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타이틀의 떡신 들어갑니다!!!!!504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루리가 잡은 물고기들은 지하에서 살던 녀석들 치고는 비교적 멀쩡한 외견이였다. 종종 아귀 같은 녀석도 있었지만 보통은 길거나 넙죽하거나 하지 그리 흉측하지는 않았다.
나야 가시 같은거 적으면 손질하기는 편하지만......아무튼 몇놈 해체해서 내장을 빼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죄다 재각각의 특징이 있는터라 살이 붉고 희고의 차이, 혹은 독의 유무의 정도로 구별해서 나누었다.
"이놈은 독 들어 있어서 버리고, 이놈을 먹을 수 있고, 이놈은.......아, 종류가 상상 이상이네"
"막 지하에서는 지들만의 리그니까 엄청 번식하지 않았을까? 아, 생각해보면 이만큼 물고기 구할 수 있는데도 여기 밖에 없으니 특산물로 팔아도 되려나?"
"생산량이 그만큼 나올지가 의문이기는 한데. 뭐, 나쁘진 않겠지"
유일, 독점이라는 메리트는 경쟁자도 없는 좋은 소재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그게 좋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파는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게다가 이건 환경에서 비롯된거니까 어쩔 수 없지! 꼬우면 너네도 궤도 폭격 위성 써서 호수 만들던가!
"술 안주로 해먹을거면 간이 강한 쪽이 좋으려나. 생선에 간이 강한거면 역시 조림이 좋겠지?"
"양념 할거는 있어?"
"육수야 우려내면 되는거고, 고추 정도는 요람의 종자 보관소에 있어서 키워서 수확했지"
가장 좋은 방법은 김치나 간장 같은, 충분히 맛을 우려낼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 만들 여유가 나지 않는다. 당장에 몰려오는 사람들이 먹을 식량 생산에 힘쓰고 있어서 아직 그건 시기상조다.
덕분에 요직에 앉아 있는 우리들도 큰 사치는 못부린다.
이후에 안정권에 이르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사치는 부려야 하지만. 뭐, 지금은.
"크으으으, 내가 이 시대 최초로 생선을 먹는구나!"
"아, 그렇긴 하겠네. 애초에 물고기란 단어가 있기나 하던가?"
"불고기는 있음"
"언제적 썰렁개그 하고 앉았냐"
마실물도 없는 세상에서 물고기가 자랄만한 곳이 있을리 없다. 수원지는 종종 있지만 지하의 수백킬로 암반을 뚫고 겨우 올라온 희미한 물줄기에서 물고기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사실 고추 같은 매운맛을 내는 작물도 보통은 안키우지. 여기니까 가능한거다.
아무튼 후딱 요리해서 내왔다. 루리는 두툼하고 기름진 살점에 붉은 양념으로 조려진 조림을 한입 크게 베어물고는 그대로 술과 함께 넘겼다.
아, 물론 술은 백향 선인장 술이다. 시온이 좋아해서 일단 여길 떠날 때 챙겨갈 물건 중에 백향 선인장 씨앗도 있다.
"좋다, 좋아. 응, 괜찮아. 이런 여유를 원했어......."
"한잔 마시고 취했냐"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도 있잖아"
어느덧 밤이 깊었다.
해는 지고 달이 떠 지상을 비춘다. 이곳에서 사막을 비추는 달빛은 꽤나 볼만한 광경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야경도 좋아한다.
밤에도 밝은 야경은 인간이 환경을 거부하고 스스로 쌓아 올린 문명의 증거다. 현대에서는 야근의 증거라고 하겠지만 이 시대에서는 발전의 척도를 보여준다.
보통은 해 지면 집 들어가고 해 뜨면 일한다고. 적어도 밤에도 밝힐 수 있는 조명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나도 야경을 구경하면서 슬슬 한잔 한다. 기름진 생선살에 살짝 매콤하면서도 달짝찌근한 양념이 어우러져서 고소한 맛이 한층 더해진다. 여기에 술을 마시면 꿀떡꿀떡 넘어간다.
"아, 근데 무드 잡지 마라. 뭐가 목적인지 대충 아니까"
"아니, 오또케 알아찌!"
"루리 너네들은 들키면 꼭 그 소리 하더라"
루리는 아직까지 다른 섹스하고 싶다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를 바라는거겠지.
"다른 좋은 사람도 많을텐데 왜 나한테 그러는건데?"
".........."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은 나와 루리 단 둘 밖에 없다. 그만큼 솔직하게 대답하고 물을 수 있는 자리였다.
거기에 술까지 들어갔으니......아, 나는 취하지 않았지만 루리가 말이다.
