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회
[우리 손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흉신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 몰라!]정리를 끝내고 나는 손을 털면서 정파 무림인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표로 나온 팽가제일검, 패도주거는 나에게 포권을 쥐어 감사 인사를 표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흉제 대협. 헌데 천마신검은......."
"아, 난 그런거 관심 없으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 해. 하북팽가 정도의 지방의 맹호라면 충분히 신뢰하고 맡길 수 있겠지"
"음!!"
내가 좀 띄워주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근데 대충 보니까 그 천마신검도 가짜로 보이는데.
울 마누라라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 같은걸로 진위 여부를 파악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니다. 딱 봐도 각 나오는구만.
"하지만 천마신검은 전대 천마의 절대무공의 심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꽤 임기응변이나 그런건 있나본데? 일부러 그런 식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말이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패도주거가 한 말은 요컨데 그거다. '한동안 보호해주면 대신에 천마신검의 심득을 얻으면 나눠주겠다', 대충 그 소리다.
자고로 고수를 이기는게 쪽수라 하였다. 나는 상관 없지만 아무리 초절정 고수 어쩌고 해도 차륜전으로 밀어붙이면 진다. 용하연도 무림을 재패할 수는 있지만 전 무림의 모든 인간들이 작정하고 일어나서 전부 덤벼들면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걸 토대로 삼은게 바로 천라지망이다. 포위해서 다구리 까는거.
아무튼 그들만으로는 천마신검을 팽가로 가져가는게 조금 불안하니 나에게 심득을 나눠주는것을 조건으로 호위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내 목적이 천마신검이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딴놈이 목적이니까 거절하는게 당연하다.
"그 천마신검은 천년 전에도 만병왕이 당시 천마를 쓰러트리고 남은 것이지. 지금은 천년이 지난데다가 같은 천하삼절의 무공을 익힌 내가 그 검의 심득을 바랄것이라 생각하는가?"
"혹여 마음이 상하셨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됐다. 산을 내려가겠다면 좀 돌아가라고 충고해두지. 길목 따라가면 충돌할 사람이 많을테니"
"알겠습니다, 대협"
나는 그들을 보내주고 숨어 있던 선이와 용하연 쪽으로 돌아왔다. 천마신검 쪽은 정파 쪽에서 회수하여 갔으니 이제 남은건 비급 쪽이다.
"저게 가짜란걸 말해주지 않아도 되겠나?"
"말해줄 필요 있어? 그런거 가지고 허송세월 하는 것도 지들 선택이고 책임이지"
내가 딱히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처럼, 신병이기라고 해봐야 결국에는 죽으면 맨손으로 가는 법이다.
심지어 초월자인 나도 맨손으로 왔다 맨손으로 가는데 그런거에 집착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인피니티 포스 코어는?"
"그거는 내가 한 노력의 산물이고. 지식 비슷한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변명이군"
"꼬우면 한판 붙던가"
이윽고 다시금 움직였다. 아직 산은 피냄새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히 흐르고 있었다.
"분명 해 떠 있을 때 나왔는데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네"
"산의 밤은 일러요. 아마 금방 어두워질거예요"
"그렇긴 하지. 후딱 끝내거나 아니면 밤샐 각오로 돌아다니는 편이 낫겠다"
"오늘 잠은 다 잔것 같군"
나는 이 산 주변에 기감을 펼쳤다. 대충 이 넓은 곳에 등산할만한 곳도 아닌데 거의 만명에 가까운 무림인들이 있는걸 보면 기겁할만한 인구밀도지만 한편으로는 대륙의 기상 같기도 하다.
이러니 삼국지에서 전쟁 터지면 수만, 수십만이 죽어나가지. 인구 수 하나만큼은 오지네.
"대충 초절정 고수만 하더라도 여덞명은 있는데?"
"많군. 지금 수준을 보면 기인이사가 많은게 아니라 주변의 실력자들은 모여든거 아닌가?"
"초절정은 커녕 절정도 보기 힘든 시대에서 뭐 하다가 온건지 모르겠다니까. 수준은 뭐.......그놈들 다 덤벼도 너 하나 못이기겠네"
"수준 참 떨어지는군. 그 시절 초절정 고수가 열명쯤 된다면 나랑도 싸움은 해볼만 할텐데"
"그런데 용하연 언니는 무슨 경지예요? 초절정 다음에는 오른 사람이 적어서 확실하게 정해서 부르는 경지가 없다고 하는데"
"확립이 안된거겠지. 수준이 발전되고 절정 고수까지는 재능없는 놈도 교육 방식에 따라 배우면 오를 수 있는 수준이 안되고서야 명칭을 정하지 않을테니까"
뭐든지 확고하게 정해져야 명칭이 생기고 연구도 하는 법이다. 지금 용하연이 있는 경지조차 천하삼절과 천기자만 올랐을텐데 겨우 몇명을 위한 경지를 부를만한 제대로 된 명칭이 있을리 없었다.
