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회
[우리 손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흉신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 몰라!]놈들을 제압해서 한곳에 몰아넣으니 꽤나 재미있는 꼬라지였다. 다섯놈은 그래도 동동이에게 제압당해서 낫지만 나머지는 딸 뻘인 선이에게 제압 당했으니까.
"끄으으으......"
"꼴불견인게 구경할만 하구만"
그냥 죽여버려도 좋겠지만, 왜 습격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는게 좋다.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면 나중에 또 이런 습격을 받을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이 주변에는 놈들만 있는게 아니였다. 다른 녀석들도 많다.
"선이도 잘 했어. 첫 실전이였지만 실수하지 않고 말이야"
"네!"
"그래도 상대가 고만고만해서 다행인거지 실력이 더 위인데 죽이려고 드는 상대였다면 이번처럼 끝나진 않을테니까 평소에도 각오는 해두고"
"네! 아저씨!"
이번 일은 상대가 선이보다 약하니까 쉽사리 제압당한 것이다. 훨씬 위의 상대였다면 선이도 봐주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
자고로 한명도 죽이지 않은 무림인은 있어도 한명만 죽인 무림인은 없다. 무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힌다는 뜻이다.
언젠가 선이도 사람을 죽일 때가 온다. 피하고 싶어도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래, 니들 왜 우리 마차를 습격했냐? 산적도 아니고 뭔 볼일이 있다고? 딱히 우리 마차가 비싼 것도 아닌데 말이야"
"크윽......그, 그건"
나는 한놈에게 물어서 사정을 들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하북에서는 전대 천마의 유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전대 천마? 왜 신강에 있는 마교 대빵을 하북에서 찾아?"
"그, 그것이......하북은 오래전 전대 천마와 만병왕 대협께서 생사결을 하신 장소라서 그렇습니다"
"아"
여기서 신강은 되게 멀다. 거의 중국의 반은 지나가야 하고 가장 빨리 간다 하더라도 몽골과 감숙성 북부를 지나가야 했다. 신강의 사막은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절 외부 무림의 세력들이 중원을 침공하던 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사자인 용하연도 그렇듯이 만병왕 또한 몇몇 세력을 격퇴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마교.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당시 천마는 만병왕이 직접 상대해 승리했다.
저번에 지옥참마도 걔랑 만났을 때 이야기 한거니까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아무튼 전대 천마의 유품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말이지?"
"예, 그 중에서도 마인들이 천마의 독문무공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더욱 몰려들고 있습니다. 특히나 전대 마군들 조차......"
"전대 마군!!!"
마군(魔君)? 꽤나 거창한 별호다. 마인이면서 그런 별호, 거기에 전대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꽤 나이 먹은 노괴라는 뜻이다.
우리 일행 중에서 현 무림의 지식이 가장 풍부한 동동이가 놀라는걸 보면 악명도 높은가 보다.
"전대 마군들이라면 기괴한 악행들과 성격으로 두려움을 사는 마인들입니다. 한명 한명이 초절정 고수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아마 지금쯤이라면 절대지경에도 올랐을지 모릅니다"
"그래?"
"호오, 현 무림에도 아직 쓸만한 녀석들이 남아 있었나?"
"마인들을 쓸만한 녀석들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대협?!"
"니들 수준을 보고 이야기 해라. 명문정파에 나랑 비슷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절대지경 발 들여놓은 놈이 하나도 없다는게 부끄러워 할 일이다"
"평소 같았다면 꼰대 같다면서 타박하겠지만 맞는 말이니 킹정한다"
다른 곳이라면 어차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공은 쇠퇴할테니 크게 신경 안쓰겠지만 여기는 무공 발전을 중시하는 세계다. 관리자가 그렇게 정했다.
지구가 과학이 발전 했듯이 여기는 무공이 발전하는거라고 생각하면 좋다. 하지만 그런 무공조차 뒤떨어지면 왜 존재하는가?
"그 시절에 세외 무림이 쳐들어 왔을 때 무림이 버틸 수 있었던건 나 이외에도 쟁쟁한 실력자가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황제가 핍박했어도 약해진건 죄지"
"음......."
"순수하게 실력으로 싸워 한쪽이 졌다면 그건 진 사람이 약해서 그런게 아닌가? 그 논리를 개인이 아니라 무림으로 바꾸었을 때 이야기다"
"......대협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나는 슬쩍 선이에게 시선을 돌려서 말했다.
"선이 너도 기억하렴. 결국 무림에서 중요한건 힘이란다. 힘이 없었으면 저기 널부러져 있는건 네가 될 수도 있었겠지"
선이는 사파 놈들이랑 나를 번갈아 가면서 보며 조금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하지만 강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나요?"
"오호, 왜 그렇게 생각하는건데?"
