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41. 어쩌다 보니 유명세가...
다시 생각해보면 이불킥 할 만한 전개였지만, 원래 인간 군상이 밀집할수록 이성보단 감성, 비합리적인 무언가가 잘 통하는 법 아니겠나.
에드릭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점을 노려 여러 공작들을 펼친 건데, 이에 대해 여러 대비책을 강구해 놓아 무난히 넘어가는 듯 했지만, 집요한 것들이 한두 번 시도로 모자라 아예 작정하고 들이댄 경우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릴리에나 측에서 알아서 대처를 잘 취한 끝에 마찬가지로 잘 넘어가는 듯 싶었지만….
“틈을 보이면 물어댈 줄 알았는데, 이건 좀 지나쳤네요.”
“짐작 못 한 것도 아니면서 괜한 소리는.”
외부 일 처리로 바쁜 릴리에나는 둘째치고, 코넬과 회관 내부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있자니 맥 빠진 대답이 돌아온다.
“이곳 원주민들도 여러 사정이 있으니까. 네 쪽이 앞서 신수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못마땅했던 거겠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힘이며 권한을 지녔다는 건, 작은 움직임만으로 많은 것들을 긴장케 하기 마련. 그 일환이라 보면 되지 않나?”
“그야, 그렇네요.”
생각 이상으로, 알헤디나의 가호를 받는다는 입장이 어마어마했나 보다.
“그보다… 몸에서 아주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크으으!”
“…속성상 문제인가요?”
헤일린도 코넬과 이 정도 거리감으로 대강 이야기를 나누고, 만나서 악수를 하는 정도 만으로도 악취가 진동한다며 난리였는데.
“뱀 주제에 신성력이라니. 역겹기 그지없구나!”
때문에 본래라면 그다지 노출 안 하려 하는데도, 알헤디나를 보고 오거나, 그쪽 신전에 들린 뒤엔 아주 경기를 내곤 한다.
특유의 붉은 눈을 감출 여지도 없이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말투며 분위기 자체도 특유의 음습하면서도 어딘가 색정적인, 그럼에도 찌를 듯한 매서움을 동반하는….
“그래도 괜한 짓을 벌일 정도가 된 걸 보니, 한수는 얻은 거로구나?”
“…본의 아니게요.”
“제아무리 말발이 뛰어나고, 외모가 걸출한들, 역시 실질적인 힘만큼 막강한 건 없지. 끝을 모르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니.”
“…끝을 모르는 힘이라.”
괜스레 트루 워치프(?)가 생각나는데, 기분 탓이려나.
“그런 힘을 가지신 분이 왜 이러고 사세요?”
“이게 어때서?”
오히려 반문하는 코넬.
“애초에 귀찮게 뭘 지배하고 말고 하냐. 애송이도 아니고.”
“그거에 목숨 건 이들 많잖아요? 영토 확장, 가문의 위세며 성세를 넓히려 든다던가?”
“미개한 것들이 가진 게 미흡하니 외부로 드러내려는 거에 집착하는데, 그건 속이 텅 비어서 그런 거다. 우리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면, 땅덩어리나 직위며 성세 등에 집착을 않는 법이지. 모자란 것들이나 그런 거다.”
“……흐음.”
단순히 하는 말치고는,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그도 그럴게, 그녀가 보통 존재가 아니다 보니….
“거기다 유희라는 건 본래, 압도적인 힘을 지닌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힘을 숨겨 스릴을 만끽하고, 온갖 체험을 통해 신선한 기분을 만끽하는데 의의가 있지 않더냐?”
“…그도 그렇네요.”
공포 영화를 즐긴다 해서 정말 공포 영화 속 체험을 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듯.
전기톱 든 괴인 보며 꺄아아악! 하면서도 굳이 그걸 보는 것과, 정말로 전기톱 왱왱 갈려대는 게 코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가면 쓴 괴한이 문답무용으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공포는, 전혀 별개의 요소니.
“아무튼 이제는 조금 자각이 되나? 네 위치가 여기서 어느 정도 권위를 지녔는지?”
“…그게 참 희한한 점이죠.”
“지도자며 위선이 확고해야 아래가 합심하여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거다. 위선이 비면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각자 노리는 바, 추구하는 바가 다른 만큼 자기들 유리하고 좋을 대로 하고 싶어하지, 양보며 배려, 헌신 따위는 의미를 잃게 되는 바. 그걸 조율하여 공공의 이익, 만족, 화합을 이끌어 궁극적인 최대 이익을 창출해내는 게 바로 지도자의 역이지.”
“…별로 그렇게까지 나대고 싶진 않은데요.”
“여기선 그래야지. 이곳은 무법지대, 야만의 생기가 문명을 이룩한 영역 아니더냐? 혼란을 잠식하는 건 실질적인 이득 요소와 타인을 굴복 시킬 힘이다. 합리며 이성은 그 다음 이야기지.”
“끄응….”
“이제 힘이 생겼으니, 슬슬 세를 늘려 가도록 해라. 그렇게 정리하고 일단락 맺은 다음, 알그리타로 돌아가던가, 여기서 왕으로 군림하던가.”
“…고생길이 훤하네요.”