"워낙 내가 첫경험이 안좋아서 말이야. 다음에 할 때는 좋은 사람으로 골라야지, 하고 생각했어"
"아"
그러고 보니까 루리의 첫경험은 매춘이였다. 그것도 화대는 감자 두개. 그나마도 하나는 휘애한테 줬다고 했던가.
뭘 생각해도 그 조건에서 좋은 상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수두룩할거란 생각에 든 씁쓸함을 단 술로 넘겼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꿔. 평생 기억에 남을 행위를 그런식을 해버렸으니까.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아니였고......"
"후회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거야. 그런 방법 밖에 없었으니까"
"흠"
굶어 죽기 전의 사람에게 곡식 한줌의 가치는 크다. 목말라 죽기 전의 사람에게 물 한모금처럼.
루리 스스로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처녀를 판 것이다. 거기에 연민은 느끼지만 이미 지난 일이며 내가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였다.
"그리고 나 말이야, 전부터 아이는 키워보고 싶었어. 여유가 없었을 뿐이지. 지금은 시간이 없고"
"시간? 아......"
루리의 수명은 앞으로 기껏해야 40살.
안그래도 평균 수명이 낮은 이 시대에서 석영 공장에 들어가 일했던 반동으로 그렇게까지 줄어들었다.
지금 루리의 나이는 자세하게 모르지만 고등학생 정도. 아마 지구 쪽 루리랑 비교하면 한두살 아래일 것이다. 그 수명으로 지금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스물이 되는걸 보는게 간당간당해진다.
"요람에 의료 시설도 있잖아"
"치료 받아봤어. 하지만 가망 없다더라. 워낙 안좋은거에 당하고 어릴 때 당해서 시간이 꽤 지난거라......"
"수명 연장 시술은?"
"애초에 이쪽 의료 도구나 약품은 영자 기반이라서 영자 오염 물질에 접촉한 나한테 효과가 잘 안들어. 그런 상황에 정밀한 시술을 받을 수 있을리 없고 독한 약을 쓰면 내 몸이 못버틸거야"
"이래저래 산 넘어 산이구나"
"뭐, 그렇지"
결국 루리가 중년의 나이로 죽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나마도 운이 좋을 경우에나 그럴 것이고.
당장에 내가 손을 쓰면 루리의 수명을 늘려주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하더라도 몇가지는 있는데 제일 좋은걸 골라서 쓰면 될 뿐이다.
하지만 수명을 늘려도 루리의 목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안해준다는건 아닌데 그래봤자 핑계 하나가 줄어들 뿐이였다.
"혹시 불륜 같은거 관심 있어?"
"미쳤어?!?! 내가 시온한테 맞아 죽는 꼴 보고싶은거야?!"
"어차피 맞아도 안죽고 죽어도 환생하잖아"
"그런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당해도 괜찮은게 어디있겠냐"
시온은 오로지 나 일편단심이라고 하지만 나는 종종 다른 사람이랑 연인이 될 때가 있다. 이번 회차......라고 하기에는 지금 몸뚱이는 1회차 몸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화성에 있을 아드리아나도 친구 이상의 관계고.
그 때마다 시온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마음을 거부할만큼 매정해질 수 없는 내 잘못이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아, 왔어?"
"맛있는 냄새 따라 왔습니다. 생선 조림입니까?"
"한잔 할래?"
분위기가 묘해지는 가운데 시온이 찾아왔다. 솔직히 다행이다. 이대로 무드 타고 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았으니까.
여자 둘과 남자 하나가 모여서 술을 마신다. 꽤나 벨런스가 맞지 않았지만 나랑 시온은 부부니까 세이프.
"음, 생선도 여기 나름의 맛이 있긴 합니다. 양념도 맛있긴 하지만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
"그건 어쩔 수 없지. 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간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림의 레파토리가 넓을리가 없으니까. 고추 같이 매운맛 나는 향신료도 최근에 수확해서 그거 하나 가지고 만들려면 빡세"
"그래도 맛있으니까 괜찮아"
"뭐, 그건 동감입니다"
시온은 먹는 안주 이상으로 술을 마셨다. 원래 좋아하는 백향 선인장 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시는 양이 꽤나 많았다.
홧술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반반쯤 섞여 확신을 못하고 있어서 슬쩍 물었다.
"어디까지 들었어?"
"뭘 말입니까?"
"모르는척 하는걸 보니까 화 났구나"
"앗, 이거슨 수라장의 예감!"
"그 수라장의 근원인 주제에 뭔 소리냐"
"그래서 안도망가고 있잖아?"
