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4)화 (394/454)



〈 394화 〉118. 만약에….(2)

그럼에도 동요하지 않은 채 에드릭은 이어질 내용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그게 끝.”
“……?”


아, 저기요? 지금 저 놀리시는 건가요?
혹시 개그인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사실이거든.”
“미괄식으로 해달라고 했지만 너무 요점만 말씀하신 듯 싶으신데….”
“구구절절하게, 내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정확히는… 나도 온전히 다 기억하는 게 아니야.”

그녀가 자신의 미간을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나도, 빼앗겼으니까. 불필요한 거라며.”
“흐음….”
“다만 내 안에 남아 있는 건 있어. 그게 지금 너와 내가, 이런 기회로 인해 마주볼  있게 된 이유인 거고.”
“저는 여전히 감이  잡히는데요.”
“걱정마. 나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니까.”

그녀는 무심한 듯, 그러나 동요를 최대한 감추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죽었다는 이야기에 동요하진 않는구나.”
“제가 철학적으로 본래 육신이 죽고 기억만 온전히 남은 나는 본질적이자 근원적인 나는 아니다, 고로 이것은 거짓이며 모든 삶의 흔적과 발자취들 전체가 거짓된 거다! 라며 충격받을 필요까진 없으니까요. 그런 거까지 일일이 진지하게 마주 본다 치면 세상 오래 못 살죠.”
“…그 긍정적인 건지 적응력이 좋은 건지.”



에드릭의 태연자약함에 그녀는 살짝 질린  보였다.



“어느 정도 떠보려고 일부러 충격적인 발언을 하신 감도 있으시잖아요? 죽었다, 고로 지금의  거짓이다. 이런 심경 고백 및 팩트 제시를 위해서  소리를 하신  아니시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너는 단순 눈앞보단 항상 전제며 핵심을 짚으려 노력하는 습성이 있었지.”
“그래야 헤매지 않으니까요.”




눈앞만 보면 길을 착각하거나 방황할 수가 있다.
그러니 항상 지도에 표시해둔 목적지를 분명히 인지하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둬야, 엄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 거고.

“우선 확인할 필요가 없다곤 하나, 확인차 물어볼게. 너는 과거에 자신이 다른 세계로 갔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떠한 것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있는 게 맞지?”
“그걸 알았으면 제 삶이 많이 바뀌었겠지요.”

혹시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봐도, 고딩 때의 기억은 단조롭기만 했다.
특별하다거나 이색적인 건 무엇하나.


교도소 같은 학교가 짜증났다는 점과, 교우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는 점, 그럭저럭 숨만 쉬며 공부하는 척만 하며 다녔다… 정도?

“우선 제가 들은  토대로 상황을 유추해보면, 고딩   이세계로 본의 아니게 굴러 떨어졌고 거기서 팀장님을 만났다. 그 와중에 뭔가 문제가 터지든 어떤 식으로든 간에 죽었고, 그걸 어찌 손을 써준 게 숲의 현자라는 그분이다, 라는 게 일단은 맞는 거죠?”
“그래. 냉정하게 잘 따라오고 있네.”
“거기서 팀장님이 뭔가 조건이라던가 요청을 통해 리스크를 짊어지신 건지요?”
“음? 그렇게 생각하게 된 요인은?”
“기억이 온전치 않으시다 말하셨잖아요. 빼앗겨서. 즉 제 죽음이 팀장님한테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데, 단순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트라우마가 박힌 덕에 기억을 상실했다, 상실당했다, 라는  아니라는  분명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러면 뭐, 선택지가 좁아졌으니 추론 자체는 어렵지 않죠. 아직 확정 짓기엔 이르겠지만요.”
“그런 점은 잘 추려내네.”
“다 에드릭으로 살며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두뇌를 원만하게 혹사당한 덕이죠.”

경력이라는 건 거저 얻는 게 아니다.


쓸모없이 시간을 보낸 듯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전부 다 내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대충 살았다면 그만큼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좋은 거고, 고생했다 치면 고생한 만큼 뭔가 잔재주며 요령이라도 부릴 수 있어야 과거에 스트레스받은 만큼 현재가  억울하지 않겠나. 일종에 보상 심리에 가깝다고 보면 좋으려나.




