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75화 (475/507)

연참 가즈아아아아아!!!475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여행하는 초월자들을 위한 안내서]아무리 사막화된 세상이라도 물 자체가 없을 수는 없다. 생명에 살고 있다면 거기에 보통 수분을 필요할테니까. 그러니 자연적으로 어떻게든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이고 거기에는 사람이 모여살기 마련이다.

마을은 작은 촌락 수준이였다. 수원지를 중심으로 하여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그 바깥에 촌락이 세워져 있다.

촌락 바깥에도 돌담은 세워져 있었지만 그 높이가 수원지를 두른것만 못했다. 그것만으로 그들이 외부의 침입보다 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거기 언니는 이거 좀 둘러서 피부를 가려, 얼굴도"

루리가 시온에게 망토와 스카프를 건내며 그렇게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음......여기서 언니는 다른 사람이 보면 착각할만한 것이 좀 있거든. 그러니까 되도록 문제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사전 준비야"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듣겠습니다"

며칠간 항해 해왔지만 언어 익히랴 뭐하랴 해서 못들은게 많다. 그런건 직접 몸으로 배워도 되기에 나름 기대되는 감이 있었다.

촌락의 경비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몇이 이쪽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다. 활도 있고 창도 있는데 창의 날 부분은 금속으로 된걸 보면 어디서 공급받는 곳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야, 수고 많으십니다! 지나가던 들개인데 물 좀 사고 가도 될까요!"

"들개라고?"

경비들의 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드럼 호를 수상쩍다는 듯이 살펴본다.

"꽤나 실력있는 들개인 모양이군. 유적 발굴품인가?"

"뭐, 그렇죠. 운이 좋았긴 하지만요. 아무튼 들어가도 될까요?"

"말썽만 부리지 않는다면 좋다. 물을 사고 싶다면 수원지로 들어가기 전에 경비에게 말을 하고 물의 양을 정확히 신고한 후에 값을 치뤄라"

"네네, 알겠습니다"

루리는 스무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나를 손짓해서 불렀다.

"아저씨는 모래 호랑이 가죽 좀 널어놔. 좀 더 말려야 하니까 어차피 겸사겸사 하자고"

"이런데서 그런걸 대놓고 널어놓으면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이런 마을이 오히려 최소한의 치안이 유지되는 법이야. 촌장이 나름 관리를 해서 외부인이라도 물건을 훔쳐가는 주민이 있다면 엄하게 다스리거든. 이런 작은 마을에 숨길데도 없고 팔데도 며칠은 가야 있는데다가.......무엇보다 우리가 모래 호랑이도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협박이 되지 않겠어?"

"아하?"

무언가 돈이 되지만 돈은 아닌 것을 훔쳐도 그것을 구매해줄 인프라가 되지 못하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법이다.

루리의 말대로 이런 좁은 마을에서 저런걸 훔쳐봤자 들키는건 한순간. 자급자족에 한계가 있다면 외부와 교류를 해야하는데 물건을 훔치는 놈이 마을 사람이란게 알려지면 꽤나 문제가 된다.

나는 모래 호랑이의 가죽을 갑판 위에 널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따로 처리도 해두었지만 가죽 자체의 무게가 꽤 되어서 어지간한 바람에도 날아기지 않을거다.

그러다가 한 경비가 모래 호랑이의 가죽을 보고 소리쳤다.

"저, 저거!!!"

"터줏대감 놈 아니야?!"

"가죽 옆구리 부분의 흉터! 저거 저번에 활 맞은 상처잖아! 틀림 없어!!!"

아무래도 놈이 먹은 사람 중에 이 촌락의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한눈에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경비대장은 모래 호랑이의 가죽을 보고 태도를 달리했다. 낯선 외지인을 경계하는 모습에서 약간의 친근감과 두려움을 품는다.

"크흠, 이 주변 터줏대감을 잡은거요?"

"뭐, 터줏대감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덤벼오길래 잡았어요. 여어기 있는 장사님이 목졸라 죽였죠"

"허! 확실히 다른 상흔이 없는걸 보면......."

경비대장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한다. 나는 그냥 넘겨버리고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런데 내 눈매 때문인지 그것을 한편의 위협이라 본 모양이다. 살짝 겁먹은 기색으로 물러난다.

"모래 호랑이라면 열 마리도 혼자 죽일법한 외모군"

시비터는거지 지금?

아무튼 소식이 퍼지는건지 사람들이 나와서 모래 호랑이의 가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크흐흑, 어머니......"

"으하하하하! 잘 죽었다!!! 잘 죽었어!!! 이제 울 아부지도 편히 가실거야!"

"저놈!!!! 저놈!!!!! 으아아아!!!!"

"아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각양각색의 반응이다.

같은 호랑이라 부르니 생각난 이야기인데 한국 땅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아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을 호환(虎患)이라 했다.

그들은 호환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가죽이나마 애환을 토해내며 감정을 호소한다.

