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13화 (413/507)

크으으으, 이거시 유-열인가.413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아득한 정신 속에서 뻐억, 하고 누군가 그의 다리를 후려차며 말했다.

"좀 일어나봐라 짜샤"

"끄억?!"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고통 자체가 없는, 마치 꿈 속에 있는 느낌이였다.

얻어 맞았다는 감촉은 있는데 고통은 없다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남자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의 산 속인것 같은데 기시감이 느껴지면서도 기억에는 없는 곳이다.

"댁은 또 뉘슈?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가?"

남자는 자신을 차서 깨운 사람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다를바가 없었지만 인간이 아니란걸 알려주는 특징이 있었다면 머리에 치솟은 다섯개의 뿔이였다.

마치 왕관처럼 돋아 있는 다섯개의 뿔은 가짜도 뭣도 아니라 진짜 그의 것이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피부 위에 돋아나 있는게 보인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부른거라고. 일단 한잔 까면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

"아, 술 좋지. 뭘 좀 아는구만"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술 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도 들었다.

어디선 난건지는 몰라도 다섯 뿔의 남자는 그에게 잔을 건내주고 거기에 술을 따라주었다.

"일단 지금 네 상황이 어떤지는 아냐?"

"나?"

남자는 곰곰히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뭘 하고 있었더라......?

"중국의 적성종 거점 공략전에 참가했다가. 가르 뭐시기 하는 놈의 분신 비스무리한거랑 다이다이 뜨다 죽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남자, 히비키는 자신이 마지막에 뭘 했는지 기억해냈다.

가르-레칼의 아바타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여서 쓰러트리고, 놈의 발악으로 한방 먹은데다 거기에 더불어서 신전이 무너져 그 잔해에 깔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설령 그 상태에서 살아나도 성한 몸은 아닐 것이다. 잘해야 반신불수겠지.

"죽은거 보면 여기는 사후세계인 모양이네. 그럼 댁은 사신인가?"

"사후세계는 이제 여기서 잘못하면 가는거고. 아직 숨은 붙어 있어 임마"

"그러면 댁은 누군데?"

"네 전생"

"......."

다른 때였다면 무슨 개소린가 했겠지만 이미 히비키는 용하연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용화정이였던 이름마저 바꾸고 용하연이 되어서 지구를 떠난 그녀는 마스터 유저인 히비키로서 상상하기 힘들다.

본디 마스터 유저는 능력이나 재능 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인류를 지키려는 인성 또한 보기에 마스터 유저가 되었다는건 본인 스스로도 인류의 수호자란 업을 짊어질 신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용하연은 그걸 버리고 떠났으니......그만큼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내 전생이 인간이 아니였을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나도 설마 내 다음생이 인간이 될줄은 몰랐다"

"뭐야, 불만 있어?"

"그게 아니라 인간으로 환생할만큼 덕을 쌓은 전생이 아니여서 그래"

히비키는 술을 한모금 들이켰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술맛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좋은 술맛이.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금 살펴본다. 사후세계가 아니라면 여기는 어디일까?

"내가 태어난 곳이지. 여기는 네 영혼 속의 정신세계야"

"나의?"

"네 영혼 속에 있지만 여기는 내 정신 세계지. 원래는 전생의 기억을 지우면서 여기도 사라졌을텐데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데다 이런저런 충격으로 다시 생길 수도 있거든"

"지웠다는데 그게 돼?"

"흠.....그 뮈시냐, 컴퓨터란 것도 자료를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건 아니지? 용량이 크면 지우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지워도 다른 수단으로 복구할 수 있고. 그거 비슷하다고 생각해"

"어라? 비유가 꽤 현대적이네?"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네가 가진 지식이라면 나도 가지고 있어"

"........나는 모르는데?"

"그걸 이야기 하려고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거야"

"오호"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이야기는 아닐것 같아서 히비키는 잠자코 듣기로 했다.

"지금 상황이 되게 안좋은데. 여기서 너는 선택지가 두개가 있어. 하지만 나는 그 중 하나를 너에게 제시할거야"

"왜 하나만?"

"다른 하나는 나도, 너도 바라지 않는 것일테니까"

다섯 뿔의 남자는 시원하게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다는건 단순히 지식만을 얻는게 아니라 내 힘까지 얻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개중에서는 너도 잃는게 생기지"

"......내 자아 말이야?"

