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기술명이 '생각보다 가까운 낙원'이면 어디서 따왔는지 대충 짐작하시는 분들이 많을듯.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 방식도 그렇고요.433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직경 100킬로미터라고 하지만 그 크기는 생각외로 크다. 단순히 거리상의 100킬로미터라면 몰라도 그것이 돔 형태가 되어 선이 아니라 면이 되니 포함되는 영역이 포괄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자세한 비유를 들자면 직경 100킬로미터의 돔은 서울 대부분을 영역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리고 시온이 펼친 [생각보다 가까운 낙원(ZION)]은 단순한 에너지 역장이 아니다.
"끼이이이이이익?!?!?"
"끄이이익! 끼이아아이이이!!!"
"뭐지? 왜 이놈들......."
시온이 펼친 역장의 범위 내의 적성종들은 괴성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건 설령 초대형 적성종이라도 마찬가지였으며 괴성을 지르다 이내 시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쩐지 공기가......!!"
[생각보다 가까운 낙원(ZION)]은 단순히 외부의 침입을 막는 형태의 에너지 돔이 아니다. 펼쳐지면서 이질적인 에너지를 밀어내어 청정 구역을 만들고 허락하지 않은 것은 들어올 수 없다.
영역 내의 라프 에너지는 밀려나 들어오지 못하며, 돔은 필터가 되어 그것을 걸러준다.
만약 본래의 차원을 넘어 침략해 오는 코어가 존재하는 적성종이라면 돔 내부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겠지만 놈들은 수만 많을 뿐이지 질은 떨어지는, 거대신전이 공급하는 대기중의 라프 에너지로 숨을 쉬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역장 내부에 있던 놈들은 물 속에 빠진 것마냥 질식하여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들어올 수 있지만 적성종은 들어올 수 없다. 수십겹의 공간 간섭을 사용해 꼬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파괴하려면 공간에 대한 개념 간섭은 기본적으로 하여 상당한 초월자로서의 격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절대방어. 필살기(必殺技)가 필생기(必生技)인 그것을 보면 시온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설마 형수님이.......!!!!"
백리는 간만에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좋은 소식이다. 넓은 영역에서 놈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안에 있었던 놈들은 그대로 죽어나간다.
이곳으로 사람을 피신시킨다면.......적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백리의 머릿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힘을 쓴다면, 대마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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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인간의 마음을 모른다아아아아아!!!
"거 자꾸 그런 소리 할겁니까"
-나는 아빠 대신 갈려나가고 있는데 또 사고만 치잖아?! 선 넘은 사건이 대충 봐도 2개.......온다! 유마!!!
"누가 유마입니까"
루리가 긴급한 통신을 보내며 따졌지만 이미 저지른 일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해버린 일이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시원하게도 저질러주셨구만, 제수씨]
"오셨습니까"
[이 상황에 빠르게 올만한 사람은 나 밖에 없어. 핑 찍어놔서 오는건 금방이니까]
그녀의 그림자가 늘어지더니 이내 심연을 두른, 아니 심연 자체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대마왕의 정점. 최강의 대마왕 팬텀.
보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상실하고 날뛸법한 심연 그 자체인 그의 외견을 직시하며 시온이 차를 내왔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인간형으로 돌아온 팬텀의 자리에 앉았다. 잠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상황은 보고 있었어. 어지간한건 봐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저지르면 나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온다고"
"능력 중에 하나가 '감각'인데도 말입니까?"
"거 비유지 비유. 아무튼, 보통은 이런거 어기면 바로 처벌인데 말이야"
팬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시온을 노려보았다.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시온도 내심 초조해 하며 그의 판결을 기다렸다.
최강의 대마왕이라 불리는 만큼 그의 무력은 대마왕 중에서도 압도적이다. 설령 그를 제외한 다른 대마왕들이 전부 덤빈다고 해도......아니, 제 1차 차원 전쟁 이전에 있던 대마왕들까지 전부 합세해서 덤벼들어도 승리하는건 팬텀이 될 것이다.
최악조차 로드에 올라 경험을 더 쌓아야 어떻게든 싸워볼 각이 생기지 지금으로서는 형편없이 깨진다. 그나마 로드에 오른다고 해도 이기거나 죽이는게 아니라 싸움이 성립된다는 소리일 뿐이고.
만약 팬텀이 작정하고 시온을 죽이고자 한다면 최악이 죽을 기세로 달려들어도 그를 이기지 못한다.
"뭐, 엄벌은 관두자고"
"그래도 됩니까?"
"싫다고 하는 주제에 우리 중에서 가장 대마왕이란 일에 잘 맞는 사람이 그 녀석이야. 제수씨를 건드리면 분명 그놈은 폭발한다. 폭발해서 눈에 보이는게 없어질거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뒤가 없는 사람이다. 잃을게 없는 사람은 그만큼 무모하고 잔혹한 짓 또한 가능하게 만든다.
