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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의 대마왕-412화 (412/507)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다!412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파스스스!

가르-레칼의 육체가 바스라진다. 피도, 살점도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되어 부서지다 이내 사라지는 모습에 백리는 당황했다.

"어? 어......?"

이윽고 놈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차원에서 왔기에, 그리고 초월자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시체도 이렇게 되는건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였다.

아아아아아아!!!

우우우우우우우!!!!

신전이 화음을 일으킨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뭐지? 도대체 뭐가......"

[수확의 때가 왔다는 뜻이다]

"?!?!"

가르-레칼의 의지가 전해져온다. 하지만 방금 전에 죽은 것도 확실하게 놈이 맞았다. 그런데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이내 그가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싸우던 전장 한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낸 그의 표정에는 그저 웃음만이 가득했다.

그것도 남을 깔보며 비웃는 그런 웃음 말이다.

[그래, 여태까지 내 아바타를 상대로 고전한 느낌은 어떤가?]

"뭐?!"

아바타? 아바타라고?

백리는 자신이 놈의 역장을 뚫고 육체를 관통했을 때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그건 확실하게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감촉이다.

그런데 그게 아바타였다고? 그리고.....눈 앞에 있는게 본체고?

그들의 등 뒤에 오싹한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상황이 나쁜걸 넘어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희망이 절망이 될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이지.......수천년의 삶 속에서도 나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고. 좋은 표정이로구나]

"이 새끼야아아아!!!"

일그러진 백리의 얼굴을 보며 가르-레칼이 그들을 비웃었다. 그에 격분한 백리가 청색공명기를 뿜어내며 다시금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였다.

쿠우우우우우웅!!!

"크헉?!?!"

[애초에 아바타로도 나는 너희를 전력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이 정도 수준에 이 정도 기술로 나를 타도하려 하다니, 너는 수천년을 살아가며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우리들을 너무나도 얕보고 있는 모양이구나]

"끄어어어어어!!!!"

우득! 뿌드드득!!!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압력이 백리의 몸을 짓누른다. 단숨에 갈비뼈가 몇개나 부러지고 살점이 형태를 잃어간다. 청색공명기마저 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분명 유색공명기는 초월자 사이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간의 격차가 크지 않을 때의 이야기일 뿐, 어린애도 아닌 갓난아기가 칼을 들고 있다고 해서 그걸 위협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법이다.

쿠웅!!

이윽고 가르-레칼은 다른 포스 유저들마저 제압했다. 수천명에 달하는 인원인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자비롭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어야 보다 많고 짙은 절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갈아서 적성종으로 만들어봤자 효율이 떨어진다. 그런 것은 일반인에게나 하는 것이고 포스 유저는 정신력이 일반인보다 좋은만큼 더 쓸모가 많다.

가르-레칼은 백리를 억누르던 압박을 거두었다. 고통은 가시고 초재생 특성으로 회복은 되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는 웃으면서 백리에게 물었다.

[그래,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먼저 물어보지. 네가 중국에 있던 신전을 파괴하러 갔을 때, 왜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나?]

"어.......?"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애초에 내가 직접 지시를 내리는게 가능한데 일부러 그런 시시한 양동에 어울려가면서 놀아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무슨 소리를......!"

[최종적으로 한가지를 물어보지]

절망은 인지한 자에게 주어지는 법이다. 올라갈 길이 턱없이 높다 한들 모르고 있다면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높이를 인지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려 했는지 납득한다.

그가 백리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은 그 격차였다.

[우리가 왜 하찮은 전산 기술 하나 해킹 못해서 너희들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을거라 생각하는거지? 애초에 이 신전을 운용하는 메인 시스템은 생체 코어로 이루어져서 너희들이 말하는 강인공지능을 초월한 것인데?]

"어? 어?"

백리는 한순간 놈이 말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광신도의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종교에 심취한 자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 아니 론(論)이라는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는 창조설을 추구하는 것처럼 광신자는 과학이 아니라 신을 믿는 법이다.

그런데 광신도의 표본이나 다름없는 가르-레칼의 입에서 전문용어가 나오자 백리의 인식이 따라잡지 못했다.

[너희들이 알리언 박사라 부르던 자도 우리 티브에서는 잡일이나 하며 실험체로 쓰던 클론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그를 천재라 치켜올리면서 떠받든 모양이구나. 하긴, 그러니 너희 수준을 확실하게 알만 하지......]

