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72화 (472/507)

472회

[초월자한테도 치정 문제는 중대사다]나는 히비키와 백리를 물렸다. 여기서부터는 이쪽 파벌 아니면 로드 외에 끼어들 수 없는 판이다. 히비키 조차도 그의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남은 것은 나와 최길현, 그리고 제네시스 셋 뿐. 술자리가 장례식이라도 된건지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얼른 전해줄 말만 전해주고 후딱 가시지?"

"그나저나 자네는 왜 여자지? 남자라고 들었었는데?"

"부정과 역리의 절대자를 만나서 한번 뒤졌어. 그러다가 몸 교체하다 보니"

"남자 쪽이 편하지 않나?"

"그렇긴 한......야!"

그 순간 제네시스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진다. 내 인식이 미처 따라잡지도 못한 채 내 육신은 단숨에 과거로 돌아간다.

단순히 이 몸의 어릴적이 아니다. 정자와 난자 레벨을 넘어서 이 몸 이전에 내 전생의 육신으로 되돌려진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어느새 남자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이 몸은.......

"아, 생각보다 너무 돌린것 같군. 환생자라 그런지 영혼과 별개로 육체의 시간축을 맞추기가 힘들어"

"이건......"

나는 거울 하나를 찾아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최악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그 육신이 있었다. 시온은 모르고 아나는 기억하는 그 몸뚱이가 여기에 있었다.

.......아니, 진짜 얼마나 되돌린거야. 시작과 기원이라서 시작할 쯤으로 돌린거냐?

다행히도 되돌려진건 육신만, 내 힘은 변하지 않았다.

험악한 눈매는 똑같지만 전보다 약간 더 못생겨진듯.....아니, 그건 좀 싫은데.

아무튼 피부도 해수욕 실컷 한것 같은 탄 피부에 흉터도 여기저기 남아 있고 근육도 필요 이상으로 붙어 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 좀 걸리긴 하겠지만 이 모습은 꽤나 그리운 모습이다. 시온도 자기가 본적 없는 모습을 봐서 좋아하긴 하겠지만 아나도 되게 좋아할것 같은데?

내가 한창 내 외모를 감상하고 있던 찰나 제네시스는 투덜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고작해야 수천년이잖나. 문명 스케일도 아니고 개인 스케일로 기준도 없는 환생자를 되돌리기에는 세세하게 맞추기가 귀찮아"

"남 몸뚱이를 바꿔놓고 귀찮다고?! 야!"

운명의 절대자, 그리고 시작과 기원의 절대자. 절대자가 두명인 만큼 초월자들이 주시하는 파벌이 될 수 밖에 없다.

과거 제 1차 전쟁의 혼돈의 절대자 파벌 또한 그를 포함해 진실과 거짓의 절대자까지 단 두명의 절대자만으로 그만한 일을 벌였으니까.

아, 혼돈의 절대자가 세력 모으기 쉬웠던건 둘째치고 말이야. 전투는 개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전쟁은 병력과 보급으로 하는거라고. 그 시절 일본이 왜 패망했겠어?

"..........."

옆에서 조용히, 최길현은 제네시스를 노려보았다.

성격 좋은 대영웅이 저렇게 적대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증거다. 파벌의 문제였다면 나조차도 적대했겠지만 그가 진심으로 적대하는건 운명의 절대자 파벌 안에서도 제네시스 밖에 없다.

두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러자 한순간, 미세하게 화성이 흔들렸다.

로드 중에서도 최상위의 초월자와 절대자의 기세 싸움은 단순히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별을 울린다. 설령 지금은 지는 쪽이 어느 쪽인지 명확해도 그 힘 자체가 어디 가는게 아니다.

"민폐는 딴데가서 해라. 겨우 안정된 문명을 작살낼 생각이냐"

"개인적으로 저 사람은 나랑 영 맞지 않아서"

"나도 마찬가지다"

두사람은 한편으로 상극이다.

인간의 발전이라면 진화던 퇴화던 긍정하는 최길현과, 다시금 시작점으로 되돌려 새로운 기회를 주려는 제네시스. 서로간의 사상에 차이가 크다.

뭐, 누구 편을 들어주냐 하면 나는 이번만큼은 최길현 편이다. 인간은 좋던 나쁘던 일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쁜 일이 있었어도 그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되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택지 앞에서 세이브 해두고 될 때까지 리셋하는건 게임만으로 충분하다.

"볼일만 끝내고 얼른 가. 그 아줌마가 또 무슨 말을 전하러 온거야?"

"여행 뒤에는 다음을 위해 충분히 쉬라더군. 바빠질테니까"

"어......그거 쟤 앞에서 말해도 돼?"

바빠진다는 의미는 우리들이 움직일 때가 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뭘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있을 때가 끝나간다는 소리다.

생각해보면 멤버는 진작에 모였다. 아니, 운명의 절대자와 시작과 기원의 절대자, 두명의 절대자만 있어도 어지간한건 할 수 있는데 추가적으로 두명의 로드와 나까지 들여가면서 뭘 하려는지 확신이 안선다.