"그냥 강하기만 한거면 폭풍이나 천둥번개가 어지간한 고수보다 강하잖아요. 중요한건 그 힘을 쓸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어이구, 대견하다"
나는 쓱쓱 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힘 다음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 힘을 쓸 방향성이다.
내가 가진 힘은 시온을 지키기 위함이다. 여러가지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만약 내가 이만큼 강해지지 않았다면 워 로드 그 금발 태닝 양아치 새끼가 우리 시온을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으면 최후의 경우에 나이트로드가 나섰을테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가 완전히 죽기 전에는 도움 받기 싫지만.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냐에 따라 마인이 되고 협객이 될 수 있는 법이지. 정파 출신이여도 그걸로 강간하고 사람 막 죽이고 다니면 마인이 되는거고, 마공을 익혀도 잘 다스리고 협을 행한다면 협객이 되는거지"
"뭔지 알것 같아요"
"대협, 그렇다면 협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양심을 속이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더해 선해질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로 내 사상은 나이트로드를 보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그놈은 천성부터가 착해 빠져서 그렇다. 나 같은 놈을 도와주려고 하는걸 보면 알만 하지.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내면에 후천적으로 얻은 선함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선함과 악함 사이에서 번민하는게 바로 인간이다.
"네가 생각해서 옳다고 생각하는걸 실천해라. 협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외면하고 옳지 않은걸 택하는게 가장 쉽고 간단할 뿐이지. 그걸 선택한게 바로 저놈들이다"
"........."
"쉬운걸 해서 협이라 불렸으면 누구나가 다 협객이지. 어렵고 힘든 일을 진심으로 실천할 때야 비로소 협객이 되는 법이다. 알았지?"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대협"
무림의 협객이란 한편으로 영웅이나 다름없다. 자고로 영웅 관련 이야기라면 내가 제일 빠삭하다.
대마왕인데 오히려 반대 아니냐고? 그러면 대마왕인 나가 주로 어떤 녀석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냐? 한편으로는 조커와 배트맨같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거랑 똑같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백리에게 영웅의 길을 걷는걸 쥐어 패서라도 막으려고 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살려는 사람을 죽이려는건 쉽지만 영웅이 죽으려는 사람을 살리려는건 더럽게 어렵다. 그걸 행하는게 바로 영웅이다.
"그럼 선이야,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제가 선택해도 되는거예요?"
"그래, 네가 선택해. 선택의 무게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도 좋지"
일검에 사람 목숨 하나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하나의 선택에 사람의 목숨을 결정 짓는건 똑같은 일이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무림인은 될 수 없다.
아직 어려도 무림인은 무림인이다. 그걸 조기교육 시키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
"살려두면 또 나쁜짓이라도 하겠지. 그치?"
"아, 아닙니다 대협!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며 조용히 살겠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봐봐, 다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잖아. 이런 놈들은 지금만 목숨 부지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이짓 할거라고"
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건 전부 티가 난다. 숨기려고 애쓰는 놈들의 거짓말도 파악하는데 자기 욕구에 충실한 녀석들의 거짓말이 통할리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착한 짓 하고 다니는 정파와 다르게 사파는 대놓고 나쁜 놈들이다. 누군가는 정파를 위선자라고 욕하지만 적어도 이놈들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
"그러면 무공만 폐하고 풀어주면 되지 않아요? 내공만 못익히면 결국 남 괴롭히는 것도 못할텐데"
"하다못해 동네 건달이라도 되서 돈 빼앗고 다니면?"
"흠......힘줄을 살짝 자른다던가?"
"히이이이익! 대협! 대협!!!!"
선이 얘는 사람을 너무 봐주지만 그렇다고 마냥 호구스러운건 아니다. 적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이다.
"그건 앞으로 네가 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면 그만이라도 아직은 못하니까 내가 해주마. 다만 이번처럼 쉽게 넘어갈 일이 생길거라고는 장담 못하니까 그 이상의 각오도 하는게 좋아"
투웅!
내가 손가락을 튕겨 작은 강기 조각을 나누었다. 그것은 날아가면서 수백개의 미세한 조각으로 나누어져 그들의 몸에 침투해 단전 및 근맥을 부쉈다.
"평범한 사람보다 좀 약한 몸이 되긴 하겠어도 벌어먹고 사는데는 문제 없을거다. 니들 말대로 목을 붙어주겠으니 고향 돌아가서 밭이나 일구면서 사는 편이 좋을껄"
"으윽......."
"니들 얼굴 기억 했으니까 어디서 남 등쳐먹다가 보이면 그 순간 목 날아갈 줄 알아라"
뻥! 하고 한놈 엉덩이를 걷어차 주니까 그제서야 놈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대충 하나 끝났지만 앞으로 더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만 같았다.