최악에게 있어서 시온은 절대적인 지주인 만큼 그녀가 죽으면 최악의 세계는 붕과한다. 최악만큼 빠르고 광범위하게 학살이 가능한 초월자를 빡치게 만들다 못해 반쯤 미치게 만들고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그의 남은 인간성을 시온이 잡아주고 있는 만큼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은 최악은 곧바로 인간을 포기해 로드에 올라서 팬텀을 적대할거다.
"솔직히 직접 만나면 그대로 쳐죽일 수는 있겠지만 멀쩡하게 이길거라고는 생각이 안되서"
"후한 평가 아닙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그 녀석은 운명의 절대자 파벌 중에서도 중립에 가까운데 괜히 적대적으로 돌아설 필요는 없지. 간만에 홀수가 된 대마왕의 자리를 다시 짝수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하지만 처벌이 없다는건 아니야"
팬텀은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생각했다.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위신이 서지 않는다. 최악을 생각해서 엄벌을 내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 취급을 하는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어떤 처벌을 내리는게 좋을까 생각하던 팬텀은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 딱 좋은게 있네. 최대한 협조해, 그걸로 봐줄께"
"........파벌 관련 이야기라면 제가 아니라 남편한테 직접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쪽 이야기 아니야. 뭐.....무슨 의미인지는 조만간 깨닫게 될테니까 때가 되면 알 수 있을거야"
시온 생각으로도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일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밖에는 말이다.
초월자는 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보이는 것이 많다. 산 위에 오르면 도시 하나도 눈에 보일 수 있는 만큼 그는 여타 다른 초월자보다 보이는 것이 많다.
그것이 설령 미래의 일이라도 말이다.
......사실 같은 수준의 초월자와 비교하면 빡대가리 수준인 팬텀은 평균 이하지만 그건 말하지 말자.
"난 이만 갈께. 안부나 전해줘"
"일단은 관대한 처벌에 감사합니다"
"거 그렇게 관대한건 아닌데. 그 녀석이야 모르지만.......당신한테는 그리 관대한 처벌은 아닐껄"
팬텀은 커피를 털어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 아래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점차 그의 몸을 잠식한다.
쉐도우 드라이브. 자기가 인지한 그림자, 혹은 심연 등의 위치에 따라 거리 상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은 그가 대마왕이 아니라 마왕 시절부터 애용해온 힘이다. 덕분에 이런데에 잘 쓸 수 있는거고.
"어차피 조만간 그 녀석 얼굴 볼것 같으니까 보면 알아서 말 해둘께"
"안녕히 가십시오"
"고생 좀 하고, 제수씨"
이윽고 팬텀이 완전히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있었던 곳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깨끗한 바닥 밖에 없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뒤라는걸 인지하고 나서야 시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팬텀이 아직 인간성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벌로 그녀에게 큰 처벌을 내렸을테니까.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감정을 중요시 한다는 것은 인간성의 반증이다.
"그렇다면 남은건......."
시온은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면서 계획을 세웠다.
아직 절망은 주춤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곧이어 다시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을 번 지금, 최대한 사람들을 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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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곳이 바로 주께서 주신 땅입니다! 여러분들을 구원하고 보호하실 에덴 동산입니다 여러분!!!!"
""""와아아아아아아!!!!""""
현 상황에 신이 난건 재림예수회의 신도들이였다. 죽을뻔 하다가 살아나자 남은건 그 이유마저 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아니, 그 이름 마저도 신이라는 존재에 자기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억지에 억지를 더하고 나서야 이용해 먹을 뿐인.
정작 이탈리아에 있을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현 상황에 대해 인류의 위기라고 할 뿐 큰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김칫국을 아주 그냥 사발째로 원샷하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어? 하느님이랑 막 친해! 하느님 꼼짝마! 가만히 있어! 막 이럴 정도로 친하다고! 이 정도는 쉬운거지 그렇지!!?!?!"
재림예수회의 교주는 신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시온이 공식적인 의견 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아니 설령 그런다 할지라도 사람은 믿고 싶은걸 믿는 법이다. 그래도 바뀌는건 없다.
그들이 믿는 재림예수회의 신도들은 전만희 목사의 말을 믿었다. 뭐 같이 돌아가는 상황에 앨리사는 익숙해진 욕지기를 내뱉는다.
"이런 부모님 안부 물어볼 것들이.......!!!"
"앨리사씨의 욕이 갑자기 좀 진화하긴 했지만 일단 현 상황부터 처리합시다"
직경 100킬로미터의 에너지 돔이지만 겨우 100킬로미터 이기도 하고 무려 100킬로미터 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서울 정도의 범위 내에서 한 사람 정도는 충분히 보호가 가능하지만 반대로 수억의 인원을 보호하기에는 빠듯한 법이다. 아무리 밀어넣어도 그 인원을 그 범위에서 생존시키기에는 힘들다.
