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냥 희망 좀 줘봤습니다.414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물고기를 잡았으니 남은건 요리 뿐이다. 지금의 가르-레칼에게는 그들에게서 어떻게 하면 더욱 더 절망을 뽑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수천명 정도지만 그들에게서 뽑아낼 사념의 양은 억 단위에 육박한다. 마스터 유저마저 포함되어 있으니 나오는 기적의 효율이였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은 최후의 일일텐데]
타인에게 절망을 느끼게 해주는건 그의 전문 분야다. 육체적인 고통을 줘봤자 피폐해질 뿐 사념을 뽑아낼 수 있는 양에는 한정되어 있다. 더군다나 죽을 가능성도 있고.
보다 효율적으로 사념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방법이 필요하다.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방관하던가, 아니면 자기가 무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닫게 해주던가. 사실 찾아보면 방법은 많다.
가르-레칼이 가진 노하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지 무엇부터 시작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이며 결국에는 끝이 보이는 이야기였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음?]
현재 거대 신전은 부상 중이다. 중력을 거스르며 모든 외부의 간섭을 거부하고 심지어 전투기 편대의 폭격에서 아랑곳하지 않으며 위성 궤도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신전의 생체 코어는 가르-레칼과 연동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라프 에너지의 출력은 설령 핵폭탄이라 한들 끄떡 없었다. 아니, 현재 신전의 출력은 의지를 다루지 못하는 존재라면 대부분의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수준이다.
지구의 모든 핵폭탄을 쏟아 부어서 거대 신전을 폭격한다 한들 출력이 좀 떨어질 뿐이지 신전 자체는 아무런 데미지도 없을 것이다.
이만한 구조물에 그런 방호력. 티브 문명에서도 꽤나 손꼽히는 기술력이 들어간 신전이다. 이 지구에서는 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
콰아아아앙!!!
[..........]
신전이 울렸다. 아니, 단순히 울린게 아니다. 누군가 후려쳐서 울리는 진동이였다.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이윽고 두번의 진동이 더 이어지자 신전의 정문이 박살나 우그러졌다.
백리조차 태극나선경으로 라프 에너지를 흩어버리지 않으면 타격을 줄 수 없고, 그나마도 일부 밖에 부서지지 않는데다 그마저도 수복된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기동하기 시작해서 핵폭탄에도 끄떡없는 신전의 정문을 처부수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형 왔다 새끼야. 존나 기다리고 있었냐?"
거기에는 생각도 못했던 얼굴이 있었다.
중국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히비키가 웃으면서 그들을 마주했다.
다만 특이한 점은 그의 머리에는 다섯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장식일리도 없었고 설령 장식이라도 이런 자리에 달고 오지는 않았을테니 저건 진짜인게 틀림없다.
"히비키씨?!?!"
[네놈......!!!!]
가르-레칼은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여태까지 그들을 농락하고 보다 더 큰 희망을 주어 이후에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해서 당하는척 연기를 하며 감정을 숨겼지만 유일하게 그가 감정을 드러냈던 일이 있었다.
중국에서 히비키와 최후의 결전을 벌였을 때!
그때 품었던 감정은 경악이다. 한순간이나마 히비키가 닿은 경지가 어디쯤인지 그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 있었지? 아니, 그보다 그 힘은.......]
"한번 죽어서 염라대왕이란 면담 뜨고 왔다 새끼야!!!!"
콰콰콰콰!!!!
가벼운 주먹질이였다. 하지만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일격에 기파와 묵직한 의지가 신전 내부를 휘젛는다. 그러자 구속되어 있던 사람들이 전부 풀려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부차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본래의 목적은 가르-레칼에게 한방 먹이는 것!!
그리고 그 일권은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 급히 백리에게서 떨어져서 역장을 강화했으나 그 충격이 그의 역장을 거세게 두들겼다.
비록 겉으로 보이는 데미지는 없지만 상처는 남았다.
육체에 남는 상처가 아니라 자존심에 남는 상처가.
[고작해야 이런 작은 행성의 일개 지성체가 어떻게.......!!!!]
"내가 너 조지려면 뭔 지랄을 했는지 알겠냐? 시발, 뿔 좀 났다고 검사한다고 지랄하는 놈들 때려눕히고 미국까지 뛰어왔다 새꺄!!!!"
참고로 농담 아니다. 외견상의 변화와 명백하게도 인간이 아니게 된 모습에 이런저런 검사를 들먹이며 그를 구속하려는 자들이 있었지만 한시가 바빠서 전부 때려눕히고 그냥 뛰어왔다.
중국에서 미국까지. 태평양을 도보로 건너 미국의 국토 대부분을 뛰어서 넘어와서 이렇게 늦은 것이다.