"마인들이 몰려들고 천마의 유품이 발견되고, 이거 무슨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소리냐"
"무슨 소리예요 아저씨?"
"일 존나 꼬이게 생겼다고. 아, 생각하니까 빡치네"
아무래도 조용히 지나가기는 글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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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도시, 장산에 도착한 우리들은 한편으로 돌아가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하북에 발을 들인게 늦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돌아가려면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서 몽골 쪽을 통해서 가거나 아니면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가 최대한 빨리 하북을 넘어서 가는 수 밖에 없는데 어느 쪽이던 귀찮다.
일정 늘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트러블 생기는대로 놈들 조지고 가는 편이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객잔에 별채 외에는 자리가 없답니다 대협, 어떻게 할까요?"
"빌리지 뭐,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없다는데 어쩌겠냐. 돈 낭비 하더라도 빌리는 수 밖에"
여태까지 야숙도 많이 했지만 반대로 객잔에서 머물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잔에 방이 없다는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만큼 이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때 아닌 성수기로 인해서 경제 활성화가 될법도 하지만......
"돈 많이 벌어서 좋은거 아니예요?"
"글쎄"
우당탕! 콰직!!!
객잔 한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내 대답을 대신했다. 두 무리로 갈라진 무림인들이 서로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주변에는 싸우느라 생긴 피해, 예를 들어서 박살난 의자나 상 같은게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그 피해는 더욱 커질것 같았다.
"고작해야 중소문파 나부랭이가!!!"
"이 자식! 감히 우리 태도방을 무시하다니!!!"
무림인들이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마주할 확률도 높고 개중에는 트러블이 일어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은원 관계, 혹은 단순한 자존심 문제, 이권 다툼 등등등. 싸울 소재는 많지만 결과는 똑같다. 객잔 주인이랑 점소이만 죽어나가기 마련이지.
"얘들아, 우리는 귀찮으니까 되도록이면 저런 트러블 생기지 않게 굽히고 들어가자"
"저런 놈들은 굽히고 들어가면 얕보는 법이다만?"
"아, 유연한 태도는 여기서는 독인가. 욕 좀 했다고 칼부림 나는 놈들은 과연 다르군. 나는 무림인은 아니라서 몰랐음"
나는 어디까지나 무공 좀 쓰는 고수지 무림인은 아니다. 무림인의 마인드가 되어 있지 않아서 무림인은 확실히 아니다.
좀 많이 오긴 했어도 내 기본적인 관념은 21세기 지구 정도에 맞추어져 있다. 원래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그건 어떻게 잘 바뀌지 않더라.
요컨데 내가 길에서 시비 걸려도 어지간해서 경찰 찾는건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나한테 시비 걸렸다고 칼부림 나는건 보통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
물론 힘 쓸때는 쓴다. 내가 쓰면 꼭 사람 하나 죽으니까 자제하는거지만.
"근데 우리들이 누군지 누구 눈치챈 놈 있을 것 같냐? 아까 오다 보니까 거지 새끼들 몇놈 돌아다니던데. 혹시......"
"아마 죄다 천마의 유산에 눈이 팔려서 어지간하면 신경 안쓸거다. 알아도 쉽사리 접근해오진 않겠지"
우리들에 대한 소문은 꽤 많이 퍼졌지만......인터넷이 없는 이상 이 시대의 소문은 다른 때보다 신선도를 가지고 있었다. 천하삼절에 대한 소문도 퍼지긴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옥황상제 강림이랑 천마의 유산 같은 큰게 퍼진 이상 우리에 대한 소문도 사그라들 수 밖에 없다.
요컨데 정치인들이 문제 터지면 사건 몇개 터트려서 조용히 묻어버리려는 언론 플레이랑 비슷하다.
아, 생각해보니까 개빡치네. 울 마누라 화성 문명에서 그 짓 하는 놈 있으면 갈아버려야겠다.
사람이 솔직하지 않아도 정직하게는 살아야 하는게 당연한건데 말이다. 나도 건들지만 않으면 범죄 안저지르고 잘 사는데 무슨.
"일단 최대한 시비 걸리지 말고 조용하게 가......."
"뭐라고! 별채가 없다고? 이 분이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야지!!!"
"................"
으으으으음, 나를 여기서 고생시키려는 운명의 절대자의 농간이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작품후기]가게에서 진상 부리는 것들 진짜 싫죠.
여기서 진상이랑 되도 안된는 조건을 들이밀고서 해달라고 징징거리는 식의 진상을 말합니다.
제가 입주자로부터 여기여기 시공이 잘못됐어요 하면서 따져지는건 합당한 컴플레인이지만 계약도 안됐는데 여기에 벽장 하나 만들어주세요! 하고 소리치는건 진상이죠.
으으으, 진상 다 죽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