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09화 (409/507)

그쪽도 외신 같은거 알면 미치거나 숭배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런 느낌.409회

[휴거에는 뭐하세요? 바쁘세요? 구해주실 수 있나요?]바보라도 곰곰히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말이였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은 실패할 것이며 그로 인해서 생길 피해를 대비해 한국으로 도망가라는 뜻이니까.

왜 하필이면 한국일까 싶지만 백리는 당황에서 소리쳤다.

"우리가 질거라는 소린가요 그거?!"

"그러니까 사기를 꺽을만한 말이라고 한거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면......."

"............"

속에서 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그 분노는 곧이어 자기혐오가 되었다.

결국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도 자기 책임이다. 모든 일의 근원은 그녀가 아니라 백리 자신이였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일을 가지고 충고해주러 온 사람에게 화를 내는건 도리어 염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녀의 말이 맞다면 보다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경고해주는 일이 된다.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저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두려움이 생긴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가지만 이야기 해주세요. 예진이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는.......좋게 끝날 수 있나요?"

".......그 아이가 얼마나 봤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경우요?"

백리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하나였다. 인류 멸망.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바로 그거였다. 하지만 그것만 피할 수 있다면.......조금은 안심이 될지도 모른다.

예진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너무 추상적이였기에 확신이 없었다. 의문이 풀린 백리는 굳게 마음 먹었다.

"저는 최선을 다할거예요. 설령 죽더라도요. 이건 제가 저지른 일이고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니까요"

"네, 부디 이겼으면 하네요. 적어도 가식 없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예요"

이미 미래를 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신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순수한 응원일까,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겪을 그에 대한 연민인가.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리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가지 더. 당신은 인간답지만 좋은 사람입니다. 그걸 깨닫는게 좋아요"

남은건 마지막 싸움 뿐이다.

*

*

*

*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신전은 변함없이 조용히 문만 열고 있을 뿐이고 적성종도 없었다. 마치 언제든 와봐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걸맞게 지구 연합군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그들도 할 수 있는 모든 만전의 준비를 끝냈다.

마스터 유저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모였고 투입되는 포스 유저만 못해도 몇년 이상 현장에서 구른 사람들로만 만명 가까히 되며 지구 최강의 군대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미군의 지원까지 있었다.

유래없을 정도의 연합군은 고지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인간형 적성종 조차 보이지 않으니 항공 수송을 통해 안전하게 신전까지 접근할 수 있다.

수많은 병력들이 오로지 한 건물, 정확히는 한 사람을 타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마왕이라도 잡으러 가는것 같네요"

"대마왕은 있다만?"

"........아, 그건 빼고요"

윌리엄이 건낸 농담이 본전도 못찾았다.

백리를 포함한 마스터 유저들은 각자 준비는 물론 서로간의 합 또한 맞춰두었다. 마스터 유저 전원이 모이는건 드물다 못해 여태껏 한번도 없었던 만큼 수많은 전법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남은건 목적을 이루어내는것 뿐이다.

"............"

백리는 결국 유색공명기를 깨우치지 못했다. 조금은 감을 잡겠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아마 자신의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심란한 마음에 큰 일을 앞두고 하루 아침에 깨달을 수 있을리 없었다.

"걱정 말게, 준비는 다 해두었지 않나?"

"........네, 그렇네요"

앨리사 니어의 말은 그녀의 말 그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짜고짜 한국으로 도망치라고 하면 무슨 파급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피난민 수송, 혹은 벙커 등의 준비는 해두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최선을 다해서 그놈만 쓰러트리면 되는거야. 아가리에 납탄을 처먹이고도 멀쩡한지 보자고"

".........."

제이콥의 말에 그 정도의 초월자면 입안에 납탄이 아니라 C4가 터져도 멀쩡할것 같지만 일단 태클걸지 않기로 했다. 사기를 죽이는건 앨리사 니어의 말을 들었던 것으로 충분하니까.

이내 수많은 수송 헬기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신전 안에는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 전부가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후방에서 지원은 가능했다.

십수분간의 비행 끝에 그들은 신전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사라진 적성종을 자원으로 하여 그대로 신전을 확장했다는 추측이 거짓은 아니게 돔의 넓이는 러시아의 것과 비슷했지만 반대로 신전 자체의 크기는 러시아의 것보다 거대했다.

