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를 죽일 때 총이 통하지 않는다면 화력이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해 봅시다!484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거대한 지렁이 같은 놈의 몸뚱이를 제대로 사막 위에 뽑아내었다. 한 3분지 1 정도가 파묻혀 있어서 그 정도만 말이다.
몸무게만 하더라도 수십톤은 가뿐하게 넘어 보이는데......루리는 죽은 놈의 사체를 보고 희희낙락 하다가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용량 초과라서 가지고 갈 수가 없잖아!!!!"
"원래 사사룡은 개인이 아니라 도시 단위로 토벌을 하러 다니는 놈입니다만......."
"그만큼 해체도 도시 단위로 필요하다는 뜻 아니냐? 운송부터 장난 아닐것 같은데?"
드럼 호는 꽤 괜찮은 이동수단이지만 운송 수단은 아니다. 기껏해야 톤 단위의 물건을 실을 수 있을텐데 이미 짐도 있는 상황에 수십톤짜리 괴물을 해체한 부산물을 실을 수 있을리 없다.
그렇다고 도시에 가서 협조 요청을 하기에는 시간과 시선이 쏠리고......결국은 방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중요한 부산물만 가져가자. 실속만 빼가면 나름 이득이겠지"
"잡는건 내가 했으니 해체는 네가 알아서 해라?"
"쫌생이!"
딱히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루리랑 진교가 있으니 해체는 얼추 할 수 있었다. 두사람의 육체는 평범하지만 파워드 수트 같은게 근력을 보조해주니 시간 문제일 뿐이다.
루리는 놈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낸다. 끈적이면서 붉은색의 큼지막한 내장들이 흘러나와 진득한 피 냄새를 뿌린다.
"결정! 영결정은 어디있냐!"
"가장 비싼거니까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나와 시온, 그리고 백희는 드럼 호 갑판 위에서 파라솔 같은 것을 펼쳐 그늘을 만들어 두고 그 아래에서 얼음을 동동 띄운 차를 마시며 구경했다.
드럼 호의 설비 정도라면 얼음 정도는 있을법 하지만 전력을 아껴야 한다고 해서 냉동실도 최소한만 보관하는 판에 얼음을 만들 공간이 있을리 만무하니 내 능력으로 그냥 만들어냈다.
삼매진화로 불태울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한게 당연하잖냐. 아주 꽝꽝 얼려서 이 더위에도 쉽게 녹지 않는다.
벌컥벌컥 들이키면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음료수! 캬아아아아!!!
".......재주가 많아도 너무 많군"
"할줄 아는게 많아도 불만이냐?"
"그런게 아니다. 내가 본것만 하더라도 염동력, 염화, 염빙......제국에도 그만큼 다양한 힘을 다루는 술법사는 없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주술사가 있다고 했었나? 술법사나 주술사나 비슷한 명칭이니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호칭이 바뀌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 시절의 기술력으로도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초월자의 존재 자체가 드문 일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거기다가 최고급 강화 혈청을 투여한 황실 근위대를 따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육체능력까지. 제국의 힘으로 저런 거대한 괴물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순수 개인의 능력으로 일격에 죽이는건 신화 속의 신선이나 가능한 일이다"
"흠.......한편으로 당연할지도 모르지"
이능력은 분명 편하다. 익히고 익히면 분명히 높은 경지에 올라 초월자에도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제국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그것의 범용성을 늘리고 보급하는데 치중했지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중세시대 기사가 현대의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강한건 당연한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개개인의 쇠퇴를 불러온다. 이 세계에서 아주 오래전에는 초월자에 든 사람은 있었을지 몰라도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괜히 무림 차원의 옥황상제가 문명 기술레벨 제한 걸어놓고 무공에 치중하는게 아니다. 투쟁이 많고 기술이 낮을수록 이능력의 발전이 빠르기 때문이다.
생각해봐라. 총 한방 쏘면 10년 넘게 격투기에 매진한 프로도 죽일 수 있는데 누가 고생해서 그런거 배우냐?
일정 이상의 경지에 이르면 초월자 말고는 죽이기 힘들어지지만 그 경지에 오르려고 노력하는게 빡세다. 선발주자가 있어도 점차 후발주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명맥이 끊어지는 법이고.
"제국에서도 그대와 같은 자는 본적이 없다. 설령 전략병기라도 그대를 이길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그대는......도대체 누구인가?"
"그쪽 눈치 빠른거 보면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것 같은데. 들은 것도 있지 않아?"
"어제 일은 이미 알고 있었나?"
"대충은"
내가 이름모를 여자아이의 장례를 치뤄주고 루리랑 술 마실 때 주막에 들어갔던 백희는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나와 루리가 하는 대화 정도는 들었을테니 나름 짐작은 하고 있을거다. 다만 짐작과 이해는 다른 범주다.
