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한 한그릇에 대충 만 오천원......그 돈이면 국밥 두그릇은 먹겠다!480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나한테도 나름의 양심은 있다. 물론 그 양심이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에 좀 뒤틀린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중학교나 간신히 다닐법한 나이대의 여자애가 몸 판다는 소리를 들으면 연민을 느낄 정도로는 양심이 있다.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 또한 있는 법이고, 매춘은 인간의 역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직업 중에 하나다. 하다못해 원숭이도 돈의 개념을 가르쳐주면 매춘을 한다.
몸 하나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데 이런 도덕과 윤리가 희박해진 세계에서 여자애가 몸을 판다고 해도 뭐라 그럴 사람은 없다. 그저 흥정 밖에 없을 뿐.
착잡한 느낌이 입안을 감돈다. 살짝 떨리는 아이의 눈을 보니까 본인 스스로도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은것 같다.
게다가 창관도 아니고 대낮에 시장에서 그런 제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증거다.
"저, 저......싫으신가요?"
"......."
이걸 어떻게 해야한다.
뿌리치는건 간단한 일이다. 어차피 지금 처음 얼굴 본 타인이고 도와줄 의무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도와줄 수 있는데도 생색내는 정도의 도움을 주는건 역겨운 위선 같지만 만약 그렇게 도와주다 보면 한도끝도 없어진다.
나는 대마왕이고 살인귀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건 마이너스적 행위. 파괴하고 죽이는 방식으로 밖에 못한다.
그리고 나한테 말 걸었다 하는 인연으로 구원받기에는 이 아이 외에 다른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구해야 하는건 이 아이가 아니라 이 세계의 문명이다.
"꽃을 팔 때는 낮보다는 밤에, 그리고 이런 시장보다 따로 그런 장소에서 하는게 좋아"
"아......"
"비쩍 마른게 안을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걸로 밥이라도 사먹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은 기껏해야 돈 몇푼 정도다. 국밥 한그릇이 대충 1영 정도 되니까 몇개만 줘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거다.
가진 돈을 다 주고 싶어도 이 아이는 그걸 지킬 힘조차 없다. 사실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구해줄거 아니면 처음부터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는걸 그래서 위선이라 하는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위선에 대한 감사를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건 내가 가진 남은 인간성의 증명이니까 한편으로 안심도 되지만.
소녀는 그대로 시장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준 돈을 어디에 쓸지는 본인의 몫이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 몸을 팔더라도.....
이내 나는 다시 시온과 합류했다. 저쪽은 다행히도 별일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이 세상의 잔혹함을 좀 봤어"
물건을 전부 사고 주막으로 돌아와 루리와 만났다. 일을 다 끝낸건지 짐 없이 가벼운 상태다.
"현금 대신에 받은게 꽤 많아. 화살이랑 폭탄이랑 상비약 같은거......뭐, 한동안은 걱정 없겠네"
"중간에 흉흉한게 하나 있지 않니?"
"유적 발굴에는 폭탄이 필수라고! 햣하! 예술은 폭발이다!"
"그러고 보니까 유적이라고 듣기만 했지 실제로 가본적은 없네"
"가보고 싶어?"
"근처에 있는거야?"
멸망한 이 시대에서 말하는 유적이란 멸망 이전의 시설물들을 말한다. 어디 쇼핑센터 같은 곳도 이 시대에서는 유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애초에 멸망한 뒤의 세계는 거의 소모만 할 뿐이다. 그 소모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만으로 부족하니 멸망 이전의 문명의 이기를 발굴하는 수 밖에 없다.
"이 근처에 도시 관리하의 유적이 하나 있었을거야. 보통은 발굴할만한 유적이나 기반이 되는 시설물이 있는 곳에 터를 잡고 도시를 짓거든"
"그런 곳이라면 이미 전부 털리지 않았을까?"
"어차피 그런거 찾으러 가는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혹시 알아? 뭐라도 주워먹을게 있을지"
"흠"
내가 슬쩍 시온의 의견을 묻기 위해 시선을 주자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찬성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습니다"
"시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그러면 가는걸로 결정이네. 일단 대충 준비는 해둘께! 오늘은 주막에서 자자"
우리가 낮에 밥을 먹었던 주막은 두개의 큰 방으로 나뉘어서 거기서 잘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하나는 남자, 다른 하나는 여자용 방이다.
방 하나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낑겨서 자려니 꽤나 불편했지만 여자쪽 방은 나름 널널해서 괜찮은듯 했다. 나야 이런 잠자리는 나름 익숙하니까 문제 없다. 좀 덜자도 피곤하지 않은 몸이고.
아침이 되자 주막에서 다시 아침을 때우고 도시 바깥으로 나서 드럼 호에 탑승했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유적이 나온데. 아직도 간간히 발굴품이 나온더니까 진짜 운 좋으면 뭐 하나 얻어올지도 모르겠다"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네"
"하지만 경비 시설도 아직 살아 있으니까 조심해야할껄"
"뭐라고?"
