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현실이 더 판타지인건데!!!! 생각만해도 빡치네!!!419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기자 회견이 끝나고, 백리와 시온은 간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날짜로 따져도 길어야 몇달 전인데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난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고생 많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한테 맡겨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백리 학생도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요?"
"설마 이제 빠지려는 생각을 한겁니까?"
"그건 아닌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왜 없겠습니까?"
시온은 백리의 눈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린걸 보았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이 너무나도 크기에 생기는 일이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 자기 목을 긋거나 아니면 어디 틀어박혀서 방구석 폐인이라도 되었겠지만 이렇게 나와서 진실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였다.
"지구의 인류는 수십억, 정확히 말하면 대충 67억 정도 됩니다만 그 중에서 겨우 1억을 구하는 것은 세면대에서 양손으로 물 한줌 퍼올리는거나 다름 없습니다. 거기에서 생기는 문제는 분명 발생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걸......."
"좀 더 다른겁니다. 이미지 문제라고 할까. 그런게 있습니다"
사실 원래는 히비키에게 맡길 역할이였지만 혼자 그러기에는 쉽지 않다. 그리고 히비키보다 사람들의 원망과 증오를 받을만한 존재는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 사실 무죄를 받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그들이 당신을 욕할 권리는 없지만 아무튼 그래도 분명 당신 탓을 할겁니다. 그 모욕과 수모를 감내하고 피난이 완료할 때까지 사람들을 컨트롤하고 분발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을 해도 되냐는 뜻이다.
"오히려 막 더 혼란스러워지고 그러지 않을까요?"
"지금 이 지구에는 희망의 상징이 없습니다"
마스터 유저는 있으나 지구가 망하는 와중에 마스터 유저라고 좀 더 오래 버티는 것 뿐이지 결국에는 죽을게 뻔한 일이다. 물론 시온이 손을 쓰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유일한 후보였던 백리는 큰 결점이 있다. 고의가 아니였다고 하나 지구 인류를 멸망에 빠트린 것은 크나큰 결점이자 죄였다.
설령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희망이 없으니, 원망할 대상이라도 필요하죠. 사람들이 내뱉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다면 엉뚱한데 버려서 어지럽히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알겠어요"
백리는 시온이 하려는 말을 대략 이해했다. 영웅이 될 수는 없으니 차선의 선택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비록 그 차선이 영웅이 아니라 원망받는 선택지가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가르-레칼이 공격해 온다면......."
"놈은 바보가 아닙니다. 제가 왜 일부러 1억이라는 적은 숫자를 공식선상에서 내뱉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1억은 큰 숫자지만 현재 지구 인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방금 시온이 말했듯 수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그런 혼란을 불러일으킬 정보를 대놓고 밝힌 것은 가르-레칼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어차피 내가 구할 수 있는건 조금 밖에 되지 않으니 그냥 묵인해라'같은 의미로 말이다.
"놈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별과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내뿜어내는 부정적인 사념들입니다. 물론 1억명이 생산할 절망도 양이 많겠지만 크게 차이 없다면 질 또한 챙기려고 하겠죠"
"그 자식......."
백리는 이해했다. 가르-레칼이 직접 설명까지 해주면서 백리를 절망시켰기에 놈의 논리나 행동도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놈은 시온을 방관할 것이다. 시온을 상대하기가 껄끄러워서가 아니라 보다 더 깊은 절망을 주기 위해.
1억이란 생존자의 허들을 넘지 못해 절망할 나머지 수십억의 절망의 질을 보다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저는 놈에게 손댈 수 없지만, 반대로 놈도 저에게 손대지 않을겁니다"
"일단은......알았어요. 그런데 입국 심사대는 어디에 설치할거예요?"
"한국에 할겁니다. 원래부터 여기에서 한터라 다른 곳에서 하면 대마왕들 쪽에서 태클 걸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백리는 문득 미국의 앨리사 니어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준비해서 한국으로 떠나라고 했던 예언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 것이였다.
미래는 그녀가 예언한대로 적중했다. 지구는 죽어가고 여태까지 모든 사회는 붕괴할 것이다.
"그 전에 한가지 말해두겠습니다. 제가 백리 학생의 가족들을 받아들인 이유는 당신이나 루리 학생을 보고 데려온게 아닙니다. 충분히 합격점이기 때문에 이주를 허락한겁니다"
"어......그런데요?"