큭큭큭, 가르-레칼의 기분나쁜 웃음 소리가 신전을 채운다.

누군가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누군가는 그의 입을 박살내고 싶었지만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심지어 백리조차 코 앞에서 구속되어 있을 뿐 움직일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래저래 흥미로운 것들이 많더구나. 특히나 대마왕이란 존재들은.......아니, 이미 떠난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지. 누구 덕분에 일이 간단해졌으니. 거기다가 이미 우리들의 신이 잠에서 깨어나시는 것은 멀지 않았다]

그는 대마왕의 존재조차 알고 있었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알리언 박사는 티브 문명에서 가져온 생체 컴퓨터를 통해 시온조차 추적 불가능한 전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문명의 정점인 가르-레칼이 그런 기술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할리 없었다.

그는 티브 문명의 최강자이기도 하지만, 수천년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통해 최고(最古)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대마왕의 존재를 알고도 그리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제서야 나오는 광신의 면모인가, 아니면.......

[그래, 아직 너희들의 희망이 부서지지 않은 모양이구나]

가르-레칼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들의 눈빛을 읽었다.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죽기 전에는 부러지지 않을 굳은 의지로 놈을 노려보며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도 결코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부술 가치가 있는 희망이지]

쿠구구구구궁!!!

신전이 울린다. 아니, 그것은 좀 더 다른 본질적인 진동이였다. 라프 에너지가 그의 의지에 호응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울리고 있었다.

신전 아래에서 거대한 질량이 느껴진다. 이윽고 지진이 일어나며 지층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여태까지 두개의 신전을 파괴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뭐, 사실은 그 두개 마저도 그저 시선 돌리기 용도로 사용하던 가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뭐?!"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이 신전을 공격했어야 했을 것을, 하지만 덕분에 별다른 방해 없이 신전을 완공할 수 있었다]

"완공했다고?! 신전을?!"

쿠구구구구!!!

갑자기 부유감이 그들을 덮친다. 마치 하늘로 치솟는 듯한, 아니 건물 자체가 위로 부상하면서 느껴지는 감각이다.

가르-레칼은 그들의 절망을 더욱 더해주기 위해 그들에게 하나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야의 영상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자, 너희들이 이 신전을 감시하던 위성을 해킹한 것이다. 현재 이 신전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도대체......"

영상 속의 신전은 뉴욕을 박살내고 있었다.

아니, 뉴욕 뿐만이 아니다. 인근의 위치한 필라델피아 주나 롱 아일랜드까지 파괴하고 있었다.

지하에 있던 거대한 구조물이 지상으로 나오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 확대한 것도 아닌데 위성 궤도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의 모습은 마치 기괴하면서도 압도적이였다.

그 중심인 신전에 있는데도 그 진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건 신전에 흐르던 라프 에너지가 충격을 경감시켜서 그런 것일까.

쿠우우웅!!!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구조물을 보며 가르-레칼이 백리에게 물었다.

[꽤나 멋진 광경이지 않나?]

"............"

백리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직경 수백 킬로미터 수준의 거대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히 직경만 하더라도 그 정도였고 실제로는 구체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훨씬 클 것이다.

심지어 시온의 차원항행함 호라이즌조차 그것 앞에서는 아담해보일 사이즈였다. 지금 그들이 있는 신전은 거대한 구체 끝에 달려 있는 기둥의 첨탑 끝부분에 불과했다.

저만한 구조물을, 어떻게 알려지지 않고 지을 수 있던거지?

아니, 그 전에 자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듯이 저만한 크기의 건물을 자원이나 인프라 없이 짓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너희들은 하찮은 기술력을 속이고 지하 수 킬로미터 아래에서 신전을 건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왜 우리가 풍부한 지하 자원을 두고 지상의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너!!!!"

[유기 화합물 같은 것은 확실히 너희 동족을 갈아내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 시설을 확장한다면 직접 배양하면 그만이니까 솔직히 필요 없다]

티브 문명의 기술력은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가 말했듯 알리언 박사는 그 문명에서 실험 보조용으로 만들어진 클론 인간에 불과했으며 이곳으로 넘어온 것도 그저 지구의 정확한 좌표를 특정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전의 용도는 수확을 하기 위함이다]

"........수확?"

불길한 단어에 백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원한다. 사념을 모아 그들의 신 티브를 깨우기 위해서다.

그런 녀석들이 수확이란 단어를 지칭할 정도라면.......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 적성종의 코어라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군. 단지 몇가지 차이가 있다면 일단 범위가 행성 단위라는 점일까]

"행성단위라고?!"

