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405화 (405/507)

아무래도 뭐 잘못 먹은 모양인데, 몸조리 잘 하겠습니다. 405회

[우리 손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흉신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 몰라!]수 킬로미터 거리를 대충 2초만에 주파한 그레이가 오두막의 문을 두드렸다. 대충 열려있는거 알면 그냥 들어올 것이지 뭐하는거야.

"예의란게 있지, 예의란게. 너도 예의 알면서 뭘 그러냐?"

"허이구, 예의 있는 새끼가 멀쩡한 여자 줘패서 죽여놨어?"

"니가 시비 털었잖아, 그리고 누가 죽을줄 알았냐? 비살상 설정이였는데 어떻게 죽은거야 도대체?"

오두막 안으로 들어온 그레이는 후드를 벗어 넘겼다. 그러자 그의 외모 덕에 오두막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킹 블러디어와 똑같지만 색이 금색이라는 것은 다르다. 여자도 아닌데 발목까지 기른 초장발 금발, 거기에 여자가 아닌가 싶은 경국지색의 외모까지. 딱 창조의 절대자 핏줄 특성이다.

"스승님!!!"

"아, 하연아, 오랜만이다"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스승과 제자가 간만에 재회했다. 천년.......뭐, 용하연에게는 그보다 길거나 짧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천년이라고 하자.

용하연은 소녀라도 된것 마냥 그레이의 품안에 안겼다. 여기가 조선시대 만큼 정절을 중요시 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대낮에 남녀가 저러면 연인끼리 애정표현 너무한다고 생각할법한 모습이다.

"미안하다, 네가 죽었다고 한 이후로 찾으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사후에는 어차피 환생을 거듭할 뿐이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너를 찾아봤자 부질 없다고 생각했어"

".......당연한 말입니다. 저도 전생의 기억을 찾기 전에는 타인이였으니까요"

전생각성은 케이스가 갈린다. 용하연처럼 전생의 기억이 현생을 잡아먹고 융화되어 전생이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현생이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있다.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며, 정신은 기억이란 경험이 자아를 이룩한다. 나도 막 난데없이 환생 1회차 시절 빼고 나머지 기억 날아가면 그건 내가 아니라 1회차 시절 나다. 인간 최악이기는 해도 대마왕 최악은 아니라는 소리다.

지금의 용하연은 온전히 그 시절 기억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 본인이다.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설령 그녀의 기억을 누가 복제해서 주입시켜 만들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복제품에 불과하다. 나 자신이란 가치는 유일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지금입니다. 저는 아직도 스승님을 잊지 못합니다"

"그게 싫어서 도망간건데 말이야......."

"자고로 얀데레는 품으면 메가데레가 되는 법이지"

"하렘 차려본적 있는 새끼는 닥쳐"

"머? 결혼만 안했을 뿐이지 여행하면서 플래그 뿌리는 새끼가 할말은 아닌데? 그 얼굴로 여자 꼬시면 좋냐?"

"야! 누군 좋아서 이딴 얼굴 하고 다니는줄 아냐?"

깊은 포옹을 나누던 두사람은 5분쯤 지나고 나서야 떨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떨어진 것도 아닌게 용하연은 그레이가 어디 도망칠까봐 손을 깍지까지 껴서 잡고 있었다.

저 새끼 돌아가면 형수님이......아, 신경 안쓰겠군. 저쪽 형수님은 친구친구! 하면서 친하게 지낼 확률이 높으니까.

"간만에 이렇게 모였네. 하연이가 없어서 한편으로는 허전한 느낌도 있었는데 잘 채워진 느낌이다"

"야, 초대 천살제가 없잖아"

"걔는 제자도 남기고 미련 없이 갔으니까 됐어"

"내가 묘도 세웠다. 볼일 있으면 나중에 가서 벌초라도 해라"

"아, 설날 귀성길도 아니고 이거 또 뭐야"

환생자라서 여러곳으로 인맥이 뻗어 있다 보니까 꽤나 이런저런 곳에 뻗어져 있다. 이런식으로 그레이랑 사제 관계도 성립되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팬텀도 있고, 그런데 정작 파벌은 운명의 절대자 파벌이고.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이랑 상관은 없다. 나는 슬쩍 선이랑 동동이를 그에게 소개시켰다.

