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막 고인물 마냥 둘리나 아오오니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요.441회
[잠든 티브가 성지에서 꿈을 꾸며 기다린다]한동안 이 도시에서 머무르면서 나는 언어와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정보는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는 이 문명의 지배자들의 확인이 담긴 공식적인 타차원 침략 관련 자료다. 놈들이 확실히 티브 어쩌고 하는 신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다른 차원을 침략하면서 사념을 모으고 있다는걸 물증까지 확보만 한다면 당장 소집 때리고 심판 날릴 수 있다.
그냥 좆같은 문명 심판하는거면 우리 재량대로 심판할 수 있지만 차원 침략 같은 중대사가 엮어 있다면 그만한 물증을 찾아야 했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와라]
근데 여기 요리 꽤 맛있더라. 높으신 분이라고 잘 만들어주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름 맛이 괜찮다. 나중에 요리 레시피 같은 것도 한번 살펴볼까.
이곳 언어가 예전에 배웠던 어떤 언어랑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의지로 말하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지간한 좆밥들은 설설 긴다는걸 알았는데 써먹어야지, 그렇지?
게다가 오히려 고위사제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한다고 했으니까 이러는 편이 의심을 덜 살 수 있다.
"..........."
이 침묵은 내 것이 아니다. 식사를 가져온 모모가 그러는 것이다.
요 며칠동안은 이래저래 시간 보내느라 신경 못썼지만 저렇게 시선 주고 있으면 어쩐지 내가 불편하다. 차라리 뭐라 대화도 하면 좋겠지만 그녀는 여기서 불가촉천민 비슷한 사바타다.
묻지 않은 것에는 대답할 수 없고, 보고를 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목숨조차 위협받아도 저항할 수 없다.
티브 문명에서 정말로 티브 문명인이라 불리는 것을 허락받는건 본격적으로 마그노 레톤이란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평신도들 부터 시작된다. 라프 에너지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사바타들은 그저 적성종에 가까운, 생체 도구에 더 가까울까.
전체 인구수를 본다면 사바타가 오히려 압도적으로 많다.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으니까 수가 적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그들을 통해 노동력과 잡무를 대신하고 티브 문명인들은 그 영화를 누리게 된다.
[나쁘진 않군]
밥을 먹으면서 나는 적당히 침묵을 깨기 위해 말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닌척 해도 그녀는 움찔움찔 반응하는게 좀 안타깝다.
일단 티브 문명 얘네들 1스택 적립이다. 차원 침략건은 아직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아직 아니더라도 윤리가 동반되지 않은 무분별한 생명 창조는 우리가 보는 행위 중 하나다.
내가 보는건 아니지만 유토피아가 본다. 걔는 기술 문제도 보니까.
[몇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나에게는 현재 많은 기억의 공백이 있다. 많은 상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심지어 티브의 교리 또한 마찬가지다]
구라를 치려면 처음부터 완성도 있는 구라를 쳐야 하는 법이다. 기억상실 같은 소재는 징하게 써먹기는 해도 그러는게 나름 설득력은 있어서 그런 것이고, 저쪽에서 그거에 태클을 걸지 않는걸 보니 나름 이유를 짐작해서 붙여놓은 것 같다.
그렇다면 거기에 살을 덧붙여서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여기서 활동하기 편하니까.
[하지만 한가지, 티브께 돌아가야 한다는 기억 만큼은 남아 있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는 본성으로 돌아가야 할듯 싶은데.......]
"발언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허락한다]
"이곳은 본성에서 30광년 정도 떨어진 먼 곳입니다. 자원 채굴을 위해 파견된 오지라.......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워프 기능이 달려있는 함선은 이 행성의 책임 사제인 라르고-마스 부제님의 소유이십니다"
이 행성에는 겨우 수십개의 도시, 1억에 불과한 인구 수(대부분 사바타지만)가 있지만 정작 순수 티브 문명인은 고작해야 40명 뿐이다.
그 40명 중에서 39명은 내가 보았던 이 도시의 책임자, 베포-에타 수도사제와 같은 평신도 바로 위의 직위고, 이 행성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방금 그녀가 말한 라르고-마스 부제로 보인다.
참고로 티브 문명 직위는 대충 사바타 < 넘사벽 < 평신도 < 수도사제 < 부제 < 사제 < 주교 < 사도 순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직위가 다섯 사도인가 뭔가였는데 그놈들이 아마 최정상인듯 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름 밖에 알 수 없었지만......차차 알아가면 되는거고.
