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47)화 (147/454)



〈 147화 〉36. 즐기시게 놔두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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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익!”


얼마나 됐다고 벌써 키가 한 뼘이나 컸다.
그래도 여전히 눈앞의 사내보단 작다.


외모는 준수한 주제 묘하게 연애 같은 거엔 영 소질이 없는 미청년, 아피젠.
그는 지금, 멜레니아와 어쩌다 한 침대에 몰린 날 보며 부글대는 용암처럼 날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봐대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니까요! 술! 술 때문에!”
“끄응! 머리 아프니 소리치지  거라.”


인과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이쪽도 혼란한 와중이었기에, 가만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현재 상황.


바지는 그대로 입혀져 있지만, 상의는 벗겨져 있었고, 거기서 속옷 차림의 멜레니아와 같은 침대에 달라붙어  자고 있었다는 점.


그걸 우리 충의지사(…) 아피젠 님께옵서 아침 기상 겸 문안 인사(진짜 이렇게 말했다.)를 드릴 겸 방문했다 이 끔찍한 참상(참상까지야….)을 목격하곤 눈이 돌아가 착용하고 있던 검을 꺼내 당장이라도  심장에 찔러 넣겠다는 양 벼르고 있는 게 현재 상황.


그보다… 잠든 와중에 누가 기웃거리면 사람 죽이는 거 아니셨습니까, 멜레니아 님?


‘사실이어도 용케 목이 붙어 있는 건데….’


지어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은 썩 좋다 하긴 애매했다.
무엇보다 여기, 내 방도 아니고.
그게 지금 이 사단을 만든 주요 원인인데….



“이, 이렇게 된 이상 널 죽이고 멜레니아 님을 지키지 못한 죗값을 치르고자!  또한 죽도록 하겠다! 그러니 순순히 목을! 심장을 내놓아라!”
“…하하.”



단순 코미디라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검의 예기는 진짜배기다. 살짝만 닿아도 피부가 갈라지고 끊어져 피가 줄줄….


“그 흉흉한 거 집어넣지 못할까?”
“하, 하지만!”
“아무  없었다고 하지 않느냐?”
“크윽!”


아무 일 없더라도 한 침대에 있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나 보다.
아무튼 필름이 끊겨 뭐가 뭔지 제대로 분간이 가질 않은 것도 문제.


그러니까….

‘어제  어쩌다가 이 지경이  거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선….



‘우선이고 나발이고!’


기억 진짜  나는데!
정신을 좀 차린 다음에 생각을 해보던가 말던가….

아피젠이 대뜸 멜레니아에게 물을 건네는  보니 괜스레 목이 탔다.




“상황이 어찌  일인지는, 정신을 수습한 다음, 꼼꼼히 따져보자꾸나.”
“예….”

억울한 일 안 겪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만약 이쪽이 먼저 흑심 품고 덤벼든 거라면… 끄응.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 장담은 금물.
애초에 술 취해 필름 끊긴 상태에서 그런  장담할 만큼, 이쪽도 어리석진 않았다.

우선 주변 인물들을 불러 간단한 탐문.

“아, 어제 멜레니아 님하고 에드릭  두 분이 나란히 방에 들어가셨지요?”
“뭔가 이상한 점은?”
“…딱히요? 지나치실 때  냄새가 났다는 거 외에는 걸음도 비교적 멀쩡하셨는 걸요?”

…필름 끊긴 인간이 걸음걸이가 멀쩡?
분명 여기 안에 들어온 뒤론 딱히 추가로 술을 퍼마신 정황은 발견 안 되는데.

‘그랬었는데 숨겼다거나, 저 사용인이 거짓을 말하는 건 또 아닐 테고.’



그런 점도 가정해서 고려해봐도… 음… 뭔가  뒤숭숭한데. 아니, 껄끄럽다? 번거롭다?


아무튼 여러 정황을 살펴본 끝에.
결론은 오리무중.

…물론 확인한다 치면 더한 방식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면 그만 아닌가?”
“어억?! 멜레니아 님!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마을 회관으로 돌아온 나는 앞서 출근해 있는 릴리에나의 눈총을 사야만 했다.



“그새를 못 참고 건드리신 겁니까?”
“뭘?”
“멜레니아 님 말입니다.”
“…소문이 벌써 그렇게 돌았어?”

이건 조금 심상치 않은데.
아니지, 그렇게 과장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나?




“틈을 보이지 말라 그리 일렀는데 말이죠.”

한쪽에 자리 잡은 코넬이 혀를 크게 차며 끼어들었다.

“이걸로  가지는 분명해졌다 보면 되겠군요.”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다?”
“소문이 퍼진 이상, 이제 살을 더해갈 거고, 점점 부풀려지겠죠. 얼마 후면 아이는 언제 낳느냐는 소리까지 나오겠군요. 결혼 날짜며….”
“끙!”

저게 단순 지레짐작, 과장된 예측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여러 측면이 있는데, 멜레니아와 내가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들면 좋아할 곳, 싫어할 곳들이 워낙 극명한지라.

“어쩔 셈인가요?”

릴리에나가 물었다.



“흐음, 뭐 경과를 보고… 써 먹어보죠.”
“써먹어?”
“꼭 손해인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술김에 갔다지만….


‘앞뒤 없이 거기로 간 건 아닐 테고.’



기억이  나서 그렇지, 애초에 거기까지 갔다면 뭔가 있다는 거다.
애초에 밤에, 그것도 술 마시고 여자가 머무는 곳에 들어섰다?
…이건 흑심이든 꿍꿍이든 뭐가 있다 해도 솔직히 문제될 게 없는 부분이었다.

‘혹은 정치적 야합?’


