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국지냐 하면......아, 스포.372회
[화성 심시티 빌드잇]각국의 쟁쟁한 포스 유저, 혹은 군부 관계자들이 모인 회의실은 한편으로 꽤나 소란스러웠다.
자그마치 3명의 마스터 유저와 한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모인 자리다. 포스 유저가 모습을 드러낸지 지난 20년 역사를 뒤져도 이런 일은 없었다.
"중국에서 발생한 거점 파괴에 대한 정보는 전해 받아서 알고 있지만, 본인의 입으로 다시 한번 듣는 것이 낫겠군요. 백리씨?"
"네"
일단 기본적으로 적성종 대처에 대한 정보는 국력에 관계 없이 공유한다. 적성종은 인류의 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에 나타났던 블리디어와 같이 종종 비밀로 할 때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였다.
"중국에 있던 거점은 파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규모나 병력이 적은건 아니였습니다. 그저......."
정공법으로는 돌파할 수 없다. 군대의 지원도 쓸모가 없고 인해전술과 함께 간단한 전술까지 구사해오는 상대는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이미 러시아에서도 파악한 뒤였다. 중요한건 놈들의 거점 중심지에 돌입한 다음이였다.
"현재 적성종들을 지휘하고 있는 이계인......미국에서 받은 정보에는 가르-레칼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거점 중심지의 신전에서는 놈의 분신 같은게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무력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저와 히비키씨가 시간 끄는 것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사기를 죽이는 꼴이지만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그거 때문에 몇명이 죽어나갈지 모른다. 백리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히비키도 마스터 유저 중에서 약하진 않은 축이였고 백리는 현재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다.
그런 두사람이 합공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 끌기 밖에 못했다는건 그만큼 상대가 강하다는 반증이였다.
"더군다나 놈은 상당한 핸디캡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간형 적성종 또한 놈이 자기 손으로 죽여버려서 놈만 상대했으니까요"
"흐음......."
누군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만큼 상황은 절망적이였다.
러시아의 거점은 중국보다 컸다. 아니, 자원과 인간을 먹어치우고 갈아내어 확장한 것이다. 거기에 도대체 얼마나 되는 인간이 들어갔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돔의 크기만 하더라도 직경이 100킬로미터에 달했다. 중국의 거점에 몇배나 되는 거대한 크기다.
"저번과 같은 방법이 통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 방법 외에 유효한 수단이 얼마 없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이탈리아의 대표, 아드리아나가 백리의 말을 막았다.
"이번 사태가 가벼운게 아니란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마왕이 그걸 묵시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들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모습을 감추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그, 건......."
그것은 백리의 역린이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된 원흉. 대마왕들이 물러나 손을 쓸 수 없어서 다른 차원에서 오는 위협에서 구해줄 수 없는 이유.
"그 얼굴을 보니, 모르진 않겠군"
아드리아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단지 백리가 입을 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런 압박이 오히려 백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언젠가 알려져야 할 이야기였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서 관리자, 그러니까 신에게 위임 받은 권리로 제가 대마왕에게 심판 보류 요청을 했습니다"
"심판 보류 요청?"
"예, 대마왕이 심판을 하지 않고 지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하는. 그런 요청입니다. 그래서 대마왕 강림 이후 나타나지 않던 적성종이 그들이 떠나간 후에 침략해 오는 겁니다"
결국 대마왕은 지구를 떠났다. 심지어 지구 태생인 최악조차.
대마왕들은 더 이상 이 지구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심지어 성격 나쁘고 마음대로 행동하기 좋아하는 유토피아 조차도 그 맹약 앞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유토피아는 그게 나온 이상 자기가 하고 싶은건 다 했지만 말이다.
"심판 보류 요청은 대마왕이 더 이상 지구에 손을 대지 않는 대신에 반대로 지구가 위협 받을 때도 손을 대지 못하는 그런 맹약입니다"
"아니, 그런걸 어떻게.......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한겁니까?"
".......네"
"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포스 유저 대표는 고개를 저으면서 백리를 비난했다.
사람들의 모든 언행과 규탄이 백리를 찌르는 칼날이 되어 날아온다. 그리고 그건 백리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결과였다.
백리가 살라딘을 구해서 그가 이 자리에 은혜를 갚기 위해 왔듯이, 반대로 백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받는건 옳바른 인과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질 때 누군가 백리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
쿠웅!!!