꽤나 안타까운 광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실례합니다, 저는 이 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는 장환이라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지나온 세월이 얼굴에 보이는 촌장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힐끔힐끔, 그는 모래 호랑이의 가죽을 보고는 약간의 탐욕스런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나 정도 되니까 파악할 수 있던거지 처세술이 꽤나 숙련 되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환대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최근에 터를 잡은 모래 호랑이를 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우리들은 촌장의 집으로 들어섰다. 나무는 쓰지 않고 돌과 진흙, 그리고 풀로 만든 초가집이지만 물조차 귀한 곳에서 진흙을 쓸 수 있다는것 자체가 나름 여유가 있다는 증거다.

구워 만든 도자기 같은 잔에 물을 내어준다. 따로 차 같은 것도 아니며 하다못해 끓인 물도 아니지만 일단은 마셨다.

"들개라고 들었는데, 대사막을 넘어오신겁니까?"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요"

"하긴, 그런 유적 발굴품을 가지고 있으시면 대사막을 넘어오는 것도 한결 편하겠군요"

나와 시온은 한발 물러나 루리가 알아서 하도록 지켜보았다. 어떻게 뭘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루리는 촌장이 내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건 목이 말라서라기 보다는 지금 마시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것 같단 느낌이 더 강했다.

"헌데......모래 호랑이의 가죽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일단 말린 후에 도시에 가서 팔려고요.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가죽이니까 좋은 값을 받겠지요"

"그렇다면 저희 마을에다 파시는건 어떻습니까?"

"값을 치르실 수는 있고요?"

"바라시는 만큼 값을 치르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머무르시는 동안 편의를 봐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은?"

"마을사람 처럼 대접해드리지요"

"좋아요"

거래는 단숨에 끝났다. 루리가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게 꽤 잘쳐준 모양이다. 듣기로는 편의를 봐준다는 것 밖에 듣지 않았는데 생각외로 그게 좋은건가?

가죽을 가지러 가기 위해 촌장의 집 바깥으로 나가자 루리가 설명을 해왔다.

"이런 촌락의 사람들은 물 하나만큼은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외부인만 돈 받고 파는거지. 게다가 물값도 만만치 않거든"

"부족한 금액을 물 값으로 대신 주겠다?"

"촌장이라면 드럼 호에 물탱크가 있다는 것도 알거야. 무료로 그 물탱크를 가득 채워도 된다는 소리지. 크으으, 물값 굳었다"

한국에서는 20세기만 하더라도 물을 사먹는다는걸 우스갯소리로 여기다가 21세기에 진짜로 물을 사먹는 시대가 왔지만 여기는 정말로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물을 팔아먹고 있다.

사막을 건너와 마을에 이르러도 돈이 없으면 물을 사먹을 수 없는다는 소리일까. 꽤나 잔혹한 이야기다.

"아, 시온. 어딜 보고 있어?"

"그냥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때?"

"꽤나 순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럴 수 밖에"

기술의 발전은 좋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무언가를 앗아가기 마련이다. 정보화 사회가 되어 수많은 정보를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자 사람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그 시절 초등학생이 노란색 브릿지 염색하고 매직키드 마수리 목걸이 차며 피카츄 돈가스나 먹으며 다니던 것과 최근의 초등학생이 롱 패딩 입고 스마트폰으로 카톡이나 페이스북 하면서 돌아다니는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멸망 이전의 사람들이 뭘 했던지 그만한 문명을 이룩하고 순수함을 잃어버렸겠지. 그런데 그것을 멸망하고 나서야 되찾게 되다니......꽤 아이러니한게 존나 재미있어"

"이럴때 보면 당신 성격 나쁩니다"

"대마왕으로서 주관 없이 문명을 볼 수 있는거라 어쩔 수 없다고"

밤이 되었다. 본래 사막의 밤은 춥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밤은 밤에도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진다.

대낮의 살인적인 더위 정도는 아니고 더운 여름밤 정도지만 그래도 더운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열기처럼 사람들의 열기도 식지 않았다. 이곳의 터줏대감을 잡아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위령제이며 축제가 벌어졌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술도 있고 고기도 있다.

"모래 호랑이 고기를 그렇게 써도 돼?"

"어차피 육포 만들거는 남겨 뒀으니까 맛도 없는거 생색이나 좀 내자고. 우린 고기 말고 딴거 먹으면 되잖아? 술 마셔 술"

"근데 신기합니다. 먹을 것도 부족한 곳에서 술이 있다니"

"아, 그건 백향 선인장이라고 따로 수액에 알콜 성분이 있는 선인장이 있어. 물만 주고 키워서 으깬 뒤에 물에 적당히 타면 마실만한 술이 되거든"

"꽤 신기합니다"

"물 주면서 키워야 하는거라 좀 비싸긴 하지만 원래 술이란게 사치품이니까. 그리고 진짜 곡식 증류해서 만드는 술은 여기서 엄청 비싸. 이거보다 싼것도 있긴 한데.......도시쪽의 기계 부산물로 나오는 에탄올을 섞은 되게 싸구려라 마시면 몸에 되게 안좋아"

원래 술이란 만드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통은 발효시켜서 만든다.

