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편은 곧 나오니 놓치지 마세요!495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중요한건 교섭이다. 화수 상단주가 가지고 온 물건이 마을 이주를 위한 물자라고 하지만 그걸 쓰지 않았다면 손해는 줄어드는 법이다.
여기까지 온 보람은 없어지고 마을이 무너진건 어쨌든 이쪽 사정이니까 맺은 계약이 파기 되지는 않아도 하기에 따라서 나름의 계약 변경이 충분히 가능하다.
"무화를 내놓으라 하시다니......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당한 계약입니다"
"알아, 그러니까 그 부분을 교섭하고자 하는거야. 설마 내가 다짜고짜 힘으로 목 꺾어버리고 묻어버리려고 왔겠냐?"
나도 내 얼굴을 잘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이 그런말 하면서 웃으면 그냥 농담으로 치부하겠지만 험악한 내 얼굴로 이 소리를 하면 반쯤 협박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여기는 법보다 힘이 지배하는 곳. 나 혼자 화수 상단주의 병력을 전부 죽일 수 있는데 나름의 눈치가 있는 놈이 이해 못할건 아니다.
원래 좋은 교섭은 당근과 채찍이 들어가는 법이다.
"일단 나도 공짜로 받겠다는건 아니야. 여기까지 헛걸음한 손해는 쳐줄 예정이지"
먼저 줄 것은 돈. 하지만 주술사 한명의 가치는 꽤나 크다. 우리가 가진 돈이 몇만 영에 달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뭔일 있을지 모르는데 그걸 여기서 전부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줄 것은 마을 이주를 위한 물자에 상응하는 금액의 돈이다.
"두번째로는 실질적인 이득인데......댁이 원하는건 귀족과의 연결이지?"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댁이 우리쪽에 자꾸 찝쩍거리는게 대충 그렇지. 지금 한발 빼는 것도 속내를 들키기 싫다는 계산적인 부분이고"
"........상인을 많이 상대해보신 모양이군요"
"꽤 많이?"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사람은 꽤나 많이 보았다. 그들이 행동하는거야 대충 눈에 보인다.
물론 나도 절대적인건 아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만약 완벽했다면 알리언 박사 같이 속아 넘어가는 케이스도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영 화자랑 인연이 있는데 말이야"
"........기영 화자님 말씀이십니까?"
내가 어! 기영 화자랑 어!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말이야, 어!
거짓말은 아니다. 마냥 신세만 지는것 같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요람의 시설에서 나올 콩고물을 생각하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다. 설령 내가 빠지더라도 유적의 가치는 클테니까.
소개장이라도 써주면 아마 좋아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귀족이란 소국의 왕이나 다름없을테니까.
"따로 몇자 적어서 보내주지. 솔직하게 말해서 개인이 강할 뿐인 유랑귀족보다야 세력이 있는 귀족이 상인으로서 교류하는게 낫지 않겠나? 안면을 트면 장사하기 편해질거야, 적어도 기영 도시에서는 말이지"
"흐음......알았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좋아"
거래가 끝났다. 기영 화자에게 써주는 추천장과 당장의 손해를 매꿀 약간의 돈으로 서로 합의를 보았다. 이제 무화는 우리 애다.
"여정을 떠나시는데 방해가 될테니 마을의 생존자들은 당분간 제가 돌보고 있겠습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또 광견 놈들이 덤벼올지도 모르니까요"
"인질.....은 아니겠고. 나름 눈치는 있구만. 호의를 빚으로 만들다니"
"허허, 원래 형태가 없는 것이 가장 비싼 법이지요"
저만한 눈치가 있고 능력이 있으니 나도 기영 화자한테 추천해줄 수 있는거다. 아니였으면 추천장 써주기 뭐했지.
거래를 끝내고 돌아오니 루리가 드럼 호의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사람이 많았는데 한사람분 더 늘었으니 자리가 모자란건 당연지사였다.
"그나마 애라서 조금만 넓히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잘때는 좀 부족할듯 싶은데"
"내가 나가서 자지 뭐. 어차피 덥던 춥던 별 지장 없으니까 불침번 서는 김에 있으면 되겠네"
"크으으, 야밤에 불침번 안서도 되는건 개꿀이지. 막둘 불침번 으아아아아!!!!"
"그래봐야 나랑 너, 진교 밖에 안서잖아"
"아무튼 불침번 안서도 된다는건 충분히 좋은거야"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은 요람에 도달해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지만, 중간에 생긴 부차적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이 근방에 자리 잡은 광견 소굴. 놈들에게서 알아낸 광견 소굴의 위치는 우리가 가야하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 산에 거점을 틀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우연은 아닐 가능성이 높군"
"그렇지?"