"만약 본성으로 돌아가시고 싶으시다면 우선 티브 행성계로 돌아가 이후에 절차를 밟으셔야 합니다"
[흐음]
아무래도 본성 티브는 여기와 다르게 경계도가 높은 모양이다. 바로 본성이 아니라 행성계라 말한 것을 보면 우선 행성계 외곽에서 부터 신원 검사가 들어갈텐데, 어떻게 보면 내가 여기에 온게 잘한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먼저 이 곳의 책임 사제라는 가르고-마스 부제를 만나봐야겠다.
[베포-에타 수도사제에게 내가 보고자 한다고 전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이내 방에서 나갔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감시의 눈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휴, 있는척 하기도 빡세네"
이래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값이 높은 모양이다.
*
*
*
*
만나자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도 곧바로 자리가 마련되었다. 베포-에타 수도사제 입장에서는 그만큼 내가 어렵거나 위인 사람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성인 티브로 갈 생각이다. 이 별의 책임자인 가르고-마스 부제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나?]
"예, 이미 예전에 소식을 보내 두었고 부제 께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만 사제님께서 기도를 드리시기에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좋다]
"헌데......본성인 티브로 가신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왜지? 이유가 있나?]
"곧 강림 예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티브 본성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모일 예정이기 때문에......."
[강림 예식?]
"다섯 사도분들의 주관 하에 저희들이 그동안 기다려 온 티브께서 잠에서 깨시는 날입니다"
아, 그거구나.
놈들의 목적은 부정적인 사념을 모아 잠들어 있는 신, 티브를 깨우는 일. 다른 사념보다 부정적인 사념을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그 신의 속성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라프 에너지나 마그노 레톤이란 이능력도 전부 '부정'이란 개념을 기반으로 한거니까 그 신으로 치자면 대충 자고 있는데 치킨 냄새 솔솔 나는거랑 비슷한거 아닐까.
그런것 치고는 그 치킨을 만들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지만 말이다.
이렇게까지 일이 마무리가 되었을줄은 몰랐다. 아무리 사제라도 그 중에서 평신도 바로 위인 수도사제 정도인데 이런 하위 계급도 알고 있을 정도라면 거의 끝물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될거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우선 너는 가르고-마스 부제에게 연락을 하라]
"알겠습니다, 사제님"
내 이야기를 경청하던 그는 이내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여 기억나신 것이 있으신지요? 이름이나 과거의 기억 같은 것이......."
[아직은 없다. 그러니 본성 티브로 가야 할 수 밖에]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겠습니까?"
그가 이름을 묻자 나는 잠깐 고민했다. 여기식대로 지어서 말해도 괜찮겠지만 그러면 기억상실 코스프레 하기에는 어쩐지 맞지 않았다.
그냥 기억 날 때까지 임시로 불릴 이름이라면 예전부터 자주 쓰던게 있다. 여기 발음은 영미권에 가까우니까 그리 이상하게 느끼지도 않을거다.
[워스트라 불러라. 기억을 찾을 때 까지는 그 이름을 임시로 사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워스트 사제님"
내 이름인 최악은 사실 악자가 악할 악(惡)자가 아니라 악착할 악(齷)자를 쓰지만 예전부터 내 이름 하면은 다들 그 생각 밖에 안해서 나도 그러려니 하며 쓰고 다닌다.
한편으로 인상 깊은 이름이기도 하고......1회차 신혼 초창기 때는 이탈리아 마눌님이 내 이름 부르기 어려워서 그냥 영문으로 직역한 워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솔직히 한국어로 최악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영어로 워스트라고 하니까 어째 좀 폼난다고 생각하는거 보면 내 안에 중2병이 남은건지 아니면 천생 한국인 인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모모를 가리키면서 추가적인 조건도 걸었다.
[또한 저 아......아니, 저것은 내가 데려가겠다. 앞으로도 시중 들 사람이 필요하니까]
"예? 하지만 워스트 사제님, 사제님이시라면 보다 나은 사바타를 사용하시는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모르는 자보단 아는 자를 쓰는 것이 낫겠지]
"그렇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마음껏 사용하시지요"
어딘가 나사 빠진 느낌의 대화고 그 이유는 모모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데 있었다. 생명이면서 지성도 가지고 있지만, 만들어진 생명이기 때문에 사바타는 차별을 받는다.
영혼이 없어도 마음이 없는건 아닌데......그리고 만들어진 생명이라 하더라도 영혼이 생기지 않는건 아니다.
지성이 있다면 마음 또한 생기며, 그 마음은 감정을 일으키고 감정은 영자를 불러 응집되어 결정화 된다. 감정에 따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만들어진 생명에도 언젠가는 영혼이 생길 수 있다.
