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물어보면 어쩐지 가능충 등판할것 같은데!490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잠깐 시온의 방에 들르니 시온이 슬쩍 물어왔다.
"그 사람이랑 무슨 이야기 했습니까?"
"자기 몸 써가면서도 영입하려고 들던데. 마인드가 백희랑은 영 딴판이더라고"
멸망 이전의 귀족과 멸망 이후의 귀족은 다르다. 둘 다 욕심이 많은건 매한가지겠지만 적어도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
아마 가장 간단한 부분이라면 자기가 내줄 수 있는 선일까. 체면과 명예 같은걸 중요시 하는 시대와 목숨과 힘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한쪽은 가식쟁이에 한쪽은 솔직하거나, 한쪽은 현명한데 한쪽은 야만스럽거나. 뭐, 대충 그런 느낌으로.
결국 어떻게 본다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서로 자본주의 돼지랑 빨갱이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좀 차이는 있겠지만.
"넘어갔습니까?"
"내가 미쳤어?"
"그럴줄 알았습니다. 역시 내 남편입니다"
"애초에 난 외모나 성격보다 마음을 먼저 보는거 알잖아"
"그래서 진심으로 솔직하게 밀어붙여 오는 사람한테 약하지 않습니까?"
"대놓고 약점 찔러오면 나도 할말이 없는데......"
이용하기 위해, 혹은 뭔가 다른 이득을 위해서 오는 여자를 거절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가끔 죽여버려도 괜찮은 사람도 있으니 목을 꺽어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필요하면 여자든 어린애던 꺼림낌 없이 죽이는 사람이다. 아니, 남녀차별이라고 하면 남자도 죽이는데 여자라고 살리는 쪽이 차별 아니야? 공평하게 둘 다 죽여야 남녀평등이지!
하지만 반대로 진심으로 밀어붙이는 감정에는 약하다. 마냥 단호하게 거절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이......애초에 나 같은거 좋아해주는 사람을 마냥 거절하기에는 좀 그렇다.
"아무튼 오늘 저녁에는 밥 먹고 후딱 떠나자. 야밤에라도 떠나야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지"
"여기 밥은 나름 괜찮긴 한데 당신이 만들어주는 것보다 못합니다"
"요리 기술 같은게 막 발달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데. 여기는 먹을 수 있으면 끝 아니야? 아무리 재료가 풍부하고 널널해도 할 수 있는 선이 있지"
요리란 결국 정보다. 레시피 같은 것일 교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결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멸망한 세상에서 그런게 있을리가 만무하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반복 숙달로 수준이 올라가도 정보도 재료도 한정되어 있다면 한계는 명확하다.
참고로 재료가 한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재료의 수가 아니라 종류의 이야기다. 이런 도시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에는 한계가 있고 상인이 있어도 교류하는데 얼마나 나눌 수 있겠냐?
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의 바리에이션은 늘어날지 몰라도 결국은 선인 그어져 있다. 아, 요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 길어졌군.
아무튼 여기 애들 요리 별로 못해. 먹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귀족 레벨 요리사도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차라리 주막에서 파는 국밥이라면 기대치가 낮으니 괜찮은데 이런데서는 좀......
"그런데 뭐 정보 얻은건 있어?"
"왜 그런걸 묻는겁니까?"
"너라면 이런 기술력 괜찮은 시설을 냅둘리 없을것 같아서. 여기저기 관심 가지고 해킹하고 정보 수집하고 대충 그럴것 같은데, 아니야?"
"정답이다 연금술사!"
"차라리 여기식으로 주술사라고 해줘!"
시온도 욕구가 있다. 인간의 삼대 욕구 중에서 수면욕은 없지만 성욕과 식욕은 무진장 강하고 거기에 하논으로서 지식욕도 풍부하다.
본래 시온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은 장모님에게 물려받은 지식도 있지만 그녀 스스로 수천년 동안 얻은 것도 있다.
어떤 문명이던 거기에는 특색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왔던 지구도 평범한 지구가 아니라 가이아 포스란 이능력이 있었던 것처럼 시온의 지식욕은 성욕과 식욕과 비견된다.
"저는 원래 종족 특성상 이쪽 기술은 영 꺼림찍해서 깊게는 들어다보지 못했습니다만......"
"아, 원래 하논이랑 영자는 상극이니까. 상성이 좋은건 파편 쪽이려나"
감정에 호응하는 영자와 감정이 희박한 하논의 상성은 지독하게 나쁘다. 호라이즌의 주 동력원인 솔리드 리액터는 영자를 사용한 기술이지만 영자만 사용한 기술은 아니라서 쓰는거지 보통 하논은 물리 법칙쪽이 상성이 좋다.
여기 기술은 아무리 멸망했어도 영자 기반이니까......시온으로서는 뭔가 찾으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거다.
"하지만 약간의 도청을 통해서 몇가지 정보는 얻었습니다"
"뭔데?"