"아, 그러네. 아저씨 있는거 깜빡했다"
뭐 행성파괴용 위성 폭격 같은거라도 나한테 의미 없을텐데 고작 멸망한 세계의 시설물이 나를 위협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도 우리한테는 소풍나가는 것과 같은 일이였다.
서쪽으로 한시간쯤 이동하자 유적이 보였다. 호버 바이크와 같은 기능에 크기만 거대한 트럭 같은 것들이 몇대 서 있는게 보이고 그 위에 쇠뇌 같은 무기가 달려있는게 보였다.
석궁이라 하지 않고 쇠뇌라 한건 크기가 달라서다. 사람 몸뚱이만한 석궁과 같은 그것은 여차하면 쏘겠다는듯 화살이 이쪽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허가 좀 받고 올께"
"따로 허가서 같은걸 받아야 해?"
"도시의 들개소굴에서 이미 출입 허가서는 받아왔어. 그걸 보여주면 되는 절차야"
이내 루리가 드럼 호에서 내려서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허가서를 보여주었다.
생각해보니 여기 종이는 어떻게 만드는건지 모르겠다. 시중에서도 잘 쓰일 정도로 나름 공급은 있는 모양인데 어디서 따로 공장이라도 돌아가는건가?
"됐어. 장비 챙겨서 들어가면 돼!"
"보물찾기는 언제 해도 재미있습니다"
"부디 좋은걸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온님"
"그럴듯한거 하나쯤 발견해야 할텐데 말이지......."
꽤나 오래전 시설일텐데도 사막의 기후에 굴하지 않고 아직까지 형태가 남아 있었다. 대충 4층짜리 건물일까, 하지만 부서진 흔적을 보아 그 이상의 규모를 자랑했을지 모른다.
이곳 건축 양식을 모르니 어느 용도로 쓰인 건물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넓은걸 보면 단순한 시설은 아닌듯 싶다.
"입구부터 털어간 흔적이 한가득이네. 누가 개새끼들 아니랄까봐 돈 되는건 다 뜯어갔어요"
"누군 들개 아닌줄 알겠네"
"걔들이 똥 묻은 개라면 나는 겨 묻은 개야!"
"결국 거기서 거기란 뜻이잖아!"
오래되어 풍화된 흔적이나 부서진 흔적이 눈에 띈다. 시온은 건축 쪽에 관심이 있어서 조형이나 건물의 양식을 주의깊게 보고 있는데 꽤 재미있는듯 하다.
루리는 석궁을 앞세우고 점차 유적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행의 후방을 진교가 경계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다 털어가고 그래서 별거 없어 보이네"
"경비 시설도 자율기갑병이나 무인기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돈 벌 부분이라고는 구조물의 금속들을 떼어다가 파는것 정도 밖에 없을텐데......."
"보아하니 누군가의 저택이였던것 같습니다. 건물의 하중이라거나 시설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위로 6층 정도는 있었을테고,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노후화 되어서 붕괴되어 있습니다"
".......응? 지하?"
루리가 시온의 말을 듣고는 의문을 표했다.
"대충 레이더의 윈리로 구조 좀 파악해 봤는데 승강기 통로 같은 것이 하나 지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봐. 들개소굴에서 구했던 유적 지도에는 그런거 없던것 같은데"
이내 루리가 시온에게 지도를 펼쳐 보여주었다. 시온은 자신이 파악한 승강기의 위치와 지도를 파악하며 확실하게 구조를 파악했다.
"원래 최상층에만 연결된 승강기라서 노후화에 따라 붕괴한 뒤에는 찾지 못하게 된것 같습니다"
"이런 저택 최상층이라면 주인만 쓰는 것일텐데.......이거 돈 냄새가 좀 나는데?"
"아무래도 조금이 아니라 꽤 많이 나는것 같습니다. 역시 시온님이시군요!"
"일확천금 가즈아아아아아!!!!"
시온이 찾은 승강기 통로는 최상층에만 연결되어 있던 형식이다. 하지만 지금 건물의 상층부는 박살나거나 없어진 이상 원래의 통로는 상실되어 있을테고 그곳을 통하기 위해서는 근처의 벽을 허물어야 했다.
루리와 시온, 그리고 진교가 서로를 나누며 정확한 위치를 탐지했다. 이내 확신이 서자 그 다음의 일은 나한테 맡겼다.
"이 벽을 부숴주십시오"
"흠, 확실히 뒤에 공간이 있기는 한데"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기둥이 아니라 벽이잖아. 아무튼 부순다?"
주먹을 쥐고 가볍게 내지르자 콰앙! 하고 벽이 박살난다. 그리고 텅빈 수직 통로가 우리를 반겨준다.
지도에는 없는 장소를 발견하자 루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야 모험하는것 같아서 두근두근거리는게 크지만 루리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느낌이 강하다.
