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수로 파악한 사람도 있긴 있겠지만요.428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길목은 그들의 마지막 방어라인이다.
그곳이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수천만에 달하는 적성종들이 대륙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것이지 뚫리는 순간 전염병처럼 퍼져나갈게 뻔한 일이다.
사태가 발생한지 이제 약 90일. 즉 3달 가량이 지났다.
백리 또한 이곳에서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자기 특성을 발현하며 최대한 막았다. 러시아에서 소피아가 지원 왔기에 더더욱 방어에 용이해졌다.
소피아가 즉석해서 벽을 만들고 백리가 돌아다니면서 놈들을 제압하여 최대한 전선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전선을 커버할 수 있는건 아니다.
소피아나 백리나 둘 다 몸은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없는 빈 전장은 조금씩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한달이란 시간은 전선이 수백킬로는 후퇴하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러나 적의 숫자를 생각하면 오히려 잘 버틴거라 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노력했다.
"..........."
다만 그 결과 앞에서 백리가 만족하고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거기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 네가 여태껏 전장을 돌아다닌 거리만 합쳐도 아마 지구 몇바퀴 분은 될거다"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는데......"
"마음은 어쩔 수 없는거지?"
".......네"
"당연한 이야기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 같은건 일 끝난 뒤에 항상 찾아오는 법이지. 특히나 우리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건 제가 한 일이잖아요. 제가 저질러 버렸고 제가 책임져야 하는 일인데요"
"지금 중요한건 절망에 굴하지 않는거다. 설마 저기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그 광신도 놈에게 좋은 일이라도 해줄 생각인가?
".........."
"그리고 절망이 좀먹어가기 시작하면 인간은 오래 버티지 못해, 설령 너라도 말이다"
소피아는 군인 출신으로서 백리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지휘관은 지휘와 함께 책임을 지는 자리다. 행동 하나하나에 적게는 수명에서 많으면 수천명의 목숨이 오가는게 책임지는 자의 영향력이였다.
실수 한번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나서야 후회하는 일은 그리 드문게 아니였다. 그 단위가 억대에 들어섰다는게 좀 많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마왕에 의해서 죽은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
........그 숫자도 이 연합 전선이 뚫리면 역전되겠지만.
"너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건 이후에 맡길 일이지"
"위로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엔 위로가 하나도 안된것 같지만 말이지"
백리의 눈에 보이는 절망의 기색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기사 말 몇마디로 우울증이 치료되면 그쪽 관련 의료 직종은 왜 있겠는가.
지금 백리의 어께 위를 짓누르고 있는건 그의 선택에서 비롯된 책임감과 죄책감. 그리고 그로 인해서 죽어나간 사람들과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의 무게였다. 그 책임은 지구를 들어 올리는 것보다 무거워서 언제 짓눌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버티고 있는건 적어도 책임은 지고 죽어야 한다는 일말의 양심이 아닐까.
만약 모든 사태가 마무리가 된다면 그는.......
"어?"
휴식 중에 백리는 막사 근처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물론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활동하느라 안면이 있는 포스 유저는 마스터 유저 외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녀는 특징적이여서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드리아나씨?"
"누......아, 자넨가"
금발의 눈에 띄는 미녀. 거기에 한쪽 눈을 가린 안대까지. 멀리서 봐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녀까지 여기에 왔을줄은 몰랐다. 사실 어지간한 국가는 자기 나라 치안 유지하기도 바쁜 마당에 손꼽히는 실력의 포스 유저를 이곳에 파견하는건 꽤나 중대한 결정이였을 것이다.
"간만이군. 거대신전 이후로 처음인가?"
".......뭐, 그렇죠. 여기 계실줄은 몰랐네요"
"머리가 조금만 있다면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이곳이 돌파 당하면 내 조국인 이탈리아도 공격 받는건 시간 문제다"
괜히 이곳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였다. 지리적인 이점도 이점이지만 반대로 여기가 뚫리면 수천만의 적성종들이 중동, 유럽, 아시아로 퍼져나간다.
그때가 되면 시간 싸움이 되겠지. 그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하는게 그들의 일이다.
"뭐라 이야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요즘 근황 물어보기도 무섭고"
"상황이 안좋은 만큼 그럴만도 하지. 그렇지만 최선은 다해야 하지 않겠나?"
안면은 있지만 대화를 길게 나눌만큼 친한건 아니다. 뭘 이야기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백리는 저번의 그녀의 전생에 대한걸 물었다.
