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34화 (434/507)

434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아무리 눈 앞에 보이는 거리라도 때로는 먼 법이다. 그래도 신기루처럼 보이지만 실체가 아닌 것보다 나아도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다가가려면 생각보다 많이 가야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짐까지 업고서 가는건 더더욱 힘들다. 아이가 혼자 걸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다리가 불편한건지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아이라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후우우......"

"죄,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지금 백리에게 필요한건 휴식이다. 그것도 아주 긴 휴식. 영혼에 금이 간 충격은 치료를 병행한다 하더라도 1,2년으로 끝날 일이 아니였으니까.

영혼이란 영자가 결정화 된 것. 만들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흠이 생기면 그것 또한 회복 되는데 마찬가지다.

"하아......."

백리는 어린 여자애 하나가 무겁다고 생각했다.

그게 단순히 책임감을 느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의 몸 상태가 정말로 바닥까지 떨어진건지, 혹은 둘 다인지는 모른다. 다만 중요한건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도 한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도로가 엉망이 되고, 적성종이 출현하고, 그 덕분에 차량보다 걷는게 더 빠른 상황이 되어버렸다. 운용이 가능한 차량이 있다면 군용 차량 정도일텐데 내부를 정리 중이라서 지금 당장은 쓸 수 없었다.

남은건 스스로 움직이는 수 밖에. 돔 안으로 들어간다면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군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쿠구구구구!!!

"끼에에에에에!!!!"

"끄끼이이이이이!!!"

하지만 놈들은 그걸 두고볼 생각이 없었다.

바글바글 몰려드는 적성종은 마치 출애굽기의 재앙 중 하나처럼 메뚜기 떼와 같이 지나가는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설령 그게 사람이라도.

안전권이 생겨도 피해를 받는 곳은 생긴다. 억지로 돔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놈들은 돔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노렸다.

"하정욱이! 왼쪽을 맡아!!!"

"피난민 대피가 우선인데 군대는 어디 갔어?!"

"좀 있다 온데요! 20분만 버텨요!"

"10분도 힘들어!!!!"

그 타이밍에 하정욱을 비롯한 전직 소방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워드 수트와 같이 움직이며 놈들을 쳐부순다.

하지만 수세에서 밀린다. 아무리 군대가 놈들을 상대하는데 큰 타격은 주지 못해도 중요한건 그 숫자로 놈들을 막는데 있었는데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 법이였다.

두만강 전선에서 홀로 수억의 적성종을 상대하고 있지만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히비키처럼 말이다.

"아빠!!!!"

"백리냐? 아니, 왜 거기에.......그 애는?"

"애가 다리가 안좋아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어요!"

에너지 돔 까지는 기껏해야 몇 킬로미터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어린애에게는 너무나도 먼 거리다.

게다가 지금처럼 적성종이 기를 쓰며 달려는 이상은.......결국 피난민 무리에서 시간을 버는데 쓰여 놈들의 한끼 식사가 될 뿐이다.

".......여긴 우리들이 시간을 끌어보마. 넌 그 애 데리고 빨리 안전권으로 들어가!"

"아빠?!"

"빨리!!!!"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

지치고 다친 몸으로 여자애 하나 구하려고 눈 앞에서 가족이 죽는걸 봐야 하는걸까?

아니, 아니다. 자식보다 부모가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반대가 된다면 도리어 큰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래서는 안됐다.

"싫어요!!!!"

"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제 일이예요! 아빠가 죽게 두는건 싫어요!!!!"

사람을 구하는 일에 둘 다 타협을 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는 수 밖에.

백리는 유진이를 하정욱의 동료들에게 맡겼다. 그 아이를 안전권으로 보내는 것은 이제 그들의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치고 지친 백리 혼자 적성종을 막기에는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결국 그들 중에서도 남는 사람은 있어야 했다.

"이 아이를 부탁할께요. 아저씨"

"백리야......."

"괜찮아요. 여기서는 제가 시간을 끌어볼께요"

"........자네, 좋은 아들을 두었구만"

"이제와서 칭찬은"

이내 하정욱을 제외한 다른 소방관 동료들은 피난민들을 보호하며 안전권으로 달려갔다. 남은건 두명의 부자들 뿐이다.

"상황 봐서 아빠는 도망가요. 알았죠?"

"이 자식이 부모 먼저 죽는 불효 저지를 생각을 하고 앉았네. 원래 부모란건 자식보다 먼저 죽는게 당연한 법이야. 그 반대가 되면 큰일나는거고"

두사람은 웃으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

*

*

*

수십 마리의 적성종은 어느덧 수백으로 늘어 있었다. 소란을 듣고, 그리고 두명의 부자가 놈들을 붙잡는 동안 더 몰려든 것이다.

