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14. 이세계 수녀님은 서큐버스라는 게 학계 정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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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나는 여지없이… 침대에 거하게 실례를 범했다.
이쯤 되면 눈치가 아무리 없어도 모를 수가 있나.
‘자리가 괴상한 게 아니라면… 꿈 문제일 가능성이 큰데.’
그럼에도 현실에서 마주하는 시스터 카멜린은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겉과 속이 같은 순 없으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괜스레 자신만 의식하게 되는 터라 이게 좀….
“어디 편찮으시기라도 하신가요?”
노동이라 해봤자 텃밭을 가꾸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이건 또 왜 이리들 손이 많이 가는지.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괜스레 의식하는 바람에 시선을 피하다 역으로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던가.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오늘도 무사히 하루 일과가 끝났다.
신부님에게도, 수녀님에게도 소브릴 정교회의 교리에 대해 지나가듯 듣는 등 의외지만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조금씩 힐링 삼아 농땡이 겸 부족한 수면을 채우고자 초원에 몸을 누인 채 낮잠을 자고도 그랬는데, 이때는 별문제 없이 넘어가나 했는데….
어째 객실에서 잠들려고만 하면 똑똑 소리가 나며 그녀가 찾아왔다.
“…저기, 오늘 3일째 맞죠?”
자고 일어날 때는 솔직히 전부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꿈이 무려 3번 정도 반복되니 자각몽이랍시고 상황이 명확하게 인지가 되기 시작했다.
“어떨까요?”
물론 눈앞의 시스터는… 이젠 머리 수건, 베일조차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찬란한 금발을 찰랑거리며, 생머리를 확 풀어놓은 채 당도한 상태라 어제보다 훨씬 노골적이면서도 농밀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그녀였다.
더군다나 평소 때와 달리 노골적으로 연분홍 색채가 짙어진 그녀의 두 눈. 요사스럽게 반들거리는 그 광경은 마치 이쪽을 유혹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녀의 애달픈 눈웃음이 함께하니, 괜히 지켜보는 이쪽의 심적 동요만 극대화되어 가는 듯해서 어쩔 수 없이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눈을 왜 피하시는 건가요?”
그걸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알면서 능청 떠는 겁니까?!
라고 따지지 못한 나란 남자, 얼마나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인가!
“저기… 그보다 우리 조금 솔직해지죠. 대체 왜 자꾸 남에 꿈속으로 찾아오시는 건가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요?”
“…아니, 알긴 아는데 확실한지 아닌지 말로 설명을….”
“왜 말이 필요하죠?”
그녀가 말했다.
“달이 하늘에 자리 잡은 음침한 시각에, 두 남녀가 한방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 외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건가요?”
“고민을 털어 놓는다던가, 사정상 조용히 이야기를….”
“그런 거 필요 없는데요?”
“…….”
아, 그러셨군요. 제가 좀 많이 못 났네요.
“어째서 절 거부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아뇨, 거부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절차랄까… 아무튼 불쑥 이리 찾아오는 거에 제가 면역력이 없다고 할까요? 그런 거 때문에….”
“구차한 변명이네요. 혹시… 그럴 리는 결코 없겠지만… 제가 부담스러우세요?”
아, 그러지 좀 마세요. 이리도 야한 분위기를 풍기는 주제 왜 다람쥐, 토끼가 지을 법한 표정을 짓고 계시옵니까? 사람 부담스럽게!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그 뭐냐….”
“뭔데요?”
“…정말로 이걸 원하는지 아는지를 알고 싶은 거거든요.”
“그게 뭐예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절 거부했다 이건가요?!”
“아니, 전 거부한 적 없다니까요?! 다만 뭘 하든 알고 넘어가야죠! 상호 불이익이라던가….”
“……?”
뭔 개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사람을 보시면 제가 상처를 입겠습니까, 안 입겠습니까? 누군 뭐 욕망에 파묻혀서 이러쿵저러쿵 안 하고 싶으신 줄 아세요?! 여자보다 남자 쪽이 그런 충동 더 심하다고요, 이 사람아!
“아, 혹시 제가… 에드릭 님을 덮쳐서 에드릭 님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그런 걸 걱정하시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시스터 카멜린은요? 일단 시스터시잖아요? 이게 꿈이라는 건 알겠는데… 원래 종교인들은 꿈에서라도 이런 걸 의도적이나마 뭔가 하고 이러면… 깨어난 다음 엄청 자괴감 든다거나 뭐 그러지 않으신지요? 아, 물론 옷만 입고 본 뜻은 전혀 별개라면 상관은 없는데 말이죠.”
“…….”
그녀는 잠시,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설마 그거 때문에 계속 참…으셨던 거예요?”
“중요한 거잖아요?”
미처 생각지 못했다기보다는, 상상도 못 했다는 것처럼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는 한동안 날 뚫어져라 지켜만 보기에 이르렀다.