진교는 수직 통로를 힐끔 내려다 보고는 말했다.
"꽤 깊어서 내려가려면 줄이 필요할것 같습니다만......."
"그럴 필요 있어? 날아서 내려가면 되는데. 불이나 준비해"
"예?"
"조명 준비 완료!"
내가 염동력으로 우리 일행의 몸을 띄웠다. 그리고 수직 통로 아래로 가볍게 추락하듯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교는 내 능력을 보고는 경악한 표정이 가득했다. 이런 세상에 이능 하나 없진 않을텐데 왜 놀라지?
"최악님, 혹시 강화병이 아니라 주술사셨습니까?"
"이런일 하는 애들이 따로 있나봐?"
"예, 그런데 주술사는 드물어서 큰 도시에 가야 한두명 정도 있을터인데......."
생각외로 이능력자는 있어도 드문 모양이다. 하기사 입문이 쉬웠다면 루리부터 그런걸 익히고 있었을테지.
루리가 든 조명에 의지해 천천히 어두운 수직 통로를 내려간다. 깊이는 꽤 깊어서 이 건물이 멀쩡 했을 때도 위보다 아래가 더 깊은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바닥에 닿았다. 딱딱한 감촉, 돌이나 그런게 아니라 금속질의 감촉이 느껴진다.
퉁퉁! 하고 두드려보니 텅빈 무언가다. 아무래도 이게 승강기인것 같다.
"흠, 재질도 튼튼하고 들어가는 문도 없어 보이니 일단 절단기가 필요하......."
콰지지지직!!!
"뭐라고?"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최악님"
두터운 승강기 천장 부분을 종잇장 찢듯 찢어버리고 안으로 들어선다.
여태까지 본 이 세상의 것들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근미래적인 승강기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승강기가 아니라 이게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다.
"일단 연다?"
"승강기에 불은 안들어와 있으니까 시설도 정지되어 있을것 같긴 한데 절대적인건 아니니까 조심하자구"
드드드득!!!
승강기의 문을 강제로 열어 지하 시설에 진입했다. 오래되고 곳곳에 먼지와 모래가 쌓인 내부가 우리를 반겨준다.
우리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짝 마른 시신이였다. 미라가 된것처럼 수분 하나 없이 쪽 마른 시체는 지하 시설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최상층에 연결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 주인쯤 되겠지. 근데 왜 여기서 죽어 있냐?"
"말라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등에 칼을 맞은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사인인것 같습니다, 최악님"
"근데 좀 이상하네"
문제는 시체가 미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시체는 죽는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이 세계가 언제 멸망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1,2백년 전의 일은 아닐테니 대충 천년쯤 잡아도 인간의 시체는 뼈만 남아도 이상하지 않다.
백골이 아니라 미라로 남아 있는건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다. 뭔가 따로 시체에 작용을 한 것일까? 아니면 멸망 전 인간이 특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쪽에 뭔가 빛나는게 있습니다. 헌데 이건......."
진교가 무언가를 발견해 우리들에게 알렸다.
거기에는 1인용 캡슐 같은 것이 미약한 빛과 함께 웅웅거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이건......귀족붙들이 사용했다던 냉동 수면 장치입니다"
"이게 아직도 기동한다고?"
유지보수 없이 기계가 수백년을 기동하면 마모되고 고장나는게 당연하다. 그게 정밀기기라면 더더욱 그러할텐데 지금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시온이 캡슐을 살펴보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엑토플라즘과 영자를 이용한 설비 같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멀쩡한겁니다"
"아, 영자 관련 기술이라면 시간에 영향을 덜 받을테니까.......일리는 있군"
단순한 물질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모되지만 영자는 그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다.
애초에 영혼이란 형태도 없는 것을 이루는 물질인 만큼 그걸 이용한 기술도 나름 오래가긴 한다. 아마 미량만 함유되어도 수백년은 가뿐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간에 냉동수면장치가 아직까지 기동하고 있다는 것은 안의 사람도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주 오랬동안 잠들어 있던 멸망 이전의 인간이 말이다.
"냉동 수면을 해제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개꿀잼 각이군. 파이널 퓨전을 승인한다!"
"알겠습니다! 프로그램 드라이브!!!!!"
"아니 여기서 가오가이거가! 무엇을 찾기 위해 이길을 해메이나~"
콰직!!!!
시온이 패널을 박살낼 기세로 후려쳐 냉동장치를 해제시켰다.
피쉬이이익! 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이 열린다.
그리고 안에 있던 사람은......[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개 개인이 도와주는거면 선행일지 몰라도 다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명만 도와주면 그건 위선이 되어버리죠.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대마왕은 파괴하고 부수는 것 밖에 문명을 이롭게 하지 못해요.
그래서 주인공도 화성 문명에서는 사무 업무가 아니라 범죄자 조지면서 간접적 치안 유지 밖에 못하지 않습니까.
으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씁쓸한 맛이 아직 카페라떼 수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