가르-레칼은 히비키에게 분노했으나 섣부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백리나 마스터 유저 수준이라면 연기를 하면서 그들을 절망시키기 위해 움직일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의 히비키에게는 그런 여유를 보일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다.
최소한 동급, 혹은 그 이상.
보여주는 그의 격은 다섯 사도에 비견된다. 그것도 다섯 사도의 수좌, 인디-마그나와 같은......
"야, 백리야. 너는 사람들 데리고 튀어라. 인원이 좀 많기는 하지만 데리고 갈 수 있지?"
"네?!"
"이거 계속 올라가면 나중에 탈출하고 싶어도 못해!!"
거대 신전은 위성궤도를 향해 부상 중이다. 그 속도는 신전의 크기에 비해 그리 빠르지 않지만 그래도 고작 몇시간이면 위성 궤도에 이르게 된다.
솔직히 그게 문제는 아니다. 핵폭발도 견뎌낸 소피아의 얼음이라면 대기권 돌파시의 마찰열도 견뎌내고 무사히 지상으로 착륙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가 놈의 본진이라는 점이다. 지금이 아니고서야 도망칠 기회 따위는 없다.
"저도 같이 싸울게요!!!"
"이런 말 해서 미안하긴 한데.......지금 네가 있으면 방해된다"
"윽......"
백리도 히비키와 자신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뭘 하다가 저렇게 강해진건지 모르지만 지금의 히비키에 비하면 자신은 옆에 있어봤자 방해만 될거라는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지금 그의 머리에 나 있는 왕관과 같은 다섯개의 뿔.
그것 외에는 외견상 변한건 없어 보이는데도 지금 그는 이전보다 훨씬 커보인다. 덩치나 키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지금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놈을 죽이는 것 뿐이다"
신전은 완성되고 위성 궤도에 오르면 행성단위 수확이 시작된다. 핵폭탄에도 견뎌내고 위성 궤도에 있는 수백킬로 크기의 거대 신전을 현 지구의 기술력으로 파괴할 수 있을리 없다.
막말로 가르-레칼이 신전에 틀어박혀서 수성에만 전념하면 인류가 멸망하는건 시간문제다.
유일한 가능성은 지금 이 자리에서 가르-레칼을 죽이는 것.
그의 힘에 저항하고 맞설 수 있는 존재는 히비키가 유일했다. 그리고 놈을 죽일 수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고.
나머지는 방해다. 고기방패로 써먹으려 해도 초월자간의 싸움에서 초월자에 이르지 못한 존재는 그저 여파만으로도 죽어나갈 뿐이니 개죽음이나 다름없다.
"너희는 가. 여기는 내가 맡을테니까"
".......네"
백리는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그에게 방해다. 지킬게 많은 사람은 약해지는 법이니까.
히비키가 가르-레칼과 대치하는 동안 백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히비키에 의해 부서진 신전의 문은 시간이 지나도 수복이 더뎌서 충분히 수천명의 인원이 빠져나가는데 그리 큰 지장은 없었다.
[의문이다, 의문이야. 이 별의 사도처럼 사도에 임한 자도 아닐진데 어떻게 그러한 힘을 얻은거지? 아니, 이 별의 사도조차 하루 아침에 힘을 얻은 애송이인게 보이는 와중에 어떻게 너는?]
"내가 아니꼬운 모양인데. 너도 남자 새끼라면 아가리가 아니라 이걸로 행동을 보여야 하지 않겠냐?"
히비키가 주먹을 들어 놈에게 내밀어 보였다.
어차피 필요한건 서로간의 주먹다짐 뿐이다. 긴 이야기는 필요 없다.
[이해할 수 없구나]
가르-레칼은 의문을 드러냈다.
백리는 격 자체는 높은데 가진 실력이나 경험에서 차이가 나기에 부조화가 생긴다. 심기체(心氣體)가 서로 따로놀기 때문에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히비키는 그 전부가 조화로워져 있었다. 아니, 조화롭다 못해 하나로 딱딱하게 굳혀져 있는 힘껏 후려쳐도 박살나지 않는 그런 바위를 보는듯 했다.
"안오냐?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우득!
히비키의 주먹이 쥐어진다. 아까 전처럼 힘조절을 하여 날린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내지르지 위한 사전 준비 동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기색이 바뀐다. 마치 물로 호흡하는 듯한 괴이한 감촉이 전해진다.
이윽고 히비키가 놈에게 달려듬과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단순한 동작에 불과하지만 피해는 단순하지 않다.
쩌저저저저적!!!
가르-레칼의 역장과 히비키의 주먹이 충돌한다. 맹렬하게 서로의 의지가 충돌하면서 신전 바닥이 여파에 갈려나간다. 재생하려고 해도 재생하는 속도 이상으로, 그리고 의지에 의해 생긴 피해는 재생조차 쉽지 않기에 더욱 피해는 커진다.