예전에 엘리자베스 트리거기어라는 마법사의 논문에서 읽은적 있는 대목이다. 나도 이런저런 지식은 습득하고 다닌다고.
[흐음, 그렇지만 너의 것이였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받는건 성에 차지 않는군]
"아닙니다, 어찌 워스트 사제님에게 대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모시게 된것 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가 없이 받은 것에는 가치 또한 없는 법이지]
우우우!!
나는 인피니티 포스 코어에서 이능력을 뽑아냈다. 라프 에너지가 아니라 마그노 레톤을 말이다. 여기서 머무르면서 라프 에너지의 원형인 마그노 레톤을 접하기도 해서 이미 인피니티 포스 코어에서는 생성이 가능한 상황이였다.
그리고 티브 문명에서 마그노 레톤은 가진 힘이 곧 권력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라프 에너지를 가진 사바타들은 미약한 마그노 레톤을 가진 평신도의 명령 하나 거절하지 못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티브 문명인 중에서도 마그노 레톤의 양에 따라 지위가 결정된다.
마그노 레톤이 의지에 가까운 이능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축적이 된다. 그렇다는 말은 남에게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이것은.....!!!"
[저것에 대한 값이다]
"이 정도로 순수한 마그노 레톤이라니, 이 정도라면 부제가 아니라 사제 까지도 노려볼법한.......가, 감사합니다! 워스트 사제님의 은총에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되었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것 뿐이니]
게임이던 현실이건 상대방 호감도를 사려면 선물이 가장 빠르고 쉽다. 슬쩍 라인 만들어 놓아도 나쁘지는 않겠지.
전에도 베포-에타 수도사제의 태도는 공손했으나 지금은 거의 선망의 눈길로 쳐다보며 나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내 정체에 대해 의심하지 못한다.
이것으로 모모는 확실히 내 사람이 되었다. 애초에 사바타들은 마그노 레톤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거역 못하니까 마그노 레톤을 쓸 수 있는 시점에서 어떤 명령이던 강제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믿을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근데 진짜 여기 좆같다. 무슨 미래세기 스파르타도 아니고. 소수의 권력층이 다수의 노예를 부려먹고 앉았냐.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태생의 한계에 선이 그어져 있어서 더 나빠.
이후 그의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모모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기색이군. 말해도 좋다]
"저.......워스트 사제님이시라면 저 따위 보다 더 뛰어난 것을 들일 수 있으실텐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단순한 변덕이다.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사실 내가 사바타에 대한 그 절대복종 부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니까 아군을 만드려는 이유도 있다.
예를 들어서 복종한다는 부분이 대상에게 해가 될만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시키지 않으면 안한다 수준이라면 은근슬쩍 나에 대한 불리한 것을 뿌릴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평소라면 힘으로 해결하겠는데 여기서는 일하는거니까 조용히 정보 수집하고 확실한 증거 얻었으면 그대로 소집 때려야지 뭐.
"저를 시종으로 들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의를 다해 모시겠습니다"
[따로 누굴 모셔본 경험이 있나?]
"예, 이전에 사제님을 모셔 보았습니다. 예법을 비롯한 기본적인 건들은 숙지하고 있으니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될것입니다"
오? 꽤 당첨을 뽑은 모양인데? 어딜 가던 경력직이 우대 받는건 당연하지. 여기 예법 같은 것도 알고 있는 편이 더 나을테니까.
그런데 조금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었다.
[사제 아래에 있었다고?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 있는건 조금 이상하군]
"아......"
아무리 외져도 행성 하나의 최고 책임자가 사제도 아니고 부제다. 사제 바로 아래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제라는 직위가 얼마나 높은지 알만한 부분이다.
같은 노비여도 대감집 노비가 더 낫듯이 사제 아래의 사바타면 나름의 대우는 받는 위치일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부제라도 막 죽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위의 사제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런데 사제 아래에서 일하다가 광산 노동자가 된거면 꽤나 복잡한 일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니, 당연한 수순이다.
"이전, 제가 추태를 보여 그것 때문에 강등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추태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얼핏 그녀에게서 보이는 감정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이였다. 시간이 지난 일임에도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마음에 상처가 깊게 남아 보였다.
저런 감정을 드러내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지.
[소중한 사람을 잃었나 보군]
"......예, 연인이였습니다"
[사랑했나?]
"예, 제 연인, 기기-라모는........이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지요"
뭔가 반사적으로 핑! 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말한 이름은 애초에 이곳에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내가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였지만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말한 기기-라모란 남자와 만난적이 있던것 같다.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남자를 알고 있다!!!
창조의 절대자의 이스터 에그는 나름 확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선 초회 보너스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