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분은 쪼오끔 잔혹할수도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493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모처럼의 좋은걸 봐서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반짝반짝거리는 귀한 보석을 그대로 똥통에 처박은 느낌이다. 꺼내서 깨끗이 씻는다고 한들 한번 똥통에 처박핬던 보석은 그 가치가 줄어드는 법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은 모르더라도 나 자신이 그러한 이상 가치는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손실분은 놈들에게 받아낼 생각이다.
드럼 호로 돌아와 선내의 애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루리, 애들 데리고 갑판 위로 올라가. 전투 준비해"
"뭐야, 뭔데?"
"광견 놈들이야"
"........얼굴 보니까 대충 짐작은 가는데 왜 그렇게 빡쳐있는거야?"
"그냥 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숨좀 고르고 갑시다. 그대로 가면 고문도 못하고 죄다 한번에 목을 쳐버릴거 아닙니까"
"고문이 전제가 되어 있는 이야기 아닌가? 뭔가 좀 이상하지 않느냐?"
"울 남편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
"바로 이해가 되시는게 백희님도 저희 일행이 다 됐나 봅니다"
"후우우우우우우......"
나는 시온의 충고에 일단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전에도 암시장에서 광견 놈들이 시온을 건드려서 빡친적이 있다. 지금의 분노가 그때의 분노 수준이냐고 물으면 애매하다고 대답해줄 수 있다.
시온이 내 최우선 사항인 만큼 시온을 건드려 화난게 내 기분 더러워진 것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한가지 다른 점을 들자면 이건 감정의 방향성이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폭발하는 느낌이고 후자의 경우는 차갑게 식은 느낌이다.
뭔가를 해치려는 것과 더럽힌 것의 차이는.......문과인 나도 설명하려면 꽤나 오래 걸릴테니까 일단 넘어가자.
"저기예요! 저기가......어?"
점차 마을이 가까워진다. 상단 쪽에 무화는 희미하게 웃음을 띄지만 점차 표정이 일그러진다.
마을에는 명백하게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을 하고, 검붉은 무언가를 덕지덕지 바른듯한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의 남자들이 마을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놈들을 관측할 수 있다면 놈들도 우리를 관측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의 이동은 모래바람을 일으키니 그것으로 훨씬 일찍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반증으로 놈들은 이미 전투 태세를 끝냈다. 광견놈들은 미친거지 바보는 아니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돌담을 엄폐물로 삼아서 석궁을 이쪽으로 겨누고 있다.
"이대로 싸우면 좀 빡셀것 같은데?"
"기선 제압은 해줘야겠지"
나는 저번에 기영 화자의 강화병과 싸웠을 때처럼 바람과 불꽃을 일으켰다.
원래 성을 공략하려면 수성 병력에 3배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낮은 방벽이라도 엄폐물이 있다면 싸우는데 애를 먹는게 당연하다.
그러니 그 이점부터 쳐부순다.
쿠우우우우!!!
"주술사다! 저 새끼들한테 주술사가 있다!!!!"
강렬한 기류와 후끈한 열기는 거리가 있어도 느껴지는 모양이다. 본능에 충실한 만큼 감이 좋은걸까. 하지만 나는 놈들의 반응 상관 없이 그대로 폭풍과 불꽃을 격발시켜 그대로 그 파괴력을 놈들의 돌담에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나름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쌓아 만든 돌담이 그대로 폭발한다. 몇몇은 거기에 휘말린건지 날아가는 돌덩이에 머리를 맞고 즉사한다.
내가 공격한 여파로는 죽지 않게 했지만 저거까지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뒤진 놈들에게는 운이 좋다.
적어도 자기 입으로 죽여달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테니까.
"광견 놈들이다! 마을을 장악했어!"
"저 새끼들.....!!!"
상단 쪽 들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이 광견을 보는 반응을 처음 보았는데 그들의 눈에는 깊은 혐오와 적의가 서려 있다.
몇몇 누군가에게서는 증오마저 느껴진다. 아마 광견에 의해서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일거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투웅! 콰앙!!!
이윽고 누군가 석궁을 쏘았다. 놈들에게 맞지는 못했지만 돌담을 파괴시키며 그 파편을 흘날렸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서로 화살이 난사된다. 거리가 있지만 충분히 숙련된 궁수에게는 목숨을 노려볼만한 거리였다. 몇몇개는 우리 쪽으로 날아와서 뒤에 있던 우리 애들을 노렸지만 염동력으로 화살을 붙잡아 날려버렸다.
"저놈! 저놈 강화병이다! 저 새끼 먼저 쏴!!!!"
"죽아라아아아아!!!!!"
