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2)화 (42/454)



〈 42화 〉13. 모든 것은 N으로….

저번에 봤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복장으로 이곳의 마담, 사실 마담이란 직급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겠지만, 그렇게 불리는 자리나와 다시금 대면하게 됐다.

“살짝  억지를 담아 여체에 익숙해지게 해줬는데, 어때? 수차례 만지작대다 보니 대강 뭐가 어찌어찌할 수 있는지 스리슬쩍 알 것도 같은고?”




자주색 드레스는 같아도 가면과 머리를 뒤집어쓴 면사포 같은 게 조금 더 본격적으로 바뀔  제외하면,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왠지 텐션이 조금 올라간 것도 같고…?



“자네가 여기 온 목적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가 여기 적혀 있어.”




그러면서 그녀는 빨간색으로 밀봉된 봉투 3개를 왼손에 들고선 부채질해대는 게 아닌가.




“금시초문일 수도 있고, 이게 뭔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자.”

그러고는 왠지 야성적으로 느껴지지만, 편지지  하나의 밀봉을 거칠게 뜯어내 그 속 내용물을 오른손으로 뽑아내 살피는 그녀.

“사내답지 못 하다. 인간의 한계가 그게 고작일 테지만, 아무튼 따르고자 하는 노력은 가상하다. 마땅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좋을 것. 음, 간결해서 좋구나. 이건 누가 보낸 거라 생각하는고?”
“제 생각을 답하면 되겠는지요?”
“그러라고  걸고 있는 거지? 할 일 없어서 혼잣말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아뇨, 보통 윗분 중엔 대답을 바라지 않는 이들도 허다하잖습니까?
라고 속내를 토로할 순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짐작해보면… 앙겔 님 아니신지요?”
“티가 많이 나긴 했지. 그래서 그녀는 만족했다, 아니다? 만족했으면 왜? 못 했으면 왜?”



그것까지?! 난이도 장난 아니네!

“크흠! 우선… 앙겔 님은 종족 특성도 있겠습니다만, 대단히  화통하신 분이시죠. 강력한 배우자 내지 짝을 원하시는 그 태도도 그러하며, 실제로 행위로까지 그걸 실행해오셨습니다. 이건 단순히 그녀 자신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그녀들 종족에 특화된 뭐… 성향, 습성 그런  테지요.”
“응, 그래서?”
“제 나름에서는 노력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해야 할지 잘 몰랐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저   있는 건 그녀가 바라는 형태로, 원하는 형태에 순응하는 걸로 그쳐야만 했죠.”
“응, 그래서?”
“다만 그녀는 겉치레보단 직구를 난리고, 형식적이며 허례허식을 따지기보단 그냥 몸소 나아가 행동하고 외치는  익숙하신 분일 겁니다. 물론 생각이 없다거나 부족하다, 이런 걸 언급하는  아니라, 그러한 환경 및 문화에 녹아들어 있다는 걸 테지요.”
“그래서 만족했냐 아니냐! 그걸 말하라고! 말 돌리지 말고!”

아니, 그걸 설명하기 힘드니까 지금 생각 정리하는 중이잖습니까?! 나도 말하는 김에 뭐가 뭔지 시간도  벌고!



“그녀는 나중에 다시 보자고, 혹은 찾아갈  있다는  언급했습니다.”



말하고서야 아, 이게 답이구나 싶었다.



“정녕 마음에 안 들었다 하더라도 서비스 차원에서 그런 멘트를, 헤어질 시점에 건네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수틀렸다면 그냥 절 걷어차거나 내쫓거나 흠씬 두들겨 팼겠지요.”



……음, 말하고 나니 진짜 그럴  있을 거 같았다. 용케 나란 남자, 무사히 빠져나왔구나.



“넌 뭐 앙겔 님은 엄청 야만적이고 성급하고 폭력적인 존재로 여기는구나?”
“그건 아닙니다만… 오히려 그러면서도 대단히 섬세하고 배려심이 넘친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런 화통하신 분들은 답답하면 생각에 앞서 입으로 욕이 직구로 튀어나오고, 더 심하면 손찌검이 날아오니까요. 그런데도 그녀는 그 선을 넘으신 적이 없고, 또 그런 식으로 울컥하신 적도 없으시니까요. 자제심 문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그런 거에 익숙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애초에 한국인으로 자라나며 급한 성격의 인간들에도 종류가 다양하고, 진짜 심한 인간은 자제하려 해도 욕이 절로 튀어나오며 얼굴이 붉어지고 목청이 드높아지는 새…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걸, 사람을 접하다 보면 모를 수가 없을 거다.
특히 갑질하는 새끼들이 그렇지.


