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81화 (481/507)

일단 아메리카노 정도로 쓴맛을 올려볼까!481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냉동 수면 장치의 내부, 꿀렁이는 엑토플라즘 사이에서 보이는 사람은 루리랑 별 차이 나지 않을 정도의 나잇대의 여성이였다. 대충 고등학생, 아니면 막 성인이 된 아이일까.

시온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에 비하면 희다 말할법한 피부의 여자였다. 미모는 꽤 예쁘긴 한데 큰 장점은 못된다.

미미하게 힘을 발하는 목걸이가 살짝 신경쓰인다. 저게 뭔지는 나중에 물어볼까.

"으, 으......."

그녀는 꿈틀거리면서 몸을 움직였다.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을텐데 아무리 영자 관련 기술을 썼어도 몸이 정상이 아닌건 당연한 일이다.

비척이며 일어나던 그녀는 희미하게 뜬 눈으로 중얼거렸다.

"무, 울......."

꽤 언어가 통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언어 또한 변하는 법인데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루리야, 말은 통하는 모양인데 일단 물 가지고 온것 좀 줘봐라"

"알았어"

루리가 가지고 온 물통을 꺼내서 그녀의 입에 살짝 대어 물을 마시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입술에 묻은 물기나 핥아먹는 수준이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마시는 양이 늘어간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윽, 머리야......"

"정신이 좀 드나?"

"......무례한것. 내가 누군줄 알고 감히 그런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냐? 아니, 애초에 너는 누구더냐?"

"보아하나 좀 높으신 분인것 같은데. 지금 상황을 파악해야 할껄"

대충 봐도 멸망 이전의 높은 위치에 있던 자인게 보인다. 시온의 예쁜 은발과 다르게 백발인 소녀의 것은 탈색이 되었다기 보다는 아름다웠으며 눈동자는 보석과 같은 청록색을 띄고 있었다.

게다가 행동에서 기품이 보인다. 저건 위에 서는 자만이 보이는 기품이다.

신분제가 폐지된 지구에서의 대통령 같은 사람의 기품이 아니라 대대로 남 위에 군림해온 왕족이나 보일법한 그런 당연한 기품, 혹은 카리스마 같은거라 보이는 것이다.

"무례한 놈이로고. 나는 령제 백희. 현 제국의 황태녀(皇太女)이며 제국을 이을 몸이다. 몰랐다 한다면 지금이라도 사죄하는 것을 허락할터이니 고개를 숙이거라"

"뭐? 제국?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너네 제국 미국 갔어!!!"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야기 할 것이 많구만. 일단 존나 오래 자다 깼는데 밥이나 먹고 하지 그러냐?"

어차피 밥 때도 됐기에 슬슬 뭐라도 먹기로 했다. 육체는 건강해 보여도 내부는 장난 아니게 부실할테니 그녀......그러니까 령제 백희라 했나? 아무튼 그녀를 위해서 점심은 소화가 잘 되는걸로 만들기로 했다.

도시에서 사온 쌀이랑 고기 약간, 간은 따로 하지 않고 냄비에 폴폴 끓여서 죽을 만든다.

죄다 낯선 재료이기는 하지만 내 능력인 '감각' 덕분에 타이밍 잡는건 아주 간단하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간만 살짝 하면 끝.

령제 백희는 불편해 하면서도 허기는 지는지 식사할 때까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죽을 몇수저 뜨고 나서야 그녀는 한마디 내뱉었다.

"재료는 소박하지만 솜씨가 일품이구나. 태령숙수와도 견줄만 한 실력이다"

"거 칭찬은 고맙게 받지"

뭐든 일단 요리 잘한다는 칭찬은 반가운 법이다. 그녀는 어느새 죽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식사를 끝냈다.

소화를 시키면서 서로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시간이다. 물론 먼저 물어보는 것은 우리다.

"아까 전에 제국이라 했는데. 무슨 제국을 말하는거지?"

"그야 물론 령 제국이지 따로 있겠느냐? 이 땅에 제국의 신민이 아닌 자들을 없을터, 그것도 모른다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고풍스럽게 시골 촌놈이라고 디스하는거 보면 얘 진짜 황실 사람인건 맞는것 같은데......"

"거기서 확정하는겁니까"

이내 이번에는 그녀가 우리에게 물어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여태까지 잘 참은거다, 그녀 또한 물어볼게 많았을테니.

"그렇다면 나 또한 묻겠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나는 최악, 옆에는 우리 마누라 시온, 얘는 들개 루리, 그 옆에는 진교"

"그것을 묻는게 아니다. 제국의 이름조차 모르는 그대들의 정체를 묻는 것이다"

"제국이고 나발이고 문명이 싹다 멸망해 버렸는데 알리가 없지. 애초에 멸망 전에 제국이 있었다는 것조차 지금 알았는데?"