“그걸 즐길 수 있어야지. 사내라면 한 번쯤 세상을 호령해보고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코넬을 보며 에드릭은 침음성을 내비쳤다.
아니, 별로 호령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즐기다 가는 게 최고 아닌가?
“또 그 표정. 능청을 떠는 건지, 연기하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구나.”
“…능청이나 연기나 똑같은 말이잖아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순 없다. 모르거나, 알고서 손에 넣을 수 없다며 체념했거나. 둘 중 하나뿐이지.”
“왜죠?”
“육식 짐승이 고기를 끊고 이슬만 먹고 산다는 걸 믿고 말지. 인간이 권력에 초탈할 수 있음을 난 믿을 수 없다.”
“…초탈하고 자시고 그냥 안전 제일인데요. 기왕이면 그 와중에 즐기고 뭐고 하려는 거고요.”
애초에 이미 즐길 수 있는데 뭘 거기서 또 권력이니 뭐니….
“아직 어리니 잘 모르나 보군.”
한숨짓는 코넬을 향해 에드릭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어려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낫죠.
“아무튼 여러 세력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개선하고 구축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 그러한 관계는 네 세력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테니.”
“…아니, 거기까지 깊이 생각한 건 아닌데요.”
“힘은 본디 세력을 끌어당기기 마련. 네가 원치 않더라도, 앞으로 네게 무수한 것들이 주어질 테다. 당연… 그걸 빼앗고 송두리째 무너뜨리기 위한 움직임도 격화되겠지만.”
“으아….”
진짜 민폐잖아. 얌전히 좀 지나가면 안 되냐?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릭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상황을 계속해서 굴러갔다.
광산 마을이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기 무섭게 댐 공사 완성이 눈앞에 이르며, 그로 인해 해안 인근 말고 내륙에 도시 개발 계획도 차차 본격적인 진행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는데, 에드릭도 당연 그곳에 파견되듯 불려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광산 마을은 이미 경력이 있는 릴리에나에게 일임시키게 됐는데… 이유는 에드릭이 이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능력이 생겼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둘째는….
“알헤디나의 수호자이신데, 당연 저희가 모셔야지요!”
…여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뱀 종족들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 호위를 자처하고 나선 거였다.
수가 물론 많진 않았지만, 황무지 땅에 수로가 뚫리다 보니 그들 종족의 활동이 원활해진 까닭도 있었는데, 기이하지만 이들 덕분에 관개용 수로가 원활하게 뚫려 공사 진척도를 늘림은 물론, 보다 빠르게 농사일까지 이어갈 수 있어 도시 형성에 이바지한 터라, 이 공은 온전히 에드릭의 것으로 넘겨졌다.
의외지만 댐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알헤디나의 가호를 받아 물에 직접적 영향을 받으며,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에드릭 쪽이었는데,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댐 건설을 밀어붙인 게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니냐는, 서국 회사 내부의 불만도 잇따랐지만 에드릭이 자신의 도시뿐 아니라 다른 곳도 일부 도움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불만이 쏙 들어간 건 웃지 못할 헤프닝.
거기다 농사일에 직접적 영향을 주다시피 하는 메르밀다, 즉, 알헤디나의 후예라 자처하는 뱀 수인 종족의 도움을 받느냐 마냐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는 이상, 에드릭에게 밉보이기도 썩 어려워 보였다.
‘아직 무역로가 확실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몰리면 자급자족에 급급하는 수밖에.’
1차 산업은 기본 중에 기본.
산업 혁명이 오더라도 중요할 판에, 거의 문명 초기인데 이를 무시할 정도로 이곳에 파견된 인재들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케이스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메르밀다 족의 개입이 이런 면에서 엄청 주도면밀하다고 할까, 시기가 너무 적절하게 느껴진 덕에 에드릭도 본의 아니게 경계를 해야만 했다.
‘머리가 좋아. 상당히.’
단순히 댐이 트인 뒤 왔다고 하기엔, 너무 적절했다.
문제는 이런 공을 에드릭에게 돌린 게 당장은 좋으나, 다른 임원들에게 경계를 대폭 사게 만들었다는 점.
이건 한편으로 그들에게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형성했다 봐도 무방한 사태인 터라, 에드릭은 부지런히 다른 종족들하고의 교우 관계에도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 이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불행 중 다행인 건 시스터 카멜린이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던 터라,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 모두가 에드릭에게 무한에 가까운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
그 외에도 광산 마을 출신하며, 에드릭을 통해 이익을 봤던 이들은, 그의 그런 행보와 선전에 대대적인 환희를 보이고 있던 터였다.
물론 광산 마을을 여전히 잘 관리해가는 릴리에나의 덕도 무시할 순 없었지만.
‘너무 남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게 문제인데.’
단순히 헤픈 수준을 떠나 요즘은 아주 맛이 단단히 들렸다는데, 이러다 미인계(?)에 혹해 괴상한 실수라도 저지르는 게 아닌가, 괜히 걱정된단 말이지.
“저, 에드 님?”
“왜요?”
사람이 몸을 누이기엔 뭔가 형태가 다른 침실.
그리고 거기엔 켄타우로스 족의 무리엘이 평소와는 다른 얇은 복장으로 책장을 펼쳐대는 에드릭을 보며 뭔가 조급한 듯한 시선을 던져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