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회
[우리 손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흉신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 몰라!]현 무림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고 중원 바깥의 다른 무림 세력들은 그 힘을 온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십수명인데 반해 초절정 고수가 리더에 나머지 전원이 절정 고수다. 마공이 초반 성장 속도는 빠른걸 생각해도 내 일행을 제외한 무인들의 실력으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호오? 용모파기를 보아하니 무당의 태극검룡일터인데, 정보를 수정해야겠군. 절정이 아니라 초절정 고수였다니"
"과찬이오. 이름 높은 마교의 비마각주라면 그리 큰 이름도 아닐테지"
"그 나이에 초절정이라면 장래의 천하제일인은 따놓은 당상일진데......아무래도 교를 위해서라면 너희들도 죽여둬야 할 필요성이 있겠구나"
솔직히 나이대비 경지 따져서 천하제일인이면 우리 동동이가 위겠지만 일단 잠자코 있자.
그렇지만 마교의 비마각이란 곳이 정보단체인듯, 우리들을 한번 흝어 보다가 이내 나와 용하연에게 시선이 닿았다.
어둑어둑한 밤이지만 놈의 안색이 굳는게 확실하게 보인다.
"흉제? 그리고 마룡후!!!"
"왜 나는 의문형이냐"
솔직히 존재감을 따지면 내가 최근에 활동했어도 천년 전부터 화자되어온 천하삼절이 더 유명할 수 밖에 없는건 당연한 노릇이였다.
"천하삼절이 어째서 여기에.......?"
"딱히 천마의 유산을 노리는건 아니고, 천마의 유산을 노리는 놈들을 노리고 있어서 말이야"
"그게 사실이오?"
"내가 뭐 거짓말 해야하냐? 솔직히 개쩌는 절세신공 같은건 천기자한테 말하면 한두개쯤 그냥 알려줄텐데. 그리고 난 내가 익힌 것도 겨우 배운터라 딱히 욕심 없다"
사실이기는 했다. 나는 재능이 없는데 생사를 오가는 싸움 속에서 확률 조작을 통해 살아남아 강해진 타입이라 사실상 재능 자체는 평범한 축이다.
흔히 말하는 절세신공들은 보통 뛰어난 재능을 요구하는 터라 내가 익히려면 앞으로 환생 몇화차는 풀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보다 지금 배운거 더 활용하는게 더 낫다. 무엇보다 능력 있으면 사실상 능력만 파도 된다. 어지간한 능력 하나가 절세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것보다 효율이 뛰어나니까.
이해가 어렵다고? 같은 천살진기를 배웠으나 내 스승님이랑 '간섭'이란 천살진기의 근원이 되는 능력을 익힌 나 중에서 누가 더 강할까?
물론 나지. 당연한 대답이다.
"여기서는 내 얼굴 봐서 그냥 넘어가면 어떻겠나? 문주도 죽였는데 문파까지 작살을 내야 성이 찰텐가?"
"흐음......."
나는 살짝 기름칠을 해주었다. 어차피 놈들이 우리가 천하삼절이란걸 알고 있으면 싸운 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히 알고 있다.
그러니까 물러날 길을 터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만 도망갈 길이 있으면 거기로 빠져나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리 깊게 얽매일 필요도 없지 않나?"
"그게 무슨 뜻이오?"
"천마신공은 교주의 독문무공, 그런데 그걸 회수하는 사람으로 너희를 보낸걸 보면 이해가 될텐데?"
"........예리하군, 과연 반로환동한 강호인이라 이건가?"
"경험이 많다고 해줘"
천마신공은 교주의 독문무공이다. 그렇다는 말은 교주 외에는 문외불출의 무공이라는 뜻이였다.
만약 지금 퍼지고 있는 천마신공의 비급과 천마신검이 진짜라면 그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인원이, 혹은 직접 회수하기 위해서 천마 본인이나 그에 준하는 측근이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으로는 그게 가짜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들은 보낸 것이다. 진짜를 회수하기 위한 인원이라면 턱없이 적고 약하다.
"선대 교주님이 만병왕과의 생사결에서 패하시고, 그 시신을 수습하고 물러날 때 정파의 추격을 만병왕이 제지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예를 보이겠소"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그들은 물러나기로 했다. 나는 순순히 그들을 보내주기로 하고 물러나는 그들을 두고 보았다.
다른 정파 무인들이 뭐라 하려고 했지만 내가 시선을 주어 막았다. 무당파 애들은 내가 지켜줄 이유가 있으나 나머지는 아니다. 싸우는걸 막는 김에 구해주는거지 지들이 더 화를 불러일으키겠다면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한가지 충고를 해두겠소. 내가 놈들과 연합하여 정파와 사파 연합을 쓸어버리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놈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오. 그들은 나 이상의 고수만 하더라도 셋이나 있었소"
"알아, 마인 계통의 초절정 고수 셋이 몰려 있는게 보이더라. 근데 전대 마군이란 놈들도 거기 있디?"
