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18.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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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도 좋네요.”
간만에 시간이 나서 시장 쪽을 기웃거리다 군것질을 좀 하려다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팔자까지야….”
데이엔 가의 영애, 프리지아였다.
일부러 투박한 옷을 입은데다 의도적으로 떼를 타게 만든 거 같은 형편없는(?) 갈색 가죽 모자까지 눌러쓴 상태라 그런지,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는 임펙트가 약하게 느껴졌다.
“우연이네요? 자주 오시나 봐요?”
“저는 여기에 오면 뭐 안 되나요?”
“전혀요. 안 될 건 없죠.”
상대가 삐딱하게 나올 땐 거기에 너무 영향을 받거나 휘둘려 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 것.
너무 순박해 의심을 모르는 이들을 제외하면, 사람은 당연히 타인을 경계하게 돼 있다.
수줍음이 많다? 내성적이다? 과거에 사람을 믿어 손해 본 게 많다?
그러한 경험들이 누적된 만큼,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이를 대할 땐 자연스럽게 까탈스럽거나 까다롭게 대한다고 한다. 일종에 심리적인 자기방어 기제라 했던가?
인턴 당시 들은 기억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태도는, 상대의 그런 태도에 동요하는 모습을 일절 내비치지 않는 것.
참고로 이걸 알려주던 강사분은 유기견을 입양한 견주에 대한 이야기를 첨가해 설명을 이어갔었다.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손을 싫어하는 강아지가 있어요. 손만 보이면 으르렁대고 그런다네요? 이게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인데 이걸 캐치 못 한 견주는 계속해서 귀엽다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만지고 접촉을 시도하는 겁니다.
문제는 강아지의 기색이 이상했는데 견주가 생각하기로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 여겼다는 거죠. 그러다 참다 참다 으르렁댄 강아지가 나중엔 물기까지 해서 당황하셨다고 하더군요?
으르렁대는 건 일종에 신호예요. 하지 마, 싫어. 그러지 마! 그런데 자꾸 하지 말라는 걸 하면? 우리도 기분 나쁘잖아요? 강아지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훈련사의 도움을 받아 뭐가 문제인지를 봤는데, 바로 손이 문제였다는 거예요. 손만 들면 으르렁대고, 그게 강아지 눈에 띄면 막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리킹(licking)이라 해서 혀를 차고 내미는 행동을 할 땐 긴장을 한 거거든요? 거기서 한 차례 더 긴장을 하면 동작이 멈춰요. 이를 프리징(freezing)이라 하거든요? 우리도 비슷하잖아요? 긴장을 넘어 무섭거나 두렵고, 공포를 느끼면 순간 몸이 움찔대곤 가만히 있잖아요? 어찌 반응할지 몰라 머릿속을 복잡해지고, 이걸 패닉이라 부르죠?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결국 손이 왜 무서운지 반응을 살핀 훈련사는 손바닥을 보면 긴장을 한다는 패턴을 발견해요. 그러면 왜 긴장했을까요? 유기견이죠? 인간을 어느 정도 안다는 거예요. 뭔가 감이 잡히나요?
우리를 예로 들까요?
누군가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면 무심코 양손을 들어 올려 방어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있죠? 이 패턴은 부모에게 학대, 폭력에 노출된 이들이 자주 보이는 반응이에요. 학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도 보이죠. 무슨 의미인 줄 아시겠어요?
다시 말하면 그 강아지는 손바닥을 보았을 때, 고통, 불편함, 불안, 공포 같은 걸 느꼈으며, 이미 그런 쪽으로 학습이 되어 있기에 그걸 보이면 불안해서 으르렁댔던 겁니다.
그런데 견주가 이를 캐치 못 했네요? 경고했는데 자꾸 이러네요? 불안하죠? 여러분들 불안하면 뭐가 됐든 발악을 하거나 뭔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거나 할 거잖아요? 강아지는 바로 그 해결책으로 물기를 시도해서 위기를 모면해왔던 거예요. 물면 안 때리거나 한두 대 처벌 받고 끝나는 게 학습되니, 참는 것보단 저항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예요.
머를 거라 생각하시는데 강아지들도 잘 알고 있어요. 자신들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러나 약자라고 저항 안 하고 맞고만 있을 순 없는 거죠?
말하자면 그 강아지는 그런 상처를 지녔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였어요. 여기엔 강아지가 나쁘다 버릇이 잘못 들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버릇이 잘못 들 수도 있지만 그건 고치면 되죠. 그건 트라우마가 아니니 올바른 교육을 통해 쉽게 고쳐져요.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좀처럼 치유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유기견을 대한다는 게 참 쉬운 게 아닌데, 우리 견주 님은 그래도 당시에 그렇게 물리고도 함께하려고 노력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참 감동했거든요.