"아직 전생에 대한건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직까지는 딱히 큰 반응은 없다. 아마 당사자를 만나지 않아서 그런것 같은데.......만나면 뭔가 바뀔지도 모르지"
"감정이 꽤나 깊은 모양이네요"
"그럴지도. 기억이 없는 지금 하기에는 이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희미한 전생 각성의 기미를 보이고 있어서 계기만 있다면 다시 기억을 되찾는건 시간 문제다.
뭔가 더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 한 군인이 백리를 찾았다.
"백리씨! 빨리 모여 주십시오! 급보입니다!"
백리가 아드리아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일단은 이쪽이 우선이다.
"다음에 봐요"
"운이 좋다면 말이지"
백리가 따라 간 곳은 이미 마스터 유저들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지휘 통제실이였다.
그리고 한창 그들이 보고 있는 프로젝터 화면에서는 무인기를 통해 찍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직거리고 흔들려서 보는데 불편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확인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모두 모이셨다면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재 대륙 내부에서 특이한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어지간한 녀석은 다 본것 같은데 특이한 개체라고 한다면 그럴만한 녀석이겠지?"
"직접 보시면 됩니다"
이윽고 화면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살덩어리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백리는 그걸 어디서 본건지 깨달았다. 전에 아프리카 파견 당시에 내륙에서 보았던 거인형 촉수 적성종의 알 같은 것이다.
크기는 훨씬 크지만 부화 직전의 알을 껍데기만 벗기고 피막으로 둘러쌓인 듯한 모습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꽤 크군. 여태까지 나왔던 것보다 훨씬 커"
"현재 추정하기로 저 구체의 직경은 600미터에 가깝습니다. 정말로 거대한 크기죠"
"아니, 무슨......."
600미터? 거리로 치면 100미터가 6번일 뿐이니까 걸어가도 분 단위로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그게 생물의 사이즈가 되면 상식을 초월한 크기가 된다.
초대형 적성종이라 하더라도 그 크기는 수십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크기로 돌아다니기만 해도 거리 한두개쯤은 초토화시키는게 가능하다.
그런데 600미터나 되는 생물? 미쳤나? 지구 최대 크기의 흰수염고래도 30미터 가량이다. 늘어트려도 20마리는 필요하다.
설령 쥬라기 공원에 나온 브라키오사우르스 같은 공룡이라도 키가 50미터 정도다. 600미터는 커녕 세자리 수 단위의 생물은 현 지구에 식물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격은?"
"시도 해봤습니다만, 소용 없었습니다. 이미 라프 에너지가 대형 이상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사실상 화기로는 껍데기도 뚫을 수 없습니다"
"포스 유저도 적성종에게 유효한 데미지를 주는게 힘들어진 이상 저런걸 잡으려면 확실히 우리들이 필요하겠군"
"아직 저 상태일 때 잡아야죠. 빨리 가서 잡는 편이 제일 나을테니까요"
계획을 짜고 출발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저런 거대한 생물이 적성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협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잡아야 했다.
"........어?"
그러던 도중 누군가 화면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 집중된 시선은 다시금 화면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는.......막 부화하기 시작은 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런 씨......"
백리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악재가 겹치고 겹쳐서 드러난다. 마치 그들을 농락하듯이. 인위적인 느낌으로.
하필이면 그들이 전부 지켜보고 대처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 부화하는 모습은 악의가 가득했다.
"무슨......."
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할말을 잃었다. 거대한 괴물이,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알을 깨고 몸을 일으킨다.
알 안에 웅크려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놈의 크기는 더욱 거대했다. 팔 하나만 하더라도 200미터를 훌쩍 넘는 길이를 자랑했기에 가볍게 휘둘러도 학교 하나쯤은 운동장과 함께 쓸어버릴 수 있을것만 같았다.
질도 중요하지만 크기는 힘이 된다. 놈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무슨짓을 해도, 너희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진실의 절망을.
"........저 혼자 다녀올께요. 일단 저놈부터 죽여야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기 전에"
"부탁드립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는 사기를 떨어트린다. 저런걸 본 연합군 병사들이 뭘 생각할까. 그러니까 전선에 도달하기 전에 놈을 죽여야 했다.
전선에서 놈과의 거리는 약 500킬로미터. 먼 거리지만 백리나 초대형 거인 적성종에게는 금방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키이이이잉!!!!
백리는 지휘통제실에서 빠져나와 놈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절반쯤 날아갔을 무렵 놈의 모습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놈이 다가온 것도 있지만 워낙 거대해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기에는 평범한 사람 크기로 보여서 원근감이 이상해질것 같다. 심지어 옆에는 십수미터 크기의 거인 적성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정 같이 작게 보였다.
