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59)화 (59/454)



〈 59화 〉17. 졸지에 이게 이렇게 되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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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엔 가는 의외지만 헤다 부인이 몸담은 네이에라 자작 가보다 훨씬 부지가 넓고 규모도 큰 편이었다.

 부지 내에 창고가 여럿 있어 상인으로 짐작되는 이들이 쉴  없이 오고 가는 게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이었다.

정작 저택은 거기서 한참을 더 안으로 나아가야 했고, 마치 영지로 치면 내성 외성을 나누듯 부지 내에서도 그런 식으로 쇠창살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방문 전 간단히 들은 바로 데이엔 가는  여러 방면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데, 전대 가주들의 유능한 수완이 지금의 성세를 이루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는 모양이다.
형식적으론 남작 가지만 개인 영지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데이엔 가도 이곳 아르세이유 내에서는 굴지의 가문으로 불린다는 듯 싶었다.


사실 귀족 가문  신분만 귀족인 채 실속이 없다던가, 명예 귀족인 이들, 기사 서임을 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격이 틀리다는데, 아직까진 그 점이 잘 와닿진 않았다.

이런 견해를 밝히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게 이곳은 인간의 권위가 인간 국가며 영지에 비하면 다들 사고방식이 열려 있어 신분이며 태생으로 걸고넘어지는 일이 적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여기서 귀족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쌓았다고 인간 국가로 향해 똑같이 생각하며 그들을 대해다간, 심하면 참수며 처형까지 당할 수 있다 하니, 예외를 항상 잊지 말아두라는 경고도 더불어 들었지만 말이다.


데이엔 가의 저택은 머릿속에 그린 듯한 귀족 가문의 저택이었다.

커다란 건물과 별채가 본 저택 옆에 자리해 있었으며, 그 인근을 정원들이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십자 형태로 길이 뚫려 있었지만 시야가 트인 곳은  트인 반면 조형물과 풀, 꽃을 비롯한 화원과 나무들이 적절하게 눈에 거슬리는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정원사가 나뭇가지를 치는 모습도 보였으며 꽃에 물을 주는 사용인의 모습까지.

마차를  상태로 정문에서 내린 나는 네이에라 가와 달리 이번엔 집사가 아닌 나이가 지긋이 드신 노년 여성과 여러 사용인들이  맞아주는 모습을 보며, 차분히 마차에 내려선 급한 기색을 최대한 늦춘 채, 배운 대로 여유롭게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환영합니다, 에드릭 님. 데이엔 가에 어서 오시지요.”
“현 마르뎅 상회의 일원인 에드릭이라 합니다. 반가이 맞아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귀족이라면 가문 명, 거기다 별칭이며 호칭이 있으면 그걸 언급하며 자신을 밝힌다. 상대가  이름, 명성을 알더라도 이를 밝히지 않는 건 무례에 해당. 통성명은 예컨대 공식적으로, 상호 존중의 일환이라 했던가?



‘……생각도 못 했는데.’



현실에서 마주치는 이들 가운데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지만, 말 그대로 가끔. 이것도 그나마 사람들과 자주 부대끼는 인간들 한정된 이야기지, 아닌 이들에겐 예외는 없으리.



‘참 많이도 배운다.’




단순히 예법이라고 형식적이고 허례허식이라 여겼는데, 왜 이런 게 생겨났고 왜 이들이 이걸 목숨과도 소중히 여기며 지키고, 이어가는지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물론 형식은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귀족들 특유의 권위 의식 및 허레허식을 정당화해서 신분의 격차를 확 벌리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우리 세계의 편견을 여기서도 적용할 순 없기에 설명 자체는 제대로 듣고 숙지를 해둔 편이었다.


또 각 종족별 문화에 대해서 배우다 보니, 이런 걸 신경  쓸 수도 없었고 말이지.



“테티아나 님께서 손수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내부로 들어선다.


로비는 무척 넓어 여기서 파티 같은 걸 해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 같은 곳에서 볼 법한 정면 계단을 오르니 옛 데이엔 가의 가주 분들에 대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림 자체만 보면 다들 미색들이 출중한 느낌을 받았다.