묵직한 충격이 땅을 울렸다. 영국의 마스터 유저, 윌리엄이 방패 끝으로 땅을 찍어서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백리씨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 중에 꽤나 염치가 없는 사람도 많네요"
"하지만 가웨인 경! 이런 중대한 사안의 일을 국가적인 토론 없이 홀로 판단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뭐가 달라집니까? 심판을 받은 국가와 받지 않은 국가. 두개로 나뉘어져서 각축을 벌일게 뻔한 일인데. 결국 이 문제에 답은 없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오답일 뿐"
"지금 적성종이 침공하여 죽어나가는 사람은 누구 책임입니까? 그의 책임인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적성종에게 사람이 죽는건 적성종의 책임입니다. 대마왕이 강림하기 이전에도 인간은 적성종과 싸워 희생이 생겨 왔습니다"
백리와 윌리엄은 닮았지만 달랐다.
만약 백리가 저 싸움에 끼어들어 언쟁을 벌였다면 하고 싶은 말을 반도 하지 못하고 밀려났을 것이다. 그런데 윌리엄은 익숙하게 반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놈들을 물리치면 그만입니다. 우리들은 여태까지 그래왔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지지 않을겁니다. 언젠가 놈들에게서 승리하는 날이 온다면 백리씨의 선택은 오답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답에 가까운 오답이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답이란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글쎄요, 그걸 따지고 싶으시다면 일단 가슴에 손부터 얹고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대마왕의 심판에서 과연 그대의 고국이 무죄를 선고 받을 자신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프랑스 대표"
"그........."
누군게 크흠! 하고 불편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는 유럽권의 국가에서 온 파견자들이 많고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의 과거는 썩 좋지 않다.
"제 조국인 영국도 과거에 저지른 식민지 문제에 관련해서 반성은 커녕 현재에도 식민제국이라 생각하는 골 빈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대마왕의 심판 아래에서 무죄는 커녕 만장일치로 유죄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판국에 프랑스가 살아 남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이, 이!!!"
"영국보다 프랑스가 더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대마왕의 심판은 과거 또한 보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였다.
독일은 나치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배상금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고치려는 의지가 있다면 대마왕은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판단한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정반대다. 나치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하여 묻혔다 뿐이지 그들이 저지른 죄도 나치에 지지 않았다. 인도의 간디가 왜 유명해졌고 중국의 아편전쟁이 왜 일어났겠는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계속 이야기 해봤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윌리엄이 눈짓하자 백리가 감사를 표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를 변호해주는건 한편으로 적을 만드는 행위. 그가 저번에 경고했던 말이다. 그런데도 도와준 것은 그의 심성인지, 아니면 정말로 백리가 옳았다고 생각해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건 이 사태가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그걸 토론 하기 위한 자리에서 책임 소재를 물으면 끝내봤자 소득도 없다.
"개인적으로 동감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이야기 하고 있는 시간 동안 더욱 큰 피해가 발생한다. 보다 이로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군"
러시아의 마스터 유저, 소피아도 두둔하며 나섰다.
"내 조국은 심판을 통과했지만 지금 거기에 대해서 따지지는 않겠다. 따지더라도 일이 전부 끝난 뒤일테니 지금 할말은 없다"
"그........"
만약 누군가 백리를 규탄해야 한다면 그건 필시 심판을 통과한 국가만 가능할 것이다.
러시아 또한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심판을 통과했다. 더군다나 거점은 러시아에 생겨서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백리를 비난하고 나선다면 그녀가 제일 선두에 서야 하지만 지금 당장 따지진 않기로 했다.
그런건 일이 끝난 뒤에 따져도 늦지 않는다.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보다 조국을 우선시하기로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백리는 그저 감사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경험이 부족한 것은 매번 느끼고 있지만 그릇마저 부족하다는건 이번이 처음 느끼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상대와 같은 상황이였다면 화를 억누르고 먼저 해야 할 것을 하려고 할 수 있었을까?
그때는 도리어 백리라도 화를 냈을 것이다. 역지사지라고 하지만 결국은 남일테니.
"그럼 다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백리가 천천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
길고도 짧은 회의 시간이 끝났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개중에 중요한 논제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러시아의 거점 공략, 다른 하나는 백리의 선택에 대한 것이였다.
전자는 공통된 의견이지만 후자는 의견이 갈린다. 과연 백리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따지려면 많은 토론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
"잠깐 괜찮겠나?"
"아, 네"
이탈리아의 대표, 아드리아나가 백리에게 말을 걸었다. 따로 커피라도 한잔 한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빠져나온 두사람은 인스턴트용 커피 믹스로 대충 때워 커피를 마셨다.
