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83)화 (183/454)



〈 183화 〉46. 신수하고 썸 타본 적 있나?(2)

불바위 거북 등껍질 위에 눌러앉은 에드릭과 코넬, 그리고 그 옆을 발로 걸어 동행하는 바헬루스.


본래면 똑같이 등껍질 위에 마련된 좌석에 눌러앉게  다음, 코넬이 이것저것 시키려 드는 걸 에드릭이 간신히 만류한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된 거였지, 만약 에드릭이 호색한이며 시도 때도 없이 떡 치는데 눈이 돌아간 부류였다면, 아마 불바위 거북 위에서 코넬의 관람을 반찬 삼아 한창 열을 올리고 있진 않았을까.

코넬로선 완전한 복종, 그에 준하는 정신적 굴종을 강요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바헬루스의 자존심이며 자존감을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에드릭 밑에 깔려 버둥거리게 만들 속셈이었는데, 에드릭이 그런 식으로 상대의 존엄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행위를 이어가고 싶진 않았기에, 거절을 표명했기에 지금 같은 구도로 흘러간 거였는데….




“짐승들의 세계에선 확실하게 서열이며 우위를 정해두지 않으면, 언제든 물어뜯으려 드는데, 네  빌어먹을 성적 취향 좀 접어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냐? 즐기려는 목적 말고도 확실하게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복종의 의미로 상대를 범하고,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잖냐?”
“상대가 적당히 미운털 박혀 혼내주려는 명목이라면… 한두 번쯤 생각해보겠지만, 그게 아니면 글쎄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네요.”
“왜? 외형이 마음에 안 드나?”




전~혀요? 오히려 개꿀입니다만?
그러나 에드릭은 구태여 그걸 티내지 않고,  차례 목을 가다듬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욕망을 위해서,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 뭐 이렇게 즐기고 자시고, 그런 목적으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요? 애초에 저는 저도 즐기며 상대도 즐기고, 그러면서 그 이상의 뭔가를 맛 보는데 의의가 있는 거지, 단순히 정복욕이나 권위 욕을 채우기 위해서 그러는 건… 그다지.”
“…네 녀석이 아직 어려서 그런 거다. 무릇 많은 정복자며 왕, 침략자며 힘 있는 것들은 늘 타인을 짓밟으며 그들의 존엄과 자존심을 무너뜨려 그들이 절규하며 고통에 눈물짓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곤 했지. 그것들의 통곡이야말로 귀를 즐겁게하는 훌륭한 반주며, 그것들의 눈물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없는, 지고의 명주이거늘.”
“…이런 이야기가 있더랍니다.”
“뭐냐?”



2, 3초 가량 생각을 정리한 에드릭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고(측은지심: 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또한 사람 새끼가 아니며(수오지심: 羞惡之心), 배려와 양보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또한 사람 새끼가 아니며(사양지심: 辭讓之心), 근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그것도 물론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합니다.(시비지심: 是非之心)”
코넬이 시큰둥한 눈으로 대꾸했다.
“…누가 그러더냐?”
“제가 아는 어느 유명한 선인께서 그러시답니다.”




이건 맹자가 고자와 인간의 선함을 논할 때, 했던 이야기의 일부인데, 이걸 축약하면 즉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된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이것들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럼 그건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거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바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거지, 이걸 빼고 맹자가 막연히 인간은 무조건 선한 존재다! 하고 가르치거나 이해하면 그 본연의 뜻이 완전히 곡해된다 봐도 무방할 거다.


…중학생 때였나? 그때 어느 과목인지는 까먹었는데, 당시 한 페이지 분량으로 교과서에선 그냥 누군 성선설, 누군 성악설, 누군 성무선악설 주장했다는 식으로 적혔던 걸 달달 외웠던 거 같은데, 말 그대로 단어  간단 요약만 쓰여진 걸 외웠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 7, 8년 뒤에 이에 대한 걸 접하고서야 조금 제대로 이해를 했다고 할까.
…맞는지 틀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쪽이 느낀 바로는 그렇다는 거다.




“그럼 넌 저것한테 측은함을 느낀 거냐? 아니면 그거 뭐냐? 배려를 한 거고?”
“아뇨.”
“그럼 뭔데?”
“제 취향하곤 안 맞아서요.”

애초에.


“전 싫다고 하는 사람하고 굳이 하고 싶지 않거든요? 단순히 앙탈이나 싫은 척, 부끄러운 척하는 거하고, 정말로 싫어서 치를 떠는 건… 차원이 틀리잖습니까?”
“…그게 좋은 건데.”
“애초에 힘으로 상대를 짓밟는 걸로는 얻을 게 없어서 제 곁에서  지켜보겠다고 하신 거잖아요? 수틀리는 대로 하고 싶으면 진작 그렇게 하셨어도 되셨을 텐데, 그래서 지금까지 저하고 약속하신 거 지키셔서 손해 보신  있으세요?”
“흠흠….”



