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데스클로 국밥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을 끓일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479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언어나 그쪽 부분이 동양계 비슷하다고 도시 내부는 옛날 옛적 한국과 중국을 반반쯤 섞은 민속촌 같았다.
인구 수는 약 2만명 정도가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수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 자체가 가진 것이 많다는 반증이지만 그게 마냥 옳은건지 모르겠다.
이전 촌락에 있던 사람들은 그리 풍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종종 어둠이 깊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가끔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도 있어보이고 말이다.
"아! 어서오세요! 외부인이신가요? 네분이시죠?"
"일단 국밥 4개! 물도 한동이!"
"총 9영입니다"
"여기!"
사극에서 나오는 주막 같은 곳이다. 다만 크기는 좀 더 넓고.....주모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주문을 받고 들어갔다.
우리들은 단상 위에 앉아서 주문한게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다. 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다.
"생각해보니 진교 넌 왜 자연스럽게 여기에 끼어 있냐"
"부디 모시게 해주십시오. 성심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시온 때문에 그러냐?"
"예, 시온님은 유랑 귀족이시지만 다른 방탕한 귀족들에 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으신 분입니다. 저 또한 수하를 사지로 밀어넣는 귀족에게는 정나미가 떨어졌고 돌아갈 면목도 없으니 일행으로 넣어주십시오"
"흠, 나쁘진 않은데"
내가 마냥 시온 옆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게 항상 그런건 아니다. 시온이 마음만 먹으면 이 별을 쓸어버릴 수 있지만 시온의 손으로 피를 묻히게 하는건 싫다.
그러니 시온의 손을 대신할 칼 정도는 있어야지. 내가 없을 때 누가 시온을 노리면 조져버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게다가 혹여 떨어져도 이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을테니까.
"근데 내가 니 동료들 죄다 죽였는데 괜찮냐?"
"무슨 문제라도?"
참는거나 회피하는게 아니라 그냥 진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이야기란 표정을 보인다.
동료들에게 정이 없던 것이거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 자체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혹은 둘 다일 가능성도 있거나.
일단 나는 반쯤 승낙하는 형태로 받아들였다.
"일단 하는거 보고 결정한다. 아직 완전히 승낙한건 아니야"
"예, 알겠습니다. 헌데 최악님과 시온님은 관계가......"
"저희 남편입니다"
"우리 마누라지"
"........어, 음. 평민과 결혼하시다니. 정말 독특한 귀족이시군요"
"일 없을 때는 내가 부려먹어도 됨?"
"맘대로 해라"
"아싸! 따가리 하나 생겼다!"
오래 대화한 것도 아닌데 주문한 국밥과 물이 나왔다.
쓰는 그릇이나 수저는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였다. 모양새는 나쁘지 않지만 유약이라던가 그런걸 발라 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광택이나 그런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식기로는 쓸만해 보인다.
"근데 이거 뭘로 끓인거냐"
"알아도 상관은 없는데 모르는 편이 나을껄"
"왜?"
"귀족의 농장에서 나온거 아니면 뭘 먹여 키웠는지는 모르거든"
"보통은 흙돼지를 잡아 만들기는 합니다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요"
"저어기 광견 놈들은 인육 국밥 같은거 끓여먹었단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밥 먹는데 그딴 이야기 하지 마라"
냄새는 딱 돼지 국밥이다. 건더기는......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국물도 그리 많은편은 아니고.....오래 끓인 느낌도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도시라서 물은 쓸 수 있겠지만 가축은 키우는데 오히려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뭐를 더 아껴야할지 대충 나온다.
주변에서 먹는걸 보아하니 메뉴는 그리 다양하지 않은것 같았다. 국밥 외에 먹는 메뉴는 수육이라던가 그런거 정도 밖에 없다.
"수육도 하나 시키지 그렇습니까?"
"시킬까요, 시온님?"
"비싸! 아껴야 잘살지!"
"물도마뱀도 잡았는데 조금은 사치를 부려도 되지 않습니까?"
"그 돈으로 차라리 국밥을 한그릇 더 시켜먹겠다!"
"아니, 여기서 국밥충이?!"
"국밥 먹는데 국밥 소리하면 국밥에 대한 게슈탈트 붕괴가 올것 같으니까 자제좀 해라"
"국밥을 2인분을 시켜 한 그릇에 스까 묵으면 밥국밥인가 국밥국인가"
"뭔 등신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어?"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간은 소금으로만 한것 같은데 누린내도 그리 나지 않았다.
만든 사람의 실력이 아니라 재료가 좋은것 같다. 흙돼지로 만들었다고 했나? 나중에 한번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든든하게 국밥에 밥 말아먹고 배를 채웠다. 여기도 나름 농사를 지어서 쌀이 있었는데 알갱이가 좀 크다. 씹는 맛은 좋지만 지구의 것과 비교하면 맛이 덜하다.
음......개인적으로 이 쌀은 밥으로 먹는 것보다 뻥튀기 마냥 해먹는게 더 맛있을것 같은데.