"니 새끼 눈깔을 오독오독 씹어먹어주마아아!!!!"
나는 당당하게 걸어가 돌담의 박살난 부분을 통해 마을로 들어선다. 나를 향한 화살들은 급소를 노려왔지만 맞아도 별 타격은 없었다. 중화기도 소용없을텐데 그런 소형으로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우드득!!!!
"끄아아아아아!!!!"
"일단 한놈"
나는 놈들을 죽이지 않았다. 사지 몇군데 정도 부러트리고 끝낼 뿐이다.
본격적인 재미는 이 뒤에 있다. 이들이 마을 하나 장악한건 별로 신경쓸게 아니지만 내가 나서게 만들 정도로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 보았던 몸 팔던 아이의 복수도 안했으면서 무슨 위선이냐고?
무화와 이름도 모르는 여자아이의 차이는 대상의 차이다. 사회를 바꿔야 해결되는 현실적인 문제와, 명백하게 잘못해 그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의 유무의 문제라는 소리다.
요컨데 도시 하나 조져도 근본적인 해결을 못하는 문제랑 눈 앞의 광견 놈들을 조져서 해결되는 문제가 같을리 없다는 것이다.
"죽어!!!! 죽어어어어어!!!!!"
"너.....약쟁이구나?"
"으하하! 으하아아아!!!!"
광기가 번들거리면서도 풀린 동공과 희미한 단내가 난다. 여기 마약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 놈의 태도는 패닉이나 공포에 질린 사람이 아니라 만용을 부리는 쪽에 가깝다. 그건 결국 마약으로 귀결되는 법이다.
하기사 쾌락을 탐하는 놈들이니 마약 좀 하는건 딱히 이상할게 아니다. 오히려 더 건전했으면 이상했겠지.
철컥!!!
"움직이지마 이 새끼야!!!"
한창 깽판을 부리며 놈들을 제압하고 있을 때, 한 광견놈의 외침이 들린다.
놈은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은 내가 아니라 놈이 데리고 있는 여자다.
굶주려서 빼빼 마른 여자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어진 화살의 감촉을 느끼고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리며 작게 중얼거린다.
"사, 살려주세요......"
"........"
이 새끼 뭐지? 나한테 인질이 통할거라고 생각하는건가?
내가 슬쩍 멈추자 놈은 인질극이 통한거라 생각했는지 기분 나쁘게 흐흐 웃으며 뒤로 한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짧게 깍은 머리는 기름이 껴서 더러워 보이고 웃으면서 보이는 이빨은 누렇다. 단순히 이빨을 닦지 않아서 그런 모습이 아니라 약을 흡입해서 변색된 것에 가깝다.
"흐흐, 그래야지. 응? 주술사.....아니, 강화병? 아무튼 그쪽 양반, 왜 갑자기 쳐들어온건지 모르겠는데 거래 좀 하지 않겠어?"
"너 말이야. 나한테 그 여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인질을 잡는거냐? 너까지 같이 죽일거라고 생각 안해봐?"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나?"
역풍을 타고 썩은내가 전해진다. 그것은 씻지 않아서 몸에 밴 냄새 따위가 아니라 자의로 인육을 먹은 자에게서 나는 냄새다.
슬쩍, 마을 중앙의 광장을 본다. 타닥타닥, 불타오르는 모닥불이 있고 그 주위의 바닥에 뼈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게 무슨 뼈인지는 안봐도 뻔한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야. 나만 멀쩡하게 빠져나가게 해주면 이 여자를 풀어주지"
"자기 안위만 챙기겠다? 동료들은? 어디 한군데 부러지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는데?"
"흐....미친개가 그런 정 같은거 챙길것 같나?"
"하긴, 그럴줄 알았어"
그들이 챙기는건 쾌락과 자기 안위다. 놈들은 세상의 해악이고 짐승에 불과하다.
루리와 같은 들개, 진교가 일했던 수렵견 같은 것들은 호칭일지 몰라도 그들을 부르는 광견은 이름 그대로의 의미다. 놈들은 그저 미친개일 뿐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괴물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이 아닌가.
괴물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인간이 맞는가.
적어도 나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가를 수 있었다.
"빨리 대답하라고, 안그러면 이 여자는 머리가 퍼억, 하고 터질거야. 응? 이 거리에서 쏘면 머리통이 작살나는거 알지?"
"좀 말하는게 늦긴 했지만......너 무슨 깡으로 내 바로 앞에서 인질극을 펼치냐"
"뭐?"
뻐어어어억!!!!
보이지 않는 염동력의 힘이 그대로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 죽이진 않았다. 기절시켰을 뿐이다.