"인사해,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야"

"안녕하세요! 최선이라고 합니다!"

"유, 유백검문의 동군영이라 합니다. 무림의 전설이신 천기자를 뵙게되어 정말로 영광입니다"

"그렇게 기름칠 하면서도 굳어 있을 필요 없는데 말이지.....그런데 얘 이름이 최선이라고? 너 설마?"

"대충 뭐"

"흐으음......"

그레이는 선이가 최씨 가문 사람인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도 말이다.

놈이 불러놓고 여기 오는데 늦은건 아마 그가 운영하는 문명인 델타 캐슬의 업무가 늦어져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해결하고 왔다는건 당분간 있어도 된다는 뜻이고......용하연이랑 데이트라도 하면서 선이를 돌보라고 그러자.

어차피 용하연과 그레이가 만났으니 나는 할일을 다 했다. 남은건 이제 티브 문명으로 가서 대마왕으로서 일을 하는 것 뿐이다.

그러고보니 지구도 이제 몇달 정도 지났을텐데, 어떻게 되었을런지 모르겠네.

아마 슬슬 망하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이미 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뒷일은 시온이 알아서 할테니까 나는 딱히 걱정 없고.

"일단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너 오는거 기다리느라 깨작깨작 먹고 있었어"

"아, 그래? 미안하다. 술 담근거 좀 꺼낼테니까 그걸로 좀 봐줘라"

불판 위에다 멧돼지 고기를 본격적으로 굽기 시작하고 다른 요리들도 내온다. 산이라서 그리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양이 많아서 나름 성대하게 열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내 요리 실력은 최소한의 재료만 있어도 나름 괜찮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안주로는 딱이다. 자고로 좋은 술과 좋은 안주만 있으면 분위기는 절로 나는 법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겨? 돌아가서 결혼식이라도 차릴려고?"

"만난지 한시간도 안됐는데 그러겠냐. 일단 못다한 이야기 좀 나누고 어떻게할지 천천히 생각해야지"

"엌, 엔딩이 보였다!"

"이 새끼가 뭘 안다고 엔딩이야, 엔딩이?!"

"내가 연애 한두번 해보냐? 여자로서 연애 빼도 댁보단 연애 경험이 수십배는 많거든? 척하면 착이지. 내가 연애 척척박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척척석사는 되니까"

"척척석사란 놈이 세다리, 네다리 걸치다 칼에 찔리냐?"

"야! 그건 환생 초창기때 그런거고! 요즘은 역장 덕분에 안찔려!"

선이는 옆에서 구운 멧돼지 고기를 오물오물 잘 먹고 있었고, 나는 골고루 먹으라면서 따로 나물 말린 것도 슬쩍 밀어주었다.

원래 어릴 때는 잘 먹어야 잘 크는 법이야.

"그래서? 이 다음에 뭐 하려고?"

"나? 일해야지"

"대마왕?"

"그렇지 뭐, 별일 있겠어? 시온 건드린놈 조지러라도 가는줄 알았냐?"

"솔직히 그거 말고 네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만한 일은 별로 없잖아"

그레이는 심판의 절대자, 비록 반쪽짜리라도 나보다 훨씬 격상의 존재다. 내가 반딧불이면 그는 태양이나 다름없다. 로드쯤 되야 좀 비교가 될까.

너무 터놓고 이야기하면 나만 불리해진다. 나는 운명의 절대자 쪽에 연을 두고 있으니 나중에 언제 적대할지 모른다.

"너는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야. 만약 저번에 나랑 싸울 때 네가 진짜 날 죽이려고 했으면 정면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텐데, 하지 않았지?"

"거 무슨 방법?"