"일단 저희들이 여기 오게된 계기였던 광견들은 저희들이 가야 할 목적지 인근에 자리잡은 놈들이라는 것"
"아, 분명 트러블 생기겠군. 가면서 조져야겠다"
"그리고 그 놈들은 비교적 최근에 세가 늘어났다는 것"
"흐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꽤나 규모를 가지고 있고 수원지도 장악한 광견들이지만 생각외로 조용한 것을 보아 나름 통제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건 좀 이상한데"
"아마 암시장을 급습한 것도 강화병 혈청으로 병력을 늘리려는 시도가 아니였을까 짐작됩니다"
"그런 놈들이 괜히 그럴리가 없는데. 머리가 누구려나"
나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정말정말정말 잘 안다.
10살짜리 쌍둥이 자매의 부모를 눈앞에서 죽이고 납치해서 한 침대 위에서 따먹으려 드는 개새끼도 직접 봤는데 오죽하겠냐? 인간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모습은 짐승보다도 더욱 추악하다.
그런 놈들의 공통점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쾌락, 목숨조차도 어디까지나 살아 있어야 쾌락을 맛볼 수 있기에 중요시 여기는거지 더 들어가면 목숨 걸고 하는 러시안 룰렛도 즐기는 미친 놈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비록 소문이 난 시점에서 은폐는 물건너 갔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토벌 명령이 내려지지 않을 정도로 자제하고 있다는게 꽤나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지간해서 그런 짓을 못할텐데.......
도대체 누가 통제하고 있는거지? 꽤나 의문이다.
"현재 루트 상으로는 만나지 않을 확률보다 만날 확률이 극히 높으니 어차피 만나게 될거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건 역시 좋다니까"
뭐가 있을지 꽤나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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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기영에서의 마지막은 기영 화자와의 저녁 식사였다. 내가 요리할까 싶었지만 그냥 가기 전에 식재료나 여러개 받아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관심도 충분한데 요리까지 잘한다는거 소문나면 이제는 알몸 돌격해서라도 붙잡으려 할 것 같다. 내 예감이 그럴거라고 은근히 그러는거 보면 가능성은 있다.
"계속 남부로 내려갈 생각인가. 꽤나 긴 여정이 될 모양이군. 필요하다면 언제 돌아와도 환영하지"
아니, 다시 올 일 없거든?
저녁 식사는 무난하게 끝났다. 저쪽의 호의로 이런저런거 많이 찾았고 거기에 우리가 암시장에 내어놓았던 사사룡의 부산물도 시세 이상으로 쳐서 사주었다. 루리만 흐뭇한 표정으로 가득한 도시 발행 어음을 바라볼 뿐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의 영입 시도는 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우리가 여기 머문 시간도 고작해야 하루 정도일 뿐이고 나랑 시온이 단순한 주종관계는 아니란걸 알았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그런거다. 아마 뒤에서는 계속해서 우리들을 추적하고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겨우 하루지만 귀족 대접도 받아봤습니다. 크으으, 수렵견 시절에도 귀족분의 저택에 들어가는건 꿈도 못꿨는데 호강했네요"
"드럼 호 전지도 만땅으로 채웠고, 한동안은 쭉쭉 갈 수 있겠네. 목적지까지는 길어도 한달이면 도착할 수 있을거야"
"되게 머네"
"할 수 없는 일이지. 요람은 되도록 오래 버틸 수 있는 지형을 찾아 만들어진 곳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남은 것이 있을거란 보장은 크니 희망은 있다"
"희망만 말이지"
아직은 희망 뿐이다. 그게 정말로 희망이 될지, 희망 고문이 될지는 두고봐야 아는 노릇이였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했다. 이러다가 남극점 찍는거 아닌가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령 제국 시절에는 통일 정부를 이룩했으니 행성 하나의 영역권 정도는 되어서 남극에도 시설물이 있을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 령 제국에는 어디까지 발전했어? 우주 개발 좀 했나?"
"우주 개발이라. 여기 사람 치고는 꽤나 지적인 말을 하는구나"
"그래서 어디까지 했는데?"
"으음, 정확히는 그 직전이다. 본격적으로 달 거주지부터 세울 무렵에 차원의 개념에 대한 것을 알아냈지. 그 덕분에 학자들끼리도 이리저리 갈라져서 중구난방인 상태였다"
"........너네 티브 한발짝 앞둔거 아닐까"
"티브?"
"아니, 있어 그런 놈들이"
막 우주 개발 직전에 차원이란 개념을 알아내서 차원 개발을 할지, 아니면 우주 개발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사실 어느 쪽이던 장점은 있다. 티브 문명에서 워프 항해 기술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멘션 게이트 기술을 사용한 것은, 아무리 빨리 갈 수 있어도 그 이상으로 먼 곳이라면 결국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차원을 넘어가도 결국에 좌표 특정을 하지 못하면 워프 기술이 필요하고, 설령 워프 기술이 발달해도 저어기 수억광년 너머의 별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차원에 간섭해 넘어갈 수 있는 디멘션 게이트 기술이 필요하다.
어느 쪽을 먼저 개발해도 사실 이상하진 않다. 티브 문명은 둘 다 어느 정도 개발했을 뿐.
"만약 너희 이외의 지성체들이 사는 별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할거였지?"
