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우투리는 겨드랑이에 화살 맞고 죽었어!416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위도 아래도 모르는 우주 공간에서 다시금 중심을 잡고 멈췄을 때 이미 히비키는 달조차도 보이지 않을만큼 먼 곳에 덩그러니 내버려지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를 개념화한 덕분인데다 우주에서는 대기가 존재하지 않아 마찰이 없기 때문에 그 속도에서도 무사했지만 그에게서 지구는 너무나도 먼 그대가 되어 버렸다.
"젠장"
공기가 없어 전해지지 못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히비키가 으르렁거렸다.
차라리 비슷한 다른 종족으로라도 바뀐거라면 놈을 이길 수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적성종의 혈육을 사용하고 그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가르-레칼이 그걸 이용해서 틈을 노린터라 허를 찔려버렸다.
진건 아니다. 놈도 이길 수 없다는걸 알기에 히비키를 우주 저 멀리까지 쫒아낸거니까.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 졌다.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한 군인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씨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난데없이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된 기분이군. 지나가던 우주선이라도 있나?"
히비키는 최악처럼 차원을 찢고 간다거나 하는 방법은 모른다. 차원을 비집는 기술은 나름의 지식과 경험이 뒷바침 되줘야 하기 때문이다.
슈텐에게서 받은 지식은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라서 그런쪽 지식은 별로 없다. 생각외로 뇌근 수준은 아니라서 이런저런 교양 지식 등등의 방대한 정보도 있지만 차원에 대한 것은 슈텐이 살던 곳에서도 아직 연구 중이던 분야다.
그나마 그 연구 분야란 것도 그냥 차원과 차원간의 압력을 일시적으로 일으켜서 무지막지한 충격파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씁, 뛰어가는 수 밖에 없나"
공기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극한의 환경이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으니 뛰어가면 지구까지 어떻게든 갈 수 있을거다.
문제는 시간이다. 히비키가 아무리 빨리 가봤자 이미 일이 끝난 뒤일터, 그때 가면 너무 늦는다.
우우웅!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가 진동을 내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매질이 없어서 히비키에게 전해질리 없는 진동이였지만 조금 달랐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건 거대한 드래곤. 그것도 초대형 적성종으로 분류해야 할법한 수준의 기계로 된 것 같은 드래곤이였다.
"뭐여 이건 또?!"
지금 히비키와 같은 우주에서 지나가는 우주선에 히치하이킹 하는 것에 대한 확률은 아주아주아주 희박하다고 하지만 사실 저쪽에서 알아차리고 마중을 나온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철컥! 하고 드래곤의 흉부의 비늘과 갑주가 열리더니 이윽고 사람이 한명 모습을 드러냈다.
시온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레이즈였다.
-아, 아, 잘 들리십니까? 델타 캐.......아니, 화성 개발국에서 일하는 레이즈 익스페어라고 합니다.
"......일단 잘 들리긴 하는데 들을 수는 있어? 아니, 애초에 네 말이 나한테 들리는거 보면 딱히 의미없는 질문이였군"
-따로 이런 쪽의 통신기가 있거든요. 한쪽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한 의사소통은 되는 관계로. 아무튼 마중 나왔습니다. 일단 타시죠.
"그렇다면 나야 고맙지"
레이즈의 안내에 따라 그가 몰고온 거대 기계 드래곤, 드래고노이드에 탑승한 히비키는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슈텐이나 히비키나 뇌근은 아니다. 이런저런 분야에 관심은 있고 더군다나 지구 문명 수준을 훨씬 벗어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기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야, 이런건 저쪽 기억으로도 이렇게 우주 항행 까지 가능한건 아직 없었는데 말이야. 아니, 원래 저쪽은 우주 개발이 더디긴 했지만"
"저쪽 기억? 특이한 말을 하시네요"
"그럼 저쪽 기억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어?"
".......실례지만 성함이? 슈텐씨 아니신가요?"
"히비키인데?"
그의 답변에 레이즈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니, 전생각성하는데 어떻게 자아를 유지했어요?!"
"솔직히 맛 갈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가끔씩 슈텐이라고 입에서 튀어나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녀석이 자의로 넘겨줬어"
"아......."
