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23)화 (423/454)



〈 423화 〉127. 사람의 성품 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은….(3)

거기다 카일론은 다종족 연합이라는  외에도 초원 엘프 측의 유목 깡패들하고도 합세한 상황이기에 작정하고 전쟁 내면 이들로선 성에 틀어박히는 거 외엔 적절한 대응 자체가 불가하다.
…뒤지기 싫으면 말이지.

애초에 카일론과 몇몇 나라가 그 초원 엘프와 적대적 입장이었는데 뜬금없이 동맹 맺고 주변을 후려 까버리니, 다들 대책이 없는 것도 확실했다.
무엇보다 카일론과 초원 엘프 세력의 상성이라던가 군, 병력 조합, 응용이 워낙 차이가 나다 보니, 반대로 이들이 동맹 맺고 주변을 휘젓기 시작하자 다른 의미로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해버렸다.

실제로 싹 다 불태우고 허물고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치면, 나라가 수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증발했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멸망한 나라며 영지들은 대체로 악명이 자자하다거나, 되려 무너뜨리니 백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호하며 환영해준 덕에, 대놓고 그들을 대륙의 공적이나 악적몰이를 할 수도 없었다지만.

무엇보다 카일론이나 초원 엘프 부류나 깽판 친다 해서 본교회나 정교회 쪽 주의며 경고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악종들이었다는 것도 있고.


“끙.”

여기서 변수가 있다면 카일론 측이 작정하고 반기를 드는 건데.
애초에 철왕이 추구하던 방향은 이게 아니었을 테니.

이건 그러니까, 팀장님과 패왕녀 쪽이 작정하고 물 먹이려 공작질을 부린 격이니.
무작정 저지른 것도 아닐 거다.

문제는 여기서 에드릭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큰 변수가 됐을지 하는 점.
애초에 팀장님 찾아 삼만리, 이거  했더라도 가만히 있었다면 알아서 이런 흐름으로 전개됐다 치면, 그건 또 어떠려나.


‘뭐, 그것도 끼워 맞추기 나름이지.’

이 또한 일이다, 하며 직업적으로 황제인 척만 해라 혹은 아바타 내놓거나, 이쪽 비중을 낮춘다거나 하는 식으로 뭐, 후려치든 굴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노릇 아니겠나.
다만 지금으로선 그게 아닌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더 헷갈리는 거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엮인 건수로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갔었다니….”
“이런 쪽으론 네가 무관심해서 그런 거잖냐.”


바헬루스가 사납게, 실웃음을 띠며 말하자, 에드릭은 마지못해 긍정했다.


“그래도 호구처럼 이용  당하려고 주의를 기울이고는 있었는뎅….”
“호구가 아니라 칭제하게 만들려는 거니 예상하기 어려웠겠지.”

뭐 구 제국 황족 핏줄이라는 시점에 어느 식으로든 엮인다는 거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도매 급으로 후다닥 넘기리라곤….
심지어 절차며 이것저것 있고 해서 황제로 즉위하는 건 100일 이상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 일정을 간략하게 들은 것만으로 벌써 혈압 올라 쓰러지고픈 심경이었다.

“…도망갈까.”
“그러면 몰래 실행해야지 힌트를 왜 주는데?”


바헬루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투덜대자, 에드릭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아.”

흔히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도모하고, 시도하고, 이루어가는 삶.

그런 것과 정 반대적 방식을 생각 없는 삶이라 하는데, 이게 보다 자유로우며 궁극적인 자유 또한 여기에 있다는  주장한 이가 있었다.
뭐 노장 사상으로 언급되는  가운데 한 사람인, 장자가 그러했다.

소요유(逍遙遊).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요약 결론 내자면, 아무 생각 없이 휘적휘적, 싸돌아다니든 걷든 왔다 갔다 하든 하는 걸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 계획을 추구하고,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방식이자 행위, 행동이라 정의하는 구석이 있다.
뭐 실제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그러나, 그 틀에 갇혀 있기에 자유롭지 못하며, 부자연스럽고, 부자유스럽기에 불행하고, 여유를 가질 수 없다고도 하는데,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장자가 살던 시대 흐름이라던가, 시대관 등을 언급할 필요까진 없겠지.

어쨌든, 틀에 갇혀 부자연스럽고, 부자유스러울 바에, 그로 인해 고통받거나 고뇌하고, 스트레스 받을 바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고 질러보는 것도 하나의 해답이자 가장 현명한 현인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건데….

여기서 곤(鯤: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이 붕(鵬: 어마어마하게 큰 새)이 되는 게, 물고기가 새가 된다는 신화적, 판타지적 표현이 일종에 크나큰 변화이자 사고의 틀을 깨부수는 자유로움이며,  다른 해석으론 한계를 초월한 혁신과 혁명적 사상을 어쩌고저쩌고하는 건… 굳이 필요가 없겠지.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사태로부터 탈출하고픈 거뿐이다.


