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28)화 (228/454)



〈 228화 〉59. 그는 다 계획이 있었다?(3)

“…야만적인 거?”

일종에 자칭 분노 조절 장애자들, 무례한 이들, 개념 밥 말아 먹은 이를  수 있을 거다.



“그건 피해 가면 되죠.”
“흐음….”




이해력은 좋은데 이를 표현하는 게 아쉬운 바리우스.


말의 의도를 캐치해 상대에 부응하는 해답을 내는 순발력은 정치 및 처세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는데, 귀족 자제들은 어렸을 적부터 그런 식으로 눈칫밥을 먹어가며 성장하다 보니 성년쯤 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게 몸에 드러나기 마련.
그런데도 바리우스는 조금 아둔한 걸 보니 집안 교육은 생각보다 엄격하지 않았다거나….




‘기대를 하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원래 후계자 수업은 가문의 후계자한테 하는 것.

엄한 이들에게 덩달아 시켜 후계자의 권위를 실추시켜 혹시나 있을 하극상 발생시키는 건, 신하가 왕에게 대드는  이상으로 꺼려  수밖에 없는  귀족 가문의 불운한 생태기도 했다.


그딴  상관없이 잘 화합하고 잘 지내면 좋겠지만, 그놈의 권력이며 권리란 게 뭔지….

에드릭은 그렇게 바리우스에 대해 나름 추측을 하고 있던 차에도 엘핀네스는 지속해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는 이. 활짝 웃으며  뒤로 칼을 쥔 이. 연신 아는 척, 친한 척 하던 이가 어느 순간 얼굴색을 바꿔 모르는 척 연기한다던가.”
“아! 무슨 말인지 알겠군!”

여기까지 힌트를 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나 보다.
재차 설명하는 엘핀네스.




“에드릭 님은 의도적으로 못난 모습을 보임으로써 저들의 경계심을 내려놓는데 한 차례  일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변칙적이고 충동적이지만,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이들을 대접하기 위한 행사였단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 다른 의미로 나에게 잘 보이면, 너희도 함께 권세… 아니지.”
“혹여라도 말실수 마시기를.”

엘핀네스가 곧장 지적했다.
다 같이 권세를 누리자! 는… 음모론자나 반란도들이 자기들 측으로 매수할 때 쓸 법한 단골 표현이 아닌가.



“나에게  보이면 얻는 바가 있다? 나는 이만큼 아랫것들을 위하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책이며 시를 접해 언어 표현력을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겠군요.”
“그럴 시간에 검을 잡지.”
“후우! 이래서 사내들이란.”


진저리가  듯 고개를 휙휙 내젓는 엘핀네스.
물론 엘핀네스가 사내들의 무식함을 무작정 질타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무를 중시하는 나라, 상무 정신을 기본 베이스로 잡은 국가에서 무력을 괄시한다는 건, 과장 좀 보태면 죽을 죄에 가깝다.

그러나 상황이며 시대가 어쨌든 남녀가 추구하는 바, 목적한 바, 주어진 환경에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런 점에 대한 갈등이며 문제가 아예 없을 순 없는 법.


어차피 사내는 밖을 싸돌아다니며 피를 흩뿌리고, 여자는 보금자리에서 돌아오는 이들을 보좌하고 내조하는 게 평균이긴 하니.


물론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경우, 에드릭이 부군이 된다 치면… 사내로서 패왕녀의 내조를 맡아야 하는 경우에 놓이게 될 테니, 이거야말로 남말할 처지는 아닐 터.


하지만 이곳 세계 사내들이 그런 걸 수치며 불편하게 여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에드릭은 아니었다.


셔터맨.
한때 사내들의 가장 강력한 결혼 로망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니, 지금도 그럴지도?

그리고 에드릭으로 말할 거 같으면, 개꿀이라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한 걸 대놓고 반기는 입장이었다.
집에서 놀고먹고 만 해도 된다니, 얼마나 좋나?

…물론 정말로 그럴 수야 없겠지만.



“넘어가죠. 그래도 의도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실례를 저지른 점을 속히 인정하곤, 단순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 그보다 더 나은 개선점을 밝혀 단순 책임론을 극복한  중요한 요점입니다.”




아까 했던 말에 반복이지만, 부연 설명을 숙지한 다음 들으니 사뭇 다르게 들렸나 보다.
바리우스가 순순히 알아들은 눈치로 말했다.


“…그리고 그게 에드릭 님이 이야기한 대형 목욕 시설?”
“그렇죠. 에드릭 님, 아르세이유에도 비슷한 시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와 같은 식은 아닐 걸로 추측됩니다만, 어떠신지요?”
“카일론 왕국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규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드릭은, 평탄한 전개 위에 뜬금없이 충격적인 결말을 내던졌다.
마치 호수 위에 무거운 짱돌을 던져 넣은 것처럼, 놀라서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한 엘핀네스.


“……잘못 들은  아니라면, 전 국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충격을 주기 위한 구사법 중 하나는 두괄식 표현.
즉, 시작부터 대뜸 결론을 들이미는 것.

그리고 그 결론이 충격적일수록, 두괄식 표현의 여파는 크게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충분한 설명이 요구되어야 한다면 미괄식 표현을 쓰면 된다.
결론이며 핵심이 맨 나중에 언급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게, 설득이든 납득에 있어서 가장 정석적인 언급 방식이기도 했다.