"알 수 있던 이야기도 있고 모르는 단어나 대화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온 모양인데, 그 이상은 확인하게 힘들군"
"딱히 이야기 해줄 의무는 없어"
"스스로 알아내면 그만이겠지"
"알아서 뭐하려고?"
"아군인지 적인지 확실시 해야 하니까"
"그걸 대놓고 말하냐?"
"아까 전부터 내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더군. 그대 정도라면 표정을 읽거나 해서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거 아닌가? 그렇다면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 호감을 살거란 계산을 했지"
"이래서 눈치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개인적으로 이런 타입이 귀찮다.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능력도 있어서 거리를 두고 탐색하다 아군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위정자는 섣부르게 손대기 힘들다. 게다가 성격도 나름 괜찮으면 더더욱.
이 세상의 대부분의 위정자는 능력 없이 욕망만 가득하고 아주 일부만이 내 마음에 들기에 막 죽이려면 좀 아까운 느낌이 든다.
대마왕질 하다보면 좀 괜찮은 군주가 있는 문명이 어찌나 예뻐보이던지.......
"아싸!!!!! 영결석 존나 큰거 찾았다아아아아!!!!"
"뭐야, 사사룡 요로결석이라도 되냐?"
"저런게 방광에 있으면 지랄맞은 행동도 이해는 갑니다만"
한창 해체하던 루리가 사사룡의 뱃속에서 별사탕 같은 돌기가 돋아난 느낌의 돌맹이를 꺼내며 소리쳤다.
크기는 대충 루리의 머리만할까. 끈적이는 피가 묻어 있지만 나름 광택이 나는 재질이며 여기서 봐도 꽤나 예쁜 보석 같은 느낌이다.
"오!! 그건 영담결석 아닌가?"
"아는거냐?"
"내가 아는 것과 달리 크기는 매우 크지만 보통 동물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저런 분야에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보석으로서 쓰이지"
"저만한걸 보석으로 쓰려고 장식품으로 만들면 제국 시절 사람들은 둔기 하나쯤은 달고다닌겁니까?"
"그러니까 크기가 다르다고 한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크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손톱만한 크기였으니"
"그 시절에는 저만한 동물은 없었나봐?"
"있을리가 없었지"
제국이 멸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간도 변해서 흰 피부 따위로 귀족을 자처하는데 동물이라고 변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아, 내가 저걸 괴수나 괴물로 부르지 않는데 놈들에게서 이질적인 느낌이 나지 않아서다. 좀 크리처물 영화에 나올법한 모습이지만 일단 자연의 일부로서 활동하고 있는게 보인다.
"전에 모래 호랑이는 그런거 없더니"
"결국 복불복이지"
루리와 진교가 사사룡의 중요 부위만 해체하여 수거하고 나머지 부산물들은 그대로 버렸다. 어차피 이 날씨에는 썩거나 말라버릴게 분명하며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동물들이 먹어치울 확률도 높다.
"흠,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어라? 뭐가?"
"제가 아무리 생물 쪽에 약해도 이건 좀 위화감이 듭니다. 백희씨의 반응을 본다면 과거에는 없던 생물인것 같은데, 아무리 오래 시간이 지났어도 이만한 생물이 새로 등장하는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온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사사룡의 존재 자체다.
진화란 진보와 퇴보를 포함하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기준이 있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사사룡의 원본이 되는 동물도 있다는 소리가 된다.
......어라? 생각해보니 이상한데?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한다. 고작해야 몇세대 정도의 차이로 그 변화가 막 드러나지는 않는다. 저어기 머나먼 조상님이 자신과 닮지 않은건 당연하겠지만 증조 할아버지 정도가 자신과 닮은 점이 보이는 것처럼 세대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변화는 더디다.
"이러한 생물이라면 수명도 길터. 설령 제국 멸망 이전에 코끼리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정도 크기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만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미안. 내가 빡대가리라 그런 이야기로 넘어가면 잘 몰라"
"그럼 애초에 이러한 생물이 물속의 부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육체를 유지하는겁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네?"
일반적인 중력이 작용하는 물리법칙 아래에서 생물이 커질 수 있는 한계는 존재한다.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은 지상에서 코끼리 정도지만 바다에서는 부력 덕분에 훨씬 큰 고래가 있는거다.
근데 명백하게 사사룡의 덩치는 일반적인 물리법칙에 구애받는 크기가 아니였다. 얘들도 영자 관련 영향을 받았나 싶지만.......그걸 따져도 진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달칵.
......아, 방금 본능적으로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진것 같은 느낌이. 이 별의 멸망 원인에 한발짝 다가간것 같다.
"아무렴 뭐 어때!!!! 이거 암시장에 내다 팔면 3만 영은 받을 수 있다구!!! 크으으으! 요즘 돈복이 터졌네! 터졌어!!!!"
"다른 부산물도 알짜배기만 수거했으니 다 팔면 1만 영은 나올겁니다!!"
