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11. 불합리함이 꼴림(?)을 만든다.(2)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걸 드시면 한동안 문제없을 거예요.”
“…그런 가요?”
“예, 다만 단점이 하나 있다면….”
에라힘의 목욕 시설은 다양한 종류가 있었지만 이조차도 층마다 차별점을 두었다.
단순 개인실의 사람 두셋이 들어가도 무난히 차고 넘치는 욕조 정도서부터, 네다섯을 감당 가능한 욕조가 든 욕실이 있다면, 5층 이상부터는 각각 5층 단위로 대중 목욕 시설들이 형성돼 있었는데 올라갈수록 공간도 넓어지며 고급스러워지고, 서비스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되곤 했는데, 에드릭이 보내진 곳은 21층. 그가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선 그 층이었다.
그곳은 증기욕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목욕탕이라기보다는 사우나 시설에 가깝다고 봐야됐다.
물로 몸을 씻고 뜨거운 물이나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기보다는 이렇게 증기욕에서 땀을 빼는 걸로 목욕을 대신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마련된 공간인데, 안내 매뉴얼에 따라 이곳에서 땀을 뺀 이들은 20층 혹은 25층에 있는 목욕 시설로 옮겨져 몸을 씻어내고 마사지를 받는 등, 온갖 서비스를 제공받기에 이른다.
물론 21층에서도 서비스를 받고자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며 간단 샤워 시설도 물론 자리하고 있기에 목욕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라면 가벼이 넘겨도 무방.
에드릭은 바로 그곳에서 여성들에게 마사지 내지 말 상대를 해주는 임시 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허리에 타월을 감싼 걸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알몸 상태였기에 일을 하기 전 확실하게 타월 매듭을 잘 엮어야 했다. 마치 여성의 짧은 스커트 같은 느낌인데 이건 위아래로 입는 게 아니라 묶는 거다 보니 매듭이 조금만 헐거워도 바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의외로 사람이 많네?
더군다나 인간보다는 인외 종족들이 훨씬 많았다.
피부색이 다양한 이들서부터 아주 가지각색이었는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남자가 하나도 없어?’
아, 마사지사 빼고.
더군다나 다들 알몸. 몸을 가린 여성의 수는 극히 일부였다.
예컨대 여기는 전라의 여성들이 흘러넘치는….
“어머? 넌 신입?”
빨간 피부의 여인이 흥미를 가지고 접근해오자, 얼어붙은 에드릭이 반사적으로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예, 오래는 아니고 며칠 잠깐 체험 삼아 방문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어머, 그래?”
피부가 빨갛다고는 해도, 이게 엄청 이상하거나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머리에 달린 자그마한 뿔과… 꼬리가 눈에 띄었는데, 이들이 어떤 종족인지 살짝 분간이 가질 않았다. 자료로는 엄청 많이 살펴봐 뒀는데….
“음, 열심히 하는 건 좋지. 좋고말고. 그래, 넌 뭘 할 수 있니?”
“아, 별다른 건 아니고….”
그러고 보니 딱히 뭘 하라고 명명백백하게 일러준 게 아닌 터라 에드릭은 형식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이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이런 곳에 있는데도 평상심을 가질 수 있다니. 아니면 정말로… 고자? 진짜라면 젊은데 참… 고생 많다 얘.”
……이상하네. 고자 소리를 듣는데 왜 아무런 느낌이 안 들지.
실제로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고 온갖 진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져 코피마저 한 차례 흘렸었지만, 여전히 내 물건은 깜깜 무소식.
로메리스가 건네준 물약을 먹은 뒤로 계속 이 지경이다.
근데 물건이 안 선다 뿐 그에 관한 감정 내지 흥분도가 마비된 건 아니기에 속이 불편한 건 여전. 흑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가는 건 여전했지만….
물건이 반응 안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불편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내가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라니!’
솔직히 이미 반찬은 넘쳐나다 못해 배가 부를 지경이니 화장실이든 어디 조용한 곳만 주어지면 한 발 빼내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지금,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긴 했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마리가 해줬던 말이 쉴 새 없이 떠오른다.
익숙해지면 질린다.
야동을 제아무리 많이 봤다 쳐도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엔 인간 아닌 이들이 아주 널려 있었으며, 심지어 털이 수북한 인외 종족들까지… 그런데 왜 거기에 반응을 하는 거지? 나란 놈은!
내게 이런 변태 기질이 숨겨져 있었다니!
더군다나 계속 관심을 표해오는 눈앞의 옅은 빨간 피부의 여성 분도 다시 보면 상당한 미녀에 해당했다. 몸매도 좋고 목소리도 쾌활하고 무엇보다 친근감 있게 말을 걸어오는 게 퍽이나….