“…….”
그러다 불쑥 웃더니.
“이건 자세한 설명을 좀 드려야 될 거 같네요.”
전혀 시스터답지 않은 표정으로, 카멜린 그녀가 아닌 것 같은 얼굴로.
“어차피 시간도 다 됐고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그녀는.
“그래도 내일은 이런 얕은 술책으로 넘어가실 수 없을 거예요.”
불쑥 접근한 그녀가 날 확 끌어 안고는.
농후하게, 진득하게 내 입술을 탐하기까지.
“하아!”
그녀의 입과 내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치 거미줄처럼, 진득한 액체가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아쉽다는 듯이 포물선을 그리다 끊어지기에 이른다.
“다음은… 알죠?”
그녀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눈이 번뜩 떠졌다.
“…….”
반사적으로 이불을 들춰 아래를 봤는데… 오늘은 무사했다.
“거 귀신이 콕할 노릇이네.”
기억이 선명하진 않으나 어렴풋이, 입술을 덮쳐온 그 숨막힐 듯한 감촉이, 아침의 생리 현상으로 물건이 텐트를 친 게 아니라 그에 자극을 받아 부풀어 팽창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랫도리에 이유 모를 울분과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아, 괜히 한발 뽑고 싶어지네.
자제하자, 자제하자!
심호흡, 심호흡!
그러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에드릭 님, 오늘도 안녕히 주무셨나요?”
“예, 덕분에…….”
덕분에?
키스+딥 키스 덕에 개운하게 일어났어요! 하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겠지?
“다행이네요.”
그녀는 평소처럼 신성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씻고 오시라 말하곤 수건을 건네곤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실례 했냐 안 했냐를 한 차례도 묻지 않고 그냥저냥 넘어가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심지어 눈치도 안 주시고! 이야, 천사가 따로 없으시네요!
‘그나저나….’
오늘 잠들면 정말 따먹히는 거 아냐?
아니, 그보다 난 정말 잠들었다는 자각도 못 했는데 왜 눈 뜨면 항상 퍼자고 자빠져 있는데?
여기 정말 터가 이상한 건가?!
그렇게 씻고 식사를 위해 신부님과 시스터와 합류한 참이었다.
“어때요, 시스터 카멜린? 제가 말한 그대로였지요?”
회색치고는 밝은 느낌 때문에 빛에 반사되는 걸 보면 은발, 백발로도 보일 법한 신부님의 머리색은 예나 지금이나 독특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새벽녘,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엔 진정한 의미로 잿빛을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그의 눈이 어딘가 어스름한 적색을 띄고 있는 걸 보니…… 응?
적색? 빨간색?
“카멜린의 유혹에 버티신 이유에 대해 잘 들었습니다. 그 점이 인상적이라 제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픈 심경이 들어서… 이렇게 정체를 드러내게 됐군요.”
“정체 말입니까?”
“시, 신부님!”
기겁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시스터 카멜린.
…신기하긴 했지만 아주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냐? 여긴 판타지 세계니까!
우선 시스터 카멜린은 눈을 뜨고 있는 시점엔 평소의 그녀란다.
그러나 잠이 들면 또 다른 성향이 모습을 드러낸다는데, 문제는 이게 겉으로 드러나거나 하지 않기에 좀처럼 알려질 일이 없었다는 건데.
“그녀하고 제가 이 외딴 곳에 자리 잡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교단 내에서는 그녀에 대한 처우가 논란이 됐지만, 진실 되게 자신을 바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 그녀의 신심을 믿고는 조치를 취했으니, 그러면 남성이 접근하지 못하는 구역으로 그녀를 보내면 되겠구나 해서 보냈더니 이제는 꿈에서 여성과 그렇고 그런… 행위로까지 이어졌다는 모양이다.
…간단히 말해 꿈이니까 서로 부대끼다가도 그걸로 모자라 결국 남성기를 생성해서 또 이러쿵저러쿵… 그게 과해지니 이젠 아예 꿈속에서 난교 파티까지 벌이는 식으로 확대되어 신앙심이 급격히 줄고, 생활하던 이들이 사회로 복귀하거나 이런 게 문제로 발생해 결국 다시금 그녀에 대한 처우가 논의되었다.
그래서 결정된 게 외딴 곳에 보내버리자는 거였고, 비슷한 이유로 앞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신부님 곁에 그녀가 오게 됐다나 어쨌다나?
참고로 신부님은 반은 인큐버스, 반은 인간으로 반인반마.
그러나 시스터 카멜린은 순수한 인간.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반은 몽마 인 덕에 신부님은 카멜린의 그 능력인지 특이 체질인지 모를 무언가에 엮이지 않게 됐지만, 가끔 이곳에 묵어가거나 들린 이들은 여지없이 그녀의 영향을 받아 야밤에 그렇고 그런… 행위를 꿈속에서 진득하게 탐하다 결국 정기가 홀라당 빠져나간다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엔 남녀 구별이 없고, 신부님도 이로 인해 적게나마 이득을 본다고 했던가?
