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시온의 화성 이주.......라는 표명상의 이유를 댄 지구 탈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시온이 만든 홈페이지를 통한 약식 심사를 통해서 과정을 줄일 수 있다. 예전에 1차 화성 이주민을 받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시온이 공식선상에 나타나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지 움직이는 자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 쪽이 더 많았다. 비율로 친다면 4대 6 정도.
현실을 깨닫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했다. 그걸 단시간에 하라고 하기에는 인간은 나약하다.
돈, 직장, 집, 인맥.......지구를 떠나면 포기해야 할 것은 여러가지다.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현실에 대한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었다.
"문의전화는 전부 인공지능에 맡겨서 돌리고 있는데 괜찮아?"
"딱히 어색한 것도 없고 대처는 메뉴얼대로 충실히 하니까 문제 없지 않습니까?"
"불만 토로하려고 전화했는데 불만이 도리어 쌓이니까 문제지"
홈페이지를 통한 약식 심사는 그리 어려운게 아니였다. 동시 접속자 수가 단숨에 몇천만명이 되었지만 호라이즌의 서버는 겨우 그 정도로 맛이 갈만큼 허접하지 않다.
다만 문제는 거기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였다.
"내가 왜 떨어졌냐, 도대체 기준이 뭐냐, 내가 누군지 아느냐,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까 입국시켜달라.......뭐, 이래저래 사안들이 많은데"
"엿이나 까 먹으라고 하십시오. 아무리 선착순이라도 1억이란 숫자를 뽑기 위한 선발인데 기준을 높게 잡았을리 없고, 평범하게 잘 살았다면 통과할 수 있는 심사를 통과 못한 시점에서 저는 잘라낼겁니다"
"하긴, 나도 대충 알고리즘 파악해 봤는데 나름 괜찮더라"
루리가 시온의 의견에 동조했다. 기계가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조금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그 프로그램을 짠 것은 기계가 아니라 시온이다.
도구의 힘을 빌릴 뿐이지 결국 시온이 판단하는 것이라는 소리다.
"길 가다가 쓰레기 버리는 정도로 저도 탈락시키지 않습니다. 평생 기부 같은거 한적 없어도 딱히 상관 없습니다. 그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괜찮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통과할 수 있는데 왜 이딴걸 통과 못하는겁니까? 오히려 그쪽에 문제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전화 건 사람들 신상 좀 파악해봤는데 죄다 문제 투성이였더라. 트위터에 관종질 한 사람이라던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비리 정치인이라던가, 비자금 쌓아논 재벌이라던가. 양심적으로 살면 얼마나 좋아?"
".......뭐, 그렇게 말하면 제일 양심적으로 살지 않은건 우리 남편이기는 합니다만"
"아저씨는 건들지만 않으면 무해하잖아. 누가 건드려서 문제지"
제 1차 화성 이주민은 현재 각자 할일을 하면서 그들의 가족을 먼저 이주시키고 있는 중이다.
겨우 수천명에 불과한 그들의 가족을 전부 데려와도 겨우 1,2만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중에도 탈락하는 사람이 있으니 많아도 1만명이 넘을게 보인다.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루리가 물었다.
"오빠는 어때? 건강해?"
"나름 괜찮아 보였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좀 안색이 나빠보이긴 했지만 뭐, 그럭저럭"
"그 정도로 고생 좀 해봐야지. 그러길래 누가 하지말란거 하래? 불에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손 대서 화상 입었으면 그 고통은 자기 몫인 법이야"
루리는 한편으로 백리를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건 백리의 몫이다. 하다가 뒤지든 말든 알바 아니다. 그래도 가족이니 죽으면 장례식 육개장 정도는 끓여주겠지만.
"슈......아니, 히비키씨는 뭐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 통제 중. 뇌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일 잘하더라고"
"괜히 귀왕(鬼王)이라 불리던 사람이 아닙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대영웅도 고전한 초월자인 만큼 나름 능력은 있을겁니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좀 부족하긴 할거 같아"
"어떤게 말입니까?"
"음......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통치자? 지배자? 아니면 중심?"
"아, 대충 뭘 말하고 싶은건지 알겠습니다"
현재 화성 문명은 대부분의 시설, 인프라, 그리고 체계를 성립하여 인구만 충족하면 되는 과정만 남기고 있었지만 부족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 위에 군림하여 통치할 사람의 부재다.
"아저씨나 아줌마나, 둘 다 남한테 명령하고 지시하는건 그리 취향 아니잖아. 그렇다고 히비키 아저씨나 오빠가 하기에도 그렇고"
"그나마 히비키씨가 나름 괜찮은데......"