그리고 그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엔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배워서 관계가 잘 개선됐다고 하거든요? 축하할 일이죠?
자, 제가 인간을 대하는 것을 이야기하다 잠시 샛길로 샜는데, 다 포함된 내용이니, 이제 이걸 참고해서 한 번 들어보세요.
남자나 여자나 누굴 대함에 있어 반응이 까칠해요. 평소엔 신사적인데 그날 기분이 안 좋거나 일이 잘 안 풀렸거나 했을 수도 있죠. 이 사람들은 괜찮아요.
그러나 성격이 원래 그래, 쟤는 원래 예의가 없어, 버릇이 없어! 까칠해!
이렇게 평가받는 분들은 아쉽게도 이미 그렇게 습관이 들었고, 그 이외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 누구에게도 교육받거나 고쳐야 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그걸 바꾸게 하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보통은 그로 인해 큰 싸움이나 큰 손해, 큰 실수가 생겨야 아차 하고 이제부터라도 고쳐야지 하는 건데, 대뜸 까칠하게 말을 내뱉고 이러는 건 아주 큰 실수로 연결되긴 어렵거든요? 더러우면 그냥 피하면 되지? 어차피 잰 저러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하고 넘기죠 대부분?
자, 아까 이야기를 참고해보면, 그런 반응이 습관이나 평상시 태도에서 비롯된 건지, 아님 의도적으로, 확실하게 이성적 사고를 통해 표현된 건지, 감정적인 게 맞는지 아닌지, 이런 걸 명확하게 관찰하셔야 해요.
영업에 흔히 이런 말이 있죠. 상대가 내 제안을 거절했을 때, 그게 제안을 거절한 거지 나라는 인격체, 나라는 사람을 거절한 건 아니라고요. 그걸 착각하고 상처 입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마찬가지예요.
상대의 태도와 반응은 곧 상대라는 인격체의 총체입니다. 그걸 관찰하고 이해하려 해보면 의외로 상대가 나쁘거나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래도 간혹 정말로 악당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까지 이해하려 하진 마시고요.]
그녀, 프리지아가 내게 까칠하게 대하는 다분 프라이드 문제도 있지만 젊은 여성 특유의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를 일.
일단 이런 상황에 주의해야 할 건 상대가 무례하거나 선을 넘더라도,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상대는 까칠하게 대했음에도 여타 사람들처럼 불쾌감을 표출하거나 하지 않는 것만으로 ‘어, 예는 좀 다른가?’ 하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곧 관계 개선의 키 포인트다.
즉각적으로 다가서서 즉각적으로 관계를 확 끌어 올리려 하지 말 것.
여기서 중요한 건 어린 왕자에서도 나온 여우를 길들이는 방식.
꾸준한 투자, 꾸준한 기여를 통해 차곡차곡 신뢰도를 쌓을 것.
정 아니면 흔들다리 효과라도 이용해서 감정을 착각하게 유도할 수도 있지만….
‘내가 호감도 못 사면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니니 거기까지는….’
최대한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했고.
내가 진심이라 해서 상대가 그걸 알아줘야 할 의무는 없다.
그저 상대가 알아줄 때까지, 혹은 그런 어필들을 함으로써 그 의도를 제대로 전달해야지, 꽁꽁 감춰둔 속마음,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리. 상대가 명탐정도 아니고.
그래서 인턴 당시 배우고 깨달은 건 속단하지 말며, 관계를 너무 간단히 포기하지도 말고, 차분하게 여유를 가져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하라는 거였다.
‘이런 걸 몰랐으니 인간 관계가 제대로 안 굴러갔지.’
여자하고 말 몇 마디조차 못 나눈 것도 이렇게 보면 당시엔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배웠으니 잘 써먹어야지.
서로가 윈윈, 상호 이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왜 따라와요?”
“가는 길이 겹친 거겠죠?”
빙그레 웃어주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뱉더라도 난리 치지 말고 솔직하고 진지하게 따질 것.
“하여간….”
그런 식으로 계속 웃어넘기니 프리지아도 날 견제하는 걸 포기한 듯 주위를 기웃거리며 노점에 있는 음식들을 살피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쪽이 뭔 참견인데요?”
“사드릴까 싶어서요.”
“……필요 없거든요?”