"그냥 광견 소굴이라면 몰라도 그만한 세력과 통제력, 그리고 마약까지......아니, 통제력은 마약에서 나오는걸지도 모릅니다만. 아무튼 타이밍이 공교롭습니다"
단순한 광견 소굴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최근이 아니라 몇년 전부터 그런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약까지 운용할 정도로 기반이 있고 하필이면 이 시기에 모이고 있다는 뜻은.......분명이 크던 적던 우리랑 관계 있다는 의미다.
너무 비약적으로 생각한거 아닐까 모르지만 내 감이 연관되어 있다는걸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상 가장 큰 증거였다.
"여행은 슬슬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하지만 가장 큰 장해물이 남았네"
"장해물?"
"아, 그렇네. 아저씨 있으니까 약간의 장해물이 됐네. 크으으으, 그때 계약하길 잘했다!"
무화의 일로 지나가는 길에 그놈들을 조지려고 했었으나 안그래도 놈들이 우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트러블이 생길게 분명하다. 그러면 겸사겸사 조져야지.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우리 여행도 많이 남지 않았다. 일이 생겨도 한두달 내로 끝날 것이다.
운이 좋다면 이 세상의 비밀도......
*
*
*
*
놈들의 본거지가 이 근처에 있다는게 거짓말은 아니였는지 사막에서 만나는 조우율이 달라졌다.
무화의 고향 마을을 떠난지 고작해야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한무리의 광견들과 만나게 되었다. 십수대의 풍륜차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드럼호로 질주해 온다.
"죽어라라라라!!!!"
"흐히히!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해라! 아, 반댄가? 몰라 씨발! 구멍만 있으면 그만이지!!!!!"
"먹자!!! 구워먹자!!!!"
"이얏호우!!!!! 여자다! 여자가 저기있다!!!!"
"방금 어떤 놈이 호우 소리를 냈냐?! 너부터 조져주마!!!!"
나는 마지막 놈의 말에 태클을 걸면서 갑판 위에서 그대로 뛰쳐나가 제정신이 아닌 놈들의 목을 친절하게 따주었다.
음주 운전만 하더라도 위험하기 그지없는데 마약까지 빨아재낀 놈들이 풍륜차를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리 없다. 자극이 없을 때도 불안불안한데 흥분한 상태에서 운전은 자폭과 같다.
콰아앙!
폭발하는 소리는 두세놈 정도가 모래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는 소리였다.
사실 현대의 자동차 같은 것도 연료가 새어나오지 않는 이상 박는다고 액션 영화마냥 폭발하지 않는데, 아무리 멸망했어도 여기 기술력으로 그런 안전문제까지 생각했을테니 보통은 터지지 않겠지만 마개조가 더해진 물건이라서 불안정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동료들이 죽건 말건 놈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우리를 향해 접근한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귀찮은 것들이 미친 놈들인데........"
미국에서 괜히 마약쟁이들 상대할 때 경찰이 총부터 뽑아들고 보는줄 아냐? 미친놈들은 뭘 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해서 그런거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여자 간호사가 아니라 건장한 남자 간호사를 쓰는건 또 어떻고? 미친놈들은 신체능력도 리미터가 한꺼풀 벗겨져서 어지간해서 제압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미친놈이 마약쟁이면 환상의 콤보지. 주먹질 하면 내 주먹이 더러워질것 같으니 여행 중에 나온 쓰레기들을 대충 뭉쳐서 탄환삼아 튕겨 날렸다.
투웅!!! 퍼어어억!!!!
한놈의 이마에 명중한 쓰레기 조각은 그대로 놈의 머리를 수박처럼 터트렸다. 허공에 붉은 살점과 뇌수가 흩어지는 모습이 후련하다.
"호재가 죽었다!!!!"
"이 새끼!!!! 뒤를 따주마!!!!!"
투웅! 투웅! 투우웅!!!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금 쓰레기 조각을 날렸다. 꽤나 단단하게 뭉쳐서 어지간한 금속 수준의 내구도는 있을테고, 내 근력에 능력을 약간 더했으니 빗맞출 일도 없고 스쳐도 죽는다.
이윽고 놈들은 절반 이상이 죽고 나서야 낌새를 눈치 챘지만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아니, 공포보다 죽음 앞에서 뇌가 발산하는 호르몬이 주는 쾌락이 더욱 강렬해서 죽을 듯이 달려들 뿐이다. 뭐, 죽였지만.
"이런 놈들이 앞으로 가득할거라는데 꽤나 기분 더러운데"
".......꼭 그런 놈들만 있진 않을겁니다"
"진교 넌 뭐 좀 아나보다?"
"무화의 마을 일도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다른 마을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적어도 이 근방 마을은 초토화 됐다고 봐도 되겠지.
"으음......."
백희가 심란한듯 소리를 냈다. 그녀가 그때 무화의 마을에서 보았던 일은 트라우마라도 됐는지 꽤나 충격을 먹은 얼굴이다.