용화정이 용하연이 되어 지구를 떠난 것처럼, 그도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 눈 앞의 남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단순한 기억의 양만 따져도 수백년인 용하연이 고작 수십년인 용화정을 이기고 주도권을 얻은 것처럼, 고작 수십년의 히비키가 자아를 유지하기에는 수천년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꽤 똘똘한데? 다음생의 나는 머리가 좋아진 모양이네.......뭐, 전생이랑 비교하면 몸이 나쁘니 머리가 고생해야 해서 그런건가?"

"왜 갑자기 시비야?!"

"사실이니까 그런거지"

살아온 환경과 종족 그리고 경험에 따라 다른 것이지 두사람의 내면은 거의 같다. 비슷한 성격은 거기에서 온다. 본질은 같으니까.

"아무튼 나도 그걸 바라지 않아. 그래서 주도권을 너에게 넘겨 주기 위해서 이렇게 대화를 하러 온거다"

"왜? 오히려 주도권을 얻으면 네 이득 아닌가?"

"내가 그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잖아"

용하연과 그의 경우는 달랐다. 용하연은 어렴풋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집착이 강했지만 그는 오히려 반대였다. 남은 미련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그가 남긴 미련은 히비키가 대신 청산했기에 남은게 없다.

"나는 꽤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다. 친구도 만나고 적도 만나고, 좋은 녀석도 만나고 쓰레기 같은 것도 만나고 그랬지만 적어도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오호"

"사실 나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다녀볼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야. 애초에 생에 집착하는건 당연한 본능이고"

"그런데 그걸 포기하겠다고?"

"내 마지막 미련을 네가 해결해 주었으니까. 뭔지 대충 알지?"

"..........아"

생각을 하던 히비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그도 알고 있었다. 기시감이 들면서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사람이 한명 그에게 있었으니까.

"나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왔지만 딱 한가지 마련이 남아 있다면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이지. 그걸 네가 이뤄줬다"

"너......."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내가 아니라 너야. 전생은 전생, 후생은 후생. 적어도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미즈나는......네 연인의 환생인가?"

"그녀도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겠지. 그러니까 주도권을 넘겨주겠다는거야"

"그렇군"

히비키는 그를 이해했다. 아니,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두 사람은 결국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건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다섯 뿔의 남자는 자신의 연인을 만나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이미 히비키가 미즈나와 만나 이어짐으로서 이루어졌다. 이제 미련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숙원을 이루어진 보답으로 주도권을 넘겨주겠다는 뜻이다.

"내 기억만 하더라도 수천년 분량이니까 좀 빡세겠지만.......뭐, 그거야 나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준비 됐냐?"

"물론이지. 내가 날 얕보면 어떻게 하는데?"

그가 주도권 싸움 없이 순순히 기억만 넘겨준다 하더라도 아직 위험은 남아 있다. 수천년의 방대한 기억을 때려박기에는 수십년의 기억은 지푸라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거라도 시도해봐야 한다. 정신세계인 이곳에서는 멀쩡한 몸이지만 실제 그의 몸은 만신창이에 죽기 일보직전의 모양새니까.

어차피 죽을거 이판사판 부딪히는거다!!!!

"그럼 안녕이다. 나"

"안녕이 아니야. 함께잖아?"

"새끼, 어디서 들어본 말로 폼 잡기는"

마지막 할일 마저 마치고 온전히 미련을 버린 남자.......아니, 귀왕(鬼王) 슈텐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산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이 살았던 오에산(大江山)의 정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그는 담담하게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미련도 후회도 한점 남기지 않고 가는구만. 멋진 삶이였다"

그의 정신세계가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

*

*

*

베이징에 나타났던 적성종의 거점은 붕괴하여 신전이였던 것의 잔해와 적성종들의 사체만이 넘치고 있었다.

적성종은 대부분 정리가 끝난터라 위협은 없지만 건물 잔해의 정리는 아직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적성종 처리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적성종은 죽이고 시체를 치우기만 하면 되겠지만 무너진 신전 잔해는 2차 붕괴의 위험 때문에 비교적 느린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 수천, 수만톤의 잔해 깊은 곳에서 히비키의 만신창이인 몸이 작은 움직임을 보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의 육체 내부에서 무언가 바뀌는 소리가 들린다.

