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52. 만나면 좋은...
의외지만 에드릭, 아니 태민이 본사에 들어선 이래 그들의 부서. [외적 지원 탐방 보조 및 해결 부서] 라는 정체불명의 부서는 소수인 주제 전체가 모여 얼굴을 맞댈 일이 없었다.
중도에 마주치는 것조차 드물고, 다른 부서들과 달리 내부적 인원들과 합심하거나 합동해서 일을 치른다거나….
물론 백화점 운영 때나 릴리에나와 함께 파라메라 대륙에 가서 같이 활동한다거나….
거기까진 그렇다 치지만 그조차도 대부분은 임시고(그 임시 기간이 꽤 길어졌다 뿐) 제대로 작정하고 자리 잡아 뿌리 내리거나 말뚝 박는 다른 여타 부서들, 무수히 많은 팀들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건 확실했는데… 중요한 건 왜인지 현실 세계든 이세계든 어디서든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태민이 처음 본사에 들어와 윤미라 팀장 산하로 지원해 오게 된 것도 반쯤은 우연이었고, 거기서도 선배인 민철영 외엔… 사실상 신입이든 선배며 상사를 따로 본 적이 없었기도 했는데, 이는 본사에서조차 드문 케이스란다.
애초에 부서 자체가 윤 팀장님 덕에 목숨줄을 유지하고 있는 셈인데, 이조차도 얼마 안 돼 명목상 정식 부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부서 취급을 받게 될 테니, 부서명도 바뀔 테고, 들어오는 신입들의 수도 늘어날 거란 소문이 맴돌고 있는 형편이었다.
어쩌면 그런 점을 대대적으로 축하 자리 차원에서 공표하고자 하는 건지도.
본사 내부엔 무수히 많은 시설들이, 마치 다차원 공간처럼 자리하고 있지만, 여긴 솔직히 그보다 더했다.
큼지막한 원탁이나 얼굴을 어느 정도 구별 가능하며, 음식을 짚거나 담는 그릇, 앞접시에 옮겨오기도 무척 편리한 구조인데, 자기 좌석 쪽 테이블 아래쪽에 메뉴 번호를 입력하면 테이블이 자체적으로 룰렛처럼 돌아가며 순서에 맞게 담아진 음식을 대령하는 형태였다.
심지어 담아주는 양도 눈짐작으로 알아서 다해주니, 이것도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랄까.
가장 눈에 띄는 부근, 시계방향으로 치면 12시 방향에 자리한 윤 팀장님은 언제나 그렇듯 세련된 미를 뽐내며 특유의 붉은 차림, 짙은 블랙 와인 색의 상의 자켓, 아래로는 스커트로 구성된 투피스 정장. 연분홍색 블라우스와 중앙 부근에 또렷하게 자기 주장을 표명하고 있는 박력 넘치는 가슴의 아름다운(?) 형태까지.
언제봐도 그렇지만 그녀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 초대된 이는 태민 말고도 여럿.
내부는 마치 무도회장 마냥 넓은 공간에 조명조차 거대한 샹들리에가 여럿 자리잡아 어두울 겨를이 없기도 했으며, 그들 말고는 따로 눈치 볼만한 이들도 없었기에, 분위기는 제법 완화되고 부드러운 편이었다.
어쨌든 소문이든 뭐든 한 번씩 서로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접해본지 오래며, 애초에 이세계 내에서도 단말기를 통해 자체적인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기에, 솔직히 얼굴만 못 봤을 뿐, 거의 다 아는 관계들이라 봐도 무방할 지경.
그러나 근래 동안 파라메라 대륙으로 나간 덕에 의외로 릴리에나였던 후배와 태민 자신은, 부서 내에서도 조금 생소한 부류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태민이 자기를 소개할 때쯤 되니 딱 12명 되는 인원 모두가 각기 다른 반응으로 그를 지켜보며 눈을 반짝이거나, 은연중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뭐야, 현실도 엄친딸이잖아?’
현실에 자신은 머저리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릴리에나는, 현실도 장난 아니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겉만 보면 둔해 보임에도 스펙도 무려 sky 출신.
원래 유학 가고 싶었다는데 집안이 평범해서, 아이비리그 가기엔 아무래도 준비며 여건도 안 돼서 그냥 이쪽으로 타협했다나?
무엇보다 현실상 키가 태민 자신보다 컸다.
187cm.
근데 가슴은 조금 아담한 편인데, 몸의 전체적 밸런스는 적절하다고 할까.
덕분에 그 몸으로 투피스 정장의 오피스 걸 차림새이니 이건 이것대로 탐스럽… 아니아니, 그럴 눈으로 보면 좀 그렇겠지?