마음만 먹으면 존귀하던 비천하던 누구 할  없이,  낮음을 따지지 않고 자기 멋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고독했고, 지루했으며, 세상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다며 게으름을 피워대던 존재였다.

그녀와 그럭저럭 비빌 법한 존재들은 애초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 이해며 공감의 여지 없이 서로를 멸하고자 하는 관계였고, 그나마 이해가 될까 말까 한 것들은 더더욱 그녀의 본질을 세세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저 공포와 경외로서 그를 대할 뿐.


오죽하면 적대적인 것들이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인상을 받았겠나. 용케 나한테 박박 대들며 들이대려 하다니! 이 얼마나… 깜찍한 존재인가!


심지어 그녀가 1000년 전에, 살아온 생을 통틀어 거의 유일무이하게 이해자를 만난 시초도, 최초엔 자신을 세상에서 없애겠다고 달려들던 인간이었단다.


애초에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기이했는데, 심지어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고, 심지어 그럴 뻔도 했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거기다 너무 험난한 세월을 보낸 터라 그자는 반백 년도   버티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식어갔고, 그를 대신할 존재는  이전도, 그 이후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여태 못 느꼈던 고독을 그때서야 가장 극렬하게, 극심하게 헤아린 그녀는 그 뒤로 수백 년을 틀어박혀 동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웃기는 이야기지만 모두가 말하는 그 사랑이란 걸,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하고자 세상을 떠돌았다고 하던가?


그러다가 여차여차 인간과 엮이고 그렇게 흘러들다가 에드릭하고도 엮인 셈인데, 그나마 에드릭의 행실이며 태도며, 이를 대하는 자세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것과 가장 유사한 듯해서, 지켜보려는 명목도 있고….


“공략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내가 자신에게 빠져 아양을 떠는  퍽 좋았다.
계집이 자신에게 푹 빠져 앙탈을 부리는 것도 물론 좋았다.

표면적인 것도 썩 나쁘지 않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매달릴 때 느끼는 그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곤 했다.

애초에 코넬의 형상과, 그녀가 실제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을 수 가지로, 남녀 구분이 따로 없다시피 했다.

때로는 평범한 외모로, 때로는 절세 미남, 미녀로….
그리고 코넬로서의 모습은, 일종에 쉬어가는 모습이랄까.
거기다 코넬로서의 그녀는, 의외로 알그리타 대륙 내에서도 꽤 유서가 깊다는 모양이다.


물론 현재의 인간이며 엘프들은, 그녀가 어디에 뿌리가 있는 엘프인지는 전혀 짐작조차 못 하는 듯 싶었지만.



“그래도 가끔  뭐냐? 별미라는 게 있지 않냐?”
“…그럼 님이 그러시면 되잖습니까?”

주변 사람도 얼마 없고, 어차피 본색을 다 아는 이들 투성이다 보니, 코넬도 말을 놓고, 에드릭도 자연스레 말을 높이고는 있지만….


“아니지, 네가 범해야 의미가 있는 거잖냐? 애초에 저것들을 부리려면 확실하게 우열을 정해둬야 할  아니냐?”
“코넬 님의 영향력을 앞세워 타인을 핍박하고 괴롭히곤 싶진 않아서요.”
“까다로운 녀석일세. 내버려 두면 머릿속으로 음흉한 꿍꿍이를 품는 건 짐승이며 인간, 지성체로선 당연한 현상이다. 만만하면 들이대고, 자기를 억압하려는 이를 무찌르려는 건 본능에 가까우니, 확실하게 자기 위치를 일러주는 게 좋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음, 그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슬쩍 곁눈질로 바헬루스를 본 에드릭은.



“저는 누구 위에 올라타고 싶진 않아서요. 권위라던가, 힘이라던가 하는 걸로는 더더욱.”
“…물러 터졌어. 그런 자세로 세상에 임하다간 너도 금세 나가 떨어지겠구나.”
“애초에  높이 올라갈 생각도, 누구들을 경쟁으로 무너뜨리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요. 물론 전쟁이 일어난다, 분쟁이며 투쟁이 일어나는 거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는 없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이지,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아닌 한, 제가 그걸 먼저 일으켜서 난리를 치고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거든요.”



권력욕이니, 정복욕이니… 출세욕이니… 다 부질없다.
우리 같은 워라밸, 힐링, 즐겜러들은… 즐거우면 장땡 아니겠나.


타인을 핍박하고, 괴롭혀야만 즐길 수 있는 개자식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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