정체성의 혼란까지는 아니지만 히비키는 가끔씩 자신을 히비키가 아니라 슈텐이라 칭할 때가 있다. 특히나 기술명을 내뱉을 때 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아의 중심은 히비키이며 슈텐은 이미 사라졌다.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원래 전생각성을 할 정도라면 전생의 미련이 너무 강하거나 전생에 초월자여서 그럴 경우가 많은데, 히비키씨 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거든요"
"하긴, 나도 솔직히 수천년짜리 기억이랑 붙으라고 하면 좀 그렇지. 운이 좋았어"
고작해야 수십년을 산 인간의 기억과, 수천년을 귀왕(鬼王)이라 불리며 군림해온 요괴의 기억이 서로 충돌하면 패배할 쪽은 눈에 선하다. 슈텐이 온전히 자기 기억을 넘긴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고 히비키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 저희는 화성으로 곧장 갈겁니다. 일단 거기 가셔서 저희 고용주부터 만나보시고 이야기 하시죠"
"기왕이면 유턴해서 그놈 신전까지 가주면 안될까?"
"그렇게하면 제가 개입하는게 되는거라.......차라리 지구까지 가자고 하시면 갈 수 있는데 그렇게는 안되요"
애매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다. 전생각성을 했어도 지구 출신인 히비키를 지구까지 데려다주면 인도적인 행동에 불과하지만 가르-레칼의 신전에 떨어트려주면 그건 그들의 분쟁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된다.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놈의 신전에 닿을 수 없으니까.
지구는 이미 대마왕이 반쯤 손을 놓은 곳이고, 남은 반도 그리 좋은 의미로 관심을 쏟는게 아니다. 초월자 관련해서 모든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는 중이니까.
"일단 저희도 이런 일은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준비는 했지만......."
"......화성 이주. 얼마나 가능할것 같냐?"
"어림 잡아서 1억 정도요"
"턱없이 적군"
"어쩔 수 없어요. 지금 가진 장비로는 그게 최대니까요. 서로간의 입장도 있고요"
만약 레이즈가 화성 개발국 대표라면 델타 캐슬에 본격적으로 지원을 요청해서 테라포밍 장비를 지원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시온은 대마왕, 그것도 운명의 절대자 파벌에 든 최악의 아내다. 상대 파벌이나 적을 신경쓸 수 밖에.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다. 1억이라는 인구는 인류가 이어나가기 충분한 숫자니까 말이다.
"자, 슬슬 도착했어요"
저 멀리 돔 형태의 에너지 막으로 둘러쌓인 화성의 도시가 보인다.
빼곡하게 쌓인 아파트, 그리고 고층 건물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거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위에서 보면 규칙적인 아름다움과 조형미가 옅보이는 그런 도시였다.
"누가 만들었는진 몰라도 참 잘 지었군. 괜찮은데?"
"저도 시간에 쫒겨서 만든거 치고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윽고 드래고노이드가 착륙한다. 위치는 도시 위에서 부유하고 있던 호라이즌의 위, 갑판 일부가 벌어지면서 드래고노이드를 환영한다.
쿠우우우우!
에너지 장막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존재하는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도 호라이즌 내부의 격납고로 들어서자 금방 조용해졌다.
"일단 손님용 아이디 발급 해드리고......자세한 이야기는 저희 고용주께서 해주실겁니다"
"내가 잘하는 협상은 상대 멱살 잡고 흔들면서 하는건데"
"그러다 죽어요"
"농담이야. 나도 형수님한테 그러고 싶지는 않다"
히비키는 본격적으로 호라이즌에 발을 디뎌 시온이 있는 선장실로 향했다. 이래저래 구경할 것도 많고 사람도 있었지만 중요한건 시온이였기에 우선적으로 그쪽으로 간다.
이내 선장실에 도착하자 이미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시온이 따로 차를 내어놓으며 그를 환영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슈텐씨"
"히비키라고 불러줘. 나는 그쪽이니까"
".......그렇습니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시온도 슈텐이 아니라 히비키인게 놀랐는지 살짝 눈을 휘둥그래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사람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표정 변화이면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히비키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헤엄치다 와서 그런지 꽤나 목이 타는 느낌이다.
"집까지는 돌려보내 준다니까 고마운데. 그래도 손 쓰는 김에 좀 더 쓰지 않겠어?"
"이래보여도 최대한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주고 있는겁니다"
"형수님 말고 말이야, 그 녀석"
"........아"
히비키가 말하는 사람은 누군지 시온도 잘 알고 있다.