“제 눈치를 보고 못 먹는 게 아니라면, 구매하기가 고민된다는 건데, 발걸음이 늦춰진 걸 보면 저걸 먹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이게 이득일지 아닐지 생각해보고 있는 거고요?”
“…그런 식으로 뭐 남에 심중을 분석하고 이러면 재미있어요?”
“이해하려 노력하는 겁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떻게 하면 그에게 도움이 되고, 폐를 끼치지 않을지를 항상 생각하곤 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유능한 상인이라 그랬는데, 이것도 다 그런 쪽 기술인가요?”
“기술이라기보단 삶의 지혜겠지요?”
“후우.”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아요. 얼마 전에 검을 하나 맞춘 덕에 용돈이 남아 있질 않거든요. 먹더라도 한두 개 정도….”
“그럼 먹고 싶은 거 말씀해주세요. 같이 먹어봅시다.”
“…같이 먹을 필요가 있나요?”
“저는 프리지아 양께 음식을 대접하고, 프리지아 양은 경험을 토대로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것들을 소개해주시고요. 서로에게 빚 되는 일 없이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은 참 잘하네요. 나 참.”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아까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좋아요. 말 나온 김에 여긴 얼마나 많이 와봤어요?”
“기회가 되면 오고는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좀 알아야….”
“한 달 가까이 된 걸로 아는데 얼마 안 됐다고요?”
“…워낙 넓어야죠.”
“설마… 도시 전체를 탐방하고 다니고 있는 건가요?”
“되도록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부지런도 하네요.”
감탄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건지… 이건 조금 분간이 안 가네.
아무튼 그녀의 안내를 따라 이것저것 맛보게 됐는데, 확실히 보이는 거, 냄새도 그렇지만 입에 넣었을 때의 맛도 상당했다. 대부분 맛집이라 분류되는 식당, 음식점 위주로 많이 탐방했지만 이런 식으로 시장을 돌며 군것질로 배를 채우게 될 줄은… 근데 군것질치고는 퀄리티가 나쁘지도 않고.
“여기 꼬치구이는 일품이이거든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기 보이죠? 얇은 밀가루 반죽에도 고기를 넣어 만든….”
“저기는….”
프리지아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신이 난 모양이다.
처음엔 미심쩍어했지만, 일단 월급을 받은 지도 꽤 됐기에 주머니 사정은 넉넉했다. 이곳에서 사치를 부릴 것도 아니다 보니 돈은 대체로 남는 편이었다.
그러면서 물가도 적당히 안정됐다는 걸 느끼고 있는 만큼, 이곳 경제 사정이 전체적으로 막힘 없이 잘 굴러가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요소였다.
시장판에서의 흥정은 흔한 일이지만 다들 사냥감을 노리듯 물건을 살피고 구매할 때 몇 마디로 가격을 깎으려 하는 모습들과 별 부담 없이 가게며 노점 주인 등이 옛다 하고 깎아서 물건을 판매하는 모습 등도 그렇지만, 이곳은 유독 활기 넘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흔히 걱정하고야 마는 소매치기도 여태껏 당한 적도 없고 말이지.
이런 소규모 시장이 이곳 아르세이유 내에서만 수십 개라니, 대단도 하지. 소규모라고는 해도 있을 건 또 다 있는데, 분위기도 차이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어디는 야채를 많이 팔고 어디는 고기를 많이 취급하며 어디는 과일을, 어디는 싸구려 장신구서부터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치품 등을 취급하질 않나, 골동품 등을 내놓고 판매하는 이들도 그렇고… 시장의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다들 특색이 확고했다.
문제가 있다면….
‘해산물은 전멸.’
해산물은 시장이 아니라 가게에서 취급하는데, 마법으로 만든 냉장 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튼 비쌌고, 신선도는 떨어진 냉동 식품 느낌이 강했다. 해동해서 먹는다 쳐도, 현대인 기준으론 턱없이 부족한 수준.
그조차도 이곳은 없어서 못 판다고 하는데… 항구 등이 아주 땅끝까지 떨어져 있는 게 아님에도 이럴 정도면, 바다를 끼고 사는 도시가 아닌 이상 해산물 요리를 즐기기엔 무리가 따르겠거니 싶었다.
실제로 내륙 지방에서의 해산물은 있는 사람만 먹는 고급스러운 식재료였으니 말이다.
바닷가, 부둣가에선 먹다 버릴 정도로 흔함에도 말이다.
마법이란 만능의 기술이 있기에 운송 중에도 썩지 않게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열차가 생기고, 차가 생기고, 비행기가 생기면 또 달라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