기껏해야 절대지경이니 신화경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지만......글쎄?
"내 관점에서 보면 크게 나눠서 다섯개쯤 되겠지"
"겨우 다섯개요?"
"일류, 절정, 초절정, 초월지경, 절대지경, 이렇게 다섯"
"생각보다 적네요? 그러면 용하연 언니는 절대지경인가요?"
"아니, 쟤도 나도 초월지경이겠지. 절대지경에 오른 녀석은.......딱 두명 밖에 없어"
내가 말한 경지는 세부적인 경지를 따로 두지 않고 그냥 크게만 봤을 때의 경우였다. 초월지경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초월자에 오른 것, 신선이나 용, 혹은 그냥 나 같은 초월자의 수준에 이른걸 말한다.
나와 용하연이 같은 초월지경이지만 격차가 크듯이 거기에는 또 단계로 나누겠지만 결국 배우는 기술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절대지경은......말 그대로 절대자를 말한다. 이 세상의 축 중 하나. 초월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 그게 바로 절대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레이, 아니 천기자 류천이지"
"역시 우리 스승님이군!"
"천기자는 딱히 무공으로 알려진 별호가 아닌데도 엄청 강한가봐요?"
"재주가 많아서 천기자(千技者)라고도 불리기도 했으니까. 경지에 이른 마법사면 원래 도사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마법사?"
"저어기 서역에는 열양지공이나 빙공을 익히지 않아도 불이랑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술사 비스무리한 것들이 있단다"
"와! 굉장하다!"
"볼려면 신강 넘어서 가야 하니까 어지간하면 못보고"
"진짜 있기는 한건가? 이 무림에?"
"있긴 있어"
다만 번성함은 다른 차원에 비하면 떨어지겠지만. 여기는 무공 중시지 마법 중시가 아니라서 말이다. 마법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기 때문에.......아마 마법사라고 해도 반쯤은 연금술사에 마법도 마술 수준으로 밖에 못쓸 것이다.
아, 이쪽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나는 기감을 집중해서 초절정 고수인 놈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으음.....죄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라도 유별난 놈이 안보이는데"
"마공을 익한 녀석도 말인가?"
"마공 익힌 놈들만 9명 중에 5명인데? 전부 찾아가려고 해도 귀찮아"
"그러면 좀 기다리도록 하지. 그런 놈들이 쉽게 죽을리 없겠고 숫자가 좀 줄면 선택지도 줄어들테니까"
"하긴, 여기 흑막이라고 한다면 어지간해서 죽진 않겠지"
숭모군이나 광배군이란 놈들은 어차피 날 만나서 그런거니 둘째쳐도 이 시대에서 초절정 고수라면 쉽게 죽을만한 실력자가 아니다. 세가 하나에서 달려들어야 겨우 죽일 수 있을텐데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
물론 초절정 고수들끼리 싸우면 죽긴 하겠지만......이번 사태의 흑막이랑 관련된 놈들이 일부러 나서서 죽을리가 있겠냐? 아까도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시독귀마던 패도주거던 다 죽고 놈이 천마신검을 가져갔을 것이다.
도대체 놈들은 뭐가 목적이지?
"일단 최종적인 목적은 날 죽이는거나 아니면 블러디어의 각성 밖에 없는데 말이지"
"흉신혈제를 신으로 떠받들면서 혈교라 이름 붙였으면 원한이 있을만도 하지. 그만큼 놈은 강했다"
"초대 블러디어니까. 자고로 프로토타입이나 초대란 이름 붙고서 특별하지 않은 녀석은 별로 못봤어"
"보통은 반대 아닌가? 나중에 나온게 더 발전되고 개량되어서......."
"킹 블러디어 보면 그럴만도 하지. 청출어람도 정도껏 해야하는데!"
아무튼 지금으로서 놈들의 목적을 딱히 생각하기 어렵다. 아마 전대 마군 중에서 대형이라는 놈을 잡으면 될것 같기는 하다만.
"출출한데 뭐라도 좀 먹을까? 토끼 한마리 방금 지나갔는데"
"고기!"
"소금은 있나? 없으면 좀 그런데"
"요리한다는 놈이 향신료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봐? 후추는 더럽게 비싸서 없지만 다른건 조금씩 들고다닌다고"
운송수단이 한정되어 있는지라 딱 대항해시절 향신료 취급을 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것은 비싸다. 소금 같은 경우도 국가에서 시세를 조정하며 세금을 매기고 있으며 거기에 편승해 보다 이문을 남기기 위해 밀염상들 또한 존재했다.