게다가 그걸 최길현 앞에서 대놓고 말해?

"들어봐야 상관없다. 어차피 저쪽도 대충 눈치 채고 있으니까"

"........아, 네 녀석 보고 있구나!!!!"

내가 말하는건 단순히 이 자리에서 눈이란 기관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라 미래를 본다는 의미였다.

물론 초월자가 끼어들면 변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하기 힘들지만 운이 좋다면 먼 미래도 어렴풋이 볼 수 있다.

미래를 정확히, 그것도 아주 먼 레벨로 보는건 절대자 중에서도 드물다. 내가 알기로 운명의 절대자와 시간의 절대자가 그쪽에 속할까. 가진 개념과 두뇌가 좋아야 미래 예지도 가능한 법이다.

"내가 본건 아주 희미한 미래였어. 그나마도 정확하지는 않고"

"뭘 봤는데?"

"말해주면 의미 없는거"

"흠"

"애초에 미래라는건 양자와 같은거야. 관측하는 시점에서 유동적으로 변해. 게다가 운명의 절대자까지 있고......변수가 너무 많지"

"그래도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지. 그 미래는 아무리 비틀어도 찾아오는 법이다"

"지들만 아는 소리로 떠들면 나는 어쩌란거냐"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여태까지 꽤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일어날 일보다 더 개판나진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운명의 절대자의 전언을 생각해보면 중요한 단어가 두가지 있다. '여행'과 '다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내가 가려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뜻하고, 다음은 아마 이번 생이 아니라 다음 회차를 말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중간에 푹 쉬라는 말은 휴식기, 내 환생 중에서도 따로 트러블 없이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그 기간을 뜻한다. 그러니까 여행 다녀오면 조용히 이번 회차 보내라는 뜻이지.

"오케이, 일단 전언은 받았어. 그럼 이제 돌아가"

"손님 대접이 박하군"

"나도 댁 상대는 영 껄끄러워서 그러지. 애초에 내 몸뚱이도 동의 없이 옛날옛적으로 돌려놓고 환영해줄거라는 생각은 버려"

"그러면 아까 전의 여자의 모습으로 되돌려주면 되나?"

"그러니까 내가 댁이 싫다는거야"

나는 환생할 때의 내 모습이 어떻던 간에 투덜거리기는 해도 받아들인다. 원한다면 성형 수술이던 뭐던 잘생겨질 방법은 널려 있는데 험악한 외모라도 잘만 다닌다.

환생자인 나조차도 다음 생이 있을 뿐이지 태어나는건 선택할 수 없다. 다음 생이 금수저일지 흙수저일지, 하다못해 남자일지 여자일지도 모른다.

그걸 전부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내 육체를 편의로 한순간에 바뀌버리는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리셋은 좋지만 그걸 사람이나 인생에 대입해서는 안된다.

"한가지 더, 보아하니 이곳 지구의 문명은 붕괴한듯 한데. 필요하다면 되돌려줄 수 있다만"

"그건 내가 용납못해"

옆에서 으르렁거리며 최길현이 반응했다.

시작과 기원의 절대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를 원래대로 되돌리는건 간단하다. 하지만 그가 되돌리는건 단순한 지구의 상태가 아니라 시대다.

내 육체를 1회차 시절로 돌린 것처럼, 지구를 티브 문명에게 침략당하기 전으로 되돌릴거란 소리다.

기회란 것은 그것을 받을 사람이 존재해야 성립하기 때문에 사람까지도 전부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었던 사람들이 되돌아오기는 한다.

하지만 반대로 태어나지 못한 생명 또한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과 태어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건 다른 문제야. 설령 아프고 힘들어도 그 잃은 사람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법이지"

"잔혹하구나. 너에게 죽은 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는가?"

"그건 없어. 하지만 적어도 현재에 잉태해 있고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을 대신할 자격은 있지. 여기서 안 지인이 결혼해서 이제 예정일이 몇달 남았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는데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제네시스는 과거를 보고 최길현은 미래를 본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은 인간이 바라고 꿈꾸던 것이니까. 하지만 최길현의 말 또한 정론이다.

"나도 반대다. 우리 마누라랑 장모님이 고생해서 겨우 만들어 안정화 된 문명인데. 이제와서 되돌리겠다고?"

개인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시 얻는 기회가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뭐가 되는건데?

딱히 시온이 만든 문명이라서 마냥 편들어주는게 아니다. 약간의 호의는 있을지언정 그게 절대적이지 않다. 만약 이 문명이 아니더라도 똑같이 판단했을거다.

인간은 곧 죽어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사는건 과거가 아니다.

........실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은 백리는 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뭐, 좋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손대진 않겠다. 볼일도 끝났으니 돌아가도록 하지"

"소금 어디있냐, 소금. 한번 뿌리고 액땜 해야지"

운명의 절대자가 왔을 때도 이런건 안했다. 좀 기분 나쁘거나 짜증나는걸로 끝나니까.

저놈이 오면 그걸로 안끝나니 이런 액땜이라도 해야했다. 절대자한테 소용이 있을지는 둘째쳐도.