똑같은 노가다 판을 가도  잘해도 욕을 한 바가지로 그냥 일상 문구 던지듯 해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런 곳에서조차 현자 못지않은 혜안과 심성을 가진 이들이 발견되곤 한다.

…거의 다 없고, 일하는 곳 환경이 느긋하다거나 여유를 부릴 여지를 안 줘서 문제지만.
근데 그게 당연한 거다.
공사판은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 터지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하고, 그러다 훅 가면 누구 손해인가?
…뭐 그쪽 업계를 미화하거나 그렇다고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지만.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한창 젊을 땐 취직 전  모아둘 생각이다, 자취도 하겠다 해서  의욕적으로 여러 곳을 싸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하루가 하루 같지 않을 정도로 다급했었지만 그래도 어찌 버틸 만은 했었다.

그 버틸 만한 여력이 사라진 건, 이렇게 열심히 해도 뭔가 돌파구가 없다, 노력해도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심지어 내가 뭣 빠지게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그렇게 1년 2년을 지새워도, TV며 인터넷, sns 상에 보이는 잘난 이들의 하루 혹은 일주일 혹은 한  정도면 자신이 몇 년을 고생한 걸 단번에 이뤄버리는데, 자괴감이 안 들고 배기겠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터넷 방송이니 유튭 같은 걸 자주 안 봐서 망정이지, 그런 거에 빠졌다면 이런 자괴감은 더욱 심해졌을 거다.

젊은 세대는 희망이 없다.
다시 말해 절망의 세대.


그리고 대한민국 노인 자살율이 OECD기준 1위라는데, 그들 세대는 절망이 아닌 무망(無望), 다시 말해 바라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갈구하는 게 뭔지를 모르고 혹여 있다 해도 그걸 추구하고 그걸 이루기 위한 노력을 행할  없고, 거기에 대한 희망을 못 느끼기에 삶을 포기하거나 손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통계를  적이 있다.
물론 거기엔 빈부격차며 여러 문제들이 한데 엮여있겠지만….


한국인을 가장 멍청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뭘 좋아하세요?
어떤 걸 좋아하세요?
이리 물으면 다들 자기 주장력이 급격히 추락한다.

단순히 식사 메뉴, 음식 고르고 이럴 때는 조금 나을 수 있는데, 그때조차도 뭘 먹지? 뭐가 좋지? 뭘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러면서도 정작 고르지 못해 서로에게 미루고, 네가 정해라, 빨리 말해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티격태격하다 아무거나로 결론이 나기까지.
그러다 인터넷 검색 혹은  보이는 곳 들이대고….


매 순간 배를 채우는 그런 것조차도 이런데 그보다 훨씬 심도 깊은 이야기로 접어들면 모두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한다.

이것은, 좋아하는 게 뭔지를 모르기에, 진실 되게 모르기에 그러는 것도 있지만, 그걸 추구할  있는 노력과 그 저변에 깔린 기본 바탕이 부족해서 포기로 인해 그런 결론이 굳어지고, 굳어지다 못해 아예 그걸 받아들여 젊을 적부터 체념하게 된 것이 습관이 드러난 반증이라는 이야기를… 음, 어디서 들었더라?

애초에 그걸 보고 심각성을 느껴서 30 직전에 면접 보러 뒤늦게라도 싸돌아다니기 시작한 거니, 누군가에겐 단순 데이터 쪼가리일지 모르나 내게 있어선 고맙다면 고마운 내용의 글이었던 것도 같은데.



“그러니까 결론은, 그녀는 너에게 만족을 했다?”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과신하는 거 아냐?”
“과신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였다면, 여기 오기 전까지였다면 나는 말끝을 흐리거나 분명하게 답하지 못 했을 거다.


그녀의 추궁하는 어조에 질려 버리든, 위축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지금처럼 확신을… 지금도 좀 불안정하지만 그런 태도로 그녀를 직시하며 이런 말을 행할 순 없었을 거다.


면접을  때도 이런 태도를 고치기 위해 여간 노력했지만, 도저히 고쳐지지 않았다. 서류가 붙으면 뭐 하나, 긴장한 기색 역력한 상태로 말도 제대로  하는 새끼였는데.

그런데도 지금은 이러고 있다.
…확실히 바뀌었다.
그걸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음, 70점. 그래, 주제는 알고 떠들어야지. 그럼에도 아직 자신감이 좀 많이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어그러지고 망가지더라도, 일을 망치는 한이 있어도 이 몸에 한에서는 그게 진실이라고 밀어붙여야지. 하여간 동아시아 쪽 인간들은 왜들 그리 확신들을 못 하는지. 사상관이 문제인가, 자라온 배경이 문제인 건가.”
“……?”