서로간의 힘 싸움, 그 와중에 먼저 발을 뺀건 가르-레칼이였다.
[큭!!]
"저번과는 다르지?"
마지막 일전에서 히비키는 전생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어 그 징조가 보였다. 그 덕분에 가르-레칼의 아바타를 끝장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전의 상태다. 이번에는 아바타가 아니라 본체지만 그마저도 압도할 수 있다.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쿠우우우우우!!!
히비키의 주먹이 울었다. 공간이 비명을 지른다. 거대한 의지가 응집되고 벼려진다.
[이놈!!! 이 내가 호락호락 당해줄 것 같으냐!!!]
가르-레칼은 역장을 강화하고 이내 빈틈 투성이인 히비키를 향해 공간참을 날렸다. 범위도, 위력도 무엇 하나 백리에게 쓴 것과 비교도 안될만큼 강한 위력을 가진 공간참이였다.
하지만 히비키는 피하지 않았다.
쩌저저적!!!
[아니?!]
"나 슈텐......아니, 히비키.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대륙이라도 갈라버릴 수 있을 수준의 공간참을 정통으로, 그것도 몸으로 받아내고도 히비키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마치 역장과 같은, 아니 비슷하지만 뭔가 조금은 다른 형태의 방어막을 두르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피륙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공간이란 개념 앞에 부서지지 않을리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인사치례로 이거나 처드시지"
뿌드득!!!
자신의 기백을 응축한 주먹을, 히비키가 놈에게 달려들어 정수리에 처먹인다. 물리적인 충격과 더불어서 강대하면서도 그 무엇보다 단단한 기백이 격발하며 2차적인 충격파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거의 핵폭탄을 응축시켜서 터트린것 같은 위력이 생긴다. 그것도 초월자에게 통하는 공격이 말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오에산 떨구기!!!"
[크아아아아아아!!!]
신전 바닥이 완전히 박살났다. 수 킬로미터의 탑을 관통하며 바닥을 부수면서 가르-레칼의 몸뚱이가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던 신전은 첨탑 끝 부분이나 다름없기에, 본격적으로 거대 신전의 메인 시설로 들어선다. 역장 덕분에 치명상은 면한 가르-레칼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놈......!!]
"너 이놈이라고 밖에 말 못하냐? 좀 더 레파토리를 늘려봐라 새꺄!!!"
추락하는 가르-레칼을 따라온 히비키가 양손을 깍지끼고 해머처럼 내려 찍었다.
키기기기긱!!!
한번 당한 것을 두번 당할 수는 없다. 가르-레칼은 역장이 아니라 공간 간섭을 이용해 장벽을 만들어 방어했다.
히비키의 공격은 확실히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힘을 중시한 전법이다. 오에산 떨구기 같은 방금 전의 기술 같은게 아니라면 공간 간섭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어째서 너 같은 자가 사도가 아닌 것이지?]
"내가 아냐?"
쩌엉! 하고 히비키가 튕겨나갔다.
공간을 간섭해 막았다면 그에 준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으로 공간에 간섭하고 싶다면 블랙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지금의 히비카라도 순수 완력으로 공간 간섭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의지를 더한다면 이야기는 쉽다.
쿠우우우우!!!
"그래, 그냥 얻어 맞진 않겠다 이거지?"
[신전이여! 침입자를 배제하라!]
가르-레칼의 명령과 함께 거대신전 내부의 구조물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인간형 적성종이 단숨에 생성되고 라프 에너지가 그를 압박하여 수백배의 중력을 가하며 사방에서 에너지가 응집되어 빔 계열의 광선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그딴 것으로 히비키를 막을 수 없었다.
수천의 인간형 적성종은 주먹질 몇방에 날아가고, 수백배의 중력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광선들은 그의 몸에 적중해도 아무런 상처 하나 남기지 못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爲尊)
그 어떤 역경이나 방해에도 굴하지 않으며 그는 백리가 수도 없이 죽어야 돌파할 수 있는 곳을 유유히 걸어왔다.
히비키는 당당히 서서 가르-레칼을 노려보았다.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아니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발버둥은 이제 끝났냐?"
그렇기에 그는 귀왕(鬼王)인 것이다.[작품후기]현재 로드 미만의 초월자 중에서 가장 쌘건 주인공이지만 전성기 시절 슈텐도 존나 쌥니다.
타입으로 치면 둘 다 탱딜 복합형이기는 한데 주인공은 딜 쪽에, 슈텐은 탱 쪽에 더 치중되어 있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여태껏 역장으로 무적의 방어력을 뻐겨온 주인공의 방어력보다 전성기 슈텐의 방어력이 더 쩐다는겁니다.
뭔가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주인공이 이긴다고 해둘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