“조건을 붙이고 조금씩 넘겨받았지. 그리고 기본적인 내용을 다 넘겨받았을 땐, 나도 그럭저럭 남 부럽지 않을 정도가 됐고. 하지만 핵심적인 거 여전히 잃어버린 상태야. 그리고 그는, 스승은 내게 이런 조건을 걸었지.”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전부 되찾을  있을 것이다.
라고.
“정말로 그런 존재?”
“…….”




에드릭이 묻자, 이 부분에서 윤미라 팀장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난감하기보다는 뭔가 어처구니없어하는 느낌?



“어린 시절의 치기 같은 거였지.”

이를테면 백마 탄 왕자님.

정말 백마를 탄 잘 생긴 왕자를 바란 게 아니라, 그러한 이상적 존재를 갈구하고 갈망하는 건,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거였으니까.
사실상 원한 건 구원자다.


날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나는 그게, 무엇보다도 특별할 거라 착각했지.”



그게 아니라면, 무엇하나 바뀔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절망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어떠한 과정 탓에 내 삶이 바뀌고, 변화됐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만큼은 뼈가 시리고, 저려올 정도로,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다.

삶을.
미래를.
…그리고 과거를.


“내기를 했지. 여행을 떠나게 하자. 목적지도 목표도 모르지만 어쨌든 여행을 떠나게 하자. 무수한 유혹과 굴곡을 제공하며, 기승전결의 인생을, 거기에 심취해 만족할 때까지 계속, 계속해서. 이 또한 그들에게 주어질 보상이라 하셨지. 그리고 그걸 관리하는 게 내 몫이었던 거고. 그리고 어쨌든 본사는 이익 집단이니, 겸사겸사 이를 바탕으로 이익을 꾀하게 하는 거고.”
“…….”

인생은 설계돼 있다.
누군가에 의해.

그러한 가정을 에드릭이  이래 안 해본 건 아니다.
오히려, 계속 생각해왔었지.
언제든 그들의 손에 의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다는 자각이, 유일하게나마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곳 세계가 전체이자 근본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도 했고.

이곳 세계가 제아무리 마음에 들고, 환상적이라 한들 현실을 배제할 순 없는 노릇.
사실상 부모님 때문에라도 더 그랬는지도.

그럼에도 늘 허전함은 남아 있었다.
이곳 현실이 과연 내가 몸담아 살아가야 할 공간이 맞는지.

아, 그건 당연하지.
그저, 본분을 다하고자 했다.
효도는 못 해도, 기본은 해두자.
 이후는,  다음 문제라 치고.

 현실이 답도 없기도 했고, 그런 세계에 적응  한 자신을 낙오자로 취급하는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긴 했지만, 그렇다 하여 이를 부정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내게 척박하고, 엿 같은 건 어느 의미로 당연한 거다.
왜냐면 세상은 유기적이기에.

“여행을 떠나 우리가 마련해둔 온갖 길을 거쳐, 거기에 적응해 살며 만족한다면  또한 그에게 있어선 나쁘지 않은 인생이  테지. 그러나 그들 가운데, 존재할  없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모르는 일이고.”
“제가 팀장님하고 약속을 한 게 있습니까?”
“너하고는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았지.”
“그래요?”



왠지 실망….

“당부와 격려가 있었을 뿐.”
“당부? 격려?”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그 실체는 나도 몰라. 그러나 이제  수 있겠지.”
“어떻게요?”
“열쇠가 2개 있다고 치자. 나에게 하나, 너에게 하나. 그건 같은 문에 서서, 같은 시간대에 똑같이 꽂아서 돌려야만 열리는 문이야. 이 정도 이야기해줬으면 대충 짐작이 가지 않아?”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이해했습니다.”



예컨대 아까 전 자신 외에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느냐는, 시험이자 관문이었던 셈.
현실에 만족하고, 가치 비교로서 그녀에게 우위가 있지 않았다면 결코 선택하지 못 했겠지…라고 해도 결국 동전에 힘을 빌렸지만.


그러나  또한 운명이고 숙명이겠거니 해야지.

실제로 동전이 정해줬다 한들, 발을 빼고 자시고는 온전히 본인 몫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에드릭은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 모르고 넘어가도 됐을 것에 대해… 확실하게 알  있는 기회를 맞닥뜨렸다.