우득! 우드드득!!!!

아무리 가이아 포스는 남아 있어도 지금 히비키의 몸뚱이는 소생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였다. 거기에 가르-레칼의 아바타가 날린 마지막 일격은 짙은 마그노 레톤이 깃들어서 그의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때 이후로 며칠이나 지났으니......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죽기만을 기다리던 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가이아 포스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힘 또한 받아들여서 진화하면 된다.

히비키의 전생인 귀왕 슈텐의 종족은 요괴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그의 몸을 갉아먹는 마그노 레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부정적인 힘에서 비롯된 요괴의 요력, 그리고 '부정'이란 개념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마그노 레톤.

다르지만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용하연이 가이아 포스를 내공처럼 운용하여 유사한 힘을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끄윽"

육체가 생으로 뒤틀리고 재생되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신경계를 따서 직접 침으로 찌르는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그걸 버텨내던 도중에 그의 육체는 더 이상 히비키의 육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보충하기 위해 인근에 같이 묻혀 있던 적성종과 포스 유저의 시신을 끌어들였다.

한편으로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동과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은 인간으로서는 살아남아도 살아남은게 아닌게 될테니까.

지금 그에게 필요한건 지금 이곳에서 살아나 싸울 수 있는 강인한 육체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인 행위라도 해야했다.

우드득!!!

이윽고 주변의 사체들이 그의 육신과 융화된다. 자세히 보면 그건 어디선가 생긴적 있던 광경이였다.

오래전, 아니 오래전이라고 하기 뭐한 몇달 전, 최악이 영국으로 가서 테러를 저지했을 때 테러리스트들의 보스가 마지막 발악으로 했던 것과 비슷했다. 라프 에너지와 가이아 포스가 융합되어 적성종도, 포스 유저도 아닌 새로운 종족이 되었던 사건 말이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지금 히비키의 육체에 깃들어 있는 힘은 라프 에너지 따위가 아니라 마그노 레톤이였다. 극소량만 가지고 있더라도 적성종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티브 문명의 힘이 말이다.

이내 그의 육체는 안정되었다. 온전해진 육신에 가이아 포스와 마그노 레톤이 조화롭게 융화되어 새로운 이능력이 되었다.

뿌드득!

다만 그 부작용, 인간의 것이 아닌 마그노 레톤을 육체에 담은 것으로 인간이 아니란 상징이 그의 몸에서 돋아났다. 정신세계에서 보았던 귀왕 슈텐과 같이 다섯개의 뿔이 머리에 돋아난다.

"후우우우........"

한숨을 쉬고 히비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일어설 수도 없는 아주 좁은 땅 속에 처박혀 있는 자신을 인지했다.

그나마도 주변에서 다른 시신이나 사체들을 흡수하느라 공간이 생겨서 그 정도지 아니였으면 폐쇄공포증 환자는 발작을 일으켰을법한 관 속보다 더 좁은 공간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미안하겠지만!"

주먹을 쥔 히비키는 그대로 휘둘렀다.

장소가 좁아서 제대로 힘을 담지도 못한 일격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수천, 수만톤의 잔해와 토사들이 화산 폭발처럼 치솟아 오른다.

운이 좋게도 그의 머리 위에는 정리 작업 중인 곳에서도 떨어져 있는지라 아무도 없었다.

콰콰콰콰아아아아아!!!!!

그리고 흙먼지 사이로 빛이 보인다. 간만에 보는 태양빛을 만끽하며 히비키가 지상에 올라왔다.

그는 더 이상 마스터 유저인 [슈텐도지] 히에이 히비키가 아니다.

"으어어어어어?! 뭐야! 누구냐!"

"야, 무전기 있냐?"

"누, 누구.......허어어억! 히비키씨!!!!"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가 기겁을 하며 놀란다. 어지간히 관심 없거나 오지에서 세상과 떨어져 지내지 않고서야 마스터 유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해서 그는 한눈에 히비키를 알아보았다.

"잠깐 이동수단 좀 빌리자. 미국에 있는 그 새끼 확실하게 미국에 보내줘야겠다"

그가 귀왕(鬼王) 히비키가 되어 귀환했다.

[작품후기]형 왔다.

근데 슈텐 떴으면 이긴거 아니냐고요? 확실히 '슈텐'이 떴으면 이기긴 이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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