이런  알고 구사하는 것과, 모르고 막연히 이야기하는 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만드는데도 사뭇 차이가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래 쇼킹 해야 인상에도 강렬히 남는 거 아니겠나.

“무릇 사내라면 본을 보여야지요. 또한 스스로 범한 실책이 가히 아무렇지 않다 한들, 기회가 왔다면 확실하고 뚜렷하게 증명해내는  언제고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간만에 고풍스러운 문자 쓰려니 순간 혀가 꼬일 뻔했다.

어쨌든.
단순 입막음, 책임 모면 목적이 아니라는  피력하고자 했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동시에….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뿌리 박는 요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거고.’

아마 일각에선 저거 일부러 이상한  해서 괜한 명분으로  크게 벌이는 거 아니냐 하고,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볼지도 모를 일.
그래도 여기엔 어마어마한 돈 냄새가 풍길 테니, 누구도 쉽사리 손을 쓰진 못할 거다.


그 정도 규모의 목욕 시설을 왕도 내에 짓는다는 거 자체가 이미 천문학적인 대공사가 될 텐데, 이로 인한 무수한 시너지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애초에 너희한테 돈 달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냥 짓겠다고 했다.


이러면 결국 땅이 문제인데, 이걸 안 구해주면 그건 그것대로 카일론 왕국 측만 손해보는 일이 되고야 만다.


미국이 대공황 해소하겠다고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뉴딜 정책을 심심해서 밀어붙인 게 아니다.

물론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며 경제가 파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은 아닌 만큼, 그로 인한 효과는 덜할 테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순 없는 노릇이고.’




자국민에게 일자리 창출로서 웃돈을 얹어줄 것인가.

아니면 외부의 무수히 많은 이들을 이주시키든, 끌어당기든 해서… 새로운 인구 확장, 기술 발전, 시장 활성화 등의 전체적 활성 및 확장에 초석을 다질 텐가.

카일론 왕국이 이민족, 이종족을 수용하게 된 계기는 자국의 인구로 군사력을 확충하는 것에 대한 한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캐치한 점에 있었다.


최초에 카일론은 나름 단일 부족이었고, 그들이 성장해 주변을 복속시켜 갔으며, 그것이 제도를 이룩해 왕국으로까지 발전한 케이스다.


카일론 전체 인구 중 무려 40% 가까이가 이민족에 이종족이고, 군의 50%가 마찬가지로 이민족, 이종족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카일론은 대공사를 일으켜 배고픈 자들을 자국으로 이주시켜 백성으로 만들어 인구수를 확보한 전례가 있었다.

‘알아서들 하겠지.’


이러한 이점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이 나라 고위층들이 바보 머저리들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이로 인해 얻을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구태여 풀어주지 않아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여긴 에드릭이었다.



‘모르면 알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주면 되는 거고.’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다.

모르면 일깨워주어 연달아 잘난 척(?)할 수 있으니 좋고, 알면 구태여 입 아프게 설명 안 하고 신경 끌  있으니 좋고.

어쨌든 목욕탕을 랜드마크 급으로 지을 생각인데, 그렇다고 엄청 과장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혹여 부군 경선에서 떨어져도 이건 그대로 이어갈 예정.

…이로 인해 에드릭은, 다른 의미로 부군 경선에 떨어져도 전혀 하자가 없는… 방패막이  명분을 새로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속내를 누군가에게 토로한 적은 없기에, 누가 이런 의중을 간파할지는 의문이지만….


‘…팀장님은 어떠시려나?’

따로 언급 않고 질러버린 거긴 한데… 그래서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인근에 있으신데 상담도 안 하고 저지른 거잖아.’

아니, 그렇다곤 해도 여기서 크게 선 넘지 않은 한, 모든 일은 이쪽 책임이 되는 거니….
거기다 선배에게 제안  이야기를 털어놓은 시점에 선배가 팀장님께 보고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건 그것대로 문제 아니려나?
괜스레 미운털 박히는 거 아니고?
아, 왜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러선…!


당시에는 전부 따지고 헤아렸다 생각했는데, 항상 일을 벌이고 난 뒤에야 못 짚었던 일들이 떠오르는 꼴이라니.


아르세이유에선 어쨌든, 파라메라 대륙에선 매번 에드릭 스스로가 상황을 주도하던 버릇 덕에 미처 짚고 넘어가지 못한 문제기도 했다.


아직도 멀었구나. 에휴!

놀라서 이런저런 물음을 던져 궁금증을 해소하려 드는 두 남녀를 향해, 에드릭은 편안한 분위기로, 그러나 몰입감을 느끼게끔 표정이며 시선 처리, 제스처까지 더해 친절하게, 하나하나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당연하지만, 정말 핵심적인 것들은 모조리 속에만 담아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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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길어진 탓에 목이 탔던 걸까.
패왕녀에게 양해를 구한 여기사가 투구 마개를 열어 가죽 물통을 입에 물었다.

“흠, 그건 그렇고… 이건 자칫 잘못하면 우리 쪽이 옭아맬 수도 있겠구나.”
“그러하옵니까?”




마개를 봉인한 여기사가 패왕녀의 그런 언급에 자그맣게 의혹 어린 음색을 표출했다.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고작 목욕 시설, 에드릭이 간단히 밝힌 내용의 소재를 요약해 전달한 여기사의 이야기만으로, 패왕녀는 무언가 핵심적인 걸 파악하기라도 듯, 한동안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패왕녀를 통해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멜크리우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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