그게 과연, 그녀와 온전히 이어짐과 동시에 기존에 가지며 누려왔던 모든 걸, 전부 이어갈  있는 건지 아닌지는,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네가 궁금해하는 것과,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전부 여기에 있어. 그 외에도 나는 잃어버린 게 많지만, 중요한 건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었을 무언가였을 테니, 그 부분은 문제없겠지. 모두가 너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니까.”


누군가는 본사를 비롯해 세상이 자신을 농락하고, 엿 먹였다며 발광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처지에 절망할 수도, 체념할 수도 있을 테고.

이건 알게 되는 것만으로 불행해지고, 불우해지는 사실들이다.
만약 그렇다면, 모르는  행복일 거란 의견에 한에선, 에드릭도 이견을 제시할 여지가 없을지도 모를 일.

그럼에도 꼭 알아야만 하는가 하면, 그건 어떠려나.

‘뭐 그건 본인들 선택지로 남겨둔다 치고.’

당장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군번은 아니니.
그녀가 허공에다 손을 쑤시더니 뜬금없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형 구슬을 끄집어냈다.



“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구형.

전체가 자체 발광하는 백색의 그것은 마치 빛에 반사돼 주변을 밝히는 진주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데, 어때?”
“여기까지 와서요?”



복권 당첨됐는데 당첨금 수령 물리실 겁니까 하고 묻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따로 제안할 여지도 없이, 에드릭은 곧장 그 구슬을 향해 손을 올렸다.
딱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아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냥 해봤달까?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는지, 일순 주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것들, 실물들이 사라지고 옅어져 가는 감각은 대단히 이색적이고, 적응하기 어려운 감각이었지만….


‘뭐, 이런 게 늘 환상적일 순 없는 거지.’

온갖 기현상이 매번 사탕 먹듯 달기만 하길 기대하는 건, 애들의 막연한 기대 같은 거니.


속이 울렁대다 못해 머릿속마저 뒤죽박죽되는, 아~주 불쾌한 느낌이었지만….


…….
………….


“오! 이게 그건가?”



제3자, 동시에 그게 본인이라는 실감은 실로 신기하기 그지없는 감각이다.
생각하는 것조차 고스란히 실감 된다.


그렇다, 이 시점에 나는….

“차원 이동?!”
“…….”

교복 차림으로 뻔뻔하게, 낯선 곳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자신의, 존재하지 않았을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에드릭, 아니 안태민은 이불을 차는 게 아니라 찢어버리고픈 충동에 시달렸다.


심지어 남중 남고 트리에 걸맞은 구질구질한, 개성 안 넘치는 복장에 개성 조지는 단발까지!


애당초 타고난 미남조차 미묘하게 만든다는 귀두 컷 비스무리한 저 삐리리를 좀 봐라!

존재 자체가 개쪽인데 심지어 거기서 입을 털어? 혼잣말을?! 탄성까지 내지르며?!



‘저 미친….’


대체  개 짓거린데?

실제로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지만, 뜻하는 바는 대체로 유사했다.


과거 고딩 시절의 자신을 보며 황당무계한 시선들을 던지는 무수한 군상들.
보통 이쯤 되면 아싸 기질이 다분해 얼굴이 벌게지며 덜덜 떨어야 정상인데도.
왠지 짐작이 됐다.


뭔가 상상만 했던 일이 펼쳐져서, 가슴이 뛰고 흥분한 탓에 눈에 뵈는  없어진 거겠지.

그러기에 되려 주변을 둘러보며, 대놓고 왜 그런 반응이냐는 식으로 묻기까지 한 걸 테고.

“뭡니까? 뭐가 문제인데요?”

아, 기억났다.  저딴 미친 짓을 태연하게 해대는지.

생각해보니 저 시절이 소설, 만화, 애니 등에서 딱 그게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차원 이동.
이고깽.
한편으론….


보이 밋 걸(Boy meets Girl).

그리고 보란 듯이, 많고 많은 군중 가운데 눈에 띄는 누군가가 보였었으니까.



“아, 물론 시작은 초라할 수도 있지. 암! 그러나 걱정마시죠. 저도 모르는 능력이나 재능이라던가,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잖습니까! 뭐, 확신은 안 들지만 뭐라도 되겠죠. 좋게좋게 생각합시다!”



그만해라, 이 미친 고딩아!
이게 시작부터 사람 미치게 만드네?
이딴 흑역사를 보기 위해, 내가 그 개고생을 한 게 아니라고 이 망할… 아오!

내상 때문에 주화입마 걸려 숨지겠다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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