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58. 여기사여도 한 자릿수론 부족했다.(3)
에드릭은 급할 거 없기에 앞서 그녀들과 목욕을 즐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카일론은 노천탕은커녕 온천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공간만 있다면 충분했다.
카일론 건국 신화에서 이미 목욕의 개념이 언급되기에 이들은 몸을 씻어내는 것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태도들을 보이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중세 특유의 오물 범벅 거리, 이로 인한 악취 일색의 환경과는 비교적 멀어진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심지어 빠르게 외부 문물을 받아들인 개방적 사고마저 지녔는지, 천만 다행스럽게도 이곳 화장실엔 무려 변기가 놓여 있었다는 점.
본사가 적극적으로 각 왕실이며 귀족들에게 이러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이런 식으로 이점을 발휘하나 싶기도 했다.
‘…솔직히 변기 아니면 많이 답답하지.’
고대적에 유목민들, 즉 거처가 따로 없이 싸돌아다니는 이들은 인근에 땅을 파서 싸고 다시 덮는 식이 일반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곳에 처박혀 살아가는 이들에겐 그런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장난 아니었다.
의외로 우리 세계 기준, 일단 밝혀진 바로 최초의 좌식 변기는 인더스 문명에서 비롯되었다 전해진다.
그 중 기원전 2600년 경의 모헨조다로에서 벽을 파내 화장실 겸 욕실을 설치했다는데, 벽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나무를 올려 고대적 좌변기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한 내용물을 쌓아두는 게 아니라 물로 오물을 내려보내 하수도로 배출하기까지 했단다.
고대 도시들을 살피면 그러한 정황이 의외로 여럿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러한, 당시 기준으로 첨단 시설 등이 대중적으로 퍼질 리는 없었기에, 대부분은 대소변을 모아두는 요강을 활용했을 거란 추측이 다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로마로 접어들면, 의외지만 로마엔 주변에 암모니아 향이 아주 진득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이들은 오줌으로 양치질을 하고, 세탁까지 해댔는데, 암모니아 덕에 세탁 효과가 좋아 아주 열렬하게 활용했단다.
그 외에도 무두장이들도, 염색공들도 소변을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한정됐기에, 이걸 얻고자 이들은 골목이며 으쓱한 곳이며 거리 곳곳에 단지를 놓아두고, 사람들은 그곳에다 소변을 처리했으며, 그것이 쌓이면 그들은 그걸 수거해 각각의 용도로 활용까지 했단다.
결과적으로 로마 거리는 이런 문제로 암모니아 악취가 대단했다고 한다.
…찬란한 로마를 칭송하는 이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용도로 써먹는 몇 안 되는 팩트 비방이 이것.
거기다 로마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는데 이걸 요금 받고 쓰게 했다고 하며, 화장실 내부엔 따로 칸막이가 없고, 좁기까지 해서 볼일을 볼 때 서로 앉아서 볼일을 보며 대화를 하는 문화까지 있었단다.
놀라운 건 이런 것이 그나마 양호한 정황이었다는 점.
상하수도가 막장인 빈민가로 접어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단다.
…일일이 논하자면 끝도 없겠지.
그리고 암흑시대라 불리던 중세 시대로 접어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흑사병 창궐 이후까지 어마어마한 막장으로 이어지는데….
‘거리가 온통 똥통이라 했던가?’
집에서 볼일 보고 그걸 그대로 창밖으로 내던지고, 집 앞이나 안에 가축들과 함께 살아가고, 단독이면 몰라도 여럿이 사는 곳에선 건축 문제까지 더해져 똥이 벽을 타거나 바닥을 타고 아래층 천장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예사라 했으니.
‘판타지 만세.’
최초에 판타지 세계가 중세 시대라 해서 얼마나 겁을 먹었던가.
실제로 아르세이유에서 여기, 카일론까지 오는 도중에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까지 했다.
이조차도 많이 개선된 거라 하니….
상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암모니아며 오물 향을 덕지덕지 묻혀댄 상태면… 거짓 하나 안 보태고 미녀더라도 떡칠 생각이 단번에 사라진다.
아닐 거라고?
…겪어보면 안다.
파라메라 대륙에서조차, 떡 치자고 달려드는 암컷이며 여성들한테 편집적이리만치 청결을 강조한 게 괜한 게 아니었다.
그런 태도를 그들은 경건한 마음, 청결한 몸으로 접하라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걸로 오해를 한 이들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에드릭의 노력은 그들의 청결한 환경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안 씻고 몸에 악취 풀풀 풍기면 해주지 않는다는데 별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익숙해지다 보니, 사내들조차 땀에 절어 쉰내 풀풀 풍겨대니 여성들 입장에서도 사람 취급 안 해주기 시작하자 그들도 청결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목욕 문화가 성립됐지만… 이건 호수며 강이 풍부한 이들 한정이지, 솔직히 물이 부족한 황무지며 척박한 대지에서 자주 목욕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 댐 공사며 수도 시설을 비롯한 온갖 것들의 필요성을 자동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잘 씻게 만드는 걸로 그걸 이해 시킨 것도 웃기지만.’
이렇듯 세상일이란, 항상 계산적으로, 이치대로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인간이 개입됐을 땐 더더욱.
에드릭이 적극 목욕에 대해 주장하니, 강가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들.
물론 에드릭을 아는 이들은 정령술을 통해 몸을 청결하게 해주길 희망했지만….
‘즐김의 미학들을 아셔야지.’
찬물로 목욕하는 게 기본이었기에 에드릭이 추구하고자 하는,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자 하는 미학을 그녀들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의아한 기색들을 내비쳤다.
그렇게 해서.