"사람들 부터 최대한 역장 안에 넣어!!!"
"놈들은 거기 안으로 못들어가니까 빨리!!!!"
사람들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희망이 예전보다 10배쯤 늘었다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시온이 펼친 역장은 멀리서도 보이고, 그들의 희망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저 역장 안에만 들어가면 살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무작정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한계는 있지만......그래도 희망 자체가 없는 것보단 낫다.
"윽......"
백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역장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부담이 덜해진건 맞았지만 그래도 부담이 덜해진 만큼 더 노력하는게 당연했다.
원래 뒤가 없는 사람은 유일한 희망에 가진거 전부 거는게 당연한 법이다. 백리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역장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설령 자기 영혼에 금이 간다 하더라도 말이다.
"........어?"
울컥, 하고 난데없이 피를 토한다. 초월자에게 있어서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그러지 않는걸 생각하면 그만큼 심각한 일이다.
의지는 마음에서 나오는 법이며, 마음은 설령 영혼이 없어도 있는 법이지만 영혼이 있다면 그곳에서 나오는게 당연한 법이다. 백리 또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가이아 포스나 의지를 한계까지 사용한 대가로서 영혼에 타격이 전해졌다.
영혼이 갈라지는 충격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을 초월한다. 비틀거려도 본인이 느끼는 감각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했다.
"윽....억....큭.......!!!!!!!"
백리는 침음성을 내뱉다가 이내 다시금 일어섰다. 루리가 경고한 영혼의 타격이 전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움직일 수는 있다.
뼈에 금이 가도 몸은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한계는 아직 좀 더 남았다. 설령 이전과 같은 힘은 쓸 수 없어도 한사람이라도 더 역장 안으로 들여야 사람을 구했다.
영혼이 갈라지는 감각은 상상을 초월한다.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되던 영혼 자체에 가해지는 충격은 엄청난 법이니 지금 그가 겪는 고통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선지 오래다.
하지만 백리는 고행자처럼 혼미한 정신 속에서 사람들을 구했다. 한사람이라도 더, 한명이라도 더, 하고 생각하는 상념은 조금이지만 도움이 되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적성종이다! 적성종이다아아아!!!!"
그리고 피난민들을 쫒아오는 적성종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백명의 피난민들이 눈 앞의 에너지 돔을 향해 빠르게 뛰어간다.
개중에는 짓밟히는 사람도 있다. 수백명의 인간이 달리는데 늦춰지는 사람은 쓰러져 밟히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당연히 잘못 밟혀 다치거나 치명상을 입어 죽기 마련이다.
피난갈 시간마저 주지 않는 놈들에게 분노하며 백리가 달려들었다. 기껏해야 중형 수십마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영혼에 금이 가고 있는 상태라 그들을 상대하는데도 큰 고통이 생긴다.
영혼에서 회로가 나와 공급되는 가이아 포스인 만큼, 영혼에 타격이 생기자 지속적으로 타격이 간다. 마치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찢어진 상처를 바늘로 깊게 찌르고 다니는 고통과 맞먹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키이잉!!!
하지만 최대한 놈들을 죽여 사람들을 구한 백리는 비틀거리는 상태로 사람들을 살폈다. 수백명의 피난민들 중에서 수십명이 짓밟혀 죽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은 있었다.
딱 한명, 작은 여자아이. 그것도 다리가 불편해서 걷는 것도 시원치 않은 아이지만 그래도 그 많은 피해자 중에서 아직 살아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부모로 보이는 부부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는데, 백리가 급히 그들을 살펴 보았지만 이미 숨은 끊어져 있던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다. 수백명이 급하게 달려가다가 밟았는데 아무리 웅크려도 피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살아남은 아이가 운이 좋은 것이였다.
"괜찮니? 일어날 수 있어?"
"......네"
부모가 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여자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리며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발로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백리는 그 아이를 부축해주며 에너지 돔까지 데려가 주기로 했다. 부모가 죽은 마당에, 그리고 절망스러운 현 상황에 혈연도 아닌 그 아이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줄 사람은 없으니까.
"괜찮아, 내가 데려다 줄께........이름이 뭐니?"
백리가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내딪으며 아이는 슬며시 자기 이름을 말했다.
"이유진이라고 해요"
백리는 모르지만, 최악과 인연이 있는 아이였다.
[작품후기]*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에 나온 애는 가이아 교단 사건 때 만나서 사인 확정 걸어 주었던 여자애입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 덕분에 부모도 다 밟혀 죽는 와중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주인공의 사인 확정 축복은 허락하는 인과율 선에서 상대를 이능생존체로 만들어줍니다. 물론 그렇다고 개지랄 하면서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면 죽어요.
그래도 서너번쯤 시도해야 죽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