"아, 배부르다. 간만에 잘 먹었네"
"여행 중에는 우리 남편이 요리해주지 않습니까?"
"그래도 만들어 먹는거랑 시켜먹는건 다르잖아? 뒤처리도 그렇고"
하기사 집에서 구워먹을 수 있는데 바깥에서 삼겹살 사먹는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준비하고 치우는걸 스킵할 수 있기에 편해서 그런거다. 편의와 시간을 돈으로 사는거라 할 수 있지.
아무튼 주막에서 나와 물건을 팔기 위해 움직였다. 따로 파는 곳이 있는지 루리가 물어물어 도시 한 구석으로 찾아간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 질이 나쁜 녀석도 종종 있거든"
"그래 보인다"
질이 나쁘다고 해서 하층민이란 소리가 아니다. 루리나 진교가 입고 있는것 같이 부분적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파워드 수트를 입고 있는 녀석들이 상대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행실이 나쁜거면 귀찮기만 하지만 힘을 가지고 있는 놈은 위협이 된다. 루리가 경고한건 그 부분이였다.
"근데 어디로 찾아가는거냐?"
"이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들개들의 본거지야. 거기서 여러 부산물이나 물건들을 구할 수 있지. 나름 도시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라 신뢰는 있어"
"이름은?"
"들개소굴"
"노골적이고 솔직한 이름입니다"
문조차 달려있지 않은 건물로 들어서자 시선이 쏠린다. 들개소굴이란 이름에 걸맞게 루리와 엇비슷한 장비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꽤나 쾌락주의적인 일을 하는 모습에서 퇴폐적인 느낌이 난다. 남자만 있는게 아니라 여자도 있었지만 적어도 루리 나이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뭐야, 요즘은 너 같은 애새끼도 들개라고 하고 다니는거냐? 들개보단 강아지인것 같은데?"
"느그 애미 복창 터진 소리 하고 있네. 내 얼굴 본적 있는 새끼라면 뒤지기 싫어서라도 눈 피할텐데 넌 운 좋은줄 알아라"
"강아지가 말이 험하구만? 간만에 개고기 좀 먹어볼까?"
"너네 애미가 너 낳자고 터진 양수가 아깝다 새끼야. 아니, 그 전에 니 새끼 애비가 싸지른 정액의 물이 아까워!"
"이년이 진짜!!!!"
주변의 들개들은 거리를 벌려 싸움 구경을 하고 누군가는 즉석해서 두사람의 승패를 걸고 도박을 벌인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듯한 반응이다.
루리를 도와줄까 했었지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같은 장비를 입고 있다면 성인 남성인 상대에 비해 루리가 불리한 상황이여도 능숙하게 달려들어서 주먹을 날린다.
퍼어억!!!
상대가 반응할 사이도 없었다. 사각으로 들어가서 힘차게 날린 주먹을 얻어맞은 남자는 그대로 강냉이를 털리고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한동안 죽만 먹어야 할듯 싶다.
"또 덤빌놈 있어? 효도 좀 해드리게 느그 뒤진 애미 애비 곁으로 보내주마!"
"꽤 성질 사나운 개새끼가 들어왔군"
"뭐, 보기보단 실력있는데 그래?"
더 싸울 놈은 없는지 들개들은 그대로 흩어졌다. 저어기 도박하고 있던 놈들 중에 루리에게 건 놈들은 한몫 챙겨서 희희낙락 웃는다.
상황이 정리되자 루리는 손을 털고 카운터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까 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험한 인상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박살난 벽을 가리켰다.
"수리비는 받아낼거다"
"그럴 생각이였으면 애초에 개새끼 교육을 잘 했어야지. 이 바닥 반은 눈치인거 몰라?"
"북쪽의 개새끼 중에 망나니로 소문난 암컷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너인 모양이군"
"아,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다 났어? 역시 나야!"
"뭐, 좋아. 들개소굴은 오는 놈 막지 않고 가는 놈 잡지 않는 곳이지. 뭐 하러 왔나?"
"물건 좀 팔러"
"물건은?"
"물도마뱀"
스무스하게 흘러가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여기 관리자로 보이던 남성은 피우던 담배를 테이블에 비벼 껐다.
진중한 눈이 되어 루리를 마주한다. 아무래도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 모양이다.
"운이 좋았나 보군"
"뭐, 가끔 한탕 해먹을 수 있는 날도 오는 법이지. 얼마나 쳐줄거야?"
"얼마를 원하지?"
"역제시충은 지네 애미 팔 때도 제시하라고 할 새끼들인거 몰라? 내가 딴데가서 파는꼴 보고 싶어? 물도마뱀은 군수물자로 유용하게 쓰이니까 그만큼 손해가 클텐데?"
"흠......"
이내 남자는 좀 생각하더니 가격을 제시했다.