그런 식으로 몇 차례 쑥덕대던 자리나는.



“그건 됐고.”

손에  종이를 뒤로 내던진 자리나는 왼손에 쥐어진 또 다른 편지지의 밀봉을 뜯어내 붉은 내용물을 재차 끄집어냈다.


“자, 다음.  새끼 나이가 몇인지 궁금하더라. 얘가 순하고 맹탕이지만 그래서 괴롭히는 보람이 있었다. 엇나가지 않게 잘만 조교 하면, 적절한 작품이 되지 않으려나? 인내심은 강하다기보다는 억눌린 세월이 많은 거 같더라.
환경적 요인에 의한 후천적인 절제심이랄까, 풀어서 말해주면 단순히 겁이 많은 거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 입길 꺼리듯 타인과도 물리적, 간접적으로 접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데, 본인이 이걸 잘 모른다. 그걸 단순히 위축됐다, 겁이 많다, 익숙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을 거다.
짐작하기로 이미 성격, 성향이 자리잡은 상태에서 재차 타인과 격리 혹은 오래 접하기 힘든 환경에 놓였겠지. 그리고 그 두려움은 유년기, 청소년기 때 주입 당한 걸 테고.
그래서 요령도 부족하고 사람 대하는 기본 매너는  떨어졌지만, 예의가 뭔 줄은 알고, 윗사람에 대한 예절이 갖춰진 건 이 새끼 나라의 근본이 그런 거니 동등한 이들보단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 한에서는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리더나 주도적으로 일을 이끄는 부분에선 거의 경험이 없을 테니, 기회를 준다 치면 앞서 경험치를  쌓아야 하지 않을까? 개화되지 않은 꽃과 같으니, 꿀벌이며 나비가 자신을 쪽쪽 빨아 먹도록 잘 훈육시키는 식으로 유도해보는  어떨지? 라는데?”
“…….”



적성 검사인가? 심리 테스트? 아니, 그보다 더….

“어떻게 생각해?”
“으음, 느낀 게 많네요.”

알고 있었던 것도, 어중간히 긴가민가하던 것들도.



“누가 썼는지는 알겠지?”
“…마리 님일 거라 생각됩니다.”
“응 맞아.”




생각해보니 이거 맞추는  그리 어려운  아니구나.
더군다나….



“그러면 이제 대망의 제이실라 만 남은 건가?”



하며 마찬가지로 손에  걸 뒤로 내던진 자리나.
이윽고 마지막 편지를 양손으로 개봉하니.




“어디 보자….”



제이실라는 내게 한 차례 물을 먹인 예가… 아니, 그걸 따로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걸 파악하니 조금… 뭐랄까.



“…….”



이상하지만 양손으로 편지 내용물을 붙든 자리나는 그걸 보며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내가 글눈이 어두워서 그런가? 잘못  건 아닐 텐데?”
“……?”
“너는 글 못 읽을 테니… 로메? 이거 읽어봐.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우리 뒤쪽에  있던 로메리스가 그런 자리나의 명에 차분히 다가와 붉은 종이를 받들었다.

“잠시만요.”




차분한 어조로 그리 초조감을 달래준 그녀는.


“…….”


자리나와 같은 독특한 리액션은 아니었지만, 의아한 기색을 보인  매한가지.



“이거 그러니까….”



그래도 계속 침묵할  없기에 그녀는 마지못한 건지, 당혹스러운 건지 모를 어조로 그리 단언했다.


“…그냥도 아니고 하이 엘프 심처에 방문 가능한 초대권인 거 같은데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날려 주다니. 실망했어! 그 망할 계집!”


자리나는 왠지 분개해 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기들 옷을 건네줄 때 살짝 눈치챘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잖아?”
“……?”




나만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따름.
그런 내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자리나가 말하기를.

“인간이 단순 엘프 마을까진 가더라도 하이 엘프, 자존심이 극도로 드높아 종족 차별이 극점에 이른 그… 오래  노망난 것들이 살아가는 곳엔 좀처럼 발을 내려놓을 수 없거든? 특별히 인정하고 선택 받지 않는 한.”
“…그런가요?”
“근데  그들에게 은혜를 입힌 것도 아니야, 무력이 특출나지도, 예술적 재능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탁월하다 쳐도 그들에게 뭔가 이상을 남겨야 눈에 띌까 말까인데… 이걸? 정말? 하 참!”
“음, 풀이해서 말씀드리면요, 제이실라 님께선 에드릭 님을 친우로 인정하신 거라 여기시면 돼요.”
“친우는 무슨! 손님이지! 아, 그리고  이제 엘프하고 떡 쳐도 된다.”
“……예?”

이건 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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