다만 가슴이 아담(?)한 여파인지, 골반의 형태가 엄청… 이건 정말 탐스럽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생전 처음, 복부 아래를 보며 군침을 삼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충분히 옷에 의해 감춰져 있다곤 하나, 그게 또… 으음!
이러면 뒤태 보면 완전 뒤집어지겠네. 아무래도 주의해야겠다.
“선~배. 눈이 음란한데요?”
“그럴 리가.”
일전에 태민의 아바타가 맛있을 거 같다며 군침을 삼킨, 요망한 여 후배, 공수영이 태민의 옆자리에 착석한 상황.
그나저나 후배, 저쪽 세계에서 릴리에나라 불리는 저 엄친딸로 보이는 여성의 이름은 하궁민.
슬쩍 눈이 마주쳤음에도 예의 냉정한 듯, 노곤한 듯 가라앉은 눈 표정은 여전했다.
표정이 저리 무덤덤하니 일하며 감정 표현이 팍팍 드러나면 대하는 입장에선 당황할 수밖에.
그 외에도 새로 들어온 이들을 소개받으며 한 차례씩 인사를 나누고, 심지어 초창기 멤버라 생각했던 철영 선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 둘을 추가로 발견하니 이건 이것대로 신기했다.
본래는 이쪽 부서가 아니라는데, 이쪽 부서 일도 겸했지만, 부서에 속해는 있는데 속하진 않았다는… 왜 그리 어렵게 설명하나 의아할 법한 설명을 윤 팀장님이 직접 언급해 의구심을 해소는 시켜주었지만… 그렇다고 의혹이 모조리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걸 꼬치꼬치 캐물을 이유는 없다만.
“모두들 일정을 고려해 이렇게 낸 건데,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 치면 한두 해는 더 지나야 할 거라 봅니다. 오늘은 편하게 얼굴 익히고, 회포 풀 겸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편하게들 보냈으면 해요. 배 채운 다음에도 각자 취향에 맞게 일정들 마련해 뒀으니, 나중에 얼굴 보고 누구며 무슨 일하는지 정도는 바로 나올 정도로 숙지해두세요. 아, 이건 명령이니까 귀찮다고 발 빼지 말고요.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이런 자리를 만나보겠어요?”
덕분에 배 채우고 이후 술자리며 노래방에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태민은 제법 잘 어울렸다.
본사 취직 전, 그 어수룩했던 그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에드릭 일 때는 인싸라 쳐도 안태민으로 복귀한 뒤의 그는 훨씬 더 평범하고 무난한 태도를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릴리에나, 아니, 후배인 하궁민과 합석하게 되니 평소와 달리 시선의 상하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작네요.”
“…모델이나 되지 뭔 쓸데없이 사원이 되셨담.”
“칭찬인 거 아는데, 그거 자칫 잘못하면 너 외모만 잘났다고 비꼬는 식으로 들을 수도 있거든요?”
“그건 너 같은 부정적인 녀석만 그런 거고. 피해의식 쩔어 있는 것도 아닌데, 예쁘단 소리를 왜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냐?”
“자주 듣는 소리니까요.”
아, 네. 그러시군요.
특유의 오만함은 역시 아바타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본질이었던 모양이다.
잘난 놈들은, 자기 장점을 칭찬해주면 오히려 짜증을 표출한다더라.
왜? 자주 듣는다고.
근데 칭찬을 그런 식으로 수용하면, 남는 건 불평에 매도, 비평 비판밖에 더 있을까.
그러기에 이것들은 프라이드가 자체적으로 높아진다.
여기서 노력하며 자기 관리를 하는 부류와 아닌 부류가 나오는데, 전자는 사람들의 경외를 산다면, 후자는 멸시와 모멸을 사게 된다.
뭐 하는 것도 없이 대접만 받으려는 진상 중에 상 진상이 될 확률이 높으니.
영화며 드라마, 소설이며 만화에서 흔히 가진 거 없이 직위만 높거나 핏줄만 그럴싸한 시건방진 도련님, 아가씨가 그런 부류.
결국 본인 능력들이 없다면 아부꾼, 아첨꾼을 곁에 두고 귀를 가려댈 텐데, 이런 건 결국 실전에 당도하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을 거고, 이로 인해 자기 보호, 심리적 방어 차원에서 모든 걸 배척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속된 말로 정신 승리의 대가가 되어 개진상으로 테크 트리 타듯 진화하게 되는 거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똑똑하고 재기 넘치는 릴리에나… 아니, 저 후배는 집안이 무난했단다. 그러니 감투를 쓰거나 호가호위하듯 잘난 척할 필요도 없었고, 결국 남는 건 냉엄한 현실이기에 특별해지려면 본인이 부단히 노력해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기에, 그나마 겸손까진 아니어도 자제심이 갖추어진 케이스랄까.