“그리고  기간 동안 너는  인연들을 재정립해야  거다.”
“…재정립?”
“패왕녀가 황후가 될 테지만, 이럴 경우 너무 그쪽으로 편향되기에 다들 압박감을 크게 느끼겠지. 네가 그, 입헌군주제인지 뭔지를 한다 어쩐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도 그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통치 제도 같더구나. 황제이되 통치는 안 한다니, 이게 뭐하자는 거냐?”
“…아, 그런 게 있는데.”

시대적 흐름에 알맞게 그런 거라면야…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고.
이러다 요순의 예처럼 황제 자리를 대뜸 핏줄이 아닌 전혀 딴판인 잘나고 어진 난 놈에게 무작정 선양한다고 하면 아주 기절초풍들 하겠네.

뭐 역사적으론 전무후무한 존재 혹은 사상 최대의 개호구로 기록되겠지만.

“말을 들어보니 후궁… 그러니까 황비, 귀비를 들이라는 걸로 들립니다마아안?”
“숫자가 상당할 것이다.”
“오, 그러다가 애들 꾸역꾸역 낳고 이쪽 사후에 난장판을 만들라는 거어어??”
“그거야  하기 나름이지.”

아니, 그렇게 무턱대고 말하면 씁니까?

“게다가 그 선택권은 온전히 네게 있다.”
“음, 혹시나 해서 물어봅니다만, 딱히 왕후장상이나 귀족이나 평민이나 이종족 뭐시기 해서 막고 어쩌고 하는 일은?”
“걱정마라. 의도에 부합한다 치면, 네가 각별히 여기는 인연 모두를 품어도 좋다는 식으로, 이미 네 부인이 언급했으니.”
“부인?”


팀장님을 떠올리다 이곳 세상에선 패왕녀가, 일단은 정실 부인? 와이프라는  뒤늦게 깨우쳤다.

“그러니까, 그녀가 그렇게 해도 된다 허용해줬다?”
“황제 즉위 뒤엔 좀처럼 움직일 수 없을 테니, 남은 시기에 알아서 불러 들이거나, 접선할 이를 찾아가서 데려오든 내버려두던, 알아서 하라더군.”
“…….”


이건 이것대로 좀… 뭐랄까.


‘하렘 꾸릴 수 있다는 거야 나쁘진 않은데.’


아니, 오히려 땡큐긴 하지.

애초에 권력이니 뭐니 해서 그런 명목으로 옆에 눌러앉은 여자들이 생기는 건 개인적으로 썩 좋지 않았다.
평범하게, 심플하게, 혹은 그런 부가적인 거 없이 관계를 맺고, 가지는 게 서로가 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알아가며 좋으면 좋은대로 또 엮이고….

그런데 황제라면, 애초에 권력이니 이딴 거 보고 엮일 텐데, 뭐… 황제의 여편네(?)가 된다는 시점에 어설픈 이들이 오진 않을 테니 누릴 수 있는 거야 상당하겠지만….


‘답답하잖아.’

애초에 시골이든 어디 한적한 구석에 처박혀도, 농사일은 죽어도 하기 싫으니 집에 처박혀 심심해질 때까지 농땡이 좀 피면서 샤바샤바하며  쉬고 놀고, 그게 아주 질려서 등가죽이 바닥에 쩌억~ 하고 달라붙을 때까지 늘어지다가, 나중에야 산보를 다니든 산책을 다니든 하면서… 늙어 뒤질 때까지 프리덤 라이프를 즐기고자 했던 건데 말이지.

가장 중요한 건 주변 시선에 압박받거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거.
애써 무시한다 쳐도 존재하는 이상 신경 쓰게 된다.

그게 싫은 거다.

“음, 다시 한번 확인하면,  기존 애인서부터 관계를 맺던 누구서부터, 원한다면 누가 됐든 설득해서 황실 일원으로 받아들여라?”
“원한다면. 그걸 바탕으로 권력 구도며 정치 세력, 판도 등은 그녀 측이 알아서 죄다 주무를 거라 하니,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
“…….”

말은 그랬지만, 실은 아니겠지.
이 또한 기존에 팀장님이 네게 선택권을 주겠다, 하며 택일하게 만든 시험과 비슷한 예시일 거다.

나는 그녀들에게 선택지를 맡겼다.
그리고 그녀들도, 전적으로 내게 선택지를 맡긴 거다.

알아서 잘하겠지!
……터무니없는 신뢰에 식은땀이 나려는 건 무슨 영문인지.

그렇다고 무작정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겠다! 곁에 두겠다! 이러는 것도 마냥 좋은 게 아닐 거다.
권력이니 권위, 이권이 한쪽에 쏠리면 질투며 질시,  외에 온갖 허접한 것부터 추잡한 것들이 죄다 눈에 불을 켜고, 물어 뜯으려고 이를 박박 갈아댈 테니까.