“그래, 처음엔 어색할 테니 이 몸이 개시 손님이 되어주마.”
“하하… 감사합니다.”
일전에 숙소들에 배정되었던 마사지 침대보다는 약간 상태가 떨어져 보이는 기기였지만 여기 것도 결코 모자람이 없게 느껴졌다.
마사지 침대에 올라선 그녀는 돌아누운 상태. 분홍빛을 내는 적당한 장발을 끈으로 묶어 옆으로 팽개치자 붉은 목덜미가 드러나며 내 묘한 호기심을 건드려왔다.
아니, 똑같은 목덜미잖아. 그러니까 매력적인데 이색적이라 더 끌리네? 뭔 소리하고 자빠졌어!
자아와의 맹렬한 갈등을 애써 무시한 에드릭은 우선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미 증기욕에 한바탕 몸을 굴렀는지(?) 땀인지 수분인지 모를 물기를 그녀의 붉은 피부 위에 잔뜩 자리하고 있었다.
‘크흠.’
매력적…인 건 둘째치고 뭐부터 시작하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그러나 물기가 묻은 상태면 주무를 때 조금 애로사항이 꽃필 텐데.
에라 모르겠다는 심경으로 우선, 어색함을 달래고자 말을 걸었다.
“여기는 처음 오셨나요?”
“글쎄, 어떨 거 같아?”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시지 좀 마시라고요!
‘어느 게 정답이지? 자주 와본 거 같다고 하면 칭찬이 되려나? 처음이라고 하면 칭찬이? 어느 쪽?!’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했더라?!
뭔가 이론은 많이 배운 거 같은데 역시 태생이 아싸여서 그랬을까. 도무지 적절한 대응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와, 이거 심각하네!’
그러다 문득 선배가 해준 모범 대응 방식이 하나 떠올랐다.
[할 말 없어? 웃어. 화~알짝. 그러고 대강 넘겨. 상대가 추궁해오면 GG 치고 솔직하게 대답하고, 어물쩍 넘어가면 살았구나 하고 넘기고.]
그래서 나는 활짝 웃어줬다.
“어떨 거 같냐니까?”
그리고 그녀는, 짓궂은 눈초리로 이쪽을 추궁해오고 있었다.
선배, 안 통하는데요?! 그냥 솔직하게 자진 납세… 아니, 고백할까 봐요?!
“익숙하신 듯 보이시는데요?”
“그래?”
그나마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아부성 멘트에 올인한 덕에, 다행히도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 했다.
‘질문을 똑바로 해라.’
첫인상이 관계에 있어 반을 먹듯, 질문이야말로 대화를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첫 질문만 잘 꿰차도 반은 먹고 간다 했었지?
거기다 상황을 보자.
이 상황은 그녀가 내게 서비스를 요청한 게 아니라, 맡긴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순수하게 뭐 할 줄 모르니 막 물어본다? 이건 아닐 거다.
미용실을 찾아갔는데 실력이 미숙하다고 서비스 받는 이가 이를 일일이 고려해주고 봐주며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이거야말로 어불성설.
뭐… 여기가 미용실은 아니고, 그녀도 어느 정도 고려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예 쌩 초보라는 사실까지는 몰랐겠지. 기본적인 기대치라는 것도 있겠다….
우선 수건으로 간단하게 그녀의 몸을 천천히 부드럽게, 마치 식사 시작 전 간단하게 에피타이저를 돌리듯 물기를 닦아내는데 열중했다.
수건이며 타월들도 다들 고급스러운 녀석들이라 적당히만 훑어줘도 느낌이 참 좋았다. 거칠 것도 없고 스르륵 지나가도 물기를 쭉 빨아들이기까지!
그러면서 시작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저는 에드릭이라 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누님의 이름, 알 수 있을까요?”
“발 메인.”
발?
발음이 그렇다지만 이게 참….
이름이 발이고 성이 메인이라고 해석해야 되려나? 그게 아닌 이상 이름을 밝힐 때 그것들을 떼어서 언급하진 않았겠지.
음, 발 누님하면 뭔가 어감이 좀 그런데. 메인 누님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아니, 그녀는 별 상관없겠지만 내가! 내가 좀 그렇다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에드릭 아바타가 조금만 더 나이 대가 높았다면 예쁜 누님 혹은 누나, 아가씨 소리를 했겠지만 어쨌든 소년이긴 해도 자칫하면 꼬맹이로 보일 법한 내가 아가씨 그러면 뭔가 시건방져 보여 일단 누님이라 불렀는데… 음, 그럭저럭 넘어가서 다행이다 싶었다.
