과 잤냐고 하겠지......

그녀들의 욕설 섞인 걱정이 머릿 속에서 울리자 저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 아니, 집에 갔다가 학교가야지..... 오빤 회사 안가도 돼? "

의례적으로 물어본 수진의 질문에 명록이 미처 생각을 못했는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이미 열한 시였다.

수진은 회사에 가면 깨질 명록이 걱정됐다.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아...아니 가야지. 난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겠다. "

" 그... 그래... 난 오른쪽으로 가야 돼... 여기서 그럼 헤어져야겠네... "

흐음... "


" 미안. 오빠   서둘러야 돼서. 그럼 나 먼저 갈게. 오빠 반가웠어. 잘 지내. "


예전처럼 명록은 하고 싶은 말을 참아내는  같아 수진은 답답해졌다.


이런 만남의 끝이라는게......
그리고 그가 꺼낼 말이라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아니....
자신에게 좋지 않은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편한 분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수진은 일부러 서둘렀다.



" 어, 그.... 그래. 너도  지내. 나도 반가웠어. "



어렵게 주고 받은 이별 인사.
잠깐이라도 좀더 머물러 있으면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워진 수진은
빠르게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나 정신없이 걸었을까?
허름한 거리를 따라 난 담벼락에 덕지덕지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전단지들의 앞에서 수진은 멈춰 섰다.
마치 운명처럼.


색색의 전단지들 사이에  부분이 그녀를 잡아두고 있었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바람에 뒤집어져 펄럭이는 포스터.....
그것이 괜스레 수진의 시선이 이끌고 머물어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수진은 포스터를 손으로 잡아 잘 보이도록 벽에 다시 붙였다.
가려진 연극제목이 잘 보이도록.....


순간 남녀의 대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 무슨 연극이 이래? 보는 사람을 배려해서 결말을 내줘야지. '


' 그게 진짜 이 연극의 멋이야. 오빠는 연극을 모른다니깐? 후후. '



' 난 사기당한 기분이야. 찜찜해. 이건 결말 없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


과거의 기억들.


수진이 명록을 장난스레 놀리며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던 대학로의 좁은 골목길.
그녀를 바라보던 명록의 눈빛.
잊혀지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그 곳에 겹쳐지는 정우.......



마치 그 연극처럼, 우리들의 결말은 어떤 걸까?



수진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결심을 한  포스터를 지나 앞을 향해 걸었다.






**************





으.......

머리가 깨어질  아팠다.
텁텁한 목구멍의 느낌과 띵한 느낌의 뒷골을 손으로 누르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위로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무언가 시선 안으로 들어오자
무거운 눈꺼풀이 순식간에 걷히고 한없이 동그랗게 커졌다.

허걱!!!

브래지어 끈이 한줄 하얀 등을 가로지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잘록한 허리와 복숭아 모양의 예쁜 곡선을 그리는 히프라인을 봐서는 지혜가 아니었다.
그녀는 밋밋한 곡선의

뒤태를 가지고 있었다.


누....
누구지?



순간 어젯밤 누구와 함께 술자리를 함께 했는지 기억나면서 모든 것이 떠올랐다.




아.......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눈앞에 그녀가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고 격하게 움직이던 모습이 지나갔다.

탐스럽게 열렸던 그 열매의 모습.
격렬했던 밤의 모습.
소리 지르던 그녀의 목소리.

그 자리에서 그녀를   자체가 이상한 일의 전조였다.
긴 시간동안 서로 보지도 않고 지내왔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마주칠 수 있었을까.


침대에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거울 앞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옷가지를 주워 입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진한 붉은 빛이 감도는 입술......
그녀가 저런 립스틱을 발랐던가......
처음 보았을 때는 좀 더 순한 색의 립스틱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그녀가 거울을 통해 깨어난 자신을 본 모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명록 오빠 일어났어? "



약간 갈라진 듯한 목소리가 그녀도 어제의 폭주가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간 화장이 진해보이는 것 같았다.



수진아.... 지금 몇 시야? "


명록의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비하면 하마 이가는 소리였다.
드드드득......
이렇게 거칠고 듣기 싫은 소리가 있으려나.....


열한 시. 나 먼저 나갈게. "




그녀의 말에 앗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보내면 안 될 듯싶었다.
명록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 아....잠깐 나도 같이 나가자. 바로 세수만 하고 나올게. "

그는 채 옷도 챙기지 못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찬물로 대충 세수만 하고 치약칠 몇 번에 바로 개워 냈다.
걸린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나오니 어느새 수진이는 깨끗하게 정돈하고 명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팬티와 바지를 입었다.
바닥에 흐트러진 옷을 대충 입고 나니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주름진 양복 슈트와 바지가 그의 어젯밤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진은 약간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 된 거야? 그럼 나가도 돼? "

서두르는 그녀의 모습에 명록은 고개만 끄덕였다.
참대에 얌전히 앉아있던 수진은 일어나 먼저 하이힐을 신고 문을나섰다.

바로 명록이 뛰어나가자 어느새 수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연달아 세 번 누르고 있었다.
이미눌려서 불이 들어와 있었는데도......


어느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 둘은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 어두침침한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모텔이 허름한지 짐작하게 하였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이 먼저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 모텔의 현관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명록도 뒤쫓아 나가 그녀의 뒤에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바로 사거리 골목에 다다랐다.

명록은 왼편으로 가야 회사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진의 발걸음은 오른편을 향하고 있었다.


명록은 망설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저....수진아! "


수진은 그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학교 가는 거냐? "



그녀는 잠시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하더니 답했다.




" 아니. 집에 갔다가 학교가야지.... 오빤 회사 안가도 돼? "



아...아니 가야지. 난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겠다. "




" 그...그래........  오른쪽으로 가야돼..... 여기서 그럼 헤어져야겠네........ "



" 흐음...... "



명록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싶었는데 입을 열수

없었다.
순간 지혜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
대체 어제 난 무엇을 한 것인가.......




하지만 더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수진의 말이 그의 시간을 깨뜨리고 있었다.




" 미안..... 오빠   서둘러야 되서..... 그럼  먼저 갈께..... 오빠...... 반가웠어..... 잘 지내....... "



명록은 엉겁결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어..... 그..그래...... 너도 잘 지내.... 나도 반...반가웠어....... "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휙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오른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잠시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나 했는데 그나마도 사라지고 들리지 않았다.


명록은 잠시 그녀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몸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며 정류장을 향해 걷는데
순간 전봇대가 앞에 나타나 그의 발걸음을 막았다.


명록은 욱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전봇대를 보는데 그 곳에 연극포스터가 딱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긴 생머리의 여자 주연 배우와 훤칠한 키의 준수한 외모의 남자배우가 묘한 시선을 보며 바라보고 있는 포스터.......
 긴 머리 여자배우의 얼굴이 수진이를 닮았었다.

" 야..... 저 배우 왠지 너하고 닮았다....... "

" 피이.....! "



" 아니....아니 네가 더 이쁘다..... 야..... 너도 연기만 되었음  배우보다 더 멋진 여배우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

옛날 주고받았던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와 함께 보았던 연극.
흘러왔던 세월만큼 기억 또한 빛이 바래 있었다.

하아.......



명록은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결국 오늘의 일은 다.....
저 포스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망할 연극 포스터.......


 한숨을 쉬는 동안.....
그의 곁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고.......
명록의 마음에는 처음 수진과 만났던 그 날이 아련히 떠오르고 있었다.


풋풋하기 짝이 없던  시간들....


























프롤로그 끝 =>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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