한 층을 올라 응접실로 안내되던 차에, 멀리서 뭔가 외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나아갈수록 음성을 점점 더 격한 울림을 띄기 시작했다. 가는 와중에도 그림이며 각종 사치품들, 조각상 유래를 알  없는 장식품에 특이한 색감을 지닌 꽃이 담긴 아기자기한 꽃꽂이까지.

특히 그림들은 대부분 남성보단 여성이 주가 되는 그림들이었으며, 신화 속  장면을 연상하는 듯한 구도들이 다분했다. 용과 마주 앉아 체스를 두는 소녀라던가, 성벽 앞, 거기서 다시 아래로 뚫린 해자에서 위태롭게 빨래를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라던가….

프리지아!

격한 음성이 들린  딱 응접실에 들어서기 직전.
이때, 노년의 사용인이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주인님, 마르뎅 상회의 에드릭 님이 방문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거라!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기  내게  차례 마음에 준비를  시간을 주려는지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이윽고 문을 열어 내게 들어가시라는  살그머니 허리를 수그려 보였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짧게 언급하곤 안으로 들어서자….

“오오! 왔군요! 때마침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가주인 테티아나가 몸소 몸을 일으켜 그런 날 맞아주었다.

지금의 그녀는 이전과 달리 내부 복장인지 옷이 무척 간소해 보였다. 헤다 부인이 어느 정도 긴장감이 깃든 차림으로 항시 날 맞아주는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물오른 미모를 뽐내듯 그녀는 움직이기 편한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감색, 네이비 블루에 해당하는 짙은 색감을 띄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적절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는데….


“…….”



응접실 소파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그런 모습조차 불만이라는  표정을 구긴 채 대놓고 한숨을 삭히고 있었다.

똑같이 솜사탕과 같은 이색적인 머리 색을 지닌 소녀였다. 외모만 보면 사실 언니 동생의 관계라 의심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둘은 비슷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테티아나의  눈이 적갈색에 가깝다면, 그녀의 눈은 황색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테티아나가 긴 머리를 묶은 케이스라면 프리지아, 그녀는 아예 긴 머리를 쳐내 단발인 상태였는데, 복장도 아래로는 펑퍼짐한 바지에 위로는 셔츠에 조끼를 입은 형태에 가슴 부위가 테티아나와 달리 아직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상황인 덕에 잘만 하면 남성으로 오해받기 충분한 외양이기도 했다.

 경우 오해를 받는다면 아무래도 미소년? 미청년?

“프리지아, 예가 아니지 않습니까.”
“…언제는 그런 걸 따졌습니까?”
“하아. 이 아이가 이렇답니다.”


테티아나는 멋쩍게 웃으며 앉으라는 듯 손을 펼쳤고, 나는 그 안내에 따라 프리지아와 마주앉는 형태로 자리하게 됐다.

그런 우리 둘을 좌우를 살피며 조율하려는 역할이라도 하는지, 그녀는 말문을 열어 의례적인 주제 등을 언급했지만….


“이런 게 의미는 있습니까?”

프리지아의 불만 어린 물음, 불쑥 치고 들어오는 그 물음에 차분히 웃던 테티아나도 잠시간 말문을 여몄다.


“프리지아, 너는 현재 우리 가문의 유일한 독녀란다. 네가 곧  뒤를 이어야….”
“저는 싫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장래를 약속한 이가….”
“그건 용납할 수 없단다.”
“어머니!”
“타 가문이라면 사내의 장래를 보며 적합하겠다 싶으면 독려해주고  되게끔 장려해주겠지만, 우린 아니란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단다, 아가야. 확실한 건 네가 이 가문을 잊지 않으면 우리 대는 여기서 끝이라는 거지. 유서 깊은 역사를 네 손으로 망가뜨리고 허물 속셈이더냐?”




덤덤한 표정, 은은한 미소까지 머금었음에도 테티아나는 사뭇 묵직하게, 찌를 듯한 내용을 프리지아에게 찔러 넣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굴 모르는 이와 어찌 몸을….”
“지금 일면식을 나누지 않았더냐?”
“그 정도 가지고!”
“그 정도로 충분하지? 내가 됐다면 그걸로 족한 거 아니더냐? 내가 프리지아, 너한테 문제 될 무언가를 권한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
“…그건.”




