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2)화 (392/454)



〈 392화 〉117. 꿈도 낭만도 없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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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정할 수 없구나.”




노인은 말한다.

“너와 그것은 본질적으로 달라.”

하지만 소녀는 저항하듯 대답한다.




“무엇이 다르다는 겁니까?”
“모든 것이.”



노인은 단언한다.
애초에  만남 자체가 잘못됐음을.
그러자 소녀가 정색한다.




“그러면 전 인간도, 뭣도 아니라는 겁니까?”
“인간의 기준점을 무엇에 두던 그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 이곳은 그저 지나쳐 가는 관문에 불과하다. 이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건 실로 어리석은 일이지.”
“어차피 전 버려진 거잖습니까?”
“그렇지.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비유하자면 뱀이 탈피해 벗어낸 허물의 예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더더욱 의미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그 껍데기조차 본질적으로 다르지. 단순 파충류의 그것과 용은, 본질이 다르니까.”
“…제가 그럼 뱀의 껍데기가 아니라, 용의 허물, 뭐 그런 거라 이건지요?”
“그건 이제부터 네 하기 나름일 테지. 내가 그래왔듯.”
“……그게 제가, 이곳에서의 생활과 삶을 전부 포기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의미가 있단 겁니까?”

소녀는 말한다.
울분을 애써 삭히며, 억울한 심경을 애써 억눌러가며.


반면 노인은 지극히 덤덤했다.
차분함을 넘어, 그것은 냉혹함에 가까웠으니.

“내 자존심 문제도 있겠지. 또한 그게 네 이후 삶을 개척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할 테고. 지금 네가 이 불합리함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네가 세상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이 그러하다. 만약 이게 불합리하다면, 너는 이런 내 요구를 떨쳐내고서도, 거리낌이 없을 능력을 키우며, 권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네 삶에 자유 따윈 없겠지.”
“…….”


소녀는 속으로 자책한다.
어쩌면 이건 예정조화에 가까웠던 일.
그럼에도, 혹시나 싶었다.
그런 요행을 기대한 게, 죄라도 되는 걸까.
아니, 죄는 아닐 거다.
그게 죄라면, 세상은 너무나도 끔찍할 테니.


“그렇다면 이곳에서 그 능력을 키우고, 주권을 얻도록 노력하면 될 일 아닌지요?”
“여긴 아니 되지. 여긴.”
“…….”
“아무래도  아쉬움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하니, 그걸 해소해주면 될 문제겠구나.”
“그만두세요! 그건 절대로…!”
“걱정하지 마라. 네가 충분히 자격을 갖췄을 때쯤, 전부 되돌려줄 터이니. 다 널 위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다.”
“그저 당신의 만족감 때문일 테죠! 아집에! 교만함에!”
“의미 없는 불평 늘어놓지 마라. 내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이윽고 노인은 무심한 얼굴로 가만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억울하면, 네 스스로 자격을 갖추거라. 그게 아닌 이상, 너는 언제고 빼앗기기만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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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7년?


“그러네요. 확실히 끔찍하네요.”



조각난 걸 하나하나 회수하듯, 마치 전당포에 물건을 맡긴 것처럼, 성과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회수하고 또 회수함으로써,  시절 잃어버린  전부  얻어내기까지… 그 정도 세월이 걸렸다.



“자랑스러워하거라. 너는 온전치 않았을 과거를 극복해 작금에 이르렀다. 잃어버린 걸 되찾았으며, 지금의 넌 그 시절에 비하면 한없이 발전하지 않았더냐? 아쉽기 이전에 이 자리에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 내게 감사는 못 할망정….”
“…….”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그가 강요했기에 자신이 독심을 품고 여기까지 왔냐 하면, 그건 어떨까 싶었다.


재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다. 타고 난 것도 괴멸적이고, 그러니 가진 거라곤 지극히 한정적인 거라, 할 수 있는 거라곤 제대로 된 걸 배워서, 그대로 이행하는 것일 뿐.

다행히 눈앞의 노인은 그런 면에선 이미 존재 가치를 옛적에 증명한 지 오래인 존재.