놈들의 악의는 짙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입 같은 부분 주위에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살점들이 덕지덕지 발려 있다. 어디서 사람을 먹고 온게 분명했다.

"으아아아아아아!!!!"

1분, 아니 1초라도 더!!!

백리는 악을 쓰면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치명상은 줄 수 없고 기껏해야 잡아 던지고 날리면서 상대하는 정도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부상입은 초월자라도 놈들을 상대로 시간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쿠우웅!!

"크헉?!"

놈들의 촉수 같은 다리가 백리를 짓눌렀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크레이터가 파이고 충격이 백리의 몸을 진탕시킨다.

가이아 포스도, 의지도 바닥이고 영혼도 금이 갔다. 더 이상 백리를 움직이게 할만한 것은 없었다.

콰아아아앙!!!

이윽고 마무리를 짓듯, 다시금 촉수가 휘둘러져 온다. 백리의 몸뚱이를 후려쳐 날려보내고 쓰러진 그에게 놈들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

그 비명은 백리의 것이 아니다. 하정욱의 것이다. 파워드 수트를 박살낼 기세로 후려쳐오는 놈들의 공격은 겨우 그의 숨만 붙여 두었다.

식인을 하는 괴물들이 그들을 먹어치우기 전에 농락하며 다툼을 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다.

콰직!!!

"끄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악!!!!"

한놈이 백리의 옆구리를 물어 뜯었다. 살점이 뭉텅 뜯겨나가고 피가 쏟아진다. 상처에서는 내장이 보일 정도로 치명상이였다.

아픈건 익숙했지만 회복이 되지 않는게 문제였다. 미약한 가이아 포스는 즉사만큼은 면하게 해주었지만 연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남은건 죽는다는 절망 뿐이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있었다. 죽으면 이 고통과 책임감 또한 사라질테니까.

"아아아......."

하지만 후회도 있다. 죽기 직전의 주마등이 스쳐지나가고,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구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허억, 허억.......백리야......."

하정욱의 신음성이 들린다. 적어도 아버지만이라도 구하고 싶었으나 그에게는 남은 힘이 없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는 것 뿐.

이것은 그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니 그 책임을 져야 했으나......부모에게까지 그 죄를 끼치는 것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잔혹한 현실에 백리는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들의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 딱 좋게 타이밍 맞춰서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영웅 뿐이다.

......그리고 나름 비현실적인 것을 실현하는 대영웅 또한 있다.

쩌저저적!!!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지"

".......어?"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익숙한 파편이 흩날리는 갈라짐이 보이고 거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회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와 함께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검을 찬, 기사 같은 느낌의 남자다. 평범한 얼굴이지만 어딘가 최악을 닮은 것 같은 외모는 기시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최악은 피했나. 아무튼 늦게 와서 미안해. 나도 오는게 좀 늦었어. 최대한 빨리 오려고 해도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개가 아니여서 말이지"

우우웅!

그에게서 뻗어나온 힘이 백리의 몸을 치료했다.

옆구리의 상처가 얼추 아물어서 적어도 죽는건 면했다.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도 이제 괜찮아, 다음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

말 밖에 없는데다 그 말도 무책임한 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을 하는 그 남자가 너무나도 당당해서 오히려 그 말은 정말로 어떻게든 해결해준다고 하는것 같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이윽고 그가 검을 뽑아 휘두르자, 그대로 수백의 적성종 무리가 단숨에 살점 조각이 되어 흩날렸다. 겨우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놈들이 저마다 산산조각이 난다.

"누, 구......?"

"최악이한테 이야기 못들었어? 그 녀석이라면 내 이야기 한번쯤은 했을것 같은데"

그 순간 백리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스쳐지나갔다. 어쩐지 믿음직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한때 최악이 말했던 남자와 겹쳐 보였다.

"대영웅.....!!!"

"에이, 뭔 그런 호칭으로 부르고 있어? 그냥 최길현이라고 불러"

대마왕의 유일한 대적자인 대영웅, 백귀왕(百鬼王), 낙신제(落神帝), 나이트로드(Night Lord).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으며, 최강(最强)은 아닐지라도 최고(最高)인 초월자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아아아아!!!!!"

백리는 오열했다. 절망과 고통에 젖어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절망 끝에 구원이 온 것에 대한 감동에 의한 것이다.

남자, 최길현은 그런 백리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 이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정확히는 저 위의 위성궤도 상에 있을 거대 신전과 가르-레칼을 보았다.