이내 백리가 놈과 조우했다. 놈도 백리를 인지했는지 꿈틀거리면서 박동하는 거대한 몸뚱이가 서서히 움직인다.
말이 서서히지 실제로는 채찍과 같이 빠르게 휘둘러진다. 그저 거대하기 때문에 느리게 움직이는걸로 보이는 것 뿐.
쿠우우우우우우우웅!!!!!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사방 십수 킬로미터에 그 여파가 퍼져나갔다. 인간이 뛰면 사방으로 그 진동이 울리듯, 6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생물이 만들어낸 여파가 결코 작을리 없었다.
진동이 아니라 지층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난다. 그걸 막아낸 백리는 처음으로 적성종을 상대로 전력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끄으으으윽?!?!"
힘으로는 안된다. 아무리 백리가 그랜드 마스터여도, 본격적인 초월자에 들어서지 못하는 이상 육체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 6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인간형 생물이 내는 파워를 견딜 수 있을리가 없다.
태극나선경을 운용해 놈의 라프 에너지를 흩어버림과 동시에 힘을 흘려냈다. 그러자 퍼엉! 하고 놈의 팔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살점이 텨져나간다.
"꾸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
백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청색공명기를 펼쳐서 놈을 향해 수도를 휘두를 뿐이였다.
콰콰콰콰콰콰!!!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놈의 몸뚱이를 세로로 양단한다. 청색공명기의 힘은 놈의 라프 에너지나 강도에도 전혀 상관없이 그대로 베어낸다.
그걸로 끝......이라고 백리는 생각했다.
꿀럭꿀럭꿀럭!!!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놈의 갈라진 몸뚱이에서 청색공명기에 닿은 부분만 떨어지며 남은 몸뚱이가 흐물흐물해지더니 다시금 뭉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깃덩어리 같은 구체는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를 만들어내면서 다시금 거대한 적성종이 되었다.
"이 자식 재생력이......!!!"
인간형 적성종은 한번 죽으면 끝이지만 놈은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살아 있었다. 그걸 통해서 죽은 부분을 분리하고 살아남은 부분만 뭉쳐서 부활한 것이다.
지이이잉!!!
그래서 이번에는 침투 특성을 발동 시켰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백리의 가이아 포스가 놈의 라프 에너지 활동을 무효화 시킨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부분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라프 에너지가 없다면 그런 거대한 육체를 유지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백리의 능력으로는 한번에 놈의 몸뚱이 전체를 범위 내에 넣을 수는 없지만 그거야 움직이면서 여러번 하면 그만이다.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백리는 놈의 몸뚱이를 완전히 부쉈다.
키이이이이잉!!!
그리고 공간 공명. 무너져내린 놈의 몸뚱이가 있는 곳을 향해 공간참을 수십, 수백개를 날린다. 채썰다 못해 패티로 만들어버리는 광경이지만 이런 확인 사살은 필요했다. 놈의 재생력은 뛰어나니까.
"후우우우........"
주변에 있던 다른 적성종과 함께 놈의 시체를 완전히 갈아버렸다. 크게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지만 백리가 아닌 다름 사람에게는 항언할 수 없는 재앙이다.
아마 이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핵이 필요할 것이다. 공백이 있는 미사일 폭격이 아니라 범위 내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증발시켜 처리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말이다.
꽤나 힘을 소모했지만 백리는 다시금 주변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죽였는지, 혹여나 살아남은건 있는지.
그렇지만 백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놈의 재생력이다.
평범한 거인형 적성종과 다르게 놈의 구조는 인간과 다르다. 장기도 없고 뇌도 없는, 오로지 세포 덩어리 뿐이다. 대기 중에 흐르는 라프 에너지의 패턴에 따라 움직일 뿐.
만약 놈을 죽이고 싶었다면 범위 내의 모든 세포를 사멸시켜야 했다. 그러나......그건 진짜 초월자가 아닌 이상 사실상 불가능했다.
꿈틀거리며 지렁이 같은 작은 세포 덩어리가 땅속을 파고들어 빠르게 전선으로 향한다.
놈의 팔다리가 되어줄 수천만의 적성종들이 놈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작중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수 있습니다.
슬슬 이집트 전선을 붕괴시키고 이야기 진행시켜야죠. 여기 쫑나면 진도가 팍팍 나갈겁니다.
그리고 진도를 나가기 위해 필요한건 뭐? 연참!!!!
이따가 또 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