[이 신전이 본격적으로 위성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이 별을 향해 에너지 역장을 씌울 것이다. 사실 이런 신전이 두어개 정도 더 필요하지만.......뭐, 너희들의 별은 아담해서 오히려 좋군]

시온이 가진 테라포밍 장비와 같은 것이다. 다만 그 목적성과 크기가 다르다.

테라포밍이라도 시온이 가진건 인간 전용이지 이 신전은 티브 문명인 전용이다. 라프 에너지 속에서 적성종으로 변이하지 않고 살 수 있는건 오로지 티브 문명일 뿐일테니까.

게다가 이건 적성종의 코어처럼 범위 내에 수확한 사념을 저쪽 차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효율과 범위가 높다.

[재미있지 않겠나? 본래 절망이란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혼란과 감정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그리고 절망 외에도 분노나 증오,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발현 되는 감정이지]

그는 절망이란 감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여태껏 수천년을 살아오면서 괜히 한 문명의 지도자로 군림해온게 아니다. 여태까지 한 모든 행동들은 연기에 불과했으며 결코 진심을 내비친 적은.......단 한번 밖에 없었다.

[역장을 펼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괴수로 변이할 것이다. 그러면서 혼란은 가중되고 너희들은 도망칠 곳 없는 이 좁은 별에서 더욱 더 절망하겠지]

지구의 인류는 수십억, 그 10분지 1만 적성종으로 변이해도 무려 수억에 달하는 숫자가 된다. 여태까지 나타난 적성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물론 숫자만 많을 뿐 질은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지만......일반인에게는 재앙과 다름 없으며 포스 유저의 숫자도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천천히, 그는 이 신전에서 지구를 지켜볼 것이다.

적성종으로 변이하며, 그리고 그들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절망을 이용해 티브 신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아, 궁금할지도 모르겠군. 내가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지 알겠나?]

여태껏 싸우면서 한 말보다 지금 가르-레칼이 한 말이 훨씬 많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모르고 있는 것보다 알고 있는 편이 훨씬 더 절망할 수 있으니까.

이미 그들은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상태다. 더욱 더 큰 충격을 안겨주려면 밑바닥을 파해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행동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백리는 그의 행동과 태도에 격분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건 가르-레칼이 바라던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또한 그가 바라는 절망이란 감정에 속할테니까.

[그건 그저 너희의 절망을 바라기 때문이다. 알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바닥은 더욱 깊을테니까]

"이 새끼야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 좋구나, 이 별의 사도여! 너의 절망은 더욱 값지다!!!!]

격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감정의 질이나 양은 수준이 다르다. 그렇기에 가르-레칼이 일부러 포스 유저들을 제압하고 죽이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한순간 내뿜는 감정이 일반인 몇명이 한동안 내뿜는 감장보다 더욱 클테니까 말이다.

[이 신전이 위성 궤도에 올라갈 때까지 앞으로 수십분......이 별의 끝 또한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들에게 남은건 오로지 얼마 되지 않는 유예 뿐이다.

가르-레칼은 그들의 힘으로 상대조차 되지 않으며 지식이나 기술 또한 압도적이다. 도망칠 수도 없고 자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남은건 살아서 절망을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기계가 될 뿐.

아니, 멸망하는 지구를 보며 더욱 더 깊게 절망하는것 뿐이다. 그것도 단숨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비규환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인류를 보면서!!!

[여태껏 연기를 하느라 고생했다. 너희들의 장난질에 놀아나 주는 것도 이제 끝이로군]

쿠우우우!!!

부유감은 계속된다. 이 거대 신전이 위성 궤도에 오를때까지. 물리법칙을 거슬러 중력을 거부하여 날아오르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가르-레칼은 백리를 보며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 기분은 어떤가 사도여?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네 덕분이다]

백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품후기]저기저기, 지금 어떤 기분이야?

루리가 괜히 얘보고 힘숨찐이라고 한거 아닙니다. 그냥 처음부터 해킹해서 경제대공황이나 핵미사일 날려서 세계 3차대전 같은거 일으킬 수도 있는데 보다 절망시키려고 안함.

아니, 그런거 없이 처음부터 혼자서 인류 멸망 가능. 근데 처음부터 절망시키는 것보다 희망 좀 주려고 놀아줌.

자고로 절망이란 희망을 품었을 때 더욱 강해지는 법이죠.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해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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