이세계에서 귀족이며 진상들의 예를 너무나도 잘 아는 태민이기에, 저런 부류의 인간을 분석하고 유추하는 건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예컨대 태생적으로 오만하다.
왜? 잘났으니까.
부잣집이나 명사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오만이 하늘을 찔러댔겠지.
그러다 큰코다치는 거고.
“어머어머~! 이게 누구셔?”
한숨 좀 돌리나 싶더니, 왜들 엉겨오지 못해 안 달이람?
“수영 씨라 하셨죠?”
“후배잖아요! 편하게 대하세요! 언니!”
역시나.
“…….”
릴리에나 일 때도 그녀는 나름 사교성 좋은 태도를 고수하나, 그건 철저히 계산되고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그러나 수영이 녀석은 그런 게 없다.
눈 마주치면 눈인사가 패시브처럼 튀어나오고, 자연스럽게 스킨십으로 연결된다.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궁민의 팔에 자기 양팔을 끼워 넣고 있지 않은가.
…저런 넉살은 참 부럽단 말이지.
그리고 궁민이 녀석도 비슷했는지 씁쓸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여기처럼 윗분 눈치 안 보고 근무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렇다고 기어오르거나 하극상을 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거다.
알든 모르든 그 모든 게 평가로 적용된다는 걸, 최소 1년 이상 있어 보면 모를 수가 없게 된다.
겪어보고 만나본 이들 가운데 자신들도 모르게 평가 설문이 진행된다.
문제는 이게 대체 어느 시점에 이루어지 본인이며 주변인조차 모른다는 건데, 이러한 평가 내용이 연말 정상 마냥 말년에 고스란히 본인에게 전달된다는 점.
물론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고 널 이리 평했다 하고 대놓고 적어놓진 않지만 말이다.
태민이야 본사 쪽 인물들하고 비교적 많이 안 엮여있기에 그쪽 내용 분량이 적은 편이지만, 백 단위 이상의 본사 직원과 엮이는 이들은 책 한 권 분량을 전달받는단다.
거기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어 잘한 점은 유지하며 발전시키고 그 외에 것들은 고치고 수정,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이 적혀 있는 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훗날 배치 및 승진에도 영향을 준다는 건데.
“오히려 눈치 주는 게 더 좋지 않고?”
적어도 넘는 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려주는 게 어딘가.
물론.
“알아서 잘하는데 쓸데없이 참견 걸어오면 짜증 나잖아요?”
…생각해보니 수영이 녀석도 나 잘났습니다, 파였지.
그런 의미에서 궁민하고도 아주 찰떡궁합일지도.
“그건 맞는 말이지.”
거봐라.
곧장 의기투합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둘.
형식적 소개에 앞서 구체적 소개가 이어지니, 태민은 적당히 둘을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같은 부서라 해도 영역이 다르다 보니 묘하게 대화의 합이 맞지 않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럴 경우엔 간단히 안면을 익히는 정도에 그쳤다.
그조차도 상당한 심력 소모를 필요로 했지만.
“인마, 안 즐기고 뭐 해?”
“…즐길 구석이 있긴 하고요?”
“아까는 잘만 놀더니, 다 연기였냐?”
“…그냥 분위기에 취한 거죠.”
사실상 선배라 한다면 역시 민철영 외엔 여전히 어색하다고 할까.
어쨌든 태민도 이곳에 자리 잡은 뒤로 꽤 시일이 흐른 형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 무작정 나대거나 자기 과신에 빠져 앞뒤 없는 행동을 취할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았다.
패기를 부리는 건 좋지만 그것이 시건방진 태도로 연결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니.
“인사는 한바탕 다 나눈 거 같은데, 인상 깊은 녀석은 있고?”
“…제가 누굴 판단하고 그럴 처지인가요?”
“미리 알려주면, 너 이번에는 꽤 머리 아픈 곳에 끌려갈 거다.”
“……?”
머리 아픈 곳?
“누구들은 행운이니 뭐니 하겠지만, 네 성향으론 곧장 피곤하다며 학을 뗄 것도 같고….”
“그렇게 말하니 더 불안한데요. 대체 어디로 가는 건데요?”
“그건 내가 발설할 문제는 아니지. 흐흐!”
“…….”
말을 마시던가.
“근데 너만 팀장님하고 따로 독대 안 했다며?”
“독대?”
“원래 팀장님이 아랫사람들 잘 챙기기로 유명하잖냐? 거기다 넌 이번에 가게 될 곳도 있고 하니… 아, 그래서 마지막 순번으로 미뤄둔 건가?”
철영의 말에 반쯤 팔짱을 낀 채 고민하려던 찰나.
“선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