이권이 나누어지고, 갈가리 찢겨야 서로의 것을 탐하거나, 작은 거라도 지키려고 아등바등대는 거지, 저쪽이 금덩어리를 다 소유하고 있으면, 없는 놈들은 뺏는다는 선택지 하나만 놓고 갈등하게 되는 꼴이 아닌가.

거기다 그 양이 많다? 레이드 팀 짜서 이익  나누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면, 되려 그걸  하는 게 비정상이지.
공포며 힘으로 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내 대에선 어찌 굴러가겠지만, 우리 세대가 퇴장하면 즉시 위태로워질 거다.

‘상관없긴 하지만.’

문제는 이 경우, 단순히 우리  혈통, 혈족만 좆되는 게 아니라, 제국이란 나라 자체가 혼란으로 접어든다는 것.
애초에 남에게 피해 안 주며 살자 주의인데, 전 백성, 국민들을 좆되게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니잖아?

“끄응….”
“그녀가 말하기로 최소 50명, 각 지역 및 국가, 종족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분산되게 섭외하라더군.”
“……?”


50명?

 황제들이 백 단위, 정말로 사치 향락, 주색이 극에 이른 왕이며 황제는 세자릿수, 심한 부류는 네자릿수 단위를 가뿐히 넘을 정도로, 죽을 때까지 품었다고 하니 그런 의미에서 50은 적다면 매우 적은 케이스겠지만….

‘되려 엄청 많이 받아서 안정화시키고, 다른 의미로  찢어버릴 속셈인가.’

지금 자신의 경우는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는 입장이 조금 틀리다.


“흠.”


거기다 이것의 전제는, 에드릭 자신이 패왕녀와 팀장님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다는 전제가 뿌리 박혀있기 때문에 실행할 수 있는 그런 거고.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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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 패왕녀와 팀장님의 속사정, 희미하게나마 계획의 전모를 엿들은 에드릭은, 공식적인 건 아니고 비공식적으로 후다닥 자리를 떴다.

동행으론 바헬루스와 카멜린.
그 둘과 함께 가장 먼저 케사린 령으로 전이한 그였다.
거기다 그가 황제가 된다면, 케사린 령은 어떤 식으로 정의될지도 확정 지어야 할 판이고.

직할령으로 둬야 할까, 자치령으로 둬서 알아서 굴러가게 할 텐가.
음, 땅 욕심이 딱히 없긴 한데, 계획에서 벗어나니 괜스레 걸린다고 할까. 여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뭐, 그렇게 따지면 카일론 쪽에 짓고 있는 대목욕탕도 억 소리 나긴 하지.’


그거하고 케사린 령 때문에 빚쟁이가 된 마당이니.

그래소 케사린 령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10년 정도 지나면 세금으로  정도는 후려 칠 수 있을 거 같고, 20년 이상 흐르며 안정화를 이루면, 원금 회수는 무난히 이룰 것도 같긴 한데… 그렇다 쳐도 세금도 어쨌든 영지 운영에 팍팍 써먹어야 하니, 이걸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능한 행정관을 들여야 할 텐데 말이지.’


이쪽도 뭐, 추천받거나 어찌어찌 구하면 그만이고.
당장 영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녀’를 후궁, 황비로 들인다 치면 그 누락은 어쩔 텐가?

아닌가? 황비로 들여도 여기서 할 거 다 하게 한다던가?


‘아하.’

맞네. 굳이 황실로 들여올 필요는 없겠네.
생각해보니 순간이동 기술로 오고 가면, 굳이 황궁이 아니라면 어떠겠나.


‘이건 이것대로 혁신적이네.’


황비인데 영지를 운영하고, 기사 생활을 한다던가, 시골 한적한 곳에 있다던가, 특정 도시에 도시민으로 살아간다던가.
…이 경우 어느 정도 신분에 대한 비밀이 보장돼야 할 테지만.

보장될 이와 공개하는 게 되려 유리하다 치면 대놓고 공개를 하게 해서 자기 일에 시너지를 얻게 돕는다던가.
단순히 그녀들을 새장 속의 노래하는 새로 만들고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음, 이렇게 생각하니 또 나쁘지 않네.’

물론 나와 함께 하렘 궁에서 사치 향락(?)를 늙어 죽을 때까지 누르며 즐기고프다면야, 그것도 전적으로 환영할 테지만.
…문제는 이러면 그쪽을 편애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 이상 멀리 있을 때보다 가까이서 살을 자꾸 맞대는 쪽이  친숙할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 호감과 친애, 애정들이 MAX라면야….

언젠가는 여편네가 등짝을 후려 패며 ‘아주 진상이야!’ 하며, 우리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향해 혀를 쯧쯧 차대며 못마땅한 얼굴을 틈만 나면 내보일 때가 오기야 할 테지만… 음, 어떠려나.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만.’

정말로 질색이고, 싫어서 그런  아닐 테니.
어쨌든 에드릭은 얼굴이며 신분이 유추가  되는 은신 복으로 케사린 령을 누비며 활기를 띠는 영지를 살피다가 내성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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