"뭣이?!"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내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말한 것이겠지만 그녀에게는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댁이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게 뭔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

수백년은 넘을 과거의 기억을 되세긴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동공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신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그것을 피하기 위해 외조부님께서.......그래! 외조부님! 외조부님은 어디있는가!"

"혹시 저짝에 있는 미라 말하는거냐?"

우리들은 그녀에게 아까 보았던 미라를 보여주었다. 우리야 처음 보는 사람의 시체일 뿐이지만 그녀에게는 그가 누구였는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모양이다.

백희는 눈물을 흘리며 미라가 되다 못해 바스라지는 시신을 어루만졌다.

"아아.....외조부님. 어찌하여 이런 처참한 모습이......."

황실의 핏줄의 외조부라 한다면 손꼽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결국에 죽으면 남는 것은 시체 뿐이다.

더군다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이러한 지하 시설에 방치된 것이 전부. 그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녀는 못해도 수백년 이상의 시간이 벽이 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사람이랑 21세기의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이내 울음을 그친 그녀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외조부님의 유해를 수습해라. 장례를 치를 것이다"

"그거 암? 우리는 댁 부하도 아니고 제국의 신민도 아닌데? 태도 좀 다르게 하지 그래?"

진교가 움직이려다가 내 말에 움찔거린거 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시점에서 짐작은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녀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이내 생각을 하던 백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외조부님의 유해를 수습하는 것을 돕는다면 후일 사례하겠다"

"명령 다음은 제안이군. 그 다음에는 협상이 나올 차례인가?"

".......무얼 원하는 것이지?"

"의심병부터 버리고 오지 그래? 내가 아무리 개새끼라도 외할아버지가 죽은걸 본 사람 앞에서 대가를 바랄 정도의 개새끼는 아니야. 단순한 부탁 하나면 해줄것을 위에 서려거나 거래로 해결하려는 댁의 태도부터 고쳐야 할 일이지"

나는 괜히 그녀와 언쟁을 벌이는게 아니다. 저런 타입인 만큼 현 위치와 상황을 각인시켜주려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가 위에 서본 사람은 구슬리는 것보다 짓누르려고 한다. 그 태도를 여기서부터 확실하게 고치지 않으면 자신을 우리보다 위라고 생각할게 뻔한 일이였다.

간단하게 말해서......죽은 사람 부랄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래?

".........외조부님의 유해를 모시고 싶다. 부디 도와다오"

"좋아"

어떻게 보면 가장 비싼 대가였다. 얼마나 권위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황태녀라 불렸다면 그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의 자존심을 꺾은 것이니까.

우리들은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금 채비를 했다. 원래는 보물찾기 하려고 왔는데 보물이 아니라 사람을 찾게 되어버렸다.

아무튼 일행 한사람과 시체 하나를 가지고 다시금 수직 통로를 날아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힘을 쓰는 나를 보며 백희가 놀라 묻는다.

"숙수인줄 알았는데 술법사였나?"

"대충 그러려니 하자고"

지상으로 나온 우리들은 유적에서 빠져나왔다.

바깥에서 경계를 서는 경비들이 신경쓰였지만 가지고 있던 망토를 둘러서 백희의 모습을 가리니 우리가 가져온 시체에만 관심을 가질뿐 딱히 큰 간섭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유적에서 죽은 들개의 장비를 가져가는 대가로 공양이나 해준다고 했더니 좋은일 한다고 웃어주더라. 반은 비웃음이지만.

"어찌하여 풍요롭던 이 근방의 자연이 이리도......."

"이 별은 이미 씹창난지 오래야. 숲이라고는 귀족들이 키운 것 밖에 없을 지경이지. 내가 그리 오래 살아온건 아니지만 숲은 커녕 나무 한그루도 제대로 본적이 없어"

나무가 자라려면 그만큼 풍요로운 땅과 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두가지는 이 별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이다.

자연 환경이 정상적인 곳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여기는 낙원으로 여겨야 한다. 그만큼 이 별이 망가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해는 어떻게 할거냐. 모래 밖에 없는 곳에서 매장해봐야 의미가 없을거고, 그나마 나은 곳은 사람 먹을것 키우기에도 부족한 판인데"

"화장을 하도록 하지. 할 수 있겠나?"

"쉽지"

나는 삼매진화를 일으켜서 미라를 불태웠다. 원래는 종이 같은거 태울때 쓰는거지만 내공 만땅에 경지가 높으면 사람 시체 하나 태우는걸 일도 아니다.

삽시간에 완전히 불타 뼛가루 밖에 남지 않은 유해를 한데 긁어모았다. 드럼 호에서 안쓰는 상자를 하나 꺼내서 거기에 뼛가루를 보관해 유골함으로 삼았다.