무려, 자신과 마찬가지로 껍데기로 시작해 되려 본체에게 열등감을 불어넣을 정도로 상식을 옛적에 벗어던진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저도 모르는 뭔가가 아직 남은 거겠죠?”
“그 또한 즐거움 아니겠느냐? 찾고 찾아 하나씩 얻어가는 만족감. 세상에 그러한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자들이 지천에 널려 있거늘. 넌 하나를 이루면 내 쪽에서 이를 제공해주니,  얼마나 복된 일이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시죠?”

소녀였던 여자아이는 어느덧 여인이 돼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노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습이었다.




“저만 피해를 입은 거면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저 말고도 여럿이 당신의 손에 농락당해 본래의 삶을 잃고, 박탈당하고, 왜곡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 생각합니까?”
“응당 책임감을 느끼고 있네. 그러니 지켜보고 있고. 어느 순간 손을 뻗을 테지. 그리고  기회를 네게 제공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
“네가 말한 같잖은 인연이며, 유대라는 게 얼마나 시원치 않은지도, 몸소 느껴보는 것도 좋겠지. 인연은 소중하나, 그건 결국 육신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본능에 충실한 부자유에 극치라고, 나는 본단다. 애정이라는 이름의 감방에 굳이 머리를 들이미는  무슨 이유인가. 성욕에 미치고 고독함에 미쳐 이를 감당치 못하는 나약함이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는 부조리함을 추구하게 만드는 거지. 이 모든 건 타협이니라.
허나  또한 인간 군상을 모이게 하여 문명과 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기도 하니, 공교로운 노릇이지. 결국 그런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극소수의 최상위 계층은, 그런 부질없는 것에 연연함이 없는, 완성에 이르는 길을, 초월적인 사고관과 신념관을 갖춘 철인이 아닌 이상, 그들을 제도하고 이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리.
이끄는 자는 결코 무지와 무명에 휩싸여선 아니 된다. 인간이길 포기하고, 헌신과 희생을 넘어 강력한 존재감과 상징성으로 그들로 하여금 선망과 동경을, 존경과 경외를 느끼게 해야만… 비로소 그들 또한 방황하는  없이 우리 뒤를 따르게 만들 수 있는 거고. 그래야 혼란이 줄고, 모두가 평안을 이어갈 수 있는 게지. 이거 하나만큼은 나나 그나 같은 이상관을 공유하고 있다 본다.  필시 그와는 다른  추구하리라 여겼으나, 결국 끝에 도달하니 동일한 결론에 이르는구나. 허나 그가 헤아리지 못하는, 가장 밑바닥에 놓인 자갈밭의 무분별함, 무질서함을 나는 이해하고 있지. 차이가 있다면 주어진 것에 치중해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어리석음과, 모든 걸 잃은 줄 알고 절망했던 그 모든 게 실상은 가장 완성이 이르는 지름길이었음을 깨달은 나.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너는 보느냐?”
“…저는 그딴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상관할 바도 아니고요.”


여인은 입술을 곱씹으며 대꾸한다.
저항을 넘어, 반발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아무튼 약속은 이루어졌다. 이 정도쯤 되면 네가 시키지 않아도  몫은 알아서 챙기겠지.”
“…….”
“하여 어쩌겠느냐?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더냐? 심지어 그러한 과정을 우린 꽤 많이 반복하지 않았더냐?”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죠.  번도 아니고 수 번을….”
“네가 되려 이상하지. 빼앗기고도 두려움 없이 새로이 연을 쌓아갔으니까. 나로선 도저히 이해  할 행위로구나.”
“…….”
“이것도 따지고 보면 유년기에 네가 내게 바란 약속에서 비롯된 거다. 나는 그 기원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고. 순수를 잃은 너는, 환상에 젖어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 하고 있는 거고.”