"이 정도면 러시아에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투입할 수 있겠군"

"천명 단위로 들어갈 수 있을것 같은데. 우선 문이 닫히는 것부터 저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보자고"

만 단위의 인간들이 신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적어도 신전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외부에서 우선 이런저런 사항들을 확인해 보았다. 신전의 문이 닫히는걸 막을 수 있는가, 외부에서 신전을 부술 수 있는가, 등등.

"우선 저번처럼 해볼까요?"

백리가 태극나선경을 펼쳤다. 저번처럼 문을 박살낼 생각이다.

터어어엉!!!

분해의 이치에 담긴 일격이 신전의 문에 적중했다. 하지만 저번과는 다르게 라프 에너지는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흐읍!!!"

콰아아아아앙!!!

이어서 살라딘이 워 해머를 휘둘러 백리가 태극나선경을 펼친 부분을 후려갈궜지만 부서진 것은 아주 일부 뿐이였다. 기껏해야 주먹 한개 정도.

한 일에 비해 피해가 너무 작았고 그 피해마저도 여태껏 본적없는 형태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어?!"

"이건......."

꿀럭! 꿀럭!!

마치 금속이 액체라도 되는 것처럼......아니, 좀 더 다르게 신전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부서진 부위를 복원했다. 이전에는 본적 없었던 현상이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은 이번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란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 광신도 본인이 있어서 뭔가 다른건가? 아니면 방어에 전념하려고 따로 설정이라도 바꿨나?"

"뭐가 되었던 문은 부수기 힘들겠군. 부술 수는 있어도 힘 낭비가 심한데다가 어차피 복구된다면 쓸데없이 힘 쓸 필요는 없지"

"게다가 방금 그거.......제 공격으로도 충분히 듣질 않았어요"

개념적 우위로 치자면 백리의 태극나선경이 더 위다. '분해'란 능력의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만든 무공은 능력을 가진 본인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할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전에 흐르고 있는 라프 에너지는 여타 신전과 다르게 농도가 짙고 출력도 높았다. 무엇보다......공격하는 순간 신전 자체가 의지를 품고 있다는게 확실하게 전해졌다.

작정하고 태극나선경을 펼친다면 저번처럼 파괴할 수는 있겠지만 복구되는걸 막을 수는 없다. 그걸 생각하느니 차라리 다른데 힘을 쓰는게 낫다.

"결국에는 돌입하는 수 밖에 없나? 저 놈이 얼마나 사람을 받아들여주는지가 문제겠군"

"최대한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놈들이 만약 이쪽을 관측하고 있다면 나름 방법이 있지"

"네?"

"일반 포스 유저들을 먼저 들여보내는거다"

"또 사지로 몰아넣으려고요?!"

"소련 멸망한지가 언젠데 그런 소리를 하시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아니고 사람을 갈아넣으려고?"

"그러면 애국법이란 이름 아래에 인권 박탈하는 위선 같은게 좋은가, 자본주의 돼지?"

"거 두사람 다 왜 그런걸로 싸워요?!"

"내버려 두게. 각 국가 대표의 자존심 싸움이니까"

지구에서 최강의 국가를 따지면 대부분 미국이라고 하겠지만 두개까지 고르라면 러시아도 포함될 만큼 두 나라는 강대국이다. 더군다나 망했어도 소련 시절의 냉전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투닥거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

제이콥과 소피아가 언쟁을 벌이며 싸우는걸 말리고, 한편으로는 소피아가 제시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놈들은 우리를 관측하고 있다. 그리고 최우선 목적은 아무래도 우리들이겠지"

같은 우리지만 대상이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연합군을 말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마스터 유저다.

만약 놈이 함정을 깔아두었다면 그 대상은 마스터 유저인게 확실했다. 특히나 백리를 이 별의 사도라 칭하며 적대하는 가르-레칼이라면 제일 위협이 되는 그와 마스터 유저들을 노릴게 당연하다.

"게다가 저번에 사람을 보냈을 때에도 따로 들어갔어도 전원이 들어가기 전에는 문이 닫히지 않더군"

"우리가 들어가면 문이 닫힐거라는 소리군요?"