그렇게 이용해 먹고자 그리 위장했을지도.
정확하게 에드릭 자신보단 멜레니아 그녀 쪽이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멜레니아 님이 떠날 수도 있겠네요.”
“왜요? 언질이라도 들었어요?”
“아니, 그냥 그럴  같아서. 뭐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그녀 나름의 입장이란 게 있으니 여기 오래 머물 순 없잖아?”
“뜬금없이 말하니 그런 거죠.”

코넬이나 릴리에나나 의아하긴 매한가지.


“흐음….”



엎질러진 물엔 신경 끄고, 이걸 어떻게 눈덩이로 굴려 눈사태를 일으킬 지나 고민해보자.


“어쩌면 그녀 쪽이 일부러 사장님을 붙잡고자 수작을 부린 걸지도요?”
“응?”



릴리에나가 불쑥 그런 의견을 끄집어냈다.

“근거는?”
“사장님 뒷배가 여전히… 대단하다 착각들 하고 있을 테니까요.”




뒷배라….

“대체로 어느 왕가의 후예, 정통성 있는 후예인데 제왕학 겸 세상 물정 파악하려 싸돌아다닌다거나… 사생아지만 유력 후보라던가… 다양한 속설들이 돌고 있잖습니까?”
“여기서도?”
“여긴 덜하지만 슬슬 그런 소문들을 다들 한 두 번씩은 들어볼 때쯤은 됐겠죠.”

일개 상인 꼬맹이가 백화점이라는 터무니없는 곳의 대표이자 사장이  것도 의아한 판인데… 뜬금없이 신대륙의 유력 회사의 핵심 임원으로 활동한다? 단순 운이 좋다거나 모험심이 뛰어나다거나 머리가 비상해서 여기까지 왔다 하기엔 조금 말이  되지?



“그러니 붙잡아 아군으로 끌어 들인다?”
“근본이 밝혀졌을 때, 써먹을 법하다 싶으면 끌어들여서 멜레니아 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지요. 애초에 여기까지 왔다는 건, 단순 이곳에서 공무나 사업적 목적으로 왔다기보다는… 빠져나갈 굴을 파놓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서서요.”
“굴이라….”




아르세이유에서 제아무리 유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더라도, 밀리엄 대공의 뒤를 잇지 못하면 그녀는 금세 매몰당하게 될 거다.


인간이 대표인 나라에서 하프 엘프인 그녀의 입지가 높을 수만은 없을 테니.
그렇다고 아르세이유만 독립한다? 별개의 나라 겸 영역으로 선포한다? 외교를 제아무리 능수능란하게 취한다 해도… 이건 너무 리스크가 크지.


‘그녀 입장에선 도시를 유지하는 것조차 고달플 거고.’

애초에 아르세이유가 평생 그녀의 군림을 방관해줄 거라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거긴 투표로 임원이며 대표를, 의원직을 선출하는 시스템이니.

“신대륙에 와서 왕 혹은 그에 준하는 입지를 다진다. 지지층 및 핵심 세력을 끌고 터를 다지기엔 더할 나위 없을 거라 보는데요?”
“그리고 금광을 발견했고, 서국 회사의 핵심 임원이자 정체 모를 배후를 등 떠안은 채 활약하는, 젊고 잘 생기고 떡도 잘 치는 내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염치도 없으시네.”


코넬이 헛웃음을 토하며 이죽댔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자고 하는 소리잖아?”
“네네, 사장님 좆 크세요.”
“…….”
“…….”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렸다.

“뭐 그녀를 곁에 두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예요.”
“이유는?”
“선…… 사장님이 공국을 먹어 치울 여지가 생기니까요.”
“야야, 그건 너무 나갔는데.”
“과연 그럴까요?”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만?


릴리에나의 시선은… 본사가 그리 정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있다는 양 눈치를 줬다.


“그야 그렇다지만….”
“흐음!”




코넬이 있는 마당에 그런 낌새를 굳이?


‘아닌가?’


코넬이 있으니까 일부러?
멜레니아를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귀찮아 하지만, 사실 코넬은 멜레니아와 상당히 친한 편에 속한다.

…어지간히 친한 게 아니라, 거의 애인처럼 끼고 다니니.

“근데 코넬하고 멜레니아 님은 그렇고 그런 사이?”
“…누굴 변태 성욕자로 몰고 자빠졌어.”
“인간 중엔 쓸쓸해서 여성들끼리 물고 빠는 경우가 흔하지 않나요?”




릴리에나의 말에.



“추잡하기는.”

코넬이 대꾸인지 뇌까림인지 모를 소리를 입 밖에 내며 코웃음 쳤다.


“정확하겐 이쪽에겐 그럴 생각이 없지. 저쪽이 그걸 바라는 거뿐이고.”
“…즉, 저는 정상인데 저쪽이 비정상?”
“바로 맞췄다!”

아, 네. 그러시군요.



“결국 한 침대에서 그렇고 그런….”
“안 했으니 다시 한  입을 놀려봐! 아주 그냥!”


어느새 말까지 놓고 있는 걸 보니, 상당히 빡쳤나 보다.
음, 멜레니아 정도면 예쁘고 아름답고… 뭐가 문제지? 성격? 성격도 터프해서 마음에 드는데. 잘 리드해줄  같아서.


…뭐, 정치적 문제, 권력이나 이권이 개입하면… 상당히 피곤하고 골치 아파질 거 같았지만.


‘귀족들 종특이야 하여간.’

그냥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면  됩니까?  그거 가지고 싸워대시는지 원….

“그렇게 됐으니 일단 손대시죠?”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데.”
“서로 윈윈하라는 겁니다. 이용해 먹으라는 거죠. 진짜가 아니어도, 그것만으로 이용해 먹을 건수는 여럿 되잖아요?”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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