"승모군과 광배군은 보이지 않으나 나머지 둘은 그곳에 있소. 또한 천화마녀(千花魔女)또한 그곳에 있으니......한편으로는 당신과 악연이 될지도 모르지"
"누구?"
"만나보면 알 것이오"
"거 참 좀 내색하면 어디 쓰나. 뭐, 됐다. 만나보면 알겠다는데 만나보면 알겠지"
날 건들면 박살낼테지만 말이다.
이윽고 비마각주와 그 수하들은 현장을 떠났다. 마인들이 떠나 공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몇몇 무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화마녀라......전대 마군들에 대한 소식은 들었지만 그런 거물까지 끼어들었을 줄이야"
"아는 놈, 아니 년이냐?"
"대협께서는 모르십니까? 천살제의 제자이신데......."
"내가 스승님한테 배운건 무공 정도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듣지 못했거든. 게다가 난 무림 태생도 아니라서 말이야"
"흠, 스승의 은원을 제자가 계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궁세가의 소식을 들었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 걔네 이야기 들었냐? 요즘 어떤데?"
"무당파에 중재 요청을 해달라는 소식이 왔었습니다"
"그런거 그냥 이야기 해줘도 되냐?"
"거절 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남궁세가는 꽤 쫄리는듯 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사방팔방 그런 소리는 못하겠지. 이따가 방문하기는 할건데 그게 스승님 혼자일지 아니면 나랑 스승님 두사람이 그럴지는 잘 모른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참으로 우습구나. 과거의 은원, 그것도 천년이나 지나서 그때 당시 당사자도 아니고 역사로 남기되 은원으로 두지 않아야 할텐데.
역사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과거에만 얽매이면 안되는 법이다.
한국이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게 겪은 치욕스런 역사를 떠올리며 마냥 일본을 적대한다 한다면 경제적으로나 국제 사회적으로도 손실이 크다. 과거를 기억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존하여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해야하는 법이였다.
남궁세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스승님의 분노를 받을 것이다.
"내려갈 사람들은 보내고 저희들은 마인들을 쫒도록 합시다"
"알아서 해"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패잔병 같은 정파 무인들은 산 아래로 돌려보내고 인기척이 큰 방향으로 달린다.
아마 정파나 사파가 마인 연합으로 인해 붕괴 되었다면 남은건 그놈들 밖에 없을 터, 행선지는 곧바로 정해졌다.
"천화마녀, 천화마녀......음, 기억에는 없군"
"그러면 아마 초대가 아니라 우리 스승님 시대 사람인 모양인데?"
별호가 마녀가 들어가는거 보면 여자일터, 우리 스승님도 여자인데......한편으로는 북해빙궁주와 용하연의 사이처럼 단순한 여성끼리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나도 한편으로는 여성으로 환생한 적이 있어서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무섭고 추한지 잘 안다.
예뻐서, 젊어서, 돈이 많아서, 즐거워서, 행복해 보여서, 질투란 감정은 남녀 모두 가리지 않지만 여자의 질투만큼 귀찮은건 없다.
"인간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보면서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반대로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질투와 공포를 느끼게 되는거지. 그거에서 초월한 사람은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거고"
"그게 무슨 뜻이예요?"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보며 동정과 연민을 품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며 동경과 경외를 품는거야. 인간은 그렇게 발전하는거란 소리란다"
"네 이야기는 한편으로 초월적인 시야에서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답다"
"내가 인간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누가 보는데?"
대마왕이라고 하지만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초월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있을것 같냐? 그냥 초월자의 기만이나 다름없는거지.
윤리를 지키고, 올바른 기술과 사회, 정직한 지배 구조와 보장되는 자유. 그것은 평범한 인간이 봐도 문명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문제다. 요컨데 제일 낮은 허들이라고.
그것도 통과 못하면 죽어야지. 솔직히 그 짓은 오만한거 맞다만.
초월자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도 현상이기에 살인조차 죄가 아니다. 살인이 만연한 세상도 두면 우리가 왜 일하냐?
"흐흐흐, 아무래도 정파 나부랭이들이 남아 있던 모양이다"
"태극 문양을 보아하니 무당의 말코들이구나!!!"
마침 그때 누군가 소리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흉흉한 마기를 풍기고 있지만 기세만 그럴뿐 실력은 기껏해야 일류 정도에 불과한 잔챙이들이였다.
대기만성형의 정종무공과 달리 조숙한 타입의 마공을 익혔다면 일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진짜 잔챙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름 이름은 있는지 붉은색과 푸른색의 복장을 갖춰 입은 쌍둥이 마인들을 보며 누군가 소리쳤다.
"청적쌍마(靑赤雙魔)!!"
"유명한 놈이냐?"
"둘의 합격진이라면 능히 절정 고수도 죽일 수 있다는 쌍둥이 마인들입니다!"
"좆밥이네. 너......아니, 아니다. 여기서는 다른 선택을 해볼까"
딱 좋은 상대들이다. 절정 고수도 쓰러트릴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수준은 일류 끝자락. 선이의 대련 상대로 충분해 보였다.