할 말이 없는지 입술을 깨무는 프리지아.



“말했지만 독녀인 너는 우리 자손을 낳을 권리가 있단다. 여기엔 예외가 없어. 나도 그랬고, 네 할머님도 그랬단다. 네 할머님 대는 그나마 다른 자매들이 있어 경쟁 속에서 가주 위를 이어갔는데, 너는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구나? 젊음의 열기에 너무 취해 대사를 그르치지 말라 내 거듭 주의를 줬음에도….”
“그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왜  되니?”
“…….”




음, 예나 지금이나 유서 깊은 가문이든 아니든, 자식과 부모 사이의 갈등은 어쩔 도리가 없구나 싶었다.



“잠시,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흐음….”


가족사에 끼어드는 건 무례일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끼어들기로 했다.




“우선 저는 사정을 잘 몰랐기에 가주님의 요청이 있으셔서 이렇게 방문은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따님이 원하는 방향성이 아니라면, 이 제안은 없던 걸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테티아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추궁하듯 물어왔다.

“저는 단순한 관계더라도 상호 만족, 충분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가 서로를 도구, 이용 목적으로 다루고 활용하고 부리는 걸 저는 원치 않습니다.”
“혼약을 맺으라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지?”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녀의 말이 사뭇 짧아졌다.

크흠!

귀족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가장 최초의 표현은 존댓말을 포함해 말투를 전환하는 거다.

대우를 해주는 만큼 나는 널 존중하지만, 대우하길 포기한 시점엔 존중 따윈 없다는 반증이니.

이런 사소한 걸 이해  하면 저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
다시 말해 저건 실질적인 압박이다.
만족스런 답을 못 내놓으면 나는 네게 그에 상응하는 무례를 범할 것이다.



“혼약이어야만 서로를 소중히 하라는 보장이 있는지요?”



그래서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그리 말했다.



“사람 간의 인연은 결국 인간의 이치를 초월한 무언가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우연, 필연을 저는 소홀하게,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그가 누가 됐건, 그가 저를 매도하고 박해하며 악의를 보이지 않는 한, 저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을 대함에 있어선 항상 기본적인 규율을 지키고자 노력하고자 하는 겁니다.”
“대단히 낭만적인 사고방식이군요.”



음, 약간 화가 풀린 건가?

“하지만 이건 우리 가문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 불만, 문제 제기를 하는 건 혹시… 아닐 테지요?”
“전혀요. 저는 그저  소견을, 동시에 제 의견을 전달 드린 거뿐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제 기분보다는 따님의 기분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저는 말씀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어째서요? 당신하고 완전한 타인 아닙니까?”
“앞서 말씀드렸지만… 타인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이미 일견식을 나눴으니 완전한 타인이라 할  없겠지요. 본의는 아니지만 그녀의 생각과 속마음도 들었으니  또한 완벽한 타인으로 분류하기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프리지아가 원치 않는다면 손을 쓸 생각도, 관계를 맺을 생각도 없다?”
“적절하십니다.”
“…….”




고개를 돌려 프리지아에게로 시선을 돌린 테티아나는.




“저 봐라. 이 어미가 너한테 놈팽이나 모자란 놈을 붙여줄 리가 없지 않느냐?”
“…….”

그리고 프리지아는, 의외지만 지금에서야 내가 눈에 들어온 듯, 제대로 존재감이 각인  듯 의혹과 의문이 섞인 시선을 던져오고 있었다.

뭐지 이 놈은? 별종인가?
딱 그런 시선이었다.


“아, 물론 영애 분이 아름답기에 사내된 자로서 그런 식으로 마음이 동하는 건 당연 있을  있는 일이니, 혹여 오해가 빗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네가 취향이 아니라서,  생겨서 너 거절하는 거 아니라잖아. 쿡쿡!”


…아니, 애써 돌려 말했는데 그걸 직구로 꽂으시면 어쩝니까?!



“…….”



프리지아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정 불만이면 입양을 한다던가….”
“그럴 순 없죠.”


테티아나는 단호했다.


“제가 다시 애를 낳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용납 못 합니다. 이래 보여도 우리 데이엔 가문은….”
“……응?”


잠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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