다시금 차원을 가르며 제네시스가 자리를 떠났다. 나는 묵묵히 그를 노려보는 최길현을 향해서 슬쩍 말을 흘렸다.

"신기도 못찾고 있는 절대자 주제에 사람 신경 참 많이 건든단 말이야"

"..........."

나는 파벌 관련해서 저쪽과 친하게 지낼 수 없다. 하지만 간간히 정보 몇가지 정도는 지나가는 말로 알려줄 수 있었다.

현재 시작과 기원의 절대자에게 신기가 없다는건 팬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지고 있지 않는것'과 '못찾고 있는것'은 전혀 다르다.

절대자의 신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지간한 로드보다 격이 높다. 잃어버렸다고 해서 절대자의 격이 떨어지는건 아니지만 없으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그래, 우리 파벌에 온전한 절대자는 운명의 절대자 밖에 없다는건 슬쩍 알려준 것이다.

"이래저래 신세만 지네"

"내가 할말이야"

다시금 나는 거울을 본다. 머나먼 기억속에 이제는 기시감 밖에 안들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 있다.

내가 이 얼굴이 다시 될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

*

*

*

술자리는 깨지고 나는 또 다시 호라이즌에 내 얼굴을 갱신 해야 해서 짜증이 올라왔다.

보통은 한 평생에 한번만 해도 충분한 일을 이번 생에만 벌써 3번을 하는거다. 과정이 복잡하거나 힘든건 아니지만 귀찮다.

아무튼 호라이즌에 내 정보를 갱신하고 나오다 아나를 만났다.

"..........."

"그렇게 침묵하니까 좀 무서운데.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긴 하지?"

입을 떡 벌리고 경악하는게 꽤나 귀엽긴 하다. 아......몸이 남자 됐다고 또 감정이 그런 쪽이네.

아나는 조심스레 내 얼굴을 매만졌다. 말랑말랑한 시온의 손과는 다른 딱딱한 굳은살이 박힌듯한 손가락의 감촉이 느껴진다.

눈, 코, 입, 귀, 그 외에 여러군데. 그녀는 천천히 만지면서 자신의 기억과 비교해간다.

"적어도 내 기억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군. 어떻게 된거지?"

"존나 쌘 초월자가 하나 왔다 가면서 이렇게 만들어줬지"

"훨씬 낫군"

"아니, 외모는 여자쪽이 더 예쁜데"

"어차피 예쁘고 잘생긴건 널리고 널렸다. 나도 나름 인기가 있어서 작업을 거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 똑같이 생긴것 같아서 내키는 사람이 없더군"

"혹시 못생긴 쪽이 취향이야? 언제 그런 취향 들였어?"

"너 때문이다, 너. 일관되게 잘생긴 쪽보다 개성이 있는 쪽이 낫지"

"이 얼굴은 개성이 있기 보다는 험악한 쪽인데"

"내가 어디서 자랐는지 잊었나?"

어린 나이에 마피아 조직 하나를 이어받았을 정도의 여걸이지. 잘 알고 있다.

남자가 되니까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거리감이 팍 줄어든 느낌이다. 아니, 한편으로는 육체에 담긴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일시적일거야. 육체와 영혼은 서로 연동되니까 자연적으로 골격이나 그런 것도 바뀌겠지"

육체는 이능 하나 모르던 인간의 것이지만 영혼은 초월자의 것이다. 그 간극을 맞추기 위해서 육체는 자연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단련은 좀 됐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지 초월자 레벨이 아니다. 체격은 많이 커지지 않겠지만 골격이랑 근육이 좀 바뀔거다.

아마 얼굴도 조금은 잘생겨지지 않을까? 험악한 인상인건 똑같겠지만.

"뭐, 그래도 추억 속의 얼굴을 다시 봐서 좋다"

쪽.

슬쩍, 아나가 기습 키스를 걸어왔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인사로 건내는 수준의 가벼운 키스였다. 예고도 없이 키스 당했지만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였다. 오히려 옛날 생각 나는것 같아서 꽤나 정겹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거 해놓고 그렇게 말하면 마냥 탓할수도 없잖냐"

나와 아나는 킥킥 웃으며 그때처럼 이야기 했다.

뭔가 굉장히 싱숭생숭하고 풋풋하며 달달한 느낌이 든다.[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스포가 있습니다.

최길현과 제네시스의 의견을 험악하게 비판하면 이렇게 됩니다.

-임산부한테 당신 뱃속의 아기를 없던걸로 하는 대신에 죽은 사람들 살린다는 소리 할 수 있냐?

-허망하게 죽은 사람들이 불쌍해서 살리겠다는데 니가 죽은 사람들 대신할 권리 있음?

제네시스의 기원회귀는 기억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저장 데이터 불러오기 같은거죠. 하지만 그거나마 새로운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은 분명 있을겁니다.

괜히 페그오에서 인류악 중 하나가 회귀를 뜻하는게 아닙니다.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달콤하나 그것을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걸로 이번 파트는 끝났네요. 다음 파트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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