놈에게는 죽을 권리조차 없으니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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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놈을 제압하고 나서야 대충 정리가 끝났다. 남은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파악하고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별로 없다. 남자는 이미 전부 죽었고 기껏해야 몇몇의 여성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아니, 살아남은 여성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 쾌락에 미친 놈들이 여자를 살려둔 이유라면 안봐도 뻔한 이유 아닌가?
"누나! 유채 누나!!!"
"무....화? 무화니?"
"누나......!!!!"
"우아아아, 아아아아!!!!"
여자들은 한 집에 감금되어 있었다. 다만 그들이 감금된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돼지 우리에 가까운 곳이였다.
처음에는 그나마 깨끗했을지 몰라도 화장실도 갈 수 없이 이곳에서 처리하다 보면 결국에 오물 투성이가 된다. 그런 곳에서 살면 사람은 병에 걸리는 법이고......이미 시체도 두어구쯤 있었다.
감금되었던 여자들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못해도 몇달 이상은 치료해야할 그런 모습이다.
"......꽤나 처참하네"
"못볼꼴 일부러 보러 왔냐 루리야"
"이래야 나중에 진심으로 고문해줄 수 있지. 아, 나도 한손 거들게 해줄거지?"
"일단 보고"
정확하게 살아남은 여자는 4명이였다. 그나마도 아까 전의 인질극에서 구출해낸 여자 또한 포함해서 그 정도였다.
이곳은 적어도 수십가구가 살던 촌락이다. 각 집에 여자가 한명씩이라 치더라도 수십명은 나올텐데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해야 4명이였다.
감금된 집 안의 시체를 합쳐도 6명.......꽤나 적은 숫자다. 습격하고 마을을 장악할 때 죽은 사람도 있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니, 대충 짐작가는 곳은 있었다.
"일단 사람들 데리고 나가서 뭐라도 먹여. 죽.....아니, 싱겁게 한 미음이라도 해서 먹는게 좋겠지"
"한동안 못 먹었을테니까. 알았어"
놈들이 이 마을을 장악한지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며칠 단위는 아니다. 내가 겪어보기도 하고 자주 봐서 아는데, 인간이 굶주려도 그 정도라면 아직 버틸만하다.
또한 광견 놈들이 쌓아놓은 마을 광장의 뼈무덤은.......하루이틀로 생기지 않는다. 짧아도 2주, 길면 한달 가량.
그리고 여자들은 아예 안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을게 없는건 모르지만 마실것도 없으면 이 세상에서는 훨씬 빨리 죽는다.
"후우우......"
오물이 가득한 집 안에서 희미하지만 비릿한 냄새가 난다. 감금된 여자들의 몸에서 나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광견 놈들에게 강간 당하면서도 정액 따위로 그나마의 영양분을 섭취한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정액은 꽤 괜찮은 영양 섭취 수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아무리 정액에 영양분이 있어도 양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연명해왔던 것일까? 무얼 먹고?
"일단 사람들 데리고 나갈건데 아저씨는?"
"잠깐 뭐 좀 확인하려고"
루리도 나가고 무화와 살아남은 마을 여자들도 이 집에서 나갔다.
나는 슬쩍 죽어 널부러져 있는 여성의 시체를 살펴본다. 오물이 묻고 반쯤 썩어 시취를 풍기고 있지만 개중에서 팔과 다리 쪽에서 사람의 잇자국을 발견했다.
누군가 살점을 씹어 뜯은것 같은 자국이다. 물론 이것은 인육을 먹는 광견 놈들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 이빨 자국은 남성의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것이였다. 그것도 최소 2명 이상. 그 외의 정보는 시간이 오래 지나서 알 수 없었다.
아니, 설령 알 수 있었다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품을 수 있는 감정은 뻔하니까.
"생존 앞에 모든 가치는 그 아래로 떨어지는 법이지......."
살기 위해서 사람을 먹은 사람에게 과연 죄는 있는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인도적으로.......이내 나는 결론 대신 시체를 불태워 소각시켰다. 증거를 인멸했다. 혹여나 누군가 추궁해도 광견 놈들이 했다고 하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인육을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법적인 책임으로는 직접 죽인게 아닌 이상 시체훼손죄 정도지만 윤리적 문제에서는 크디크죠. 이런건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설국열차 마지막 부근쯤에 나오는 캡틴 아메리카의 고백은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거든요.
윤리와 법의 문제와 영역에 대해서 토론하면 하루 종일 걸릴테니까 이만 접어두겠습니다.
작가는 이만 재난 지원금 받은걸로 맛난거 사먹으러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