......어째서 러시아 한가운데에 익숙한 스틱과 회사의 커피 믹스가 있는지는 따지지 말자. 생각해보면 도시락 라면도 러시아에서는 깊게 진출해 있으니 커피 같은 것도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건 아니다.
달달하고 익숙한 커피 맛이 입에 감도니 조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아까 전의 일은 미안하다. 조금 성급하게 물어본것 같군"
"무슨 일......아, 그거 말인가요"
회의실에서 백리에게 대마왕의 행방에 대해서 물은건 그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란이 일어났던 것이였고.
"어차피 언젠가 알려질 일이였어요. 제가 감내해야 할 일이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난 단지.......아니, 미안하다"
뭔가 물어보려던 기색의 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말았다.
백리가 곤란할 질문을 한건 아드리아나였지만 그녀에게 악의가 있어서 한 질문은 아니였다. 단지 의문과 호기심이 주된 감정이였다.
이럴 때는 백리의 성격이 좋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었단걸 알면 어지간히 나쁜 일이 아니고서야 마음을 털어버린다. 한편으로 호구스럽지만 그래도 친구로 사귀기에는 좋은 성격이다.
"따로 물어본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최악에 대해서 몇가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군"
"형이요? 어, 혹시 형하고 아시는 사이신가요?"
"만나본적은 없다"
"어......."
말이 조금 애매했다. 만난적이 없다면 없는거지 만난적은 없다는 소리는 어딘가 간접적으로 마주했던 적은 있다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처음 그의 얼굴이 세간에 드러났을 때 꽤나 묘한 감정이 들더군.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의 동양인이고, 눈매가 좀 나쁠 뿐이지 잘생긴 것도 아닌데 어디서 본것 같은 느낌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좀? 그 눈매가요?"
"주변에 험한 인상의 남자들이 많아서 그 정도는 귀여운 편이다"
"뭘 하셨길래......."
"떳떳한 일은 아니지"
그녀의 국적은 이탈리아고, 이탈리아에는 떳떳하지 않은 일로 유명한 것이 있었다.
종종 야쿠자와 삼합회와 엮이며 거론되는 범죄 조직. 마피아였다.
"어, 음......."
"그렇게까지 기겁할 필요는 없다. 손 씻은지 꽤 됐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현직 마피아라면 애초에 이런 자리에 올 수조차 없겠지"
"아, 그렇긴 하네요"
"전부 옛날 이야기다. 어차피 이제 남지도 않은 패밀리니까"
그녀는 이탈리아의 이름난 마피아의 보스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 조직은 이제 세상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성종의 출현, 그에 이른 포스 유저의 출현으로 그녀의 자리를 노리던 자들이 발 빠르게 포스 유저를 영입하여 혼란스런 시대에 편승했고 거기에 그녀 또한 거기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단지 살아남은건 그 타이밍에 그녀가 포스 유저로 각성하여 암살자들을 역으로 기습해 죽이고 무너질대로 무너진 조직을 정리해 이탈리아 정부와 사법 거래로 포스 유저로 일하기로 했다.
포스 유저 범죄, 거기에 범죄 조직 관련이라면 가중 처벌이 무기징역이 나올 정도로 크지만 그 시절은 대공황 시기였다.
포스 유저는, 그것도 각성하자 마자 어린 여자애가 성인 남성 포스 유저를 도리어 암살할 정도의 능력 있는 포스 유저는 이탈리아 정부도 바라던 바였다.
"그러면 그 눈도 그때.......?"
"아, 이건 더 예전 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상처지"
"대공황 시기면 20년 전인데. 그때도 마피아 보스면 도대체 몇살부터 됐다는거예요?!"
"대충 12살인가, 13살인가"
"히이이이익?!"
백리가 기겁했다. 전직 마피아라고 들었을 때보다 그게 더 무서웠다. [작품후기]백리의 섣부른 개인 판단으로 대마왕이 떠난건 욕처먹어야 하는게 당연한 사실이지만.....
유럽권의 상당수 국가들은 그럴 자격 없음, 프랑스라던가, 영국이라던가, 기타등등.
대마왕이 있었다면 진작에 심판 당했을 국가가 꽤나 많거든요. 그래도 나치하면 기겁하는 수준인 독일은 좀 제외.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는 티라도 내면 심판에서 무죄 받을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게 일본이라도요. 안해서 망했지만요.
그래도 백리가 욕 안먹는다는 소리는 안했다.