때 아닌 노동이 펼쳐졌다.
객실 인근에 자리한 공터 한 곳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 앞서 허락받은 다음, 거기에 땅을 파고 재차 돌을 깔았다.
이쪽 구조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엄한 모래에다 물 뿌리면 뭔 사태가 벌어질지는 뻔한 일.
그러기에 물이 스며들거나 흐르지 않도록 돌을 깔고, 그걸 정령술을 바탕으로 재차 다듬어 넓게 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고가 이어졌다.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땅을 파는 건 여기사들 몫으로, 그녀들은 때 아닌 중노동에 어처구니없는 반응들이었지만….
‘까라면 까셔야죠.’
이게 다 잘되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적당히 약을 팔며 사람 열명 이상이 들어갈 법한 수영장 겸 노천탕을 겸할 공간을 어찌 형성하긴 했다.
‘…배수 시설이 문제인데.’
물을 담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니 넘어간다 쳐도, 물을 빼내는 건 아주 중요했다.
고여서 물이 썩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 의미에서 지하수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모자라 순환까지 고려되게 조성한다?
음, 이건 아무리 봐도 선 넘는 거고… 애초에 지하수 탐지도 안 되고… 된다 쳐도 이건 꽤 깊숙하게 들어가야 하는 거 같은데, 이 시점에 이미 어불성설.
자신이 있으니 물을 채우는 거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전에….
불을 피울 수 있는 것들과 땔감, 그 외에 달궈도 전혀 하자가 없는 짱돌들까지.
…모양새 좋은 자갈이라던가, 맥반석을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겠지?
‘이걸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안 돼서 다 만들려는 것도 미친 짓이긴 하네.’
막상 저지르고 두 시간 가량이 흘러 그럭저럭 모양새가 잡혀감에도, 뭔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순간 후회가 들기까지 했다.
‘아니지, 이건 이것대로 다 계획이 있는 거라고.’
여기서 이쪽 목욕 맛을 보면 결국 재차 찾아올 거다. 그러다 보면 주변이나 인근에 에드릭이 있는 걸 아니, 꼴리거나 괜히 그쪽이 당기며 무심코 찾아도 올 수 있는 거고!
“뭣들 하는 겐가?”
객실로 돌아가다 이를 발견해 접근해온 자가 있었다.
객실 본 건물과는 떨어진 부근이라 쳐도, 벌리는 일이 번잡하다 보니 오는 길에 눈에 안 띌 순 없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무턱대고 목욕하면 다른 의미로 눈길을 끌지도?
물론 목욕만 한다 치면 크게 눈에 띌 일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단순 변덕에서 시작한 게 이런 대공사(?)가 될 줄이야.
추가로 가림막… 아니, 그럴 바엔 옷을 비치할 공간도 덩달아 만들어두면 되겠….
…그런데 거기까지 가면 이거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니려나?
한다 쳐도 나중에 확장 공사하기로 하고, 당장은 가림막 정도만….
……너무 디테일하게 생각하면 머리 아파지니 일단 눈앞에 일부터.
“보는 그대로입니다.”
나름 경쟁자로서 부군 경선에 참가한 그 중년인은 제법 안면이 익은 이였다. 식사도 두 차례 같이 하기도 했었고.
그런 그도 에드릭과 여기사들의 노동 현장을 보며 신기하다 못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은연중 내비치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얼….”
“도와주시겠습니까?”
뭔지는 몰라도 한껏 고생스러운 낌새가 물씬 풍긴 탓일까.
거기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속내가 어떻든 천연덕스럽게 권하자, 애써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와 동시에 부리나케 자리를 뜬 중년인.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왜 저런담.
“후우!”
평평하게 다진 바닥 돌 틈새를 에드릭이 배합해 건네준 진흙으로 메우던 여기사는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리더니, 이어 바닥이 아닌 벽 부근에다 세세히 손으로 진흙을 발라대고 있었다.
‘대체….’
뭐하자는 거지?
에드릭이 그녀들과 함께 작업에 종사하며, 배수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 미처 눈치를 못 챘지만, 다른 의미로 그의 모습은 그녀들에게도 이색적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별로 신경도 안 쓰고, 뭔가 타산적이지 않게 애처럼 뜬금없이 이런 걸 무턱대고 하자며 이끌지를 않나.
거기다….
“해 떨어지기 전에 마무리할 겁니다! 아, 나무… 함부로 자르면 안 되죠? 목공업자? 담당자 아시는 분 있으면 여기 두를 정도… 안 튼튼해도 좋으니 나무 구할 수 있는지, 안 높아도 되고 그냥 딱 허리 높이 정도면 되니 많지는 않아도 될 겁니다. 그거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고 와주시면 참 좋겠군요….”
와중에 그가 미리 시쳐 땔감과 솥단지, 그리고 돌무더기를 어딘가에서 가져온 여기사들이 속속들이 복귀했다.
“오신 분들은 그거 놔두시고, 바톤 터치… 아니, 교대로 여기 와서 작업 좀 도우세요.”
사실 진흙 발라대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진정한 중노동이란, 무거운 걸 들고 장거리를 아무런 도구 없이 무작정 이동하는 행위지.
공사판에서조차 그렇게 경우에 없는 짓을 시키진 않는다.
…물론 고대엔 인력이 곧 국력이고, 전쟁을 하는 이유조차 이러한 노동력 확보 때문일 정도로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력들 좋으니 대충시켰는데, 마차까진 아니어도 수레 정도는 이용할 줄 알았더니… 말 그대로 적수공권, 맨손으로 죄다 옮겨오는 위용들을 보이는 게 아닌가.
‘대단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