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94)화 (94/454)



〈 94화 〉26. 그녀는 한 마리의 야생마.

사정 때문에 상황이 미뤄졌다 뿐, 세상은 정상적으로 굴러갔다.

뮬리아가 만든 약술은 확실히 효과를 보였는지 시음하던 이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밤일에 몰두하게 됐다고 한다.

거기엔 내가 이것저것 알려주고 일깨워준 공도 있다 해서 뮬리아는 나름의 감사 표시를 했는데….

“크흠!”



다만 뜨거운 밤을 보냈어야 했던 그 일정은 그녀의 사정에 의해 미뤄지고야 말았다.

약술을 개발한 그녀는 그 시제품이자 완제품을 들고 보고 차원으로 떠나버렸기에… 나는 멀뚱히 주변을 수습하는 일만 도울 따름이었다.

물론 밤중에 몇몇 여 엘프들이 엮여오긴 했지만, 배가 부른 건지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다 내게도 변화가 생겼는데….

“짜잔!”

…내 아다를 떼준 알리샤 누님(…)이 아르세이유에 방문한 거였다.



“…예상보다 훨씬 규모가 으리으리한데?”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유쾌한 음색으로 한창 지어지는 백화점 건물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갑자기 정착할 곳을 변경하자고 해서 확인차 와본 거긴 한데… 여기도 좋네. 물 좋고 공기 좋고….”
“후우.”



어쩌다 동행하게  에우리에는 조금 답답한 얼굴이었다. 표정 자체야 무덤덤했지만 이젠 눈빛만 봐도 대강 심정이며 감정을 유추할 정도는 됐다.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쉴까요? 다시 봐서 안 반가운가 봐?”
“…반가워.”
“영혼 없는 반응! 감사합니다!”



…역시나 분위기 메이커. 유쾌하기 짝이 없는 그녀였다.


알리샤는 카멜린과도 곧장 친해졌는데, 마주치기 무섭게 인사하며 허그를 해버린 탓이었다.


그럼에도 시스터는 어색한 느낌 없이 차분히 알리샤를 맞아줬고, 거기에 더 감동한 알리샤는 그녀를 더욱 거세게 끌어안았다.


“우리 에드릭도 못  사이 남자다운 얼굴이 됐네?”
“…걸치고 있는 옷이 날개인 탓이죠.”
“아니지, 지금처럼 여유롭게 응대하는 게 달라졌다는 거야.”




묘하게 눈썰미가 있으시다. 자칭 순진, 순박한 시골 처녀답지 않게 말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관광 온 기분으로 일대를 둘러보며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안내를 위해 내가 내내 붙어 다니며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해줘야 했는데, 그녀의 마음에 가장   요소는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볼  있었다는 점과….

“이거 엄청 귀한 건데?! 이 가격? 정말로?”

잡화점, 시장, 약초며 온갖 재료들을 접하는 그녀는 정말로 보물 창고에  마냥 활짝 핀 얼굴로 흥미진진하게 일대를 살피고 다닌 터라… 무심코 안내 차원에서 동행하던 나와 에우리에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체력들이 다들 부실해졌나 봐? 이거 좀 움직였다고 지치면 어쩌자고?”



그런 식으로 반나절을 싸돌아다닌 끝에 탈진 상태에 빠진 나와 에우리에를 보며 알리샤는 못마땅하다는 듯 불만을 호소했다.

자그마한 카페에 앉아  돌릴 겸 음료로 목을 추여 가며 나는 투정 아닌 투정으로 응답했다.



“부실한 게 아니라… 알리샤 누님이 너무 활기차신 건데요.”
“이게?”

예, 그게요.

“근데 너희 얼마나 떡 쳤어?”
“푸훗!”

거기다 놀라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의표까지 찔러주신다.



“케흑! 콜록!”




에우리에마저 연유를 넣은 우유를 마시다 그걸 뿜었다. 거듭 사레까지 들렸는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끙끙대기까지 했다.



“아, 그거 너무… 뜬금없지 않나요?”
“그래? 전혀.”



…이 누님이 원래 이랬던가?
다시 보게 된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음, 뭐랄까.


그래, 마치 한 마리의 야생마를 보는 듯한….

“오늘은 그럼 내가 빌려 가도 되지?”
“?!”



마치 물건 취급하듯  바짝 끌어안은 그녀.


오랜만인데도 역시나 익숙하면서도 담백한 듯 전해지는, 기분 좋은 향기가 온몸에 풍기는 그녀였다.


건강미 넘치는 육신도 그렇고, 가슴도… 가슴도… 크흠!
크기도 큰데 탄력하면 역시 알리샤인가 싶을 정도로, 역시 산골을 이리저리 오고 가며 몸이 잘 단련까지 되다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넘치는 느낌이 무척….


“…….”



드물게도 에우리에가 뚱한 시선을 던져온다.
음, 질투조차 귀여우십니다만.

“저기 누님? 그런데 누님은 남자친구나 배우자 따로 안 만드시는지요?”
“그랬으면 좋겠니?”




엄청 음흉한 표정으로 그리 물어오는데, 음… 뭐라 답해야 잘 답했다고 소문이 날까?




“저보단 당연히 누님의 의중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쩜! 그때도 그렇지만 말도  잘해요! 그래도 나한텐 우리 에드릭이 제일인  알지?”