부산물만 물도마뱀 한마리 값이지만 사사룡의 크기가 그 몇백배 이상은 큰걸 감안하면 당연한 수치였다. 원래 큰 동물은 잡으면 부산물도 많은 법이니까.
우리들은 짐을 챙기고 다시금 길을 떠났다.
남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사사룡의 사체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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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가 저녁식사 전에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소리쳤다.
"다음 도시로 들어서기 전에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한창 사사룡의 고기 중에서 좋은 부위를 구우면서 루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대한 지렁이 같은 외견과는 다르게 고기가 은근히 소고기랑 비슷하더라. 소금이랑 전의 도시에서 구매한 향신료를 발라 구웠더니 육즙이 떨어지는게 장난 아니다. 비록 숙성이 덜 되어서 맛이 좀 덜하지만 그래도 먹기에는 충분했다.
"음음, 맛있구나. 확실히 태령숙수의 솜씨보다 뛰어나. 내 나름 미식가라 자처하기에 이런 여정에서 음식이 입에 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구나"
"거 잘 먹으니 보기 좋네. 아, 우리 마누라도 많이 먹......이미 많이 먹고 있구나"
"아! 좀! 내 말 좀 들어주지 그래? 일단 이 일행의 리더는 난데!"
"최악님이 아니였습니까?"
"진교! 너마저!"
우리들은 잠깐 루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루리의 여정에 우리가 따라가는거지 우리의 여정에 루리가 따라오는게 아니니까. 게다가 현지인의 의견은 무시할 수 없고.
"일단 다음에 도착할 도시는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기영 화자의 도시야"
"기영......들어본적 있는 가문명이군"
"어라? 아는 사람이야?"
"적어도 화자란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다. 그 시절 기영 가문의 혈족이라면 가계도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데 없는걸 보니 그 자손이겠지"
"그러고 보니까 재호 유귀는? 그놈은 멀쩡히 그 시절 놈이라고 했던것 같은데?"
"그는......"
"그놈 이야기를 왜 여기서 꺼내? 지금 당장 중요한거 아니면 집어넣어!"
쫒기는 당사자인 루리가 이야기를 딱 잘라 막았다. 하기사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아무튼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재호 유귀와 한패로 보이는 남부의 진랑 요주를 피해서 가는 곳이야. 그만큼 어지간해서 놈들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그럼 좋은 소식 아니야?"
"하지만 기영 화자의 도시가 좋은 곳이라고는 할 수 없지. 일단 전에 봤던 도시보다 몇배는 크고 몇배는 사람이 많은데 개새끼들도 많거든"
"아, 글렀습니다 이거"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나? 결국 한 조직에 또라이는 일정량 이상 존재하게 된다. 그 조직의 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또라이도 증가한다.
시온은 대충 짐작하고 한숨을 쉬며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감지했다.
"내가 장담하건데 문제 생길 확률이 무우우우척 높아. 하다못해 두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다녀도 어떤식으로든 엮여서 시끄러워지겠지"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좀 심각해진다 싶으면 정체를 드러내. 유랑귀족이라는거 까발려서 대충 무마하는거야"
"그래도 괜찮겠나? 오히려 더 문제를 키우는게 아닌가?"
"썩어도 준치라고 유랑귀족도 나름 귀족이거든. 귀족끼리도 체면 때문에 대우해주기도 하고, 거주지나 세력을 잃었어도 가지고 있는게 없는건 아닐테니까 어지간한 세력보다 좋은 취급 받아. 그러니까 차라리 호랑이 위세를 업는게 낫지"
"호가호위를 하자는 거구나"
나름 상책이다. 잠깐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큰 방법을 쓰는거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법이 먼 만큼 그런걸 쓰지 않으면 더 위험해진다.
최대한 조심하도록 할테지만......예감이 썩 좋지는 않네.
"가장 중요한건 도시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것. 그리고 도시의 공권력인 경비에게 싸움을 걸지 않는거야. 두가지만 지키면 어지간해서 경비도 편들어줄테니까 괜찮아"
"둘 다 하면?"
"재호 유귀랑 진랑 요주, 기영 화자의 추격을 동시에 받을거야. 좆되는거지 뭐"
하하, 그러게. 누가 도시에서 경비를 쳐죽이고 그러겠어.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우리 마눌님?"
"몰라서 물으십니까?"
아니, 내가 그렇게 신뢰도가 없었나![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일에 대해서 주인공은 신뢰가 없음.
사실 시온만 안건드리면 어지간해서 괜찮은데 말이죠.
아무튼 이런저런 떡밥을 깔아놓고 나중에 터트릴 때의 반응을 보는건 작가로서 즐거운 일입니다.
이번 화에도 이런저런 떡밥을 뿌려두었으니 뒤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작가는 이만 페그오 레이드 뛰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