최악의 사촌이자 최고의 대영웅. 나이트로드란 직위에 오른 초월자이자.......히비키의 전생, 슈텐을 죽였던 남자.
"죄송하지만 그건 안됩니다. 제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이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아, 둘이 사이가 안좋은가봐?"
"대영웅과 대마왕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이는 그 사람을 라이벌이나 숙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냉전 시절 미국의 소련에게 협조도 아니고 부탁을 하는 수준의 일이기 때문이다.
최악은 시온만 무사하다면 자기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팔아버려도 상관 없는 사람이지만.......그러면 반대로 그런 최악의 자존심을 시온이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겠는가. 자기 때문에 전부 버릴 수 있는 사람을 그녀가 챙겨주지 않으면 그 누가 챙겨주냔 말이다.
나중에 그것 때문에 욕을 먹는다면 전부 감수할 생각이다. 시온은 이미 각오가 됐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끈질기게 굴진 않겠지. 그러면 계획이나 일정표 같은건 따로 받을 수 있을까? 아, 그리고 술도"
"술이라면 좋은게 있습니다"
"그거 좋지"
목을 축인 것과 마시는건 다른거다. 음료수라면 히비키는 차보다 술을 더 선호했다.
"그리고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이 1억이라고 들었는데.......그건 더 못늘리는거야?"
"이미 최대치가 그 정도입니다. 이 이상은 저희 장비로도 무리입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인 룰을 파괴하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안된다.
예를 들어서 방금 언급한 대영웅 나이트로드라던가.
시온이 계획서를 보여주지 넘겨보던 히비키가 인상을 찌푸리다 한숨을 쉬었다.
"결국 선별은 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알았어, 이런 일은 나한테 맡겨"
"괜찮겠습니까?"
"전직 요괴에 지금은 적성종도 포스 유저도 아닌 뭔가가 되버린 인간을 얕보지 말라고. 사람들 분노나 증오 따위는 오히려 건강에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껄"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따로 기계에게 맡겨도......"
"그러면 그 증오는 형수님에게 향할 뿐이지. 나는 나름 인망도 있고 욕 좀 먹는다고 굴하지 않을테니까 너무 걱정마. 남은 사람들한테 욕 더 먹는다고 지난 20년동안 먹은 욕에 비할까"
시온은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스스로 그녀가 져야 할 악업의 일부를 가져가 떠안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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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하늘이 희미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단순히 그것 뿐만이라면 좋겠지만 라프 에너지가 지구 전체를 감싸며 옅은 라프 에너지를 띄기 시작했다. 당장 사람들이 적성종으로 변이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될 것이다.
"이건........"
백리는 공기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라프 에너지를 느끼며 절망에 빠졌다.
결국 거대신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패배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발버둥은 무의미하다. 다시금 인원을 투입하려 한다 하더라도.......불가능한 일이다.
위성 궤도에 있는 놈에게 핵폭탄을 날려? 신전에는 타격도 없을테고 오히려 퍼진 방사능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다시금 도전한다? 라프 에너지 역장 안에서 정밀기기가 얼마나 정밀도가 높을지 확신할 수 없다. 비록 이전 신전들의 역장보단 덜하더라도 전자기기에는 치명적일테니까. 정밀기기의 정점인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는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아마 위성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대기권에서 폭사하겠지.
결국 남은 방법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아아아........"
전부 그의 책임이다.
이렇게 된 상황도, 이제 죽어나갈 인류도 전부 그의 책임이다. 그의 선택에서 비롯된 일인 만큼 그 무게는 무엇보다 무겁게 그를 짓눌러 왔다.
속에서 감정이 끓어올라온다. 답답한 감정을, 그리고 구역질나는 고통을 그대로 비명과 함께 토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백리는 그 어떤 육체적 고통을 받았을 때보다 격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건 그의 마음이 죄책감에 짓눌리다 못해 짓이겨지는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절망어린 비명이다.
살아남은 포스 유저들과 마스터 유저들은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없으니까.
발버둥 치려고 해도 발 자체가 잘려나간 것과 같은 상황이다. 남은건 얼마나 더 살아남을 수 있냐가 중요할 뿐.
"인류는 어떻게 되는걸까........"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단 한사람, 관리자만 빼고.[작품후기]진짜 절망은 이제부터다!
지구가 서서히 망하가는 모습을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