기술의 발전은 이럴 때 필요한데......지구 반대편에서 난 본고장 향신료도 하루만에 받고 막 그런걸로.
지나가던 토끼 한마리 잡아다가 그대로 털을 뽑고 피와 내장을 빼냈다. 시간을 좀 들어야 더 맛이 좋지만 주전부리가 필요한 마당에 많은걸 바라지 않는다.
소금과 팔각을 버무려서 고기에 발라주고 조금 둔 후에 굽는다. 토끼 고기는 누린내가 좀 나지만 팔각향이 그 누린내를 잡아줄 것이다.
"굽는건 자고로 기술이지. 느그 스승 동생이 그러더라"
"아, 사숙(師叔) 말인가"
"황금성에서 얼굴 봤지? 걔도 나만큼 요리 잘해"
"네가 사숙만큼 요리를 잘하는게 아니고?"
"야! 내가 더 요리 잘해! 얘가 지금 사람 자존심 건들고 있네?!"
"후후후, 그동안 그렇게 도발해도 별 반응 없던 녀석이 그 한마디에 발끈하는군"
"아오, 승질 뻗쳐서 증말"
대충 다 구워져서 다리 하나 뜯어다가 선이에게 주었다. 조금 뜨겁긴 하지만 후후 불면서 선이는 맛있게 토끼 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막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르진 않았어도 나름 먹을만한 정도로는 붙어 있어서 뜯어먹는 재미가 있다.
"음? 누구 오는데?"
"무인.....은 맞는데 절정에서 일류인 녀석들이군. 천마신검을 탐하러 온 불나방들 치고는 꽤나 실력이 좋다"
"정순한 내공을 보아하니 정파 쪽인데. 어디서 왔으려나?"
어차피 우리야 별로 알바 아니지만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란 말이 있다. 착한 사람은 오지 않고 오는 사람은 나쁘다고 하지.
나는 개인적으로 그 단어를 문과적으로 좋아한다. 들어간 글자는 같은데 순서 배치에 따라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 되거든.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길 찾는거면 저희도 초행이니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공통된 복색으로 도복을 입고 있었다.
음, 도복을 입는 정파라면 한정되어 있는데다. 딱 봐도 어디인지 파악되는 도복에 그려진 태극 문양은 어둑어둑해진 지금도 눈에 잘 띈다. 심지어 선이마저도 잘 알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아까 말했던 선재불래 내자불선은 틀린 모양이다. 세상사 절대란 없으니 말이다.
"무당파?"
"예, 무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현진이라고 합니다"
"호오, 별호는 따로 없으십니까?"
"강호의 동도들은 태극검룡(太極劍龍)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대충 서른 전후로 보이는 나이에 절정 고수라면 나름 재능이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수준으로는 절정 들어서기 위해서는 못해도 40대는 되야 하는걸 보면 무당파에서도 촉망받는 인재로 보인다.
게다가 우리가 누군지도 아직 눈치 못챈것 같고......동동이 하나 빠졌다고 부부 자식으로 보이나 설마?
"혹시 이 주변에서 흉흉한 무리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내려가는 사람은 봤지만 아직 더 올라가려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태도가 마음에 든다. 도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 중에서도 무당파라서 그런가. 한편으로는 저런게 정파의 저력이란게 느껴졌다. 수준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저런 녀석들이 있으니 앞으로 수십년이면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자기들끼리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형, 아무래도 더 올라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야겠구나"
"그쪽에 계신 분들도 산을 내려가시지요. 어두워도 지금 이 산에는 혈사가 불고 있어 야숙을 하시기에는 위험한 곳입니다.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건 순수한 호의였다. 계산 하나 없이 그들은 순수한 걱정으로 인해 그런 제의를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흉제이고 용하연이 마룡후인걸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티가 났을테니까.
"음......."
"무자배 제자 한명을 붙여 도시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내려가시는데 큰 위험은 없을겁니다"
"그래, 니들은 마음에 들었다"
무림에는 승모근인지 승모군인지 헷갈릴 여자 강간하려드는 인간 말종 새끼들도 있지만 이런 녀석들도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고 돌아가는 법이다.
한편으로는 사회를 관장하는 대마왕으로서 그들이 이후 올바른 사회를 이끌 재목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좀 가르쳐주마. 태극의 이치는 얼마나 배웠니?"
우우웅!
나는 태극나선경을 운용하면서 말했다.
자고로 무림인에게는 깨달음이 가장 좋은 선물이지!
[작품후기]주인공은 성격이 개차반이지만 착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의 바르게 대하면 나름 호의로 갚아줌.
걸어다니는 문과 출신 기연제조기 나가신다!!
아무튼 이따 하나 더 올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