"인질을 잡는다던가"

"흠"

홀로 문명 한두개 정도는 가볍게 멸망시키는 초월자에게 있어서 인질로 삼을만한 것은 별로 없다. 지인이라도 초월자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 결국에는 떠난다.

하지만 그레이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은 각각 자신의 세력이며 운영하는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정말로 그레이랑 싸워 이기고 싶었다면 먼저 그레이가 운영하는 델타 캐슬에 쳐들어가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뒤에 뭔가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현 시점에서 가장 발전한 문명이라도 나 정도의 초월자는 거기서도 드물다, 아니 한두명 빼고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 권능은 순식간이라.......피해없이 막는건 힘들겠지.

"거 그렇게 인질 잡고 협박하면 내가 쪽팔리지. 내가 너랑 싸웠지 니네 애들이랑 싸웠냐?"

"그렇게 말하는 시점에서 갱생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거야"

"갱생? 갱생? 개애애앵새애애앵?"

나한테 가장 먼 단어를 들이밀면 쓰나, 나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굴거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한참 늦었다.

사람을 죽이는 죄는 깊다. 그리고 나는 내 이기주의로 사람을 죽였다.

죄책감은 없으나 내 죄는 언젠가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단지 그 심판은 심판의 절대자인 그레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야겠지만 말이다.

최후에 최후의 나는 영웅에게 죽는다. 그래야만 내 죄는 심판 받을 수 있다.

속죄나 용서가 아니다. 심판이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그런 심판 말이다.

"심판의 절대자면 절대자 답게 좀 내 인과율좀 꼬아서 내가 심판 받게 해봐"

"네가 만족할만한 심판은 내가 아니라 나이트로드가 해야겠지. 그런데 그 녀석은 너를 죽여서 심판하진 않을텐데 말이야"

"그러면 나를 죽이게 만들어야지"

대마왕의 숙적, 대영웅. 그리고 현 시대의 유일한 대영웅인 나이트로드.

크게 보면 한 집안의 사촌인 최길현이고 나쁘지 않은 사이지만 나는 내심 내 최후를 심판할 영웅으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나는 나쁜 놈이다. 사람 죽이고 죄책감도 없는 개자식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의 법 체계로는 심판할 수 없고 죽여도 결국 환생한다.

그런 나를 끝낼 수 있으며 심판할 수 있는건 그 녀석 정도다.

"그 녀석은 대영웅이야. 모두를 구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 아직 그러지는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어. 그런 녀석이 진심으로 너를 죽일거라고 생각하냐?"

"거 어쩌다가 이런 문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는지는 몰라도 이건 내 문제야. 양보 못해"

"나도 심판이란 개념을 담당하는 절대자로서 네 죄를 모른척 할 수는 없어. 대마왕으로서 죽인 사람들은 직업의 문제니까 죄가 없다 쳐도 내가 개인적으로 죽인 사람들은 별개의 문제지"

"그래서 뭐, 지금 한판 하자고? 저어번에 여자로 싸우다가 내 가슴골 좀 보여주니까 얼굴 붉히던 놈이 지금은 남자라고 꺼릴거 없이 붙자는거야 뭐야"

".........스승님?"

"야! 그런 소리를 왜 지금 해?!"

대마왕은 문명을 심판하는게 일이다. 이 직위는 절대자 공인이며 그 증거로서 운명의 절대자는 우리들이 파괴 행위에서 비롯되는 인과율을 면제시켜주고 있다.

요컨데 아직 인과율에서 자유롭지 않은 내가 얼마나 죽이던 그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죽인것, 예를 들어서 중국에서 2000만명 정도 죽인건 온전하게 내 죄다. 내가 2000만명을 죽인 인과율 정도로 손가락 하나 끄떡도 안하지만 확실하게 그건 죄였다.

솔직히 내가 인정했는데 여기서 말이 뭐가 더 필요하겠어. 시온 건드렸으니 거기서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을거다.

