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5)화 (395/454)



〈 395화 〉118. 만약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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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놓고 보면 조난자란다.
운명적인 뭐시기 따위는 없단다.
그래, 그걸 깨달았으면 이제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깨닫고 알아서 자중하겠지.


하지만 녀석은 아니었다.



“세상천지에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아주 특수한 경우 아닌가요?”
이에 설명을 이어가던 중년인은 이것 봐라? 하는 태도로 웃더니.
“특수하다는 것에 한창 꽂힐 나이긴 하구나.”
“누구든 특별해지고 싶은 거니까요.”



잘도 저런 소리를 태연히 해댄다.
내가 저런 인간이었나?

그는 내심 당혹스러웠다.

오그라드는 장면을 보아도 리모컨 정지 버튼이라던가, 키보드 스페이스 키라던가, 아무튼 스탑 키를 눌러 재생을 멈출 수 없다는 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무언가가 아닐  없었다.


영화관보단 방에서 보는  기본 스텐스다 보니, 매번 보다가 오그라들면 정지 누르고, 뇌리에 잊혀질 때까지 딴청을 피우곤 했었는데….

‘망할.’

지금은 얄짤 없다.


담당이라고 붙은 중년 사내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대는데, 대부분 주의 사항 등이었다.
돌려보낼 것이며, 돌려보낼 시 이곳에서 겪은 모든 기억은 지워질 거라는 점.
이것만 들어도 벌써 맥이 빠져야 정상인데도.



“그러면 그동안 뭘 하든 상관없는 거죠?”



아니, 상관있지 인마.




“어차피 전부 잊게 될 텐데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거냐?”
“그렇다고 지금 현재를 쓸모없이 보낼 순 없는 거잖아요.”

말만 들으면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점에 내가 저 위치에 있다 치면, 과연 똑같이 말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글쎄올시다.

‘뭔가 매칭이 안 되는데.’


저거 정말 내가 맞긴  건가?


간접적으로 체감은 되도, 정작 녀석이 저런 발언을 해대는 그 속내는 좀처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영화를 보며 그 인물의 연기에 몰입은 하더라도, 정작 그 연기자 본인이 뭔 생각을 하는지는 알  없듯.

이게 참 미묘한 상황이었다.
나이되 나인 걸 실감하면서도, 내가 아닌 걸 바라보는 듯한 이 극렬한 위화감이란….


확실한 건, 저게 나였다는 거 하나.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와닿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그리 울상이냐?”
“…….”



이곳저곳 기웃거려대는 꼴은 도저히 적응 못 하겠는데?!


도서관이랍시고 들어왔다가 글자를  알아봐서 실망한 건 그렇다 치자.
그 시점에 언어가 통하고 있단 점에 의구심을 품게 된 듯 탄성을 내지르고 있다.
그러다가 도서관 내에 많고 많은 자리에도 앉지 않고, 구석진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소녀를 보게 됐다.


이때 녀석이 생각한 건, 오 이벤트인가? 그래, 평범한 접근은 이벤트라  수 없지!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후다닥 그쪽을 향해 접근해대는 게 아닌가.

에드릭으로선… 아니, 평범한 소시민인 나이 퍼먹은 전 백수건달 안태민으로선 결코 택하지 않을 선택이자 행동이었음에도, 녀석은 과감이 먼저, 여성에게 접근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러다가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울상을 지으며… 그조차도 자신을 발견해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고 무뚝뚝한 얼굴을 내보이는 소녀를 향해, 녀석은  울상 짓냐며, 무려 직구를 날려버린 거다.


상식적으로 그런 소리를 들으면 뭐라 하겠나?
애초에 치부를  거다.
여자 입장에선 엿봤다, 들켰다, 이게 뭐지? 하는 당혹감이 물씬 생겨났을 거다.


그런데 심지어.


“어제  봤지?”
“…….”


이야기를 주도해 나간다.
허, 거참 신기한 새끼일세 그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
“책 보고 있었다는 건 아니까 그건   해도 돼. 중요한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는 거지. 집중  하고 있던 거 같은데 안 좋은 생각이라도 든 거야?”
“…….”



저저 봐라. 그렇게 무턱대고 들이민다고 좋은 반응  거라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지.

그럼에도 녀석은 쉴  없이 떠든다.

구석이라곤 하나 여긴 도서관. 그럼에도 녀석은 예의며 매너를 밥 말아 먹었는지, 지적을 받을 때까지 이것저것 묻다가, 지나가던 이가 지적하고서야 죄송하다며 고개를 수그렸음에도, 정작 바뀐 거라곤 목소리를 낮추는 정도가 고작.



“나 혼자 이야기해도 좋긴 한데, 정말 괜찮겠어?”
“…….”
“뭐 조용히 있는 모습도 예쁘긴 한데, 기왕이면 나하고 상호작용 좀 해주시죠?”


이것 보소? 현재의 나조차도 감히 구사하지 않을 법한 미친 단어 선정을 해대네?
그런데 그게 의외였는지, 결국 참다 참다 폭발…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쌓인 게 많았는지 눈매를 일그러뜨린 소녀가 이윽고 입을 여는데….


“닭대가리도 아니고… 조용히 좀 해.”
“닭?”



 여기서 닭이 나온 거지?

그 순간만큼은 지켜보던 그도, 말을 마구 걸어대는  애송이도 똑같이 의혹을 품게 된다.