"한근에 110영"
"쓰는김에 더 쓰자. 115영"
"이쪽도 남겨먹어야지. 112영"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쳐줘. 113영"
"좋다. 지불은 어떻게 할거지?"
"그거 전부 현금으로 주기에는 딸리지? 그러면 절반은 현금이랑 현물로 적당히 분배하고 절반은 도시 발행 어음으로 줘"
"알았다"
거래를 끝내고 가지고 온 물도마뱀 사체를 넘겨주었다. 저쪽에서 무게를 재고 그에 따라 값을 정한다.
한근에 100영 좀 넘게 가격을 매겼더니 대충 1만 정도 나온다. 근데 질량 이상의 수분을 품고 있는 물도마뱀을 근수로 따져도 되는건가? 이쪽 문화를 아직 잘 몰라서 모르겠다.
한편으로 단순한 물값 아닌가 싶겠지만 방금 루리가 말했듯이 군수물자로 쓸 수 있기에 더 유용하다. 살점 한조각으로 하루치 수분을 보급할 수 있는 것은 부피도 작고 유용하니까 말이다.
"아, 다행이다. 대사막 넘어오느라 개털이였는데 돈 벌었네"
"돈 벌었으면 돈 좀 줘봐. 우리도 비상금은 있어야지"
"그러면 용돈 받아라!"
루리가 나랑 시온한테 100영씩 챙겨주었다. 아까 주막에서 국밥 4그릇에 물 한동이까지 사서 9영이였으니 돌아다니면서 실컷 군것질 하고 사고 싶은것도 살 수 있을거다.
"일단 그걸로 시장이나 다녀와. 옷이랑 생필품 같은거 좀 사고 말이야"
"아, 요 앞에 있던거 말이지?"
"나는 잠깐 돈 대신 받을 현물 좀 고르고 있을테니까 말이야. 아, 혹시 모르니까 진교도 데려가고"
"알았어"
루리와 잠깐 헤어지고 우리들은 시장으로 향했다.
거리 하나를 장사꾼들이 쓰고 있는 시장은 북적하면서도 활기차다. 물건의 종류가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대부분 우리가 모르는 물건이여서 흥미가 돋는다.
"거기 새댁, 오늘 천향과가 아주 단데 하나 어떠신가?"
"예? 저 말입니까?"
장사꾼은 시온이 아니라 진교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둘이 부부 아니여?"
"거 착각할만 하긴 하지만.....아무튼 아저씨 그거 몇개 주세요"
"고맙수!"
생각해보니 시온은 원래도 어린애처럼 보이고 나랑 부부로 보기에는 미녀와 야수같다. 지금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오히려 더 어린애 같기에 나랑 진교랑 부부로 착각하는 것도 이상한건 아니다.
아무튼 천향과란 과일을 하나 사서 먹어보았는데 시큼하고 떫은 맛이 올라온다. 그 뒤에 단맛이 없는건 아니지만......비슷한 과일을 찾아보라면 대충 자몽쯤?
"이게 단거면 안단건 얼마나 쓴거야"
"천향과는 냄새가 좋아서 맛보다 향을 즐기기는 합니다"
"확실히 냄새는 좋습니다. 두어개 챙겨갔다가 드럼 호에 방향제로 둡시다"
"모과냐"
구매보다는 품목을 확인하는게 먼저다. 우리들은 돌아다니면서 뭘 파는지 보고 살 물건들을 정했다.
"돈 있을 때 향신료나 좀 사볼까. 간 맞출게 소금 밖에 없어서 요리하는데 고생한다고"
"그러면 저희는 옷을 사오겠습니다. 어차피 이런 곳에서 치수별로 기성품을 없을테니 있는 것중에서 괜찮은걸로 따로 사겠습니다"
일단 일행을 나눠서 사기로 했다. 살짝 걱정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멀리 갈 것도 아니고 진교도 옆에 있는데다 시장에서는 경비도 돌아다녀서 치안을 유지 중이다. 여차하면 귀족 코스프레 해도 되니까 문제 없다.
이 세상 특유의 향신료를 조금씩 맛보고 구매하던 와중에 누군가 내 옷깃을 잡는게 느껴졌다.
"응?"
"저기......"
그나마 깨끗해 보이기 위해 빨긴 한것 같지만 옷 자체가 낡은건 어쩔 수 없다. 잘 먹지 못해 마르고 빈곤한 기색이 역력한 기껏해야 열댓살 정도의 소녀는 조심스레 말한다.
"꽃 사실래요?"
.........부탁인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라도 들고 있다고 해주지 않으련?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작중 화폐 단위는 대략 1영에 만원에서 2만원 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밥 한그릇에 1영이고 4명이서 한잔씩 마실 정도의 물이 5영 정도 하죠.
의외로 국밥이 싸다고 생각하시는데 도시라 인프라가 갖춰 있어서 팔 수 있는겁니다. 그나마도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국밥 양보다 적고요.
물도, 장작도 부족한 도시 바깥에서는 오래 끓여야 하는 요리는 꿈도 못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