"이상한데서 고집을 부리고, 하지만 그 고집은 자신의 마지막 인간성을 지키기 위함인가. 역시 넌 인간답구나"

"왜 이상한 소리를 해? 벌써 취했어?"

"마음을 굳게 가져. 지금의 너는 로드에서 한발자국 남은 상태지만 그 남은 한발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

절대자라는 이름과 직위는 허언이 아니다. 그는 단숨에 내 문제를 꿰뚫어 보았다.

그래, 그의 말이 맞다. 지금 나는 당장에도 로드에 이를 수 있지만 남아있는지 아닌지 모를 내 인간성에 의해 갈팡질팡 하고 있다.

쉬운 길이냐, 어려운 길이냐, 이대로 쭉 가느냐, 아니면 새로 시작하느냐. 뭐 그런 문제다.

막 로켓 발사하는데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면 아예 딴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이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일이였다.

"나는 로드에 오르면서 인간성을 버리기로 했었어"

"그 시절 댁 모습은 모르지만 지금이랑 별반 차이 없을거라 보는데?"

"그때는 좀 더 감정적이고......뭐라고 해야하나? 얘들아, 예전에 나랑 지금의 나랑 차이 좀 있지?"

"흐음, 스승님은 그때랑 그리 변한게 없으시지만 성격이 약간 변한듯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난 그 시절 성격 모른다"

차례로 용하연, 만병왕, 스승님의 말이였다.

"인간성의 유무는 인간이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야. 마냥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지려고 한다고 가질 수 있는건 더더욱 아니지. 내가 그런거고"

"........절대자?"

"그래, 그렇지 뭐. 내 인생 최대의 실수"

그레이는 심판의 절대자이지만 그 앞에 반쪽이, 혹은 반편이란 멸칭이 붙는다. 심지어 태초 이후 처음으로 후천적으로 절대자에 오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능력도, 절대자로서의 개념 또한 가지고 있지만 격은 진짜 절대자에 비하면 떨어진다.

"내가 로드에 오르면서 결정한 의지는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구원을'이였지. 그런데 내가 절대자에 올라 획득한 개념은 '심판'이야"

"구원과 심판이라. 비슷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그건 다른건데"

"그래, 무척 다르지. 그래서 나는 온전하게 절대자에 오르지 못하고 반편이가 된거야"

로드에 이르면 수명이란 개념이 없어진다. 죽으려고 해도 쉽사리 죽을 수 없기에 언제 죽을지 기약없는 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하다.

요컨데 자신이 삼는 평생의 기치다. 자신이 영원히 살아가면서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추구할만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로드가 가진 의지다.

"잘 선택해. 네가 고민하는건 당연한 문제야. 나 같은 녀석은 되지 말고"

"나한테 그런 충고 해줘도 되냐?"

"오지랖이라고 생각해. 저번에 생각외로 죽여버린게 미안한 것도 있고"

"한번 죽여버린걸 오지랖으로 때울 생각이냐!"

"네 녀석, 아까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것 같은데. 너는 나보다도 사람 많이 죽인 주제에 그런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스승님, 원래 남 죽이는거랑 자기가 죽는건 다른 법이예요"

"나랑 같은 소리 하는걸 보니 이 자식도 천살성 맞군"

다같이 낄낄거리면서 멧돼지 고기 안주에 술 한잔 넘겼다.

시간 투자하긴 했지만 그레이 놈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환생자라도 저 녀석은 그런 내 환생 나이 합친 것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원래 꼰대의 말은 몰라도 어르신의 인생 경험은 들어서 나쁠거 없다.

특히 실패한 경험 같은거면 더더욱 말이다.[작품후기]최악이 절대자가 되는건 아직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로드라면 또 모를까.

주인공이 로드 바로 앞에 두고 있다는 소리는 자기 의지만 정하면 바로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근데 진로 고민중이라 존버하고 있죠.

슬슬 다음화로 무림 파트는 끝입니다. 지구 파트는......뭐, 그때는 소제목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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