하기사, 위에 있으면 어지간해서 좋은 것만 보게 된다. 설령 권력의 더러운 면을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기준이지 이런 비인간적인 광경은 처음볼 것이다.
"요람의 권한을 얻으면, 그런 광견 놈들은 전부 찢여죽일거야"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할줄은 몰랐군"
"뭐야, 우린 한배를 탄거나 마찬가지인데 여태까지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표면적으로는 황가의 보물을 훔쳐 달아난 자가 아니던가?"
"중요한건 알맹이지! 과일은 보통 껍질 깎고 먹는다고!"
아무튼 우리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시에서 사둔 지도가 있어서 길을 헤메지는 않았지만 세세하게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시대가 이런 이상 솔직히 도시에서 산 지도도 확신을 할 수 없기에 중요한건 현지인의 유무다.
그런걸 생각하면 무화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무화는 자기 마을에서 벗어난건 몇번 되지 않지만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을 확인하는데는 충분했다.
"저희 마을에서 남쪽으로 5일쯤 가면 마을이 하나 있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 마을도 멀쩡할지는......"
"마을 크기는? 수원지 수량은?"
"적어도 저희 마을보단 컸어요. 하지만 저희 마을 사람들이 이주할 만큼은 아니여서......그래도 백명 이상은 살고 있을거예요"
"큰 마을은 아니지만 작은 마을도 아닌걸"
"하지만 이 아이의 마을도 그렇게 됐으니 그 전에 있던 마을도 아마......"
씁쓸한 맛이 올라온다. 이건 커피의 즐길만한 쓴맛이 아니라 그냥 기분 더러운 쓴맛이다.
일단 무화가 말한 5일 거리는 도보 기준이여서 드럼 호로 가면 이틀도 채 걸리지 않는다. 금새 멀리서 마을 같은 것이 보이고 우리를 반겨주는 수십대의 풍륜차 무리들도 보인다.
마개조된 풍륜차, 소란스러운 광견들, 마약에 찌들어 반쯤 정신나간 눈까지. 아무리 봐도 마을이 멀쩡할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짜 점령당한지 오래됐구만. 음......응?"
"왜 그러십니까?"
"아니, 좀 묘한 기척이 하나 있어서"
아마 놈이 이곳의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는 것도 많을테니 일단 그놈만 붙잡기로 하고 나머지는 찢여죽이기로 했다.
수도 많은데 권능 안쓰냐고? 권능은 내가 대마왕으로서 그나마 자비를 배풀어서 고통 없이 보내줄 때 쓰는 수단이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놈들에게 곱게 죽을 자격 따위는 없다.
"크흐하하하하!!!!!"
"거기에 있었구나아아아!!!!!"
"죽여라! 여자가 있다면 마음대로 해도 되고 남자가 있다면 죽여라! 유적 발굴품만 멀쩡하게 회수해라!!!! 가장 공이 큰 녀석에게는 적혼화 한달치를 상으로 주겠다!!!!"
"히야아아아아아!!!!"
"그건 내거다아아아아!!!!"
오, 지휘하는 놈 발견. 내가 느꼈던 기척의 주인인 만큼 이놈이 머리가 확실하다.
가진 장비 또한 범상치 않았다. 저어기 기영 화자 아래에 있던 강화병......유경이였나? 아무튼 그놈이 입고 있던 풀 아머 파워드 수트 같은 종류다.
콰아아앙!!!
거기다가 강화병.
"화살도 아니고 투창?!"
"명중률이 꽤 높은데. 엇차!"
거리는 수백미터, 하지만 놈이 내던진 투창은 거의 음속에 가깝게 가속하여 질주하는 드럼 호의 바로 옆에 처박혀 폭발한다. 아마 화살도 특수 제작품인것 같다.
루리가 현란한 솜씨로 격한 드리프트를 하며 피하지 않았다면 드럼 호를 못쓰게 됐을지도 모른다.
"드럼 호를 노획하려는거 보면 우리 아는 놈이 확실하네! 가라 대마왕몬!"
"마왕마왕하고 울어주랴?"
"대신 침대 위에서 울어줄께!"
"섹드립 하고는!"
나는 갑판에서 박차고 나가 놈들과 마주했다. 진형도 없고 마구잡이에 무기도 제각각, 하지만 하나하나가 광전사나 다름없는 놈들이다.
일단 죄다 장기자랑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니까 사지 부러트려서 사막에 방치하는걸로 하자!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슬슬 500화가 코앞이네요. 기념 연참을 위해 비축분좀 쌓아야 하나.
사실 이쯤이면 완결 낼 생각이였는데 노선 변경으로 플롯이 늘어서.....아무튼 끝까지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이 파트를 쓰는 이유는 나름의 복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트 종반부에 거의 다 와가니 그 복선이 뭔지 근시일 내로 알 수 있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