"글쎄......그거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그들의 문명 수준은? 미개한 야만인 수준인가?"
"그 정도라면?"
"교화의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령 제국의 신민으로 받아들여야지"
"없으면?"
"나름 발전해서 달에 우주선 보낼 정도라면?"
"그 정도라면 서로간의 교류를 시도하겠지. 령 제국과 차이는 꽤 크게 있겠다만 그래도 나름의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은 그만한 지성이 있다는 증명이 아닌가?"
"흐음......"
전부터 생각했는데 백희는 꽤 마음에 드는 위정자다. 만약 그녀가 령 제국을 제대로 물려받았다면 꽤나 좋은 문명이 되지 않았을까?
이 세상의 모든 위정자들을 통틀어서 착하지만 단호하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거라고 생각하나? 한줌만 있어도 많다고 생각될 정도일거다.
"네가 지배하는 문명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요람을 찾는다면 그러할지도 모르지. 그곳의 시설과 자원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 일으키면 되는 것이니"
"야, 루리야. 그래도 되냐?"
"나야 낙원만 만들면 그걸로 족해. 물 걱정 없고, 먹을거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으면 제국이던 뭐던 환영이라구"
"시원시원해서 좋네"
요람의 시설, 그리고 령 제국의 직계 백희.
실용과 명분 둘 다 챙긴 상황이다. 우리가 요람에 이르러 그곳을 찾기만 한다면 그걸로 이 여행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령 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
내가 백희의 아픈점을 찌르자 그녀가 침묵했다.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본인 또한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령 제국은 엑토플라즘 제조 기술을 남용하다가 환경을 오염시켜서 멸망했다. 그것이 과연 직접적인 이유인지 간접적인 이유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네가 냉동 수면 장치에 들어가기 전에 국민들이 패닉을 일으켜 위협해 왔다고 했었지?"
"그래, 그리고 외조부님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뭔가 공백이 있는데. 아무리 급박했어도 그 패닉의 이유를 모른다고?"
"........어?"
"패닉이 단시간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생겼을텐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모른다는건 좀 이상하지 않냐?"
뭔가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고 그 선을 넘어야 사람은 패닉에 빠진다. 공포 영화 좀 봤다고 사람이 미쳐 날뛰진 않을테니까.
그리고 그만한 이유는 적어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다못해 '내일 운석이 떨어져서 지구가 멸망합니다!'같은 충격적인 발표를 들어도 사회가 씹창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군, 윽......."
"괜찮냐?"
"조금 두통이 있다. 뭔가를 기억해내야 하는데 하면 안된다는 것 마냥......"
"아무래도 공백이 있는건 네 기억인것 같은데"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기억을 잃어버렸던건지, 아니면 스스로 잃어버리고 싶었던건지 모르지만 적어도 더 깊게 들어가볼 여지는 있는것 같았다.
지금 당장 그러면 힘들테니 일단 화재를 돌렸다.
"그럼 하나만 더 말해봐. 엑토플라즘......아니, 영자 물질 제조 공정에서 생기는 오염은 얼마나 컸었냐?"
"그건......"
"뒷처리는? 거기서 생기는 오염 물질 처리는 어떻게 했냐?"
".......일단 기본적으로 밀폐용기에 담아 폐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거 보면 정치인 특유의 책임 회피랑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내 착각은 아니겠지?"
"저번에도 그러더니 의외로 이쪽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워낙 그런 사람 많이 봐서. 그런데 마냥 그렇게 처리한건 아니지?"
백희는 한숨을 쉬더니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던 저지르는건 쉽고 재미있지만 뒷처리는 힘들고 하기 싫은 법이다.
발전을 위해 핵 발전을 써도 그 폐기물을 처리가 곤란하다. 용기에 보관하여 한 시설에 두는건 그나마 낫지만 때로는 몰래 버리거나 하는 일도 있다.
령 제국이 아무리 발전하고 군주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전부 지켜보는건 불가능하다. 아마 규제가 있어도 버리는건 충분히 있었겠지, 아니 오히려 제대로 폐기 하는 것보다 그냥 버리는게 훨씬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영자는 이용하면 네가 있던 냉동 수면 장치처럼 오래 버틸 수 있는 물건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부산물도 오래가지. 오염 물질도 수백년 가지고 정화되지 않을껄"
"........."
"그것은 네가 생각해야할 책임이야"
이미 멸망한 국가에 볼일은 없지만, 그 국가를 다시 세우려는 사람에게는 다르다. 나는 백희에게 그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방사능 폐기물도 반감기가 긴건 수만년을 가는데, 수천년으로도 정화가 안될 엑토플라즘 제조 공정에서 나온 오염 물질들은 어디로 간거지?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많던 오염 물질은 누가 다 먹었나.
제가 괜히 이번 파트 쓰는거 아닙니다. 꽤나 스포가 있기에 지금 말 못하지만......아무튼.
오늘은 어린이날! 이 작품 보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닐지라도 일단 휴일이니까 연참 가겠습니다!
애들의 동심은 좋은 것이죠. 크윽, 그립읍니다 방정환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