…이렇게 말해도 정작 다른 쪽에 마음이 있으면 어떨까 싶지만, 의외로 천연인 듯한 느낌이 들기에 그녀의 심중을 헤아리기란 도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인싸가 아닌 인간이 어찌 천연 인싸의 마음가짐, 사고방식을 이해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천연 아싸에 가까운 에우리에와 내가 괜히 궁합이  맞는 게 아니다.

“귀여워! 귀여워!”

거기다 알리샤는… 초면에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날 귀여워한단 말이지.
머리를 박박 쓰다듬고 볼마저 쓰다듬고 얼굴을 마구 비벼대는데… 으음, 솔직히 말하면 아주 끝내주는 기분이다.

“…….”



덕분에 에우리에의 도끼눈…까지는 아니지만 의뭉스런 시선에 줄곧 노출돼야 했지만.

…이런 것조차 기분 좋게 느껴지니, 나란 남자는 태생이 변태가 아니었을까 하고, 무심코 고뇌해본다.


그리고 의외지만.



“안녕하세요.”



나한테 보였던 그 싹싹함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이긴 했지만, 비즈니스로 접어들자 묘하게 어른스러워진 알리샤였다.

휴즈 앞에서 그녀는 일개 소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했는데….



“음, 일전에 들었던 내용에 따르면요, 제가 구레아 상회에서….”
“흠. 그도 그렇지만….”
“배려해주시는 건 물론 잘 알죠. 저도 그거 엄청 감사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이러다간 일정에 지장이….”
“물론 전부 고려하고 있습니다. 시일을 맞추는 거야 전혀 문제될  아니니….”
“그거 확실하게 처리해주셔야 해요! 당연히 저는 구레아 상회며 이제부터 계속 신세  마르뎅 상회의 관계자분들 책임자분들을 전적으로 믿고는 있지만요, 혹시라도 불의의 사태를….”

끼어있기 뭐해서 빠져나왔는데, 둘이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1시간이 훌쩍 지난 다음이었다.


…일이며 업무를 조율한다는  상상 이상으로 피곤하고 골치 아픈 일이라는 걸 그럭저럭 경험해봐서 알기에 망정이지, 몰랐으면 이걸 저렇게 오랫동안 논할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을 거다.




“됐다! 집에 가자!”

그녀가 당차게 날 옆에 끼고 상회를 나서려 했다.

“저, 잠시….”


딸려가다 무심코 휴즈 쪽을 슬그머니 응시하니, 대강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여기 맛있는  뭐 있어? 아, 시스터 카멜린도 같이 가게 하자. 에우리에 또 탑에 박혀 있을 테니까 데리고 오고…  동행시킬 친구들 따로 있어?”
“음, 특별히….”
“에드릭! 친구는 많이많이 사귀어야지! 지금이  좋을 때인데! 상인이 너무 붙임성 없게 굴면  써!”

아니, 저기… 누님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좀… 뭐랄까.

묘하게 그녀 앞에만 서면 초기 아다 때, 풋내기 때가 연상돼서 주춤하고야 만다.
아,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편안하면서도 의지가 되는 터라 이건 이것대로… 좋았다.
마치 큰 누나, 진짜 누님을 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물론  누님이… 날 먹어치운다는 게 실로 기묘한 전개였기에 더… 꼴렸지만.
거기다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던 저녁 식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이어졌다.



“…….”

뻘쭘한 표정으로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얼굴로 앉아 있는 데이엔 가의 프리지아 영애를 보며, 나조차도 대체 이게 뭔 사태인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아는 사람? 저기요?! 같이  먹죠?’



끝.

…프리지아 영애도 어? 예? 아니 저는… 예? 아, 안 먹긴 했는데… 괜찮은데… 하다가 결국 붙들려 왔다.

에우리에는 졸면서 식탁에 앉아 있고, 시스터 카멜린도 뭔가 난감한 건지 어색한 건지 모를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식당이라고는 해도 날이 저물기 직전이다 보니 일 끝마치고 들이닥친 사내들하며 용병으로 보이는 험한 인상의 남녀, 종족 구분 없는 곳에 무작정 우릴 끌고 왔던 지라, 나조차도 감히 들려 볼까하고 생각만 하던 곳에 끌려오니  쪽도 어안이 벙벙해지긴 매한가지.


여긴 말 그대로… 판타지 세계의 그거 뭐냐? 용병들이 들락대는 주점, 음식점을 연상하게 했다.


“길드 식당이 의외로 값도 싸고 맛도 좋거든.”



게다가 알리샤는 저래 보여도 일단 실버 등급 용병패를 지녔단다.
우드, 아이언, 브론즈, 실버, 플래티넘,  다음이 하프 골드.
여기까지가 하위 용병이라면, 골드서부터 특유의 등급 체계가 적용되며 골드 이후엔 각기 다른 색깔이 주어진다고 들었다.

레드, 블루, 그린, 화이트, 블랙.

이렇게 5가지로 나뉘는데 여기서도 격차며 구분, 주특기 등이 갈린다고 했던가?
의외로 체계적이라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니, 이게 중요한  아니잖아?

상황은 총체적 난국.

우선… 가장 당황하고 있을 프리지아 영애가 안심하도록 대화를 이끌기로 마음 먹었다.



“오랜만이시죠? 그 사이 돌아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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