"그래도 전부 들어갈 수는 없겠지"

신전의 내부는 수백명의 포스 유저들이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강당 같은 곳이였다. 거기에 미국의 신전은 훨씬 더 거대했으니 천 단위로 들어갈 수 있는, 마치 축구장 같이 거대했다.

억지로 들어간다면 만 단위의 포스 유저 전원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콩나물 시루마냥 빽빽하게 들어차 움직이기도 힘든 공간에서 싸우기는 벅찰테니 말이다.

"우선 이 중에서도 최대한 정예를 뽑아서 들어가지. 물론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다"

"나쁘지 않은 의견인데.......전차 같은건?"

"놈을 상대하는데는 포스 유저가 나을거라고 본다"

"흠, 그렇긴 하겠네요"

초월자는 격이 높아질수록 물리법칙에서 괴리된다. 세계 최강의 군대라 하는 미군이 작정하고 무장한 뒤에 들어간다 한들 시간끌기는 커녕 눈가리는 용도로도 쓰지 못할게 뻔히 보였다.

하다못해 포스 유저가 들어가야 고기방패 정도는 될 수 있으리란건 그들도 내심알고 있었다. 이경진과 소닉 외에는 전부 가르-레칼의 아바타를 상대하면서 놈의 강함을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하죠"

소피아의 의견대로 먼저 진입한 포스 유저들이 들어가도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에 확신이 드는 순간이였다.

만전의 준비가 갖추어진 수천명의 포스 유저들은 화기만 없지 국가 전복도 가능한 수준의 무력 단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마스터 유저와 그랜드 마스터인 백리까지 있다면.......현 지구 최대의 전력이다.

그렇지만 그런 전력으로도 이길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상대는 그만한 초월자였기 때문에.

"저희 차례네요"

"들어가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마스터 유저들과 백리가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돔 형태의 축구장에 들어선 것 같은 웅장함. 하지만 생기는 느껴지지 않고 질척이는 무언가만 느껴지는 감각이 소름이 돋는다.

쿠우우웅!!

이윽고 신전의 문이 닫혔다. 아무런 장치 없이 그저 문만 움직여 닫히는 것은 꽤 섬뜩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주먹을 쥐거나 무기를 들어 준비를 한다.

신전 내부가 갑자기 밝아졌다. 조명이라도 킨것 같지만 시설물은 따로 없었다. 그저 은은하면서도 칙칙한 녹빛을 비추는 광구만 떠 있을 뿐.

그런 신전에 누군가의 의지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이 자식!!! 너 어디있어!!! 광신도 자식, 당장 나와!!!!"

놈은 아바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의지만 들릴 뿐이다. 백리가 소리쳐서 놈을 도발했지만 그는 오히려 웃으며 넘길 뿐이다.

[기세가 죽지도 않고 죽을 곳으로 직접 찾아오다니. 용기 만큼은 가상하게 여겨주마. 하지만 결국은 절망할 것이 뻔히 보이는구나]

"뭐가 어쩌고 어째? 신전을 두개나 파괴했으니까 여기만 박살내면 끝이거든? 너도 처리할거니까 당장 나와!!!!"

[소원대로 해주지]

우우우우우!!!!

신전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 앞의 바닥에서 아무런 이음새 하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갈라지면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마치 불쾌한 골짜기를 보는듯한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다.

특히나 인간형 적성종에게서 보이던 녹색 안광.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혐오감이 절로 일어날만큼 안광에서 비롯되는 힘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물러서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럴 정도의 각오였다면 처음부터 이런 곳에 오지 않았을테니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그래, 어떤식으로 죽여주는 것이 좋겠나?]

"우리가 할 말이다 개새꺄!!!!"

백리가 으르렁거리면서 놈에게 달려들었다.

[작품후기]제가 예전에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좋아합니다.

메트로 시리즈, 폴아웃, 매드 맥스......각자 매력이 있죠.

거기에서 온갖 인간군상과 쓰레기들이 나오고 무법지대에 윤리가 박살나는 느낌이 꽤나 재미있거든요.

아니, 별건 아니고 그낭 한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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