질책하는 투는 아니다.
노인은 그저,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뭐 좋은 기회가 되겠지.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 하였으니. 네가 현실을 되돌아보고, 깨우치는 계기가 됐으면 싶구나.”
“…그건 그들의 삶에 정당한 보상을 하고서나 이야기하시죠.”
“그 점에 한에선 기대 이상의 대가를 제공해줄 거라 자부하지. 불확실한 삶을 적어도, 너와 엮임으로써 입은 피해가 아니더냐.”
“그걸  손으로 수습하라고 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지는 않으신 겁니까, 정녕?”
“말했지만 세상은 고통이다. 고통을 겪고 견딤으로써 성장하는  우리들이다. 네게 거절할 자격은 없다. 아직까지는.”
“…….”
“너는 아직 돌려받아야 할 게 있으니, 억울하더라도 별수 없을 것이다. 그게 아님 포기하면 되고. 선택은 네 몫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인은 실웃음을 흘렸다.



“잔인하시군요. 예나 지금이나. 이런 제가… 알브레시아스와 대체 뭐가 다른 겁니까.”
“너는 그보단 나아야지. 내가 그 아비에게 열등감을 심어줬으니, 너도….”
그것의 후예의 하자 많은 온갖 껍데기로서.
“내가 온전히 옳았음을, 네 삶으로서 증명해줘야 할 것이다. 당대에만 이겨 먹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굴욕이란, 당대와 후대. 모두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거지.”
“…이거 아십니까. 당신의 그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당신이 저나…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그조차도 원동력으로 삼거라. 기쁘게, 한없이 즐겁게.”
그 저열함조차,  성장 시키는 거름으로 삼아야지.
“그게 아니면, 그저 추잡한 걸로 끝인데, 그거야말로 굴욕이지. 안 그러더냐?”
“…….”
“그건 그렇고 접선하려면 결국 너도 저쪽 세계로 가야 할 터인데, 적응기를 거치면 곧장 복지 업무에 착수하거라.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워지는 건 그들이니까.”
“그건 그렇고 그곳에서 활동할 화신체는 어떤 식으로 구성할 셈이더냐?”
“평범하게 구성할 생각입니다.”
“어렸을 적에 네가 바랬던 그런 이상적인 이들이, 그들 가운데 있었으면 하는구나.”
“…….”

당신이 할 소리인가.
그러나 여인은 화답하지 않았다.
그저, 냉담하게 코웃음을 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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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천장이다.
아니, 진짜 모르는 천장 맞다.
저쪽 세계, 원래 세계인가 싶을 정도로  최신식? 어쨌든 sf느낌이 다분한 천장.


‘심해  그대로인가.’



좀 전까지 뭔가 싶었다.
일방적으로 뭔가가 들이밀어 진 거 같은데….

마치 게임 마냥 1인칭 시점으로 누군가와 특정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딱 봐도 꼰대를 넘어 유교 드래곤들조차 치를 떨 정도로, 독재적인 개소리를 나불대는 노인네는, 심지어 에드릭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숲의 현자.’

외모 자체는 마치 안개에 가려진  애매했지만, 말하는 내용만 떠올려보면 유추하는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런 노인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소녀이자 여인이 누구였는지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 존재가  것처럼, 그 상황에 빠져 있었으니까.’

이건 꿈도 아니고, 말 그대로 정말 1인칭 게임 속 인물이 된 것처럼 그 상황을 억지로 관람한 느낌.
다만….


인과 관계를 따져 보면, 이를 유추하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이 덜 깬 감도 있어 머리 회전이 약간 더뎠지만, 그것도 금세 괜찮아지겠지.
그러나 이를 곰곰이 되짚어 보기 전, 자동문 마냥 입구 문이 열리더니.


“깼군.”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한 그녀, 윤미라 팀장이 딱딱한 침대 비슷한 것에 누워 있던 에드릭을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래, 그랬지.
동전을 굴렸고, 앞뒤  하나로 결정.


그리고 동전은, 전부를 포기할지언정 그녀를 선택하라는 결론을 대신 내려줬다.
에드릭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깨어난 직후, 에드릭은 에드릭으로서도, 안태민으로서의 자신도, 그 무엇 하나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게 아님 뭔가 자신도 모르는 사정이 있다거나?


어쨌든 이에 대한 건 그녀가 말해주겠지.
더불어 방금 관람하게 된 그, 기억인지 특정 장면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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