"나중에 친구나 지인이라고 해서 받아달라는 인맥적인 요청은 안통하니까 알고 계십시오. 지구의 권력자고 재벌 나발이고 기준 미달이라면 이 심사 통과 못합니다"
"아, 그건 걱정마세요. 어차피 이 상황에 있던 친구도 달아날텐데요 뭐"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던 도중 시온이 흠칫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라프 에너지 역장에도 상관 없이 시온은 실시간 통신 및 해킹이 가능하다. 그녀가 놀란건 이곳이 아니라 저 먼 다른 나라의 상황이였다.
"안좋은 소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뭔데요?"
"현재 정부와 국가가 붕괴한 아프리카 쪽 문제입니다. 이건.......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입니다. 따로 자료를 보내드릴테니 한국 정부와 상의하십시오. 어차피 저는 손 못대지 않습니까?"
"알았어요"
아프리카는 사태가 벌어진지 겨우 한달 사이에 멸망했다. 원래부터 치안이 나쁜 곳이라서 더 가속화된 느낌이 있었지만 아무튼 현재의 아프리카는 소수의 생존자 커뮤니티를 제외하고는 전멸한지 오래다.
그곳은 이미 적성종들의 소굴이다. 물론 인간에서 적성종으로 변이한 것은 약해서 어지간한 포스 유저만 있어도 도륙낼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소총 정도는 소용없는 괴물이였다.
"그들도 생명이지만 거기까지 가서 구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겠죠, 아까 말한 것처럼 형수님도 입장이란게 있을테니까요"
해야한다면 그건 백리의 일이다. 이 사태가 벌어진 일의 원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우선 백리는 자료를 받고 본 뒤에 움직이기로 했다. 막 당장 입국심사대를 설치할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의 시간은 있었다.
"아무튼 여기서는 제가 할테니까 그쪽 일은 형수님이 최선을 다해주세요"
"걱정마십시오"
시온은 백리의 휴대폰에 따로 자료를 보내주었다. 물론 한국 정부에도 보냈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은 먼 국가의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달랐으니까 대처할 수단이 필요했다.
이윽고 휴대폰을 꺼내 시온이 건내준 자료를 확인한 백리가 안색을 굳혔다.
"......뭐야 이거?"
거기에는 기괴하게 생긴 생명체, 아니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뭐한 혐오스러운 적성종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민달팽이......아니, 불가사리? 혹은 연체 동물 같은 것에게서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모습만 뽑아서 버무린듯한 괴물이다. 적성종이라도 이런 외견은 난생 처음이였다.
"도대체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백리의 물음에 답해줄 이야기는 자료에 전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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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서 적성종으로 변이한 것과 그냥 적성종의 가장 큰 차이점을 뽑으라 한다면 역시 코어가 있었다.
적성종은 원래 티브 문명에서 부정적인 사념을 수확해 차원 저편으로 전송하기 위한 생물이다. 그리고 그 코어가 바로 사념을 수집, 저장, 전송의 역할을 하는 메인 중추였다.
지구인들은 그 코어를 단순한 동력원으로 알고 있지만......동력 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변이한 적성종은 코어가 없다. 거대 신전을 통해 펼쳐진 라프 에너지 역장을 통해서 변이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차피 이제 지구에서 생기는 사념은 거대 신전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코어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동력이 없기 때문에 라프 에너지는 있어도 미약하며 놈들이 약한 것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라프 에너지 역장에 약간의 패턴을 넣는다면 따로 지시 없이도 놈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다던가. 좀 더 변이시킬 수 있다던가 말이다.
"키익!!!"
"끽! 끼이이이익!!!"
한 도시를 점령하고 인간을 전부 죽인 수백의 적성종 무리들이 저마다 소리를 내며 괴성을 지른다. 폐허가 된 도시에 남은 것은 무너진 건물들 밖에 없다.
우뚝!
마구 날뛰며 움직이던 적성종들이 이내 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경청하는 것처럼.
이윽고 수백마리의 적성종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며 한곳으로 모인다. 꽤 넓은 공간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덕지덕지, 서로 달라붙으면서 끌어안고 물고 달라붙는다.
놈들의 몸에서 진액이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끈적하게 떨어져 내리면서 도시를 폐허로 만든 수백의 적성종들은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었다.
크기만 보더라도 수미터에 달하며 어느새 고깃덩어리는 규칙적인 박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그래봤자 변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하루,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진액 또한 굳어서 마치 하나의 고치처럼 보인다.
쩌저적!
어느덧 박동을 멈춘 고깃덩어리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굳은 껍데기를 벗어내고 안에 있던 괴물이 우화하기 시작했다.
"끄륵"
인간에게서 변이한 적성종은, 그래도 이족보행을 한다거나, 심장이나 뇌가 있다거나 하는 인간과의 최소한의 유사점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놈은 완전히 인간에게서 벗어난 형태를 띄었다. 거대한 몸체, 뼈가 없어 보이는 다섯개의 거대한 촉수 같은 무언가. 마치 불가사리 같이 보이는 외형이지만 조금 달랐다.