“누님도 잘~ 아시겠지만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성심을 다해서, 절 신경 써주신 누님을 위해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좋아. 마음껏 해보렴.”
자신감, 자신감.
뭐가 됐든 일에 종사할 땐 자신감을 내비칠 것.
파트타임이든 알바든 뭐든 일할 때는 어설프고 어리숙한 행태를 좋게 봐주는 이는 없는 법.
부족함을 고려한다 쳐도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그런 티를 내비치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할 것.
부족함으로 벌어지는 사태는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감수할 것.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해결하는데 집중 또 집중!
그래도 짬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알바를 뛴 덕에 업무에 들어간다는 기분이 들기 무섭게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물론 편해진 만큼 그녀의 육신에 집중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괜스레 아랫도리에 반응이 일어날까 조바심이 났지만, 개뿔. 끄떡도 안 한다.
양손으로 발부터 시작해서 종아리 앞뒤 좌우를 차근차근….
‘응?’
그러고 보니 이거 이미 다 해본 거잖아?
물론 어설프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거기다 주무르다 보면 뭉친 곳들이 느껴졌고, 그곳들을 집중 공략하니 발 누님도 의외로 그쪽이 핀 포인트였는지 반응이 사뭇 좋았다.
“그래, 거기거기! 흐응! 계속 해줘. 시원하네….”
엄지 손가락을 모아 꾹꾹, 손톱으로도 꾹꾹, 주먹을 쥐어 손가락 모서리로 찔러넣듯 문대기도 해주고, 손바닥을 펼쳐 널찍하게 비벼도 주고….
굳은 게 살며시 풀리는 느낌을 직접 느낄 정도로 아주 진득하게 마사지를 해주니 이게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도 누운 채로 후우 하고 기분 좋은 날숨을 흘려대고 있었다.
“좋네. 좋아.”
TV에서 어설프게 본 방식으로 팔꿈치로 무게를 실어 꾹 눌러주니 이것도 좋다고 하윽! 하면서 적절한 리액션을 펼쳐주시기까지 하신다.
그런 식으로 양다리를 아주 진득하게 해주니 무려 그것만으로 20여 분은 금세 흘러갔다.
집중하고 있을 땐 의외로 음란한 쪽으로 사고가 흘러가진 않았는데, 막상 의식이 조금만 풀어져도 금세 아랫도리가 뻣뻣해질 정도로 상념이 그쪽으로 몰렸지만… 웬걸. 그래도 이놈, 반응을 안 한다.
덕분에 고스란히 심적 부담하고 신체적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게 됐는데, 로메리스는 분명히 말했었다.
[이거 마시면 아래엔 반응이 안 가지만, 대신 몸으로 그 반응이 전파되거든요?]
처음에 그 말이 뭔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젠장.’
흥분도가 과해지니 이건 마치 전신이 거시기가 된 듯한 기괴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민감도로 따지면 아랫도리의 10분에 1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 정도라도 됐다는 게 이질적인 거다.
오죽하면 마사지를 하면서 스스로 애무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고 앉아 있겠나!
덕분에 그녀를 주무르는 나도 체력적으로 힘이 딸려서 숨이 흐트러진다기보다는, 흥분해서 집중력하고 힘이 흐트러지고 있을 정도였다.
‘아, 근데 이거.’
묘하게 중독성 있는데?
거기다 여기서 더 기분 좋아진다 치면… 흐음!
“너, 너 근데….”
다리를 거쳐 엉덩이, 이제 그 위로 와서 허리와 등을 집중 공략하고 있던 차였다.
“왜 그렇게… 야하게 주물러대냐?”
“예에?”
“아니, 아무것도!”
왜 그리 당황하시나요? 귀엽게시리.
근데 기분 탓인지 문득 주위를 둘러보자 이쪽에 상당수 시선이 꽂혀 있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됐다.
참고로 여긴 대중적인, 즉 공개된 마사지 영역이기도 했기에 우리 말고도 이런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 또는 제공받는 이들이 수두룩했는데… 이상하다? 왜 남자가 나뿐이지?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몇 명 있었는데?
여자 마사지사뿐 아니라 마사지를 받는 이들도 묘하게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급히 시선을 돌리는데… 왜들 그래요? 죄 지으셨어요?
그 와중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들은.
“쟤 좀 봐. 뭔가 좀… 그렇지 않아?”
“그, 그렇지?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먹고 싶다.”
“마, 말 걸어봐? 여기 직원이면 괜찮지 않을까?”
“얘가 좀 너무 야한데? 적당히 야한 냄새를 풍겨야지….”
“이건 그건가? 우리한테 덮쳐달라고 지금 저러는 거지? 하우!!”
아니, 저기요? 님들? 왜들 그리 발정들을 내고 그러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