"그 아저씨는 리더 타입이지 보스가 아니야"
"하긴,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이지 위에서 명령하는 사람은 아니긴 합니다"
물론 명목상 화성 문명의 지배자는 시온이다. 그러나 시온은 인간을 긍정하고 그들의 문명을 존중하기에 설령 위에 선다 하더라도 크게 손 안대고 간섭도 별로 안할거다.
아마 화성이 안정된다면 최악이랑 같이 놀러다니면서 꽁냥거리지 않을까. 자기가 자기 스스로 위정자에 맞지 않다는걸 알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낫지. 무능한데다 자질도 없는 사람이 통치하는 것보단 훨씬 좋으니까"
"저는 능력은 있는데 자질이 없는 타입입니다. 권력 따위보다 더 중요한게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결국 사람이 없으니 시온이 통치해야 하는건 확정된 일이다.
"어디 막 하늘에서 대신 해줄사람 떨어졌으면 좋겠네"
"무슨 편의주의적 전개도 아니고.......레이즈씨라도 군주론이나 제왕학 같은건 배우지 않았을겁니다"
"응, 오빠 학과는 그쪽이 아니라더라"
본격적인 입국 심사대, 그러니까 화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설치하는데는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게이트만 여는 것이면 지금 당장도 가능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를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역시 치안이다. 화성 입국에 실패한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자폭 테러라도 일으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테니까. 적성종은 그 다음의 문제다.
"아프리카 쪽은 어때?"
"일단 백리 학생이 가 있습니다만.......뭐, 결국 밀리게 될겁니다"
"지금 오빠는 막 하급 초월자 정도는 됐을텐데?"
심기체가 어긋나 있어서 초월자인데도 초월자로 보이지 않을만큼 나약한 백리지만 청색공명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그 불균형을 어느정도 맞추어서 수준을 끌어올렸다.
아마 초대형 적성종이고 뭐고 썰어버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거다. 인간형 적성종이 수백 단위로 나타나더라도 시간 문제가 되겠지.
"실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량의 문제입니다"
"아, 하긴. 고수를 이기는게 쪽수라고 했지"
최악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초월자라도 다수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아프리카에서 싹트고 있는 절망은 질이 아니라 양으로 승부할 생각이다. 그것도 인류 전체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절망을 말이다.
"......빡세지겠네. 초반에 스퍼트를 내야 하나. 입국 심사대 설치 일정 좀 줄여볼께"
"부탁드립니다"
루리는 후에 있을 파국을 대비해 더 일찍 준비하기로 했다.
죽음의 공포에 찌든 인간이 입국하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바빠질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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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입국 심사대가 설치하기 전에 백리는 빠르게 아프리카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마스터 유저 보유국인 터키로 향했다.
시온에게서 받은 자료에는 인간에서 변이한 적성종이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적성종이 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여태까지의 적성종과 다르게 환경과 과정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이한다는 것도.
하지만 문제는 그 수였다.
"뭐가 이렇게........"
"3시간 전에 찍어온 사진이네. 아마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거야"
터키의 마스터 유저, 살라딘과 함께 비교적 최근의 현장 자료를 받은 백리는 어이를 상실했다.
여태껏 적성종은 차원을 넘어 오더라도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많아도 수천, 거기까지가 한계다.
하지만 놈들은 그걸 우습게 보고 수만, 수십만씩 수를 불렸다. 신전에서 생성하는 적성종도 그런 수준이였지만 개중에 제일 약한 일꾼 수준의 기본적인 녀석들을 빼면 지금 아프리카의 적성종 숫자보다 적을 것이다.
"이놈들은 서로 융합하면서 수와 질이 늘어가고 있어. 더 내버려두면 큰 위협이 될거야"
"폭격은요?"
"생각만큼 시원치 않아. 위력이 준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미사일에도 큰 타격이 없어"
라프 에너지의 출력은 인간에서 막 변이한게 아닌 이상 중형 적성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걸로도 어지간한 중화기는 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격이나 열기에도 그리 영향을 받지 않게 진화하여 단순한 미사일 폭격으로는 크게 수를 줄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와중에 진화하여 폭격기를 향해 공격하는 적성종도 나왔을 정도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포스 유저가 일일이 죽이는 것 뿐인데......적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오지 못하는게 유일한 희소식인데......그나마도 오래 버티지 못할거야"
"하늘이나 바다로 가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명한 지역을 떠올리라 한다면 사하라 사막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은 적성종에게도 나름 열악한 환경이라 아직은 그곳을 넘어오는 적성종이 적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놈들이라면 이내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날아오던가, 아니면 헤엄을 치던가. 어느 방법으로 가던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건 쉽다.
문제는 현재 인간이 적성종으로 변이하는 상황조차 해결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데 그런 적성종들이 융합하여 새로운 적성종이 된다는건 치안이나 사회가 유지되지 못한 국가는 망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는 더더욱.