과일, 곡물 등을 써서 만드는데 한병의 술을 만들려면 꽤나 많은 양이 필요하다. 먹을것도 부족한데 술을 만들기에는 여유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그런 식물이라도 물을 줘서 키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제. 수원지가 있는 마을인 만큼 물 걱정은 없으니 보일 수 있는 여유다.

"그래도 마냥 절대적인건 아니야. 수원지라고 물이 마냥 펑펑 나오는건 아니니까"

"가뭄이 들 때도 있나보지?"

"그렇지 뭐"

촌락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들이 춤을 춘다. 술을 마셔 흥겨운 분위기가 처음 듣는 노래를 타고 울려퍼진다.

시온은 조용히 옆에서 술을 마신다. 그리 좋은 술이 아닌데도 꽤 마음에 드는지 안주보다 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입에 맞나봐?"

"나름 괜찮습니다. 향에 제 취향에 맞아서"

"돌아갈 때 선인장 씨앗이라도 얻어갈까"

여행은 이래서 좋다. 우리라고 차원 전체를 아는건 아니기에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거 한두개쯤은 발견하기 마련이니까.

흥분한 마을 사람중 한명이 우리를 보고 손짓한다. 정확히는 내 쪽을 보고 그러는 것이다.

"장사님! 저희 딸 어떠십니까?"

"어?"

"장사님의 씨를 받는다면 분명 튼튼하고 강한 아이가 태어나겠죠. 원하신다면 오늘 밤에......"

"아내가 있어서 죄송하지만......"

"아아, 그러시군요"

그러면서 왜 시온이 아니라 루리쪽을 보는걸까. 설마 시온을 딸내미 정도로 생각하는건 아니지?

생각해보니 원래 이러한 권유도 당연히 있었다. 한 촌락이 모여살면 시간이 지날수록 커뮤니티 내에서 결혼을 하기 때문에 몇세대만 건너도 서로 친척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중간에 외부의 피를 받기 위한 이런 일도 자주 있다.

단순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서 그런게 아니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곳의 고립된 촌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건 한편으로 인간이 같은 피끼리 계속 이어지면 좋지 못하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시온의 눈치를 슬쩍 보니까 딱히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것 같다.

"에이, 하렘 난교 파티 벌여도 다 해줄것 같은데 가서 즐기지 그래?"

"미쳤냐"

"여기서는 해도 된다고? 오히려 남자 쪽 들개들은 몇명이나 자봤는지 자랑하고 다니던데?"

"마누라가 옆에서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돌았음?"

"근데 조용한데?"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상해서 제대로 확인하니까 꽤나 마셨는지 취한 상태였다.

스카프로 얼굴을 눈 밑으로 죄다 가려서 얼굴이 붉어진건 보이지 않지만 눈의 촛점이 약간 흔들린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마신걸 보니까 어지간히도 취향에 맞는 술인가 보다. 어지간해서 취하지도 않는 초월자의 몸으로 취기까지 조절해서 저렇게 마시고 있으니......

"춤 추시겠습니까?"

"뭐야, 왜 갑자기 뜬금없이?"

"그냥 사람들이 춤추는거 보니까 갑자기 추고 싶어졌습니다"

"존나 충동적인데 그래서 좋군"

마을 사람들이 추는 춤은 따로 배운거 없는 그냥 막춤이였다. 흔들고 돌고 휘젓고, 대충 그게 다다. 노래조차 일정한 박자만 있을 뿐 가사도 없는 허밍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런게 좋다. 그만큼 순수하단 반증이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온의 손을 잡고 모닥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그들처럼 따로 배운 춤이 아니라 흥에 겨워 손잡고 빙글빙글 도는것 뿐이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내일 아침 숙취는 괜찮겠어?"

"뭐, 버틸만 할겁니다"

빙글빙글 돌다가 시온의 후드가 벗겨진다. 시온의 예쁜 은발이 드러난다.

어라? 그런데 저거 루리가 벗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 순간 축제에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시끄러웠던 자리가 단숨에 조용해져서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시온에게로 향해 있었다.

"희, 흰피부......"

어? 설마 니들? 그거니?

유 퍼킹 레이시스트!!!!!![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인종차별자가 아니며 작중 설정으로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흰 피부 보고 놀라는 이유는 다음 화에 나오니까 내일을 기약해 주세요.

그나저나 드디어 성실 연재가 왔군! 2월이 29일까지 밖에 없어서 하루 오차 때문에 또 헷갈리네요.

음......일단 내일도 연참이나 할까. 아무튼 댓글 많이 달아주시면 그걸로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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