철퍽! 철퍽!!!
진액을 뿜어내면서 몸을 움직인다. 다섯개 거대한 촉수 중에서 4개는 땅을 디디며 사족보행을 하고 나머지 하나의 촉수는 반으로 갈라지더니 이내 입을 쩌억 하고 벌렸다.
"끄르끅끅끄으으으꺼어어어어!!!!"
반사적으로 귀를 막을만한 괴이한 울음소리였다. 이윽고 놈은 본능이 시키는대로, 하지만 그 본능이 누군가 내린 명령이란 것을 모른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몸체와 괴이한 생김새에 비해서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민첩했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 같은 자유로운 움직임에 중력을 무시한 거대한 몸뚱이는 무너진 건물이나 장해물에도 개의치 않고 빠르게 넘어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발견한건 조금 밖에 남지 않은 아프리카의 생존자 커뮤니티였다.
"저, 저건 또 뭐야!!!!"
"쏴!!! 무시하고 쏘라고!!!"
두두두두두두!!!!
안그래도 치안이 좋지 않은데다 사회마저 붕괴했으니 총기가 있는건 당연지사. 그들은 놈을 발견해고 마구잡이로 총을 쏘았지만 소총으로 저지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거대했다.
콰아아앙!!!
총기로는 타격이 없자, 어디선가 노획한건지 모를 대전차 로켓을 가져와서 쏘았지만 놈에게는 타격이 없었다.
코어가 없기에 단순한 출력으로는 대형이 아니라 중형 적성종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중형쯤 되면 중화기도 잘 먹히지 않으며 놈의 연체동물 같은 탄성 있는 몸체가 충격을 완화한다. 안그래도 화기로는 답이 없는데 부족한 출력을 매꾸기 위해 강구한 변이 형태인 것이다.
사람들은 최대한 저항했지만 파국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내 놈은 생존자 집단을 덮치고.......그들을 먹기 시작했다.
본래 적성종은 인간을 먹기보단 죽이는 쪽이였지만 놈은 입이 있는 유일한 촉수를 마치 개미핥기가 개미집을 탐하는 것 마냥 휘저으며 사람들을 먹어치운다.
"끄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누가......컥!!!"
"으흐흐흑......."
우득! 우드득! 아그작, 끄득!! 뿌직!
박살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명 소리도 간간히 울려퍼지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이윽고 놈은 으르렁거리며 만족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꿈틀거리면서 다시금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알에서 태어난 것 같은 아까와 다르게, 이번에는 마치 허물을 벗는것 같은 모양새였다. 피부 겉 부분에 흐르던 체액이 굳어 껍데기가 되고, 그것을 비집고 부숴서 빠져나온다.
얼마 지나 회복이 되자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에서 변이한게 뭉쳐진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빠른 성장속도였다.
"끄으우우우우우우!!!!"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다시금 움직인 대형 적성종은 아프리카 대륙을 활보하던 도중에 자신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체액에서 부식성을 띈다거나 촉수가 하나 더 적은 정도의 차이를 가진 비슷한 개체와 조우했다.
적대적인 모습은 없었다. 단지 서로를 탐색하고 동족인걸 확인하자 망설임없이 서로 달라붙여 엮이기 시작했다.
마치 민달팽이의 교미를 보는 듯한 혐오스러운 모습이였지만 차라리 교미가 나을것 같았다. 교미라고 하면 결국 번식을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꿀럭꿀럭꿀럭꿀럭!!!
체액이 뒤섞이면서 서로간의 장점을 공유하고 이내 하나가 된다.
쿠우우우웅!!!
완전히 융합이 끝난 두 대형 적성종의 모습은 어느새 초대형에 육박할 수준이 되었다. 다리 또한 사족보행에 가까웠던 것이 이제는 여섯개의 다리로 곤충처럼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체액은 바닥에 떨어지자 땅을 부식시키며 녹인다.
아직 놈들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보다 많은 형질의, 보다 큰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간을 죽이고 거대해질 것이다.
현 지구에 절망을 알려주기 위해서.
[작품후기]* 작중 스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약 : 크툴루 신화 레벨은 아니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정신력 깎아먹는 놈들이 떼거지로 달려듬.
개인적으로 크툴루 신화 같은 코즈믹 호러는 좋아하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아직 부족하네요.
그래도 예로부터 인해전술은 예로부터 증명된 효과적인 수단이죠.
짱ㄲ들도 그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