생선 조림의 두툼한 살점 한조각 떼어 먹고는 꽤나 큰 잔에 든 백향 선인장 술을 그대로 털어넣는 시온은 폭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뭐, 솔직히 말해서 큰 감정은 없습니다"
"작은 감정은 있다는 소리 같은데"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저희 남편이 인기가 많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 나 같은거 좋아할만한 사람이 너 말고 얼마나 있다고"
"그런것 치고는 꽤 많지 않았습니까?"
"하기사, 루리루리 네트워크 뒤져봐도 열명이 넘는다고 나오는데. 비공식으로는 얼마나 많겠어?"
"야!"
"모험자 루리 나와라! 최악 아저씨가 엘프 따먹은 썰 좀 풀어봐!"
"너! 루리루리 네트워크에 그런거 물어보면 못써!"
-무슨 엘프? 그냥 엘프, 아니면 하이엘프?
"엣, 그건 나도 모르는데!"
"아니, 어째서 전파가 나한테까지?!"
옛날에 알던 루리라서 그런가?! 분명히 갓-루리루리의 괴전파는 옛날 옛적에 차단했을텐데!
늅뉴비라서 뭣도 모르고 괴전파 수신하던 시절은 지났다고!!!!
"뭐, 이렇게 하면 결국에는 누군가가 상처 받는 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희가 떠나면 루리는 여자로서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죽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이나 저의 마음도 썩 편하진 않을테고"
"앗, 그럼 설마!"
"오늘은 많이 마셨으니 저는 일찍 들어가서 먼저 자겠습니다. 오늘 하루 푹 자고 내일 아침에서야 일어날겁니다"
시온은 정이 많다. 감정이 드문 하논이면서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니 정이 많아서 여리다.
그래서 아무리 악인이라 하더라도 살인에 죄책감을 가지기에.......누군가 상처받는 일이라면 필요하지 않는 이상 하지 않는다.
"일어나기 전까지 들어오면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를겁니다"
"괜찮겠어?"
내가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시온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차피 당신이 돌다 돌아올 장소는 제 옆자리 아닙니까. 잠깐 자리 비우는 것 정도야 신경쓰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썩 좋은건 아닌데......."
"뭐, 인기 있는 남편을 둔 아내의 고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지막에는 돌아온다는걸 알고 있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온의 공인이 떴다. 솔직히 허락해줄지는 몰랐지만 아마 루리가 했던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나니까 아는건데 시온이 허락한건 루리를 연적으로 보고 있지 않아서다. 좀 성격 나쁠지 몰라도 연민에 의한 적선 같은거. 그런 감정으로 여자를 안으면 좀 그런데........
"상관없어. 어차피 나도 사랑 같은거 크게 바라진 않았거든"
"작게는?"
"그런거 물어보면 안되지.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그걸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텐데"
"뭐 어때, 불륜 섹스 하지마루요!"
"고운말 쓰라고!!"
시온이 허락해도 내 마음은 별개다. 아, 물론 시온이 허락했으니 내가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없지만 마음의 문제는 다른 것이였다.
내가 루리를 안는건 아까도 말했지만 적선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매춘보다 질이 나빴다.
대가를 주고 받는 성의 매매보다 대가(사랑) 없이 하는 성교는 강간이랑 다를바가 없으니까.
억지로 하냐 동의 하에 하냐의 차이일 뿐이지 내가 보기에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거의 분위기가 그렇게 넘어간 지금도 나는 마음 한켠으로 내키지 않는다.
"원래 말이지. 떡정에서 시작하는 사랑도 있는 법이야"
"거 무슨 동인지 같은 말을 하고 앉았냐......내가 눈동자는 그만 좀 보라고 루리들한테 맨날 이야기 하는것 같은데"
"아무튼 본처 허락도 있겠다 슬슬 시작해보지 않을래?"
"꽤 적극적이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 너네 루리들은 낮이밤져였지 않아? 그렇게 재촉해도 돼?"
"확인해볼래?"
섹드립도 노골적으로 치고 야한거 좋아하는 주제에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면 한발 빼는 패기 없는 애들이 루리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모양처의 표본 같은 느낌의, 남자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그런 성격이다.
.........직접 확인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온이 루리를 허락한건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몇가지 있지만 최종적으로 주인공이 루리를 여자로서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죠.
애초에 어지간한 여자는 살짝 질투는 해도 너그럽게 봐줍니다. 수명 때문에 결국 승자는 자기인걸 아니까요.
게다가 첫경험은 그런식으로 날린 애한테 이건 애정 행위 보다는 치료행위에 가까워서.....응?
섹스가 치료 행위......앗, 분명히 이런 소재를 봤는데 어디있더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나오는 소재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