나는 놈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가라 선이! 너로 정했다!"
"엑?!"
"저런 실전 상대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저 아저씨들 막 험악해 보여서 싸우기 싫은데요!"
"그러면 싸우고 싶은 상대랑만 싸울래? 그러지 못하는게 무림이지. 딱 좋은 상대라서 싸우는게 좋은데......음, 이기면 선물 줄건데 뭐 원하는거라고 있어?"
"........선물이요?"
"생일선물 비슷한 느낌으로"
어차피 나는 여기서 1년 되기도 전에 갈거다. 선이 생일이 언제인지 듣지 못했지만 운이 좋으면 내가 있을 때 챙겨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내년에 내가 없을 때 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던 생일 선물 하나쯤은 챙겨줘야 하니까......근데 저맘 때쯤에 여자애들은 뭘 좋아했더라. 지구였다면 유행하는 프리큐어 변신 도구라도 사줄텐데.
이 시대상을 생각해도 조악한 인형이 전부다. 애들 장난감은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니까 생각해보니 선물해줄게 딱히 없었다.
음......마누라한테 연락해서 뭐라도 하나 받아오는게 낫겠다. 아니면 그레이한테 뜯어내던지.
용하연을 이런 차원까지 데려와줄 수고비면 애들 선물로 퉁치는 것도 싼거다. 내 합당한 노동력을 착취하지 마라!
"대협, 아무리 겉보기보다 고수라 할지라도 아직 어린 여아가 청적쌍마를 상대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마냥 쉬운 상대랑만 싸우는게 무림인인가?"
".......예, 그렇긴 합니다"
"여차하면 내가 끼어들거야, 걱정마"
선이는 양손을 펼쳐들었다. 흐름을 중시한 낭아유수를 보법에 응용하고 거기에 더해서 강기를 뿜어낸다.
청적쌍마는 선이의 수강을 보고 흠칫하며 놀랐지만 이내 기분 나쁘게 웃었다.
"흐흐, 놀랄 정도의 기재인 여아로구나. 하지만 우리들의 합격진이라면 설령 절정 고수라도 죽일 수 있다는걸 모르는 모양이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들 하지. 그 나이라면 온갖 지원을 받아 절정에 이르렀을지 몰라도 경험이 일천할 것은 분명하구나!"
두놈이 선이에게 달려들었다. 선이는 그런 두놈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재빠르게 제압하기 위해 움직여 공격했으나 그들은 거리를 벌려 빠르게 피했다.
신속한 움직임으로 시야를 혼란시키고 마기를 뿜어내 합격진과 융화시켜서 기감을 교란시킨다. 절정 고수도 죽인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였다.
더군다나 절정 고수의 가장 뛰어난 무기인 강기조차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강환(綱丸) 같은 것을 날리려고 해도 선이는 아직 그 정도까지 수준을 쌓지 않았고 상대는 그걸 호락호락하게 맞아줄 정도의 수준이 아니였다.
절정 고수 죽이려고 각 잡고 보법이나 합격진을 익혔는데 쉽게 잡을 수 있었으면 노력을 왜 하냐? 그냥 재능 쩔고 절세신공 익혀야지.
"큭......."
쩌어엉! 챙! 챙!!!
선이는 놈들이 휘두르는 검격을 받아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기감 속에서 낭아유수를 제대로 펼치기 힘들고, 상대는 확실하게 살의를 드러내며 죽이려고 든다.
저번의 사파 잔챙이들이랑은 수준이 다르다. 선이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한편으로는 위기다. 내가 없었다면 죽을 수도 있겠지.
"어린 여아라면 베는 맛이 있겠군!"
"야들야들한 살을 베어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
두놈은 도발이나 위협 비슷한 언행으로 공포를 유발시켰다. 하지만 선이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우우웅!!
선이가 자세를 바꾼다. 양손이 앞이 아니라 위와 아래로 향했다. 한손은 하늘로, 한손은 땅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내 옆에 있던 태극검룡이 흠칫거리며 놀랐다.
"저 기수식은......대협, 혹시 저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쳐준적 없어. 몇번 보여주긴 했지만"
"그런?!"
선이는 태극나선경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보여주긴 했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을 말이다.
수준을 따지면 백리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분해의 이치를 펼쳐냈다. 태극의 기류는 단숨에 놈들의 합격진이 만들어내던 마기의 기류를 풀어 해쳤다.
"아니?!?!"
"합격진이?!"
"거기다!!!"
콰직!!!
단 한순간, 한순간이면 된다. 기감을 다시 찾고 낭아유수를 펼칠 수 있는데다 두놈의 위치도 파악한 선이가 그들을 잡는건 아주 찰나의 시간만 필요한 일이였다.
선이의 권강(拳綱)이 놈들의 단전을 박살냈다.
[작품후기]동동이도 있고, 태극검룡도 있지만 미래의 천하제일인은......
생각해보면 천하삼절 중에서 용하연 빼고 두명 다 남자였는데 당시 최강은 용하연이였죠. 지금은 만병왕이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여자는 강한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