아, 그건가.
그러나 애송이는 답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왜 닭인데?”




직설적으로 묻는다.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해야지 일일이 물어서야….

“시도 때도 없이 조잘조잘 대니까.”


그러자 소녀는, 의외로 순수하게 대답해줬다.
그래, 그게 맞지.


지켜보던 본인은, 거기서 위화감을 실감한다.


혼자서, 스스로 생각해낸다.
숙고하고, 고찰하고, 탐구하고, 고뇌해가며….
그러다 보면 답을 얻어낼  있었으니까.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그게 당연하게 굳어졌으니까.
그러나 저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침착하고, 몸을 마구 사려왔던가?

눈치는 보고 살았지.
기를 마구 펴진 못했어도, 평범하게 자기주장이며 의사를 구사할 때도 있긴 했다.
그래, 평범한 범주 내에서.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모르는 걸 상대에게 곧장 물어서, 곧장 답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순수하게 믿을  없게 된 지금과 달리, 저 시절의 나는 그걸 믿어 의심치 않을 단순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거다.

그건 이를테면 순수함.
아직 때묻지 않은….

“그래도 이제 대답을 해주는구나.”

그리고 단순하다는 게 무서운 건, 앞뒤 재는  없이, 그저 눈앞만을 직시한다는 것.


먼 미래며 과거따위, 알게 뭐냐.
그러기에 당장 녀석에게 중요했던 목표며 목적은 단 하나.
소녀가, 자신에게 반응하게 하는 것.

그리고 녀석은 그 목표를 이뤄냈다.
그러니까, 기뻐하는 거지.

작은 보상에도 기뻐한다.


나이를 퍼먹고, 남녀 관계란 밀땅이고 나발이고 섹스라 귀결돼 버리는, 썩어 빠진 대가리를 가진 나로선, 나름 로맨스니 로망이니 낭만이니 뭐니 이딴 걸 따져도, 결국 그쪽으로 국한되는 나로선, 저러한 순수한 대응에 위화감을 가질 수밖에.


상대를 꼬시기 위해서 앞서 상대의 정보를 취득, 상대가 끌릴 법한 소스를 파악한 다음, 시각적으로도 만족과 기대에 부응할 여지를, 그 단계를 넘어섰으면 그 이후론 조금  깊숙이 파고들어 대화며 제스처, 눈치를 바탕으로 호감과 관심을 깊숙이 끌어당기기 위한 목적으로 이것저것….

심지어 그 잘난 에드릭의 아바타였을 때조차 그래왔다.
한데 저 녀석은 무슨 자신감으로 저리 들이대는 걸까.

…아니, 그게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다.
저 시절엔.


그러기에 녀석은 계속 꼬치꼬치 캐묻듯 파고들었으며, 결국 짜증과 껄끄러운 기색을 보이더라도, 소녀는 반응했으며, 이어 티격태격하는 전개로까지 이어졌다.


…에드릭으로 지내온 이래, 저랬던 적이   번이라도 있었던가.

나이를 먹는다는 거에 대한 실감을 크게 못 해봤는데, 살아생전 지금처럼…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걸 실감해본 적이 없었을 거다.


애초에 완전 타인이며 남이었다면, 비교 대상으로 삼기 모호했기에 이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마치 오래 전, 풀어본 문제집을 다시 접할 때의 그 향수를 느끼고 있다.

버리려다가 무심코 책장에 박아둔, 헐어버린 문제집을 펼치며 이때 이리 풀었구나, 이리 고생했구나 하는 걸… 다시 재확인했을 때의 그 아련함.

그러나 지금 그래 보라 하면, 좀처럼 이해도 안 되고 공감도 다시 하기 싫은….


“그렇게 됐으니까 사귀는 거다?”

 미친놈이 잠깐 헤맨 사이 무슨 개소리를?!
아니 너무 갑작스럽잖아?



“…너 다른 여자아이들한테도 그러고 다니던데.”
“그러면 안 돼?”



안 되지 새끼야.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그건 감추라고!


“다른 애들도 좋아할  있는 거잖아?”


…뭐지 이 새끼?
아, 뭔가 이해가 갈 듯도 싶다.
이 새끼 아마, 하렘 엔딩을 진지하게 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차원 이동이라는 게 아무래도 뇌를 확실하게 조져버린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닌 한, 유딩 초딩 때야 그렇다 쳐도 그 이후로 쭉 모태 솔로였던 녀석이 어딜 아무렇지 않게 초면에 여자한테 사귀자는 개소리를….



“어차피 기간제니까. 나 돌아가면 다 잊게 될 테니까, 경험 삼아 좋지 않아?”


경험 삼아 좋다니… 아주 스펙타클한 사고관이다?

“놀랍네. 다른 세계 사람들은  너처럼 그렇게 개방적이야?”
“아니 전혀. 오히려 반대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널 좋아하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돼?”
“…….”




짜증이 복받치던 소녀의 안면이 벌게졌다.


이렇게 계속해서 연달아 좋아한다는 고백을 때려대는데, 제아무리 무심해도 타격이 없을 순 없겠지.


그래, 좋을 때다.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였지만.

그리고 당연하지만 소녀가 고백을 받아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뭐, 그러면 내일 또 하지.”
“…….”



이 미친놈은, 상상 이상으로 근성이 쩌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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