"외조부님......."

유골함을 품에 안은 백희는 당분간 냅두기로 했다. 드럼 호의 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고 우리들은 선장실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뜩이나 좁은 배 안에서 선장실 하나에 4명씩이나 들어차 있으면 꽤나 비좁지만 상 당한 사람한테 조용히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할것 아니냐.

"뭔가 개꿀잼 상황이기는 한데 어떻게 할지 문제입니다"

"엄청 과거의 귀족분.......그것도 멸망 이전의 귀족님 아니십니까?"

"멸망 이전? 그러면 지금 귀족들은 뭐야?"

"그놈들은 죄다 그 후손이야. 못해도 아들, 그러니 멸망 이전을 본 귀족은 아주 드물지. 나를 쫒는 북부귀족 필두의 재호 유귀 정도가 거기에 속할껄"

"아무튼 데리고 다닐겁니까?"

"드럼 호 정원은 6명인데"

"앞으로 한명은 더 태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듣겠습니다"

"시온 언니는 데려갈 생각 만만인 모양인데?"

"멸망 이전의 기술력에 흥미가 생긴터라. 영자 관련 기술이 어느쪽 방향으로 발전했을지 궁금합니다"

"하논 특유의 기술 수집 욕구가 무럭무럭 생겨나고 있는것 같은데"

아무튼 결론은 데려가면 좋다라는 것이다.

우선 멸망 이전의 상황을 알고 있고 높으신 분인데다 데리고 있으면 생길 이득은 많다.

손해를 생각하면......애초에 귀족한테 쫒기는 루리를 도와주는 시점에서 이 이상의 손해는 그리 없다.

"우리의 목적은 두가지야. 하나는 이 세계의 멸망 원인을 밝혀내는것, 이건 사실 이루면 좋고 아님 말고의 목표지. 제일 중요한 두번째는 낙원인 유토를 찾거나 만드는 것이고"

"그리고 루리 네가 가지고 있는 여의주가 그 열쇠지"

"그 물건에 대해서는 멸망 전 제국의 황족이 잘 알것 같고"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메리트다. 게다가 내가 봤을 때는 개인으로도 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가 딱히 여자의 능력이 뛰어난 그런 세계도 아니라면 결국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있을텐데 여자의 몸으로 제국의 후계자가 된 시점에서 그 능력은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문제 터지면?"

"그럼 버리지 뭐"

"귀족님을 무슨 쓰레기 버린다는 듯이......"

"꼬우십니까? 꼬우시면......아시죠?"

"아, 아닙니다. 계속 말씀 하시지요"

우선 우리들은 백희를 한번 떠보기로 했다. 여의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묻고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보려는 것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슬픔이 가신듯한 백희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나름 예를 갖추며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외조부님의 유해를 수습하게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마. 그러나 그것 외에도 우리에게는 이야기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이야기 해보자꾸나"

"먼저 하나 물어도 되지? 혹시 여의주라고 알아?"

"이것 말이더냐?"

백희는 자신의 목걸이를 내어 보였다.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작은 구슬이 박혀 있었는데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미미한 힘의 근원이 바로 그것이였다.

아니, 근데 그게 여의주라고?

"여의주란 동력원과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단말이다. 이 작은 것 하나만으로도 저택 하나의 기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이지"

"그렇다면 여의주란 것은 단순히 하나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런 것을 총칭하는 단어인가?"

그러면 루리가 가지고 있는것도 단순한 여의주인가?

근데 되게 크던데, 시온도 그거 하나로 도시 하나 커버 가능하다 했었고. 황실의 후계자가 들고 다니는게 고작 저택 정도를 커버한다면 더 쩌는거 아닐까?

"루리야 그거 꺼내와서 좀 보여줘봐라"

"괜찮을까?"

"전문가가 봐야 판단을 해보지. 우리가 봐서 쓸모가 있겠냐?"

이내 루리가 창고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의주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백희의 반응이 경악하다 못해 분노까지 드러낼 정도로 놀라며 발작을 일으키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어째서!!!!! 대대로 령 제국의 황제에게만 전해지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루리가 훔쳤음"

"내가 안훔쳐써!!!!!"

전에 루리가 굉장한 것을 훔쳤다고 했는데 정정하겠다.

루리는 존나 굉장한 것을 훔쳤다.[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치만 루리짱 배신자잖아.

여의보주는 동력원보다 상징과 권한으로서의 성질이 더 강합니다. 대충 대통령 아이디 같은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걸 루리가 가지고 튀는중.

대사막 안건넜을 때 루리는 매드맥스를 찍고 있었습니다. 8기통! 8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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