"너구나"

그리고 적의와 분노를 불태운다. 이 세상에 명백한 악은 없고 정의의 반대는 또 다른 정의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고 계획한 것이 옳을리 없었다.

설령 가르-레칼에게는 옳을지 몰라도 그건 처음부터 잘못된 이야기다.

"좀 바쁘겠는데. 일단 저 녀석부터 처리하고, 제수씨랑 스케쥴 조절에, 이 괴물 같은 것들도 처리해야 하고......."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한계는 있다. 분신술 같은걸 써도 조금 더 한계가 늘어날 뿐이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게 당연하다.

"혼자 오지 않길 잘했네. 멤버를 잘 골랐어"

그래서 그는 대영웅이다. 혼자가 아닌, 모두를 이끄는 영웅이니까.

갈라진 차원의 균열에서 누군가 또 한명 모습을 드러낸다. 최길현과 같이 허리춤에 검 한자루를 찼지만 가벼운 맨몸이고 흑발의 미남이지만 그 이상으로 존재 자체가 사람을 누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백리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전에 관리자 엘리와 마주쳤을 때의 그 거대함을.

".......신?"

"눈썰미는 좀 있나보다? 근데 누구야?"

"최악이랑 아는 사람이야"

"상태 영 안좋아 보이는데 당분간 요양해야겠구만. 아, 저기 있는 녀석도. 닮은걸 보니까 부자지간인가?"

"저 애랑 아저씨는 스사노오씨가 좀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줘. 그리고 제수씨랑 이야기 해서 상황 정리 좀 해주고, 아마 테라포밍을 해야 할텐데, 애들한테 리소스 빌려서 진행하고 사람들 통제 좀 해줘"

"거 참 은퇴한 사람 되게 부려먹네"

"사람이 아니라 신이잖아"

최길현은 그를 신이라고, 그리고 그의 이름을 스사노오라 불렀다. 지금은 멸망한 일본의 삼귀자 중의 하나인 아마테라스, 스사노오, 츠쿠요미 중에 폭풍신이라 불리는 그 스사노오였다.

얼떨떨한 상황의 백리에게 스사노오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

"근데 여기 지구 맞지? 아무리 그래도 왜 일본에서 신앙이 안들어오냐?"

"어, 음.......일본은 대마왕 심판 때문에 멸망했는데요......"

"거 그 지랄 날줄 알았다. 분명히 지들이 선빵 쳐놓고 진데다 반성도 안하다가 그 꼴 됐다에 천총운검 건다"

"정답이예요"

"맞지? 이 새끼들 진짜 한결 같다니까. 차라리 진게 낫지 이겼으면 대일본제국 어쩌구 하는 흑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 내가 얼굴을 못들고 다녀요, 시발"

사태 파악을 하던 스사노오는 이윽고 다시 최길현에게 말했다. 자기가 할 일은 알았지만 남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괴물 같은 놈들 처리는? 그놈한테 맡기려고?"

"딱 좋은 타이밍에 데려왔잖아? 그럼 써먹어야지"

"어쩐지 딴 녀석이 아니라 그놈을 데려왔더라. 효율이 괜찮기는 하겠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적!!!!

이내 차원이 갈라진다. 그들이 나왔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한 균열이 벌어지면서 이내 산과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생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만큼 거대한 생물은 백리도 적성종 밖에 못봤지만 그것은 가르-레칼조차 따위로 표현될 정도로 불길하고 혐오스러운 무언가에 가까웠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쿠우웅!!!

이내 그것이 지상에 발을 디딘다. 육중한 무게감이 단순히 일대가 아니가 한반도 전체를 울린다.

그것은 일곱 머리와 열개의 뿔을 가지고, 각각의 머리에는 일곱 대죄를 나타내는 왕관이 씌여져 있었다.

숨결에서 유황과 불꽃을 뿜어내는 용의 머리가 쉭쉭 거리며 지상을 오만하게 내려다 본다.

그것은 종말의 짐승이며, 휴거의 때가 오는 날 그리스도의 적 중에서 수좌를 담당할지니.

지옥에서는 악마의 왕이요, 하늘에서는 떨어진 샛별이로다.

그리고 이내 그것의 의지가 사방으로 펴졌다.

[머임? 대체 머임? 왜 갑자기 종말 모드지?]

사탄 - 종말 모드.

묵시록의 붉은 용.[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탄쉑, 종말 와서야 일하는거 보십쇼. 이러니 인간한테 밀려서 실직이나 당하지.

아무튼 이번 파트의 끝이 거의 다 왔네요.

일단은 또 성실연재 올테니까 연참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