“저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니 타협점이 있었거든요. 정교회의 장점 중 하나죠.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품고자 하기에 규율이 아래로 갈수록 완화되고, 위로 갈수록 엄격해지죠. 이게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요.”
“어쩌다가 신부님이 되셨는지요? 아, 혹시 실례가 되신다면….”
“괜찮습니다. 지인 부탁을 들어 줄 겸해서… 계속은 아니지만 10년 정도는 이 일을 해보기로 결정한 거니까요.”
“10년….”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면서 느낀 건데, 이런 곳에서 세월 썩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 많이 벌어 남들 구제를 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을 딱 하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어느 쪽에서 접선이 있었거든요.”
“음….”
그 어느 쪽이 왠지 모르게 예상이 가려 하는데….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여기 시스터 카멜린이죠.”
“신부님, 저는 정말로 괜찮은데….”
“그러자 이것도 그쪽에서 때마침 이야기를 하더군요. 믿을만한 사람이 오면 맡겨도 좋지 않을까 해서요.”
“??”
맡겨? 뭘?
“첫째로 그녀의 의지를 존중해줄 법한 이었으면 했어요. 이거는… 욕망에 솔직해지는 꿈속에서조차 이를 인내하고 그녀를 앞서 걱정해준 에드릭 님은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조건으로 보이는군요.”
“…하하하.”
아니, 저기…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는데요.
“후보자가 여럿 왔지만 모두 하루도 못 참고 여기서 무너져 내렸으니까요. 에드릭 님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자부심까지야….”
“지고지순하다는 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요소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저 같은 사람에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기적과 같다고 보거든요. 물론 태생이 그런 이들이야 많지만, 쓴물 단물 다 맛본 이가 그럴 수 있기란 쉽지 않겠죠. 에드릭 님은 의외로 여러 여성 분들과 몸을 맞춰보신 거 같은데… 그런데도 그럴 수 있다는 거엔 조금 감동마저 느끼고 있답니다.”
“어… 으음.”
어중간한 변명은 안 하는 게 좋겠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첫 번째가 그렇고, 두 번째는 그녀가 몸담아도 문제가 안 될 환경을 제공 가능한 존재여야 한다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드릭 님은 어린 나이에 상당한 수완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계신 분이라 들었고요.”
“…주시까지야. 어쩌다 보니 일이 잘 풀린 거죠.”
이건 진심.
애초에 한 것도 없는데 수완을 쌓았다니…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어려웠다.
“운도 실력의 일종이겠지요.”
거기다 너무 과대평가 해주시는데요?!
살아생전 이 정도로 과대평가 받아본 예가 있던가?! 그것도 남자한테?!
“마지막으로 그녀가 원하느냐 아니냐 겠네요. 내심 조건이 너무 빡빡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역시 그쪽 사람들은 유능하기 그지없군요.”
“뭐 그야…….”
이세계도 마음껏 넘나드는 분들이신데 오죽하겠습니까.
“후우.”
본사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말 것. 보안이 아무리 투철하고 아무리 믿을 법한 이더라도 내용 자체를 최대한 자제할 것.
그래서 본사의 명칭이 없단다.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건 본사, 본청 정도가 고작. 이름이 만들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불리고 언급되기에 그러한 명칭의 성립 자체를 용납 안 한다고 했던가?
“어찌 되었든 오늘은 기쁜 날이군요. 저희 밖에 없다지만 가볍게나마 연회를… 술은 하시는지요?”
“음, 있으면 살짝 마시긴 해도 취할 정도는 안 마십니다. 식후 반주 정도?”
“…가장 좋군요. 멀쩡할 땐 인격적으로 훌륭하더라도 술에 취하면 개나 짐승이 되는 이들이 허다하니까요. 갈수록 마음에 드는군요.”
저기, 왜죠? 왜 딸아이 시집 보내려는 만족스런 아버지의 표정을 하고 계신지요?
물론 딸아이를 붙들어가는 씹어먹을 악마 새끼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이 아닌게 어디냐만.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여기 있는 시스터 카멜린과 꿈속에서 보게 되는 그녀는 동일 인물이 아닙니다. 아, 동일 인물이기는 해도,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해주세요.”
“예? 그게 무슨…?”
“그거는… 직접 설명하시죠, 시스터 카멜린?”
“신부님… 정말 너무 마음대로 이야기를….”
자애로운 미소가 어울리는 소녀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최고다! 개쩌네! 반할 것만 같습니다요 아주!
“지금 이야기 못 하면 꿈에서 이야기해야 할 텐데요?”
“…….”
어느 쪽으로든 난감해하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성욕과는 다른 의미의 감동을 느끼고만 에드릭이었다.
수줍어하는 절세미녀 수녀님의 모습은, 다신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