백리가 노력해서 한국은 어찌어찌 정부가 유지되고 있으나, 반대로 말하면 백리가 있어도 한국 하나 커버치는게 전부라는 소리다.
그 사실 앞에서, 백리는 침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기운내게. 이미 저지른 일에는 어쩔 수 없는 법이야, 현실에 열중하는 수 밖에"
"위로는 감사해요.......그런데"
"이렇게 이야기 할 시간에 한놈이라도 더 죽이는게 좋겠지. 가세"
살라딘은 백리의 말을 끊었다. 조금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게 백리를 배려하는 일이였다.
이윽고 두사람은 따로 전용기를 타고 이집트로 향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는 적성종들의 소굴이 된 지금, 유일하게 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는 이집트나 모로코 같은 아프리카 대륙 북부의 사하라 사막 위의 국가들 뿐이였다.
현장에서 직접 받는 정보를 확인하고 움직이기로 했지만 거기서 기다리는건 더욱 나쁜 소식이였다.
"슬슬 놈들이 무리지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막을 효율적으로 건너는 방법을 알아차린건지......."
"젠장"
이런 진화 속도라면 아무래도 몇달 되지 않아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설령 아프리카의 적성종을 전부 멸종시켜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적성종으로 변하는 라프 에너지 자체 역장 자체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동 쪽에서 지원받은 포스 유저도 같이 현장에 파견될거야. 준비는 됐나?"
"안됐어도 가야죠"
"기세는 좋군"
마스터 유저는 살라딘 한명 뿐이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국가들의 지원과 중동 쪽에서의 지원을 통해 파견받은 포스 유저들과 함께 현장으로 떠났다.
비행하는 내내 눈에 보이는건 적성종 뿐이다. 그것도 날아가는 내내 적성종이 눈에 띄지 않는게 없을 정도로 바글바글한 수준으로.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나요?"
"가끔 분열하는 개체도 있다고 그러더군"
"씨발"
상황의 처참함에 백리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감당해야 할 문제니까.
여기서 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게 뻔한 일이다. 이내 적당한 위치를 잡은 그들은 그대로 낙하하여 현장에 착지했다.
"덤벼 이 새끼들아!!!!"
백리가 기세좋게 소리쳤다.
처음부터 놈들에게는 그리 큰 수단은 필요 없다. 태극나선경만 써도 되는 막 변이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공간 간섭을 응용한 공간참을 날리면 수십, 수백이던 학살할 수 있다.
키이이이이잉!!!!!
이명이 울리면서 백리가 수도로 날린 공간참이 단숨에 수십의 적성종을 베어낸다. 대부분의 적성종들이 죽어나갔으나 개중에 일부, 한두마리 정도는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쿠웅! 쿠웅!!!
그리고 다시금 움직이며 백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한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떼어내고 달아난듯, 백리의 공간참을 신체 일부의 손실로 만들고 중추를 보호한 것이다.
"생명력이 진짜 끈질기군. 나랑도 상성이 나빠!!"
콰아아아앙!!!
달려오던 적성종 한마리의 머리에 워 해머를 휘둘러 작살내며 살라딘이 말했다.
놈들의 탄성있는 육체는 물리적인 공격이 주된 살라딘에게 반감된다. 물론 그도 가이아 포스를 이용한 공격이 가능하지만 효율이 다르다.
"아니, 뭔가.......뭔가 달라요"
"뭐가 말인가?"
백리는 놈들과 조우한 이후에 처음으로 그 낌새를 눈치챘다. 저급한 적성종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강한 적성종을 보자 느낀 것이다.
놈들을 잡는데 힘이 드는 것은 성질이나 라프 에너지 때문이 아니다.
원래 포스 유저가 적성종을 잘 잡을 수 있는건 가이아 포스의 융합 현상에서 일어나는 라프 에너지의 물리 내성 관통에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본디 가이아 포스는 영혼에 새겨진 회로를 통해서 공급된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휘발성이 강하다.
그럼 포스 융합 현상이 일어날 때 이루어지는 가이아 포스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에 백리는 지상을 눈에 담았다. 단순히 흙이라거나 그런게 아니였다.
지구, 그리고 지구의 영혼. 거기에서 나오는 가이아 포스가 적성종을 잡을 수 있게 서포트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었다.
백리는 끝내 그 말을 담지 못했다.[작품후기]* 작품에 대해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구 : 방독면 없이 화생방 하는 기분! 구와아아악!!!
여태까지는 포스 유저가 방무뎀 들어가고 그랬는데 이제부터는 깡딜로 승부 봐야됨.
그리고 사태가 끝나도 지구가 회복하는데 시간도 걸릴 예정.
지구가 점차 망